• “당이 모든 걸 지도한다”
    중국 정치의 주역, 공산당
    [중국과 중국인] 당의 통제력 강화
        2018년 07월 03일 04: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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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에서 ‘국가주석’과 ‘부주석’의 연임 제한 규정을 폐기한 지난 3월의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정치협상회의)가 끝나고 곧바로 향후 중국정치의 20년 이상을 가늠할 수 있는, 어쩌면 시진핑의 권력강화보다 훨씬 더 심대한 영향을 가져올 중요한 당과 국가기구의 조정이 단행되었다.

    그러나 ‘시황제’, ‘영구집권’, ‘마오쩌뚱에 버금가는 절대 권력 장악’ 등 선정적인 단어와 문장으로 연일 기사를 쏟아내던 양회에 대한 떠들썩한 보도와는 달리, 이 중요한 기구 개혁에 대한 언론 보도는 무관심 그 자체였던 것처럼 보였다. 여전히 중국정치를 ‘당’이라는 조직에 의해 움직이는 정치형태로 파악하기보다는 최고지도자 등 ‘인적’ 요소가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파악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권력 기구 개편은 개혁개방 이후 진행되어 온 당과 행정부의 역할 분담에 대한 평가와 반성 그리고 중국사회에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제반 문제들에 적절하게 대처하기 위한 고민의 결과가 담겨있다. 우선 이번 기구 개편의 주요 내용을 검토한 후 이 기구 개편이 의미하는 바를 규명해 보고자 한다.

    전면심화개혁소조(全面深化改革领导小组)를 비롯해 인터넷안전과 정보화소조(中央网络安全和信息化领导小组), 재정(财经领导小组)소조, 대외 업무를 관장하는 외사(外事领导小组)소조 등 4개 소조를 좀 더 공식적인 지위가 부여된 당의 위원회로 전환하는 동시에 의법치국위원회(依法治国委员). 회계위원회(审计委员会) 등을 신설했다.

    ‘영도소조’는 당의 공식적인 기구라기보다는 특정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임시적 성격이 강하며, 그 권한도 업무에 대한 논의와 협조에 그치지만, ‘위원회’는 당의 최고 의결기구인 당중앙위원회 산하의 공식적인 기구로 실질적인 사업 추진의 권한을 갖고 있어서, ‘소조’일 때나 ‘위원회’일 때나 구성원은 거의 같지만 당 안에서 기구의 공식성이나 권한이 한층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17년 10월 열린 19차 당대회

    다음으로 당의 핵심 부서인 조직부, 선전부 및 통전부의 기능을 확대 강화해 전체 사회에 대한 당의 통제력을 강화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국무원 산하 감찰부와 국가부패예방국(国家预防腐败局)을 국가감찰위원회로 통폐합해 당과 정부기구를 통괄 감찰하게 하고, 최고인민감찰원(한국의 검찰에 해당)의 반부패 감시 기능까지 귀속시켜 중국의 모든 권력 기관 및 민간을 통제하도록 했는데, 이런 막강한 권력을 장악한 국가감찰위원회의 주임(양샤오두(杨晓渡))이 당중앙기율검사위원회 부서기이며, 결국 당이 정부와 민간을 포함한 전체 중국사회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이와 함께 행정부 산하의 국가공무원국(国家公务员局)을 당 조직부(中央组织部)에 귀속시켜 당이 국가공무원까지 직접 감독 관리하게 했다.

    2) 선전부(中央宣传部)는 신문출판과 영화제작에 대한 관리감독 기능을 흡수하는 동시에 기존의 중앙티비방송국(中央电视台, 국제부 포함), 중앙라디오방송국(中央人民广播电台), 국제라디오방송국(中国国际广播电台)를 통폐합해 설립하게 될 중앙라디오티비총국(中央广播电视总台)까지 직접 통제하게 되면서 이념 언론, 문화 및 예술에 대한 당의 직할 체제를 강화했다.

    3) 종교 및 민족 문제와 화교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부의 유관 부서들을 통폐합 후 통전부(中央统战部)가 직접 관리감독하게 하면서 전체 사회에 대한 당의 통일적 관리감독 기능을 확대 강화했다. 특히 7~8,000만명(지하 가정 교회까지 포함하면 12,0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 2017년 기준 당원은 8,900만 명 정도)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기독교도(가톨릭 포함)의 빠른 증가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사회에 만연한 사회주의 이념의 퇴조와 파룬공(法轮功) 사태로 홍역을 치른 중국정부의 경계심이 (외래)종교에 대한 통제 및 관리감독 강화로 현실화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공산당원은 확고한 마르크스주의 무신론자가 되어야 한다는 시진핑(2016년 4월 전국종교업무 회의)의 연설 이후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한 다양한 관리감독 방안이 마련되고 있으며, 몇몇 지역에서는 건물 지붕에 세워진 십자가를 불법시설물이라는 이유로 철거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4) 당교(中央党校)와 행정학원(国家行政学院)으로 분리되어 있던 당 산하 교육기관의 기능을 조정해 당교가 중심이 되어 중앙과 지방의 중견 역량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게 하고, 당의 역사를 연구하는 당사연구실(中央党史研究室)과 당과 최고지도자들의 문헌을 연구하는 당문헌연구실(中央文献研究室) 및 사회주의 사상가와 지도자들의 저서를 연구, 번역하는 중앙편역국(中央编译局)의 기능을 재조정 후 통폐합하기로 결정했다.

    5) 인민해방군 및 국내 치안을 담당하는 모든 무장 조직에 대한 당의 통일적 지휘권을 강화하기 위해 행정부 내 여러 부서에 산재해 있던 무장 조직을 무장경찰부대(中国人民武装警察部队-국내 치안 담당)에서 흡수 통합해 당중앙군사위가 지휘하기로 결정했다. 즉 군대는 군대 경찰은 경찰, 민간은 민간의 원칙에 따라, 행정부 산하의 해양경찰, 공안부 등 여러 부처에 산재 있던 모든 무장 조직을 당중앙군사위가 지휘하는 무장경찰부대로 흡수 통합하고, 반대로 무장경찰부대가 관리하던 비무장 관련 부서들은 정부 관련 부분에 통합시켜 모든 무장 조직에 대한 당의 지배력을 극대화했다.

    이상의 모든 조치들이 결국 당의 권력 강화라는 일치된 목표를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개혁개방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단행된 이번 당과 정부 기구의 역할에 대한 재조정은 덩샤오핑 이후 진행된 당과 정부의 역할 분담 정책에 대한 재평가 및 그 문제점에 대한 해결방안으로서의 성격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특히 쟝쩌민에서 후진타오 집권기를 거치면서 드러난 최고지도부의 분열과 그로 인한 정책 집행력의 약화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런 현상은 당 내부, 당-정 관계, 사회 전반에 대한 통제력의 약화로 현실화되었다.

    우선, 후진타오 집권기에 가장 자주 언급된 문장이 바로 ‘아홉 마리의 용이 바다를 다스린다’ (九龙治水)와 ‘최고지도부의 지시가 중남해(中南海, 중국 최고지도부의 근무지)를 벗어나지 못한다’(政令不出中南海)였다. 후진타오가 당-정-군의 삼권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9명의 정치국 상무위원이 각자의 영역에서 독자적 결정권을 행사하고 서로 협조하지 못하면서 당-정의 정책결정이 지연되고 혼선을 불러왔으며, 지도부의 분열은 결국 상부의 지시가 제대로 집행되지 않고 탁자에 서류만 쌓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후진타오 집권 2기에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해 이런 상황을 직접 체험한 시진핑은 최고지도부의 이런 ‘따로 놀기’ 현상을 통제하지 못하면 결국 자신도 후진타오처럼 비운의 황태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꼈으며, 결국 최고 책임자인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또 그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킬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다.

    개혁개방 이후 지속된 당-정 역할 분담(党政分开)의 기조 하에서 특히 행정부 관료들의 경제정책 집행의 자율성이 점차 확대되었는데, 이미 총액으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무역국으로 성장한 중국의 경제적 위상과 더불어 그 책임이 커지면서 전반적인 경제정책 결정 과정과 관련 부서 및 간부들에 대한 당의 직접적인 개입과 통제가 필요하게 되었다. 총리가 주로 맡았던 재정영도소조(지난 3월 중앙재정위원회로 변경)의 조장을 시진핑이 직접 맡고, 정치국원이자 부총리인 리우허(刘鹤)가 중앙은행인 중국인민은행의 당서기를 겸임하는 것 등은 행정부 특히 경제 분야에 대한 당의 직접 통제의 강화 흐름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빠른 경제성장과 이로 인한 물질만능주의의 만연 그리고 사회주의 이념의 퇴조는 가치관의 혼란과 당이 강조하는 정신문명의 확립에 커다란 장애물이 되고 있다. 전국 방방곡곡에 시진핑이 강조한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富强、民主、文明、和谐, 自由、平等、公正、法治, 爱国、敬业、诚信、友善)이 새겨져 있지만 구호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인민들은 당이 지도 이념이 아닌 다른 것에서 심리적인 안정을 찾고 있다. 쟝쩌민 시대의 파룬공 사태와 최근 기독교의 빠른 전파는 사회주의 이념 대신 종교에서 위안을 얻으려는 중국 인민들의 이상에 대한 갈증을 보여주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 이후 이제 중국공산당은 외래 종교의 중국화에 대한 고민에 직면해 있다.

    이 모든 문제에 대한 책임은 중국공산당에 있다.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중화인민공화국)도 없기 때문이다(没有共产党,就没有新中国). 건국 이후부터 문화대혁명 시기까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분야에서 당의 절대적인 우월적 지위가 관철되었다. 개혁개방 이후 덩샤오핑이 당-정 역할의 분리를 들고 나온 것은 문화대혁명의 폐해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덩샤오핑 역시 당-정의 역할 분리를 주장하면서도 4가지 기본 원칙(坚持四项基本原则), 즉 사회주의, 무산계급독재(후일 인민민주독재로 수정), 공산당에 의한 지배,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뚱사상을 반드시 유지하겠다고 천명해 개혁개방에 반대하는 당원들을 달랬다.

    사실 ‘당이 모든 것을 지도한다’(党是领导一切的)는 원칙은 건국 이후 당의 흔들림 없는 최고 방침이었다. 시진핑이 19차 당대회에서 언급한 “당정군민학(党政军民学: 중국의 모든 계층, 부문, 영역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 동서남북중(东西南北中: 중국의 모든 지역)에서 당이 모든 것을 영도해야 한다.”는 원칙은 항일전쟁시기인 1942년에 처음으로 당의 공식 문건에 명문화(关于统一抗日根据地党的领导及调整各组织间关系的决定)되었고, 이후 마오쩌뚱에 의해 수차례 강조되었는데, 그는 특히 1973년 12월 개최된 중공중앙정치국회의에서 “정치국이 모든 분야를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혁개방 시기에 덩샤오핑의 후원을 받으며 당-정 분리를 야심차게 추진하던 자오즈양(赵紫阳, 당-정 분리에 관하여(关于党政分开), 1987년 10월)은 소련 및 사회주의권의 몰락이라는 대외적 요인과 이와 연결된 내부의 민주화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다 결국 덩샤오핑에 의해 무기력하게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쟝쩌민, 후진타오를 거치면서, 당-정 분리가 아닌 ‘전체 중국사회에 대한 당의 확고한 지배력 확보’만이 중국의, 중국공산당의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당을 비롯한 권력기구의 기능 조정과 재편은 이런 고민의 결과물이다.

    30여년의 실험을 통해 중국공산당은 ‘당이 모든 것을 지도한다’는 철 지난 그러나 강력한 무기를 꺼내 들었다. 낡았지만 아직까지는 강력하고 유용한 이 20세기의 보도(宝刀)가 21세기에는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필자소개
    중국의 현대정치를 전공한 연구자. 한국 진보정당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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