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쌍용차 해고자의 죽음,
    복직 시한만 알려 줬어도
    자살 노동자, 경찰 집단폭력에 트라우마 시달리면서도 복직 열망해
        2018년 06월 28일 03: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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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째 기약 없이 복직을 기다려온 평택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또 다시 벌어졌다. 2009년 쌍용차 해고와 파업 이후 서른 번째의 희생자다. 노동계와 정치권 안팎에선 더 이상의 희생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해고자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은 전날인 27일 오후 3시 50분경 경기도 평택시 독곡동 야산에서 쌍용차 해고자 김 모 조합원이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앞서 김 조합원은 오후 2시경 아내에게 “그동안 못난 남편 만나 고생만 시키고 마지막에도 빚만 남기고 가는구나. 사는 게 힘들겠지만 부디 행복해라. 그리고 천하에 못난 자식 어머님께 효도 한 번 못하고 떠나서 정말 죄송하다고 전해주라”라는 내용의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를 보냈다. 같은 시각 해고자 동료에게도 “형 그동안 고마웠어요. 신세만 지고 가네요”라는 문자를 보냈다.

    김 조합원은 2009년 정리해고 당시 파업에 참가했다가 평택 쌍용차 조립공장 옥상에서 경찰 특공대의 방패와 곤봉에 집단 폭행을 당한 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구속됐다. 이후 고인은 이날의 경찰 집단 폭행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자살까지 시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출소 이후 고인 앞에 놓인 것은 극심한 생활고였다. 쌍용차 해고자 이력으론 재취업이 어려워 많은 쌍용차 해고자들이 생활고에 시달린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김 조합원 또한 취업을 하지 못하다가 지난해부터 밤 12시부터 아침 6시까지 화물차를 운전하고, 낮에는 막노동까지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왔다.

    노조에 따르면, 고인의 고교 동창인 김 모 씨는 고인이 된 김 조합원에 대해 “복직 날만 손꼽아 기다리면서 밤낮으로 투잡을 하며 성실히 일했다. 가정과 일에 대해서는 정말 성실했다. 빚을 갚기 위해 정말 몸을 사리지 않고 일을 했다. 새벽에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술도 먹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지부장도 28일 오전 MBC 라디오 ‘이범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쌍용차가 2009년 회계조작, 기술먹튀 등을 해놓고 모든 책임을 현장 노동자에게 전가하면서 당시 해고자들이 저항했다. 그러다 보니 10년, 20년 다녔던 쌍용자동차 근무이력이 재취업을 어렵게 했다”며 “그런 상황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설문조사를 해보면 10년이 지났음에도 해고자 90% 가까이가 구직에 차별을 받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인은 회사의 기약 없는 복직 약속에도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간 생계 문제로 복직투쟁에 결합하지 못하다가 최근 야간근무 후 아침 1인 시위, 목요일 저녁 문화제에 참여하는 등 복직 의사를 강하게 피력해왔다고 한다.

    2015년 복직 약속했지만…120명은 여전히 해고 상태
    김득중 지부장 “복직 시한만 알려줬어도 죽음 막았을 것”

    김 씨가 삶을 등지는 안타까운 결정을 한 데엔 쌍용차 사측의 복직 합의 파기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쌍용차노조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쌍용차 회사는 2015년 12월 30일 해고자 복직에 합의했지만, 3년째인 올해까지도 복직된 해고자는 45명에 불과하다.

    쌍용자동차 ‘G4렉스턴 스포츠’의 경우 현재 예약 물량을 신청해도 4개월 가량을 기다려야 할 만큼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회사는 복직 일정이라도 구체적으로 밝혀달라는 노조의 요구에 대해 불안정한 시장 상황을 들어 거부하고 있다.

    이로 인해 120명의 쌍용차 해고자는 여전히 회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조는 회사가 복직 일정이라도 알려줬다면 김 조합원이 목숨을 끊는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김득중 지부장은 “회사가 복직 시한만이라도 알려줬더라면, 문재인 정부가 2009년 국가폭력 문제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조사해 해결했더라면 김 조합원은 목숨을 끊지 않았을 것”이라며 “해고자 복직이라는 고인의 뜻을 받들어 싸우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수십억 손배, 정치인은 공허한 약속만…
    “쌍용차 문제 해결 약속했던 문재인, 서른 번째 죽음에 답해야한다”

    김 조합원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회사에만 있지 않다. 경찰은 2009년 파업 이후 경찰의 집단폭력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김 조합원을 상대로 24억원의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26일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손잡고)’에 따르면, 경찰은 2009년 진압에 동원한 헬기, 기중기, 콘테이너 등의 파손 비용뿐만 아니라 폭력을 가한 경찰의 위자료까지도 청구를 했다. 경찰은 항소심에서 비교적 소액판결을 받았던 김 조합원을 대법원 상고대상자에 포함시켰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재판은 끝나지 않았다.

    쌍용차 해고자 문제를 정치에 이용만 하고 저버리는 정치인들의 책임도 크다. 특히 쌍용차 해고자 문제는 박근혜 정부 시절 양승태 대법원이 ‘재판거래’를 한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기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3년 쌍용자동차 정문 앞 철탑 고공농성장에 올라 당시 한상균 전 쌍용차 지부장을 만나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 해결을 위해 쌍용차 국정조사가 반드시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국정조사는 없었다.

    2015년 쌍용차 안 굴뚝 고공농성에 돌입한 해고노동자들에겐 “‘이기는 정당’ 만들어 이분들이 다시는 철탑 위에 오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여전히 해고노동자 120명은 기약 없는 복직을 기다리고 있고, 당시는 야당 의원이었지만 이제는 대통령이 된 문재인 대통령은 쌍용차 해고자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성명에서 “문재인 대통령도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서른 번째 죽음에 분명한 정치적 책임이 있다”며 “하루하루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견뎌냈을 그러나 다시 살릴 수 없는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죽음 앞에 무엇을 할 것인지 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죽음을 부른 쌍용차 정리해고에 대한 살인진압과 사법농단이라는 총체적 국가폭력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또다시 이 죽음을 외면한다면 문재인 대통령은‘사람이 먼저다’가 아니라 ‘권력과 자본이 먼저’인 대통령”이라고 했다.

    손잡고 또한 “쌍용차 노동자는 이명박 정권 당시 공권력이 가진 폭력수단의 효력을 실험하는 도구 취급을 받은 국가폭력 피해자”라며 “김 조합원은 국가 폭력의 희생자였고, 트라우마에 시달려 왔다. 그런 김 조합원을 상대로 경찰은 소송으로 괴롭혀 왔다. 정권이 바뀌어도 마찬가지였다”고 비판했다.

    이어 “9년이 지나서야 시작된 경찰의 진상조사의 결과조차 기다리지 못하고 목숨을 버려야했던 그 절망에 국가는 책임이 없느냐”며 “피해자가 더 이상 죽지 않는 방법은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정부는 해고노동자가 이 땅에서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진보정당들 “문재인 정부가 해고자 문제 중재 나서야” 한목소리
    ‘부음으로 끝나는 복직요구, 더 이상은 안 된다’

    정치권에서 문재인 정부가 쌍용차 해고자 문제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정리해고 요건 강화를 위한 법개정을 통해 또 다른 비극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28일 상무위에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 비극이 너무나 안타깝고 비통하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야 한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대통령 후보 시절 거듭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을 약속한 만큼 적극 중재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제2의 쌍용차 사태를 막을 수 있도록, 정리해고 요건 강화를 위한 법 개정에 앞장서겠다”며 “부당한 정리해고에 면죄부를 주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해서도 철저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도 국회 브리핑을 통해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제 국가가 나서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가 나서서 쌍용차 사측이 ‘해고자 전원 복직’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더 강력한 조정에 나서고, 국회도 정리해고 요건을 대폭 강화하는 법안을 서둘러 마련해야한다”고 말했다.

    녹색당도 ‘부음으로 끝나는 복직요구, 더 이상은 안 된다’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일자리 몇 천, 몇 만개를 만들겠다는 공약이 난무하는 세상에서도 누군가의 빼앗긴 일자리는 지금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이런 억울함과 분노는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녹색당은 “쌍용자동차에서 일했던 많은 해고노동자들이 진압 당시의 과도한 국가폭력으로 아직도 고통에 시달리고 있고, 양승태 전대법원장이 박근혜 정권과 사법거래를 일삼아 온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도 이 죽음과 무관할 수 없다”며 “정부는 노동자들에 대한 치유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즉각 중재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이은혜 민중당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문재인 정부는 끔찍한 국가폭력을 저지른 살인진압 책임자와 사법농단 세력에 확실히 죄를 물어야 한다”며 “무엇보다 2015년 합의한 해고자 복직이 이행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동당도 성명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에 대한 희망 고문은 이제 멈춰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 정권이 경찰을 동원해 쌍용차 노동자들을 짓밟았던 국가 폭력에 관한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고, 국가가 노동자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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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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