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싸늘한 주검돼 고향 가는 '누르 푸아드'
    By tathata
        2006년 04월 27일 09: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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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4월 26일 오후 3시 20분 인천공항, 인도네시아로 향하는 비행기 화물칸 한쪽에는 ‘화물이 돼버린 인간’이 실려있었다.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인천공항에 첫 발을 내디뎠을 게 분명한 사람. 인도네시아 출신의 서른 살 청년 ‘누르 푸아드’. 그는 화물칸에 실려 나갔다. 그는 죽었다.

       
     
    ▲ 고 ‘누르 푸아드’의 영정
     

    그는 1999년에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다. 국내 40만 이주노동자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돈을 벌어 고향에 돌아가서 잘 살아보고 싶었을 것이고, 그의 가족들도 그와 같은 꿈과 기대를 품고 그를 기꺼이 한국으로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한국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었다. 이른바 ‘불법체류자’가 그를 분류하는 사회적 기준이었따. 한국 정부의 간단없는 단속과 추방으로, 불안은 비참과 함께 그의 실존 그 자체였다.

    누르 푸아드를 비롯한 이주노동자들은 말한다.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이 단속"이라고.

       
     
    ▲ 고 ‘누르 푸아드’의 영결식에 참석한 동료 이주노동자들이 슬퍼하고 있다.

     

    지난 4월 17일 출입국 단속직원들이 자신이 쉬고 있는 숙소로 들이닥쳤을 때 누르 푸아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가 있던 숙소가 건물 3층이었지만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방 창문을 통해 일단 건너 공장 건물로 뛰어내리는 수밖에. 그러나 건너 건물에 이르지 못하고 그는 건물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병원으로 옮겼으나 그는 다음날 새벽 사망했다. 내장이 모두 파열됐다.

    엄청난 고통이 밀려오면서 마지막 눈을 감는 순간, 그는 누구를 떠올리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가슴이 미어진다. 

    울산에서 산업연수생으로 일하고 있던 누르 푸아드 씨의 동생 또한 “한국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며 남은 연수기간을 뒤로 한 채 형의 주검과 함께 인도네시아 행 비행기를 올라탔다.

    누르 푸아르씨의 죽음을 지켜보던 이주 노동자들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 또한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으로 ‘죽음의 탈주극’을 벌이고 있는 처지이기에 장례가 치러지는 내내 회한과 설움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 고 누르 푸아드 병원 장례식장에 있었던 ‘살인적인 강제추방 중단하라’ 구호가 적힌 검은색 현수막을 찢어 나무에 매달아, 이 땅에서 죽어간 이주노동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이 죽음이 이 땅에서 헛되이 되지 않고 열매 맺기를 기원하는 의식을 치르고 있다.
     

    이런 비극적인 죽음이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과연 그것이 뜻대로 될 수 있을 것인가. 누르 푸아드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한 알의 밀알이 되어 국내 20만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떳떳하게 일 할 수 있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인가. 이 물음에 답할 자는 이제 살아있는 우리들의 몫으로 남았다.

    싸늘한 시신이 실린 비행기는 인도네시아를 향해 날아가지만 누르 푸아드가 가고 있는 곳은 고향이 아닐 것이다. 그 보다 훨씬 더 머나 먼 곳으로 향하고 있을 터이다. 부디 그 곳에서는 추방당할까 마음 졸이지 말고 편히 지내시기를.

    "열흘 안에 이슬람장 치러야 한다"

    지난 18일 법무부 출입국사무소의 단속으로 사망한 누르 푸아드씨는 나이 서른 살의 젊은 청년으로, 그는 1999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입국했다.

    푸아드 씨는 부천시 도당동에 소재한 이노프라텍이라는 중소기업의 3층 기숙사에 아내 리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하지만 17일 인천출입국관리소 소속 단속반원 12명이 공장주의 허락을 받지도 않고 갑자기 기숙사를 급습, 푸아드 씨는 아내와 함께 창문을 통해 외부로 빠져나갔으나 단속반원에게 끝내 붙들려 수갑이 채워졌다.

    출입국직원이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를 단속하고자 할 경우에는 보호명령서를 소지하고 고용주의 허가를 받은 이후에만 공장에 들어갈 수 있으나, 이들은 고용주에게 사전 허가도 받지 않은 것은 물론 공장 옆 건물인 주택 옥상을 무단 침입해 3층 기숙사로 침입했다.

    출입국직원이 옷을 입으라며 잠시 수갑을 풀어준 틈을 이용, 푸아드 씨는 창문을 통해 옆 건물 옥상으로 뛰어 넘어가려 했으나 그대로 추락했다. 곧바로 푸아드 씨는 119 구급차로 옮겨져 순천향대 부천병원에서 장, 간, 대동맥파열 치료 수술을 받았으나 지난 19일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단속반원은 기숙사에 있던 9명중 푸아드와 아내 리니 씨를 제외한 베트남 노동자 2명과 인도네시아 노동자 5명을 인천출입국 사무소로 강제 이송했다.

    푸아드 씨의 수술비용은 1,600여만원. 이 비용은 고용주와 인천출입국관리 사무소가 각각 부담했다. 애초 관리사무소는 외국인노동자 단체가 비용부담 전액을 요구하자 관련규정이 없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으나, 출입국사무소 내부 직원 모금을 통해 비용을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이양수 인천출입국관리사무소 계장은 “단속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주노동자의 사망이나 부상 등 대해서는 공무원의 귀책사유에 해당되지 않아 (국가가) 배상책임이 없다”고 하면서도, “이주노동자 단체의 요구도 있었고, 젊은 노동자의 죽음이 안타까워 하는 마음이 많아 모금을 결의하고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는 “안전대책을 전혀 강구하지 않은 채 미등록 노동자를 기습적으로 단속하는 일은 노동자들의 극단적인 행동을 유발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며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상, 사망 등에 대한 피해를 전적으로 출입국관리사무소가 부담하는 등의 관련규정을 만들어 다시는 이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누르 푸아드 씨의 장례는 고향인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교 장례로 다시 치러지게 된다.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푸아드 씨의 어머니가 이슬람교는 사람이 죽은 후 열흘 후에는 영혼이 빠져 나간다며 장례식을 치러야 하니 빨리 시신을 송환해달라 요청했다"고 전했다. 

    /  문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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