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님, 다 끝난 뒤 큰소리치면 뭐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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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4월 27일 02: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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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13일 일본이 독도 수역 내에서의 해저지형조사 계획을 고시한 것을 계기로 달아오른 한일 독도 갈등은 한일 양측이 각자의 계획을 ‘연기’하기로 하면서 일단락되었다. 한국은 국제수로기구(IHO) 해저지명 등록 추진을 6월까지 ‘연기’하기로 하였고, 일본 역시 해저조사계획을 6월까지 ‘연기’하기로 하였다. 실상 한국의 IHO 해저지명 등록 추진을 무산시키려고 했던 일본의 전략이 성공한 셈이다.

    해저 지명 등록 5년 연기, 왜 국민에게 설명하지 않나

    마치 정부는 이번의 독도 갈등에서 ‘승리’한 것처럼 설명한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다. 정부는 IHO 해저지명 등록이 이제 5년 후로 미뤄졌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설명하지 않고 있다. 독도 해저지명 명칭을 둘러싼 갈등은 이제 5년 후로 미뤄졌을 뿐이다. 일본은 한국의 명칭 등록을 무산시킴과 동시에 국내외적인 쟁점으로 만들었기에 만족해하는 모습이다. 서슬 퍼렇게 목소리를 높이던 한국 정부가 결국은 일본이 그려놓은 그림에 편입된 꼴이다.

    결국 한국 정부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마당에서, 정부는 다시금 독도에 대한 각종 대책들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전혀 새로울 것 없는 내용들이다.

    작년 3월에 정부가 대일 독트린을 발표하였을 때, 독도 문제는 가장 첫 번째를 차지하고 있었다. 정부는 ‘조용한 외교’를 탈피하여 ‘단호한 대응’을 하겠다고 선언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지난 과연 정부는 ‘단호한 대응’에 걸맞는 어떤 실천을 하였는가. 실상 외교적 실천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정부에게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다. 그것도 능력이 뒷받침되는 실천이다.

    철학 빈곤, 정책 무능 은폐 위한 국내용 담론

    그러나 한국 정부에선 ‘단호한 대응’이라는 담론만이 횡행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을 반일로 내모는 담론의 정치, 그 한 가운데 노 대통령이 자리하고 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일들이 끝난 뒤에야 노 대통령은 다시금 강경한 어조로 일본을 비난하며 나섰다. 왜 독도 문제 협상이 끝난 마당에 재차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는 지를 ‘외교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러한 대통령의 행태에 대해 일부에서는 포퓰리즘 외교라고 하기도 한다. 이러한 외교 행태는 실상 철학의 빈곤과 정책의 무능을 은폐하는 국내용 담론에 불과하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른 사회 양극화와 유연화가 국내의 내셔널리즘을 부추기고 있는 사정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이러한 내셔널리즘은 사회 유연화가 고도로 이뤄지고 있는 일본이나 개발경제에서 양극화의 폐단을 보이는 중국에서도 확산일로에 있다.

    지난해부터 대통령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한일 현안에 대해 정부는 지금껏 한 게 별로 없다. 외교통상부가 대통령을 기망하고 있거나, 대통령이 앞장서서 국민들을 상대로 정부의 실패를 은폐하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조용한 외교’가 아니면 무엇인가?

    지난 4월 25일 노 대통령이 한일관계 특별담화에서 ‘조용한 외교’에서 탈피하여 일본의 독도 침탈에 대해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밝혔을 때, 해외의 반응은 ‘조용’하였다. 일본에서 냉담한 반응이 나왔을 뿐이다. 일본의 진보세력들 역시 노무현 정부가 한일 화해를 저버리려하는가 라며 비판을 하고 있다.

    적어도 노 대통령의 말 속에선 두 가지가 읽혀진다. 첫째는 앞으로도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한일 관계를 갈등 기조로 가져가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일본의 우경화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일본이 강력한 경제력과 강화된 군사력을 바탕으로 ‘보통국가화’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갈등 기조를 통해서 이 문제를 풀겠다는 노 대통령의 언급은 무게감이 적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한국이 일본의 우경화를 저지할 외교적 수단이 부족하다는 것 때문이다. 또한 조용한 외교를 탈피하겠다는 한국 정부가 지금까지 ‘조용한 실천’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조용한 실천’조차 제대로 못한 한국 정부

    정작 ‘조용한 실천’만 제대로 했던들 지금과 같은 나쁜 상황은 좀 더 완화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남는 문제는 과연 한국이 대결적 기조를 통해 일본의 우경화를 제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일단 대통령의 발언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음이 여러 차례 증명되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외국으로부터 ‘국내용’이라는 냉소적인 반응을 받기 일쑤이다. 더욱이 외교적 실천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발언이어서 더더욱 그러하다. 또한 한일 관계에서 한국이 큰 소리를 친다고 해서 일본이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한국이 주변국과 협력하여 일본의 우경화를 제어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가장 먼저 미국과의 협력 문제이다. 미국은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가장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으며, 일본에 대해 군사력 증강을 재촉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미국이 한국의 뜻대로 움직일 리 없다.

    그렇다면 최근 가까워지고 있는 중국과의 협력 여부이다. 아마 외교적인 차원에서 일본의 우경화를 제어하는 데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중국과의 협력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역시 실현가능성이 낮으며 부정적인 효과가 클 수 있다. ‘화평굴기’를 도모하는 중국의 입장에서 항일(抗日) 연대를 전략적인 차원에서 추진해야 할 이유가 없다. 또한 중국의 입장에선, 동북아시아 역내 갈등의 심화는 미국의 영향력 강화를 부를 수도 있기에 부담스러운 측면이 존재한다.

    대결적 태도로 일본 우경화 막을 수 없다

    설혹 중국과의 항일 연대가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일본은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는 중국과 한국의 연합을 보통국가화 추진의 정당한 이유로 인식할 가능성이 오히려 클 수 있다. 중국과 한국은 경제협력의 단절 등으로 일본을 압박할 수 없다. 경제협력은 일본의 필요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한․중의 필요에 의해서도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대결적인 입장을 피력한다고 하더라도, 일본의 우경화와 군사대국화를 제어할 수 있는 마땅한 수단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한국이 외교적 실천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강성 발언을 반복하는 것은 한국의 외교력을 저하시키며, 일본의 대응력을 제고시킬 뿐이다. 일본의 냉담한 반응들은 마땅한 수단이 없는 한국의 대결적 정책에 대한 부정적 평가까지 담고 있다 할 수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노 대통령의 말에 대해 ‘나중에 후회할 때가 있을 것이다’라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외국 국가원수의 발언에 대해 이렇게 반응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한국의 발언이 이제 일본에서 대접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정부는 어떻게 일본의 우경화를 제어하겠다는 것인가?

    대통령이 은폐하고 있는 한일 유사 안보 동맹

    한국 정부의 외교 전략에서 대일 전략은 대북, 대미 전략에 종속된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필요할 때면 독도문제, 과거사 왜곡 문제, 재일동포문제 등을 거론하며 일본을 비난해왔다. 특히 군사정권 시기에는 취약한 정당성을 만회하려는 목적에서 일본에 대한 의도적인 공세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과거의 한일 갈등의 수면 밑에서 긴밀한 한일 제휴가 이뤄졌음을 기억하고 있다.

    빅터 차는 적대와 제휴가 공존한 한일 관계를 유사 동맹(Quasi Alliance)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공산주의의 위협’이라는 안보 현안이 최상위를 차지하던 시대에 한국은 한미, 미일 동맹의 틀 내에서 한일 협력을 추진하면서 그 구조를 이용하여 일본을 압박하기도 하였다. 한국의 공세에 일본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으면서도 조금씩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한 지 10여년이 이르는 동안 한일 양국의 게임 규칙도 달라졌다. 무엇보다 양국의 자율성이 대폭 확대된 것과 더불어 ‘안보’ 이외의 영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주변부만 건드리는 한국 정부

    일본은 ‘잃어버린 10년’ 동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정치․안보 면에서는 미국에 편승하면서도 경제적으로 독자적인 활로를 모색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의 일본이 강력한 경제력과 약한 군사력이 조합된 ‘평화’ 국가였다면, 미래의 일본은 강력한 경제력과 강화된 군사력이 조합된 ‘보통’ 국가일 것이다.

    일본의 보통국가로의 진행은 미국의 강력한 지원에 뒷받침되고 있다. 냉전시대의 ‘반공의 호(anti-communist arc)’를 ‘불안정의 호(Arc of instability)’로 바꾼 미국은 한미, 미일 동맹을 변혁하고 있다. 미일 동맹 재편의 맥락에서 추진되는 일본의 군사 현대화에 대해서 한국은 처지는 모순적이다. 반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좋게 바라볼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한국이 한미동맹 체제에 깊숙이 편입될수록 일본의 재무장화를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은 짐짓 일본의 우경화와 군사대국화에 대한 우려를 강조하지만 실제 한국이 일본의 군비증강을 차단하려고 한 적은 한 차례로 없었다. 일본이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에 동참하고 미일 양국군의 통합화를 반대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과 한국 정부가 일본을 비난하는 것은 보통국가화의 중심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주변부만 건드리는 것이다. 주변적인 사안들은 일본의 입장에서도, 한국의 입장에서도 적절하게 관리만 된다면, 국내 여론을 다독이며 자국의 전략을 추진하는데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가 일본 정치권과 깊은 커넥션(유착)을 맺고 있지는 않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뻔히 보이는 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제 정부는 과거 군사정권처럼 일본 카드를 이용할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대일 정책을 고려해봐야 한다.

    정부 스스로가 동북아시아 평화번영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지금까지 한일관계가 어떻게 관리되어야 하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일본의 우경화 흐름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서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틈이 날 때마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고성을 지를 뿐이었다.

    한일 협력을 복원해야 한다

    좋든 싫든 일본의 ‘보통국가화’는 ‘잃어버린 10년’ 동안의 시행착오의 결과이다. 고이즈미 정부가 한․중과의 갈등을 무릅쓰면서 동북아시아에서는 대립적인 정책을 취하고, 동남아시아에서는 경제협력을 추진하는 것은 ‘보통국가화’ 프로그램의 일부이다.

    한국이 이를 저지하겠다고 공언하는 것은 어쩌면 자가당착일 수도 있다. 오히려 한국은 진지하게 일본이 진정한 아시아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그러한 방안이 반드시 일본과의 대립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립 일변도의 전략으로는 일본의 변화에 ‘개입’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에 기초한 것이다.

    한국은 이미 그러한 전략을 취한 바가 있다. 바로 98년 김대중․오부치 게이조의 ‘21세기 한일 새로운 파트너십’이 그것이다. 당시 한일 양국은 수많은 분쟁 현안들을 해결함과 동시에 협력을 확대해나가기로 하였다. 양국 사이의 협력이 확장될수록, 수준이 높아질수록 분쟁 현안들의 해결 역시 개선되어 나갈 수 있다.

    동북아시아의 공동번영과 협력은 일본이 추진하는 동남아시아와의 경제협력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동북아시아 국가 사이의 갈등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일본으로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일본이 내놓은 동북아시아 자유무역지대, 한일 자유무역협정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것은 이를 반증한다.

    미국식 세계화 동북아 내셔널리즘 증폭시켜

    미국식 자본주의의 세계화와 이에 따른 사회양극화, 유연화의 심화는 동북아시아 역내에서 내셔널리즘을 증폭시키고 있다. 특히 사회적 약자인 청년 세대에서 보이는 내셔널리즘은 미래의 모습이기에 더더욱 우려스럽다. 동북아시아 각국은 인간의 삶이 보장되는 새로운 경제협력 모델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삶의 질’이 보장되는 사회 실현은 동북아시아 모든 국가가 강조하고 있는 일이다.

    이제 미래에의 공동 이익을 중심으로 하여 한일 간의 협력을 확장하고, 일본이 진정한 아시아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필요할 때면 일본에게 분명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로 각종 분쟁들이 현안으로 부상할 수도 있을 테지만, 협력의 확장이 분쟁의 평화로운 조정을 가능케 한다.

    일본의 보통국가화 경향에 대해서, 그리고 헌법개헌 움직임에 대해서 싸잡아 비판한다고 해서 흐름이 뒤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일본이 아시아의 일원이 되기 위한 명확한 조건을 제시하고, 선택적으로 일본의 변화에 개입하려는 것이 일본과의 협상에서도 유리하다.

    중국과 협력, ‘항일전선’ 되지 말아야

    이 과정에서 중국과의 협력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그것이 ‘항일(抗日) 전선’이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협력을 모색하는 방도로서 필요하다. 한국에게는 일본과 중국의 갈등을 ‘협력’을 매개로 중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한중 연합이 아니라 한국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협력의 교량 국가가 되는 길을 걸어야 한다.

    일본의 우경화와 군사대국화에 대한 궁극적인 대안은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형성하고, 동북아시아의 다자 안보․경제 협력을 심화시키는 것이다. 이는 일본이 동북아시아 협력의 틀에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동참하는 구조적 조건을 형성한다.

    미국 주도의 동맹 체제라는 제약조건이 존재하지만, 한국이 자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협력과 교류의 영역이 존재한다. 이제 노무현 정부는 시끄럽기만 한 대일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진지하게 평화번영정책의 회생을 도모해야 할 일이다.

    * 이 글은 진보정치연구소에서 발행하는 <래디컬 뷰>에도 같이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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