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술 발표 주제를 협의하다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38] 생존자 증후군
        2018년 06월 22일 03:31 오후

    Print Friendly

    필자 사정으로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지’ 연재는 다음 회의 39회 연재로 마감한다. 그동안 많은 관심에 감사 드린다.<편집자>
    —————–

    지난 1월 11일 일요일 밤이었다.

    “아빠, 학술 발표 주제를 잡아야 하는데 뭐로 해야 할지 모르겠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갑을문제로 하려 했는데, 선생님이 별로라 그랬어. 주제를 잡을 때 시의성과 설명성이 있어야 한대. 나 멘붕에 빠졌어.”

    컴퓨터와 한참을 씨름하던 딸이 다가와 말했다. 방과 후 학습에서 학술 발표 동아리를 택했고, ‘예비 전공자의 눈으로 본 우리 사회’라는 과제로 소논문을 작성하고 발표하는 프로그램이라 했다. 주제 정하는 단계인데, 제출 기한을 하루 넘겼다고 했다. 주제를 심리와 관련된 것으로 정하고 싶다 했다.

    딸이 초등생일 때부터 숙제와 시험으로 상의를 해 오면 항상 그랬듯, 나는 즉시 딸의 고민에 합류했다. 끙끙대다가 세월호 참사로 사망한 교사 가족들의 심리 분석을 제안했다. 그 이틀 전,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워크숍이 있었다. 나는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운영위원 자격으로 참석했다. 거기서 단원고 교사 희생자 가족 대표의 발언이 있었다. 나는 슬픔과 충격으로 떨었다. 발언을 일지에 기록했다. 소논문 주제를 고민하는 딸에게 읽어 주었다. 내 무릎에 머리를 베고서 듣던 딸의 표정이 굳어졌다.

    2학년 담임이었던 딸의 아버지다. 세월호 사고가 났을 때, 아이들을 놔두고 딸이 살아 돌아오면 어쩌나 조바심이 들었다. 배가 가라앉았을 때, 딸이 아이들과 함께 갔구나, 하는 생각으로 안심했다. 시신 수습 과정에서 딸이 먼저 올라왔을 때, 또 미안했다. 아직 바다 속에서 아이들이 안 올라왔는데. 학생들의 부모들을 볼 때마다 죄스럽고 미안함이 많다. 학생들 인솔을 제대로 못해서 교사 가족들 모두가 미안해한다. 교사 가족들 한 달에 두세 번 모임 하는데, 조용히 왔다가 간다. 원망스럽다. 그때 왜 선생 역할을 못해서 아이들이 그렇게 되었을까. 선생들 나이가 20대들인데……. 나에게는 아직 아이인데……. 나이 든 선생들에게 물어서라도 대책을 세우지. 희생자 아이들 부모들 볼 때마다 너무너무 미안하다.

    제 자식이 살아 돌아올까 봐 노심초사한 아버지의 심리, 딸이 죽었는데도 미안함이 앞서는 심리를 주제로 잡자고 했다. 우리는 컴퓨터 앞으로 옮겨 국회도서관 홈피에 들어갔다. 관련 논문을 검색했다. 한동안 뒤졌으나 없었다. 학술 발표 소논문은 기존의 논문에서 내용을 인용할 수 있어야 했다. 곤란했고, 나중에 심리학을 공부하게 되면 연구 주제로 삼아 보라고 하고선 포기했다. 다시 고민했다. 생존자증후군을 주제로 잡기로 했다. 딸은 교사 동의를 얻기 위해 표를 작성했고, 학술발표 카페에 올렸다.

    그러고서 1주가 지난 어제였다. 일요일인데, 딸은 학교에 갔다. 학생회 활동을 하는 딸은 3학년 선배들의 졸업식에서 축하 댄스를 춰야 한다고 했다. 연습하러 간 거였다. 혼자 산에 갔다 돌아왔다.

    “아빠 아빠, 망했어.”

    딸이 수선 떨었다. 지난주에 정한 주제와 관련된 논문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언론 기사는 많은데 내용이 거의 똑같아.”

    방에선 다다닥, 타다닥, 컴퓨터 마우스를 두드리는 소리가 연달았다. 너무나 빨랐다. 내용을 제대로 검색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내용을 차분하게 보면서 검색해.”

    나도 휴대폰을 열고 검색했다. 우리말로 ‘생존자증후군’은 IMF 정리해고 대란 시기에 언론이 만든 용어였다. 학술 용어로는 ‘서바이벌 신드롬survivor syndrome’이었다. 그렇게 말했더니, 딸은 안다면서 모두 영어로만 검색된다고 투덜거렸다. 영어 문외한인 나도 난감했다.

    어떡하면 좋은 제안이 될까 끙끙대며 궁리하다 딸을 거실로 불렀다. 그러고는 딸이 대학에 들어가 심리학을 공부하는 것까지를 염두에 둔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 단원고 사망 교사 가족의 발언을 인용한다. 둘째, 생존자증후군이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의 일종이니까 그걸 서술한다. 셋째, 생존자증후군 사례를 인용한다. 넷째, 단원고 사례는 없을 테니, ‘단원교사가족신드롬’이란 이름을 붙이고, 대학 가서 연구할 과제로 남긴다. 말을 하면서도 말이 되나 싶긴 했다. 심리학 생무지 주제에 막 나가는 것 같기도 했다.

    “선생님이 안 된다고 할 거야. 그리고 내가 심리학 내용을 모르는데, 어떻게 그런 이론을 얘기할 수 있겠어.”

    딸은 제안에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이왕에 또 말했다.

    “학자는 정해진 대로 해서 나오는 게 아냐. 그런 학자는 차고 넘쳐. 뭔가를 개척하는 거지. 단원고 사망교사 가족의 심리 사례는 세계적 연구 사례가 될 수 있어. 도전해 봐. 선생이 안 된다 하면, 그런가 보다 하면 되지. 지금의 소논문이 꼭 완결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어. 결국 다 베껴서 하는 것 아니냐. 그 수준을 넘어 돌파해 보는 거야.”

    이번엔 말이 되는 것 같았다. 연구자든 혁명가든 기존의 틀대로 해선 역사적 성과를 남길 수 없는 법이었다. 그래도 딸은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려면 시간을 투여해야 하는데 학술 발표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여하고 싶진 않다고 했다. 더는 말하지 않았다. 딸은 한숨 쉬며 방으로 들어가 다시 컴퓨터를 검색했다. 다, 다, 닥, 마우스 누르는 소리가 느려졌다.

    필자소개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