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끄라비의 석탄반대 운동
    [에정칼럼] 태국 석탄 화력발전소 건설 계획과 주민들의 반대운동
        2018년 06월 22일 09:30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최근 태국에서는 환경문제 관련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영화 <더 비치>(2000)의 배경이 되었던 태국 피피섬의 마야 베이가 폐쇄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관광객들의 급증으로 파괴된 해양 생태계를 회복시키고자 4개월간 이 지역에 대한 접근이 금지되었다.

    더 충격적이었던 소식도 있었다. 태국 남부지역에서 발견된 고래가 비닐봉지를 토해내며 죽었고 정부당국과 수의학자들이 고래를 해부한 결과 고래의 뱃속에서는 검은 비닐봉지 80여장이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이 뉴스는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과 해외에서 태국으로 들여오는 폐전자제품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방콕포스트의 주간저널 <<스펙트럼>>은 <폐기물의 쓰나미>라는 주제로 일회용 플라스틱과 태국 내로 수입되어 오는 산업폐기물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기도 하였다.

    <폐기물의 쓰나미>를 주제로 한 방콕포스트 주간저널 <<스펙트럼>>의 표지(왼쪽)와 본문 기사

    ]다양한 이슈들로 태국 남부지역의 해양생태계 파괴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 서서히 잊혀가는 중요한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바로 태국 남부지역 석탄 화력발전소 건설 계획이다. 이 계획에는 화력발전소는 물론이고 인도네시아, 호주 등에서 수입해오는 석탄을 선적할 심해항구 건설도 포함되어 있어 이 계획이 실행될 경우, 일회용 플라스틱이나 폐기물로 현재 발생하고 있는 환경오염의 수준을 넘어서는 국제적/지역적/국내적 차원에서 더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크다.

    태국의 석탄화력 확대 정책은 2015년 전력개발계획(Power Development Plan 2015-2035)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끄라비와 쏭클라에 각각 800메가와트, 2,000메가와트 설비용량급 석탄 화력발전소를 건설하여 천연가스에 의존적인 현재의 에너지믹스를 다변화시키고 에너지안보를 확보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타이만(Gulf of Thailand)에서 생산되고 있는 천연가스 매장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주변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천연가스의 경우에도 미얀마가 개방 이후 경제성장 추진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에너지자원을 내수용으로 비축하여 수출을 제한하고 있는 외부적 상황 변화가 강조되고 있다. 이에 따라 태국의 에너지부(Ministry of Energy)와 태국전력공사(Electricity Generating Authority of Thailand)는 안정적인 전력 수급을 위해서는 천연가스 사용 비중을 줄이고 석탄과 재생에너지(수력발전 포함)를 통한 전력생산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전력개발계획과 석탄 화력발전 확대 정책은 국가적 차원에서 전문가들에 의해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근거’와 ‘통계적 수치’를 토대로 결정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정치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의사결정과정이 숨겨져 있다. 또한 그 계획이 통과되어 석탄 화력발전소가 가동될 경우, 이러한 변화의 영향을 받는 것은 로컬 커뮤니티와 생태계이다. 그러나 환경과 사람들의 삶에 대한 고려는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거나 주민동의 혹은 환경영향평가 등으로 해결될 수 있는 절차적 문제로만 여겨지고 있다.

    2013년 처음으로 태국전력공사가 끄라비에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을 때 주민들과 환경단체 활동가들은 곧바로 반대운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태국전력공사와 에너지부는 반대운동이 극렬해질 때마다 기존에 진행 중이었던 환경영향평가를 무효화하고 새로운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겠다는 약속만을 남기며 매년 사업에 대한 최종 결정을 보류해왔다. 주민들이 우려하는 바를 진지하게 듣거나 새로운 대안을 고민해보는 것이 아니라 석탄반대운동 진영의 요구를 절차적 차원으로 논의의 수준을 끌어내리기만 해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국의 석탄반대운동은 다양한 층위에서 여러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전 지구적 차원의 기후변화문제와 태국의 석탄 화력발전을 연결시켜 국제 시민단체들과의 연대를 통해 기후변화 협약 이행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로컬 지역에서는 수년 간 진행해온 석탄 반대운동 – 방콕 유엔 사무소 앞 단식농성, 성명서 전달, 캠페인, 거리 행진 등 –을 넘어서 석탄이 아닌 다른 방식의 대안을 보여주고자 하는 운동도 시작되었다.

    2018년 방콕에서 진행된 끄라비, 쏭클라 석탄 화력발전 반대운동 모습

    특히 끄라비에 위치한 란따섬(Koh Lanta)은 끄라비 내에서도 석탄반대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지역 중 하나다. 우선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지역이기 때문에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 해안가 쓰레기 치우기 운동을 ‘트래쉬 히어로Trash Hero Thailand’라는 단체의 자원 활동가들과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으며 자신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나 리조트에서도 스테인리스 병에 물을 담아 주거나 그동안 사용해왔던 빨대도 스테인리스로 교체하고 있다. 또한 리조트와 레스토랑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여 석탄이 아닌 재생에너지로도 에너지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란따섬의 맹그로브 숲 근처 마을은 환경 친화적인 저탄소 에코투어리즘을 시작하였다. 기존의 모터를 이용한 배 대신, 노를 저어 가는 나무배를 타고 맹그로브 숲을 지나면서 이 지역의 로컬문화를 체험하는 방식의 새로운 투어의 가능성을 열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태국 방콕에 있는 연구자들은 보다 구조적인 차원에서 전력생산 확대의 불필요성을 지적하고 석탄 발전에 주목하고 있는 태국전력공사와 에너지부의 숨겨진 정치경제적 요인을 분석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스테인리스 물병과 빨대를 사용하는 레스토랑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리조트

    에코투어리즘을 시작한 맹그로브 숲 마을

    가끔 일회용 제품의 사용량을 줄이는 일과 같은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연구나 글쓰기가 이 사회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 있을까도 고민했었다.

    그러나 어떤 한 방식으로,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구자로서 기존의 질서를 가능케 하는 구조와 메커니즘을 분석하여 지적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단 한 번 그것이 알려질 경우, 그 방식을 계속해서 이용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거리에 나와 사람들에게 문제를 알리는 일도 필요하다. 그리고 비판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한 운동이 될 수 있다. 또한 작고 사소한 일일지 모르지만 나의 삶을 불편하게 바꾸는 일들까지, 다양한 층위의 운동들과 고민들이 모일 때 비로소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태국의 석탄반대운동에 참여하는 다양한 그룹들을 통해 볼 수 있었다.

    태국 정부는 여전히 사업계획을 취소하는 대신 최종결정을 유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태국 정부가 과거에 머물러 있는 동안 석탄 화력발전에 반대하는 시민사회와 학계, 로컬지역에서는 자신들의 위치에서 크고 작은 변화를 이끌어왔기 때문에 이 힘들이 모여 긍정적인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소개
    태국 치앙마이대학교 사회과학부 박사과정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