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권과 민주주의 위한 한 걸음"
    병역거부자 대체복무 도입 헌재 판결
    징병제 국가 대부분 병역거부와 대체복무 인정해
        2018년 06월 29일 02: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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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재판소가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 등을 이유로 입영 또는 집총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병역법을 ‘합헌’이라면서도,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7년 전 판결과 달리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보장 받을 수 있도록 해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한걸음을 내딛은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헌재는 전날인 28일 병역법 조항에 대해 제기된 헌법소원 사건과 위헌법률심판제청 사건 28건에서 병역의 종류에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병역법 제5조 제1항에 대해 재판관 6(헌법불합치) 대 3(각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하고, 2019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법을 개정하라고 밝혔다.

    다만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일률적으로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한 병역법 제88조 제1항 제1호와 등에 대해서는 합헌 결정을 선고했다. 병역법에 따라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3일이 지나도 입영하지 않거나 소집에 응하지 않는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이 조항을 근거로 기소돼, 군 복무 기간과 비슷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현재 1만9000명 이상의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다녀왔다.

    헌법 결정 후의 기자회견(사진=임태훈 페이스북)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 도입하라는 헌재 판결
    “민주주의로 가는 중요한 한 걸음”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29일 오전 YTN 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과 인터뷰에서 “한국 사회가 인권과 민주주의를 향해서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임 소장은 양심적 병역거부로 감옥에 갔다가 13년 전 출소했다.

    병역거부로 징역형을 산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도 이날 오전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김혜영입니다’에서 “이번 결정으로 죄 없는 젊은이들의 감옥행을 막을 수 있게 됐고, 더 나아가 대체복무제를 통해 젊은이들이 사회와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계기를 좀 마련해줬다”고 말했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재판 중에 있는 홍정훈 씨는 같은 날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헌법재판소뿐만 아니라 입법부든 행정부든 사법부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도 안 좋았기 때문에 이런 판결이 나올 거라고 기대하지 못했다”며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저희 같은 사람들에게 기적 같은 일이다.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진전할 수 있게 만든 중요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이라고 말했다.

    다만 홍 씨는 “이미 감옥에 다녀온 분들이나 지금 감옥에 있는 분들,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까지 확실한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라고 판단되는 점이 조금 아쉽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왜, 두 조항에 달리 판결했을까?

    헌재가 대체복무제가 없는 병역법에 대해선 사실상 위헌 의견을 내면서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조항은 합헌이라는 상반된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선 평가가 갈린다. 일각에선 이미 감옥에 다녀왔거나 현재 감옥에 있는 이들에 대한 재심 청구가 불가능해졌다는 점에선 아쉬운 판결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임 소장은 “헌법재판소의 고민이 아주 깊었던 것 같다. (헌재가) 병역법 두 조항에 전체 위헌을 주게 되면, 헌재는 주문과 동시에 즉시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현재 구금돼 있는 병역거부자를 즉시 석방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병역을 거부한 사람과 병역을 기피한 사람이 구분이 안 되기 때문에 진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까지 모두 석방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전체 위헌 판결을 하게 되면) 병역거부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재심과 동시에 배상청구를 하게 된다. 그러면 국가가 막대하게 세금을 들여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해서 병역법 88조와 5조1항을 분리해서 각각 법원과 의회를 향해서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부연했다.

    현재 법원에 계류 중인 병역거부 사건만 880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헌재 판결로 해당 사건들에 대한 결론도 주목된다.

    임 소장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일부 위헌 의견 부분은 법원을 향해 ‘처벌하면 안된다’는 강한 메시지를 던지려고 한 것 같다”며 “법원에서 재판은 계속되겠지만 헌재의 판결에 근거해서 법원이 무죄를 결정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아마 법원도 그렇게 판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 씨 또한 “(헌재의) 결정이 굉장히 애매한 면이 있다”면서도 “항소심에 재판이 계류 중인 사람 같은 경우에는 재판부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서 무죄를 선고하면 된다고 본다”고 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른 대체복무, 형평성에 어긋날까?

    헌재의 전향적 판결에 대해 일부에선 군 입대자들과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임 소장은 “6주 전투훈련을 받느냐, 안 받느냐의 차이다. 모든 군 입대 병사가 총을 들고 전투훈련을 하지는 않는다. 육군훈련소와 또는 신병교육대에서 사격훈련 때 총 잡아보고 총 잡지 않았다는 전역한 병사들이 더 많은 상황”이라며 “비군사적인 분야에서 복무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제는 국방부와 병무청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임 소장은 또한 “민주주의의 가장 큰 요체 중 하나가 다원성, 다양성, 그리고 양심의 자유가 실현되는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즉 양심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국가는 사실상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 병역거부 수감자의 90% 이상이 대한민국에 있고, 이는 징병제를 유지하는 국가 대부분은 병역거부를 허용하고 있다는 얘기”라며 “심지어 인권 침해가 굉장히 많다고 하는 러시아까지도 병역거부자를 포용하고 있고, 여성도 군대에 가는 이스라엘도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임 소장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회 일원으로 받아달라는 뜻”이라며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에 보내서 국민 세금으로 밥 먹이고 재우는 것이 아니라, 노령화 사회에서 노인 병원과 중증장애인 시설에서 기숙하면서 그분들의 물리치료나 또는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 정말 아무도 할 수 없는 일들을 1.5배 더 길게, 또는 2배 더 길게 복무기간에 할 수 있다도록 따뜻하게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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