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52시간제 취지 역행
    여당, 탄력근무 확대 추진
    사업장 곳곳에서 편법·꼼수 자행돼
        2018년 07월 02일 12: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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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장 수준의 노동시간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 1일부터 주 52시간 근로시간제가 시행된다. 이날부터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에선 주당 40시간, 연장근로 12시간을 포함해 주당 근로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해서 일할 수 없다. 그러나 정부여당에서 시행초기부터 6개월 처벌유예를 결정한 데 이어, 탄력적 근로시간제(탄력근무제) 확대까지 거론하고 있어 ‘노동시간 단축 무력화’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노동자연대

    주 52시간 안착을 위해 탄력근무제 확대?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 연착륙을 위한 방안으로 탄력근무제 확대 방침을 내놓은 가운데,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28일 대한상공회의소 정책간담회에서 탄력근로제의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탄력근무제란 일이 많이 몰리는 기간 노동시간을 늘리고, 다른 기간엔 단축근무를 해 평균적으로 법정 노동시간(주 40시간)을 맞추는 것으로 ‘변형근로제’라고도 불린다. 현행법상 회사 재량으로 2주 탄력근무가 가능하고 노사 합의 시엔 3개월까지 가능하다. 정부여당은 이를 6개월까지 확대해 유연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노동계에선 임금손실, 노동강도 강화, 단기간 과로노동으로 인한 산업재해 등을 우려하며 반대하고 있다.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2일 오전 MBC 라디오 ‘이범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예를 들면 3개월을 놓고 볼 때 6주는 64시간 일하고 6주는 16시간 일해서 평균 시간을 법정 시간을 맞춘다고 했을 때 첫 주에 주당 24시간에 대해선 노동 강도도 강화되겠지만 초과근로수당을 받을 수 없다”며 “노동자 입장에서는 그 노동 강도도 강화되고 또 충분한 잔업 수당 받지 못하는 이중의 불이익을 받게 되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도 이날 같은 매체에서 “유럽, OECD 국가들 단위기간이 우리보다 길다. 그 이유는 (유럽 등은) 연간 평균노동시간이 대단히 짧기 때문이다. 독일 같은 경우 1300시간대, OECD 평균적으로 1700시간대”라며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금 2100시간이다. 연평균 노동시간으로 400시간, 개월 수로 치면 2.5개월 더 일하는 건데 여기에 탄력적 근로시간제까지 얹히게 되면 과중업무 집중근로로 인해서 산재 위협에 노출될 수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탄력근무제는) 최소한 연평균 노동시간이 1700시간대 정도 떨어졌을 때 논의하는 게 적합하다”며 “마이너리그에 있으면서 메이저리그 게임을 갖고 오자 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노동시간 단축보다 노동생산성 끌어올리는 것이 우선?

    보수정당·학계는 한국의 낮은 노동생산성을 이유로 주52시간 노동시간 단축에 사실상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장시간 노동 문제가 해결되면 노동생산성도 올라갈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정 정책본부장은 “국책연구기관인 노동연구원이 4년 전에 주52시간제 진입하면 얼마나 노동생산성이 향상될 건가 추계를 해본 결과, 최소 3% 정도 노동생산성 늘어날 거라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오히려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정책실장도 “2010년도에 이미 노사정 대표자들이 2020년까지 1800시간대로 줄이기로 합의를 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많이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준비가 안 됐다는 이야기와 더불어서 생산성 향상 운운한다는 것 뜬금없는 이야기”라며 “생산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계는 노동시간 단축이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정책실장은 “노동부 발표에 의하더라도 금번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해서 최대 18만 명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추정된다”며 “청년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이번 노동시간 단축은 일자리 창출에 아주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정책본부장 역시 “한국노총이 지난주에 300인 이상 사업장들 대상으로 신규 채용 계획이 있는지 조사해본 결과 60% 정도가 실제 채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과거 법정노동시간 단축 효과를 놓고 보더라도 일자리는 꾸준히 늘어났다는 게 증명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부 임금삭감…임금보전 대책 절실

    노동시간 단축으로 ‘과로사회’를 끝내고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엔 공감하지만 임금손실에 따른 일부 노동자들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버스업종에선 당장 80~90만원 가량의 임금이 삭감될 것으로 보여 갈등이 일고 있다. 근로기준법상 특례업종에서 제외된 노선버스업계는 이번 달부터 주 68시간을 맞춰야 한다.

    수원여객 소속 기사인 이계진 씨는 이날 오전 MBC 라디오 ‘이범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노동시간이 52시간으로 줄게 되면 월 80~100만 원 정도는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루 평균 17시간, 월 20일, 격일제로 근무하는 이 씨는 “52시간 적용 받게 되면 근무형태 자체가 일일 2교대 이외에는 할 수가 없다”며 “근로시간이 줄기 전에는 그 이상도 할 수 있었는데 52시간으로 줄게 되면 (초과근무를) 못하게 된다. 저희는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임금을) 받았는데 그만큼 못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저희 입장에선 임금보전 대책이 가장 중요하다”며 “정부에서 올바른 준공영제 실시를 해서 버스기사들도 저녁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사업장 곳곳에서 편법·꼼수…포괄임금제 바로잡아야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임금손실 문제 외에도 사업장 곳곳에선 어떻게든 노동시간을 늘리기 위한 꼼수와 편법들이 자행되고 있다. 특히 노동계는 포괄임금제 문제를 주시하고 있다.

    이 정책실장은 “300인 이상이 되지 않도록 기업을 쪼개기 해서 다른 법인으로 변경해서 시행을 늦춘다든지 명목상으로 휴게시간을 확대하거나 식사시간을 늘림으로 해서 노동시간을 늘리기도 하고, 또 교대제 같은 경우도 교대조를 늘리긴 하지만 조당 인원을 줄이는 꼼수를 동원해서 노동강도를 높이는 편법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가장 심각하게 문제를 삼고 있는 건 포괄임금제”라며 “근로시간 상정이 어려운 경우에 사용하는 제도이고, 엄격하게 적용돼야 됨에도 노동시간 단축 취지를 훼손하는 차원에서 상당히 많은 확산일로에 있다”고 지적했다. 포괄임금제란, 근무시간에 상관없이 일정액의 법정수당을 지급하는 제도다.

    정 정책본부장도 “실제 일을 하고 있지만 잔업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게 포괄임금제”라며 “화이트칼라 사무관리직 같은 경우 60% 정도가 포괄임금제 대상자”라고 설명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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