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대체복무제 없는 병역법 “헌법불합치”
2019년 12월까지 법 개정···88조1항1호는 “합헌”
    2018년 06월 28일 04: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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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신념이나 양심 등을 이유로 입영 또는 집총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내년 말까지 관련 법조항을 개정하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28일 병역법 조항에 대해 제기된 헌법소원 사건과 위헌법률심판제청 사건 28건에서 병역의 종류에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병역법 제5조 제1항에 대해 재판관 6(헌법불합치) 대 3(각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하고, 2019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법을 개정하라고 밝혔다.

헌법불합치 판결이란, 단순 위헌 결정을 내릴 경우 법률의 공백으로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입법기관인 국회에 특정 시점까지 법을 개정하도록 하면서 그 시점까지 현행 법률을 유지시키도록 하는 위헌 결정의 한 종류다. 만약 국회가 헌재가 요구한 시한까지 해당 법조항을 개정하지 않으면 해당 조항은 2020년 1월 1일부터 효력이 사라진다.

헌재는 “병역종류 조항에 대체복무제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처벌조항에 따라 형벌을 부과받음으로써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강요받아 양심의 자유를 제한받고 있다”고 밝혔다.

헌재 다수의견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종류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다수와 달리 생각하는 이른바 소수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반영하는 것은 관용과 다원성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참된 정신을 실현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국가는 이 문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으며 대체복무제를 도입함으로써 병역종류 조항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 상황을 제거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일률적으로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한 병역법 제88조 제1항 제1호와 제2호에 대해서는 재판관 4(합헌) 대 4(일부 위헌) 대 1(각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선고했다.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재판관 6명 이상의 의견이 나와야 한다.

병역법 88조1항1호는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3일이 지나도 입영하지 않거나 소집에 응하지 않는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이 조항을 근거로 기소돼, 군 복무 기간과 비슷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매년 수백 명의 청년들이 병역거부 이유로 감옥에 가는 나라는 2000년 이후로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

앞서 헌재는 지난 2004년과 2011년 총 3차례의 병역법 88조1항1호에 관한 재판에서 7대2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지난 2004년 양심적 병역 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었다.

그러나 헌재와 대법원의 이러한 판결에도 최근 하급심 법원에선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연이어 무죄 판결을 선고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대선 후보 시절 “양심의 자유는 헌법상 기본권 중 최상위의 가치를 가지는 기본권”이라며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여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하여 형사처벌을 받는 현실을 개선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27일 “양심적 병역거부는 형사처벌로 해결할 수 없는 인권 문제”라며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보장하는 대체복무제 도입 계획 수립·이행”을 국방부 장관에게 권고하기로 결정했다.

대체복무제에 대한 여론도 상당히 호전됐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2016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70%가 대체복무제 도입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헌재의 보다 전향적인 판결이 나온 직후 국회가 조속히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 법개정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등 4개 단체는 이날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체복무제 도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인권과제”라며 이를 문재인 정부의 우선 인권과제로 채택할 것을 요구했다.

4개 단체는 ‘합리적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시민사회의 제안’ 의견서를 국정기획자문위원회와 국방부에 제출했다.

진보정당을 포함한 정당들도 국회와 정부가 대체복무제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절반만 인정한 판결이지만 이전과는 다른 진전된 판결”이라고 평했다.

최 대변인은 “정부가 양심과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청년들을 수감하는 것은 국제규약을 위반한 것으로, 전 세계 병역거부자의 대다수가 한국인인 것은 그만큼 열악한 우리나라의 인권 수준을 말해 주는 것”이라며 “우리나라가 분단국가라는 이유만으로는 인권을 짓밟는 행위가 합리화 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최 대변인은 “헌재가 대체복무제를 도입한 병역법 개정을 촉구한 만큼 국회는 서둘러 관련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며 “정부 역시 서둘러 우리 사회가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대체복무제 방안을 도출해 양심의 자유를 지키려다 죄인이 되는 비극을 막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경환 민주평화당 대변인도 논평을 내어 “국회는 신속하게 대체복무제 입법에 나서야 한다”면서 “정부도 대제복무제 도입에 따른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후속 보완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은혜 민중당 대변인도 “대체복무제 도입이라는 결정에 대해서 일보 전진”이라면서도 “(일부) 합헌 결정은 국제 인권 흐름에 뒤떨어지는 부끄러운 결론”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헌재가 제시한 2019년 12월 31일까지의 공백기에 벌어질 혼란을 최소화하도록 국회는 법안마련과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덧붙였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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