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0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수정안, 의미 있나
    [에정칼럼]꼼수와 보수, 폐기가 낫다
        2018년 07월 02일 11: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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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는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법에 정해 놨다. 2016년 5월에 개정된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시행령에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2030년의 국가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2030년의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 대비 100분의 37까지 감축하는 것”으로 박혀 있다. 2015년 파리 기후총회를 앞두고 당시 정부가 제출한 감축목표(INDC)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그리고 2016년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기본 로드맵’으로 부문별 감축 이행계획을 구체화했다.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법령 명문화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과거 보수정부들의 기후정책은 엉망이었다. 저탄소녹색성장 국면인 2010년에 처음으로 녹색성장법 시행령에 “2020년의 국가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2020년의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 대비 100분의 30까지 감축”한다는 목표치가 규정됐다. 그러나 2020년 BAU(전망치) 대비 30% 감축목표가 2030년 BAU 대비 37%로 수정되면서, 사실상 2020년까지의 목표는 사라졌다. 그마저도 37%는 국내 감축 25.7%와 국외감축 11.3%로 설정돼서 국내외의 비판을 받았다.

    개혁정부로의 정권교체는 에너지전환만큼이나 기후대응에서도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올해 말에 수립될 제3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2040년 에너지전환 종합비전’으로 수립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에너지계획에 앞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기본 로드맵 수정(안)’을 마련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리고 6월 28일에 기본 로드맵 수정 초안을 발표하는 1차 토론회를 개최했다.

    공개된 내용을 보고 드는 생각은, ‘굳이 이번에 왜 했을까’였다. 정부가 밝힌 취지와 동떨어진 내용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환경부에서 이미 흘린 것처럼, 국외감축분의 국내화만 바뀐 것일 뿐, 다른 변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마저도 대단히 논쟁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수정안을 폐기하고 2020년까지 전면 재수정해 로드맵을 확정하고 유엔에 감축목표(NDC)를 제출하는 게 낫겠다.

    2016년에 마련된 기본 로드맵, 현 정부의 기본 로드맵 수정 취지와 수정 초안의 주요 내용, 그리고 필자가 판단하는 기본 로드맵 수정 초안의 문제점을 교차하여 검토해보자.

    첫째, 정부는 국제사회와 시민단체 등에서 제기해온 온실가스 감축의지가 약하다는 비판을 인정하고 감축목표 산정방식도 바꾼다고 밝혔다. 그러나 감축 후 배출량 목표 5억 3,600만 톤은 그대로 유지한다는 방침이어서 감축의지의 변화는 없어 보인다.

    BAU 대비 상대적 감축목표 산정방식이 감축효과 부풀기기 의혹을 낳고 BAU 변동에 따른 감축목표의 불확정성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절대감축량 목표로 개선한다고 했다. 그러나 기존 BAU 전망치 8억 5,080만 톤을 배출전망에 그대로 적용하고, BAU 대비 37% 감축 후 배출량 5억 3,600만 톤 역시 변동 없이 절대감축량으로 개명했다. 숫자는 같고 이름만 바꿨을 뿐이다. 이제 시행령에 적힐 감축목표가 “2030년의 국가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5억 3,600만 톤”이 되는 걸까. 그렇다고 이런 꼼수로 BAU의 한계를 극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역주행이 계속되니 기후정의 원칙이나 탄소예산 기준이 들어갈 틈이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2016년 작성된 기본 로드맵의 향후 보완 계획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 당시 BAU가 2012년 실적까지만 반영해서 배출량 실적 및 BAU 검증이 추가 검토돼야 하며, ‘2050년 장기저탄소발전전략’(2018년 수립 예정)과도 정합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둘째, 국외감축량이 과도하게 할당됐고, 감축수단의 구체성이 미흡하며 에너지신산업 등 이행이 취약한 감축수단이 포함됐다는 비판도 원론적으로 수용했다. 로드맵 수정 초안의 가장 큰 변화는 국외감축량이 줄고(9,590만 톤→1,620만 톤), 그만큼(7,970만 톤) 산업, 건물, 수송 부문 등의 국내감축량이 늘었다는 점(21,890만 톤→29,860만 톤)이다. 여기에 산림흡수원이 감축수단으로 새로 포함됐다.

    국외감축량의 최소화를 위해 추진하려는 산림흡수원과 국제탄소시장메커니즘과 같은 감축수단(3,830만 톤 해당)은 현재 파리협정 후속협상에서 논의되고 있어 그 미래가 불확실하다. 2016년 기본 로드맵 역시 국외감축 목표를 세워두고는 향후 국제 합의, 탄소시장 추이, 재원조달 방안 등을 고려하여 세부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산림흡수원에 대해서는 국내 산림흡수량(2,200만 톤 전망)이 최대한 인정되도록 국제 협상에 나서고 산림흡수원이 인정될 경우 국외감축분을 변경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로드맵 수정 초안에 업종별 이행계획이 나와 있지 않아서 부문별 배출량과 감축률만 갖고서는 구체적인 평가가 어렵다. 단, 2016년 로드맵에 비해 산업, 건물, 수송 등 전 부문에서 배출량을 더 줄일 수 있다는 점은 핵심 쟁점이 될 것이다. 2년 만에 이런 감축(잠재)량의 차이가 발생한 이유가 과연 무엇인가. 이번 수정 초안의 배출량 목표와 감축률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이를 검토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와 정보가 없이는 어떤 식의 공론화도 무의미하다.

    2016년 로드맵의 에너지신산업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CCUS(탄소 포집・활용・저장)의 취약성은 원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전환 부문은 현 정부의 보수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최악이다. 감축량 목표가 2년 만에 6,450만 톤에서 5,780만 톤으로 감소했는데, 이마저도 2,370만 톤만 확정된 상태이고 나머지 3,410만 톤에 대해서는 2020년 NDC 제출 전에 다른 계획이나 대책들을 추가 검토해 반영하겠다고 한다. 탈석탄 로드맵이 없고 에너지전환을 먼 미래의 일로 떠넘겨버린 현 정부의 전략적 판단의 결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전환 부문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발전 업종의 경우를 전 정부와 비교해보면, 정책 후퇴가 확실하게 나타난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발전 업종에서 BAU 대비 19.9%(6,415만 톤)를 감축하기로 했다. 신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석탄발전 계획 4기 취소, 노후 석탄발전 10기 폐지 등 저탄소 전원믹스 강화를 통해 3,543만 톤을 감축하고, 다른 수단들로 2,872만 톤을 더 감축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다른 한편, 2017년 12월에 수립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목표 시나리오에 따르면, 온실가스 감축효과를 기존 19.9%에서 26.4%로 상향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이번 기본 로드맵 수정 초안은 발전을 포함한 전환 부문의 감축목표는 전 정부보다 후퇴한 것이며 불과 6개월 전에 수립된 전력계획과도 일치 하지 않는 것이다.

    환경부가 합동작업반을 구성해 운영하면서 초기 기대와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비판을 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과거와 다른 형식과 내용으로 거버넌스를 형성하고 공론화 과정을 추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근본적인 수정 작업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에너지전환, 미세먼지, 기후변화 간의 계획 정합성과 정책 통합성을 유지하려면, 어차피 미세먼지저감 종합대책(2018년 9월), 제3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2018년 12월),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9년 12월)과 맞추려면, 그리고 파리협정 후속협상의 결과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라면, 이번 기본 로드맵 수정안은 폐기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전환 부문의 잠재 감축량, 국외감축과 산림흡수원의 잔여 감축량만이 쟁점이 아니다. 환경부는 2019년까지 ‘2050 장기저탄소발전전략’을 수립하고, 2020년에 수정 NDC를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가 예정했던 대로 2018년 올해 장기저탄소발전전략을 세웠다면 이렇게까지 꼬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늦었으면 멈추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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