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 승리로 이끄는 힘은 정의 아닌 공포
        2006년 04월 26일 08: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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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에 소개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2차대전 중 유럽 전선의 전세를 뒤집은 전환점이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히틀러의 진격을 막고 독일군을 공세에서 수세로 전환시킨 것은 동부전선에서의 소련군의 희생이었다. 그중에서도 8개월 가까이 계속된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은 전쟁의 방향을 바꾼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작은 도시를 점령하기 위해 양측이 지불한 대가는 너무나도 엄청난 것이었다.

    스탈린그라드는 러시아 남부 볼가강 서안에 위치한 공업도시다. 원래 도시의 이름은 볼고그라드다. 1925년 ‘지도자동지’의 이름을 따서 바꿨다가 스탈린 비판이 완료된 1961년에 다시 원래 이름을 찾았다.

    1941년 6월 소련을 침공한 독일은 1942년 여름 볼가강까지 진군한다. 그러나 쉽게 점령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됐던 볼가강 중류의 작은 공업도시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군은 발이 묶였다. 독일의 입장에서는 스탈린그라드를 함락시켜야 볼가강을 방어선으로 이용해 우크라이나를 지키고 남은 병력을 모스크바로 진격시킬 수 있었다. 소련의 입장에서는 볼가강 서편의 마지막 교두보인 스탈린그라드를 지켜야 독일군이 볼가강을 넘는 것을 막고 독일의 주력을 남부에 붙잡아 둘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시작된 치열한 공방전은 겨울까지 계속됐다.

    처음에는 군사적 목표 때문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적인 목적이 더 중요해졌다. 히틀러로서는 라이벌 스탈린의 이름이 붙은 도시를 무슨 수를 써서든 정복해야만 했고, 소련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이름이 붙은 도시를 적의 손에 넘길 수 없었다. 스탈린과 히틀러의 자존심을 건 대결은 스탈린그라드를 죽음의 도시로 만들고 엄청난 소모전을 1년 가까이 지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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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의 서두에 러시아 동부, 멀리는 시베리아로부터 충원한 신병들을 무기도 없이 볼가강을 건너 스탈린그라드에 투입하는 장면은 과장이 아니라 사실이다. 모스크바는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도시 주민들의 피난을 허락하지 않았고 소련군의 퇴각도 허락하지 않았다. 볼가강을 따라 길게 발달한 작은 도시 안에 독일군과 소련군과 시민들이 뒤엉킨 기묘한 전투였다.

    전투 초기에 도시를 무력화하기 위해 독일군이 대규모 공습을 진행한 것이 전투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무너진 대형공장과 건물들의 잔해가 밀림과 같은 역할을 했다. 무너진 벽돌 더미 안에서 소련군은 빨치산에 가까운 전투를 벌였고, 시민들은 공포와 기아 속에서 원시적인 삶을 이어나갔다.

    좁은 도시 안에서 대규모 병력이 뒤엉킨 전투는 전선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소련군이 탈환한 건물의 옥상은 정작 독일군이 장악하고 있다든지 하는 일은 스탈린그라드에서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영화에서 패주하는 소련 병사들을 향해 소련의 방첩부대가 기관총을 난사하는 장면도 과장이 아니다. 소련은 독일군을 몰아내는 것만큼이나 내부의 배신자를 색출하는데 힘을 쏟았다. 보안부대인 NKVD의 사관들은 도주하는 병사들의 즉결처형뿐만 아니라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지휘관들도 처형했다. 특히 NKVD는 군인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았다.

    영화 속에는 스탈린그라드의 방어를 정치적으로 지도하기 위해 급파된 흐루시초프가 사령관에게 권총을 내밀고 자결을 요구하는 장면도 현실에 비하면 순화된 편이다. 당시 한 지휘관은 친구를 만나기 위해 자기 부대에 온 NKVD의 장교를 보고 체념한 나머지 자결해버리는 일도 있었다.

    훗날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되어 스탈린 비판에 앞장섰던 흐루시초프는 스탈린의 이름을 딴 도시를 성공적으로 방어함으로써 출세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다.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의 결과 동부전선에서 소련과 독일의 입장이 뒤바뀌었다는 것은 앞서 이야기했다. 이후 독일군의 연이은 패배와 후퇴는 연합군이 유럽에 상륙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 스탈린그라드는 그런 의미에서 전쟁의 전환점이었다.

    또한, 독일군의 포위와 공세 속에서 도시를 지켜낸 소련 인민의 모습은 연합국의 국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소련은 스탈린그라드의 희생 덕분에 서구의 대중들에게 위험한 세력에서 독일에 맞서 함께 싸울 친구로 격상됐다.

    스탈린그라드의 위대함이 미국과 영국의 극장을 통해 전달되면서 ‘강철 시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반공주의자 처칠은 스탈린을 만났을 때 스탈린그라드의 시민들에게 바칠 칼을 준비했다.

    그러나 서구의 시민들이 몰랐던 사실들이 있다. 우선은 도시를 지켜낸 가장 큰 힘이 애국심보다는 공포였다는 점이다. 독일군은 1941년 나폴레옹보다 빠른 속도로 소련을 점령해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독일군이 러시아인들에게 가한 행위는 유대인들에게 저지른 범죄보다 나을게 없었다.

    이런 독일군의 행태가 수많은 소련인민의 가슴에 적개심을 품게 만들기도 했지만 투항하면 죽는다는 NKVD의 선전을 믿게 만들었다. 또한 눈앞의 적이 두려워 도주할 경우 이번에는 등 뒤에서 NKVD의 소총이 불을 뿜었다. 앞으로 가도 죽고 뒤로 가도 죽는다면 남은 길은 싸워서 살아남는 방법뿐이었다.

    또 하나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스탈린그라드에서 도대체 몇 명이나 죽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알려지지 않았다기 보다는 정확한 통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련도 독일도 자기들의 전투행위로 몇 명이나 사망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나마 군인피해는 대략 추산이 가능하지만 민간인 피해는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다. 이는 동부전선 전체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인구통계가 없었던 소련은 전쟁이 나기 전에 몇 명이 살고 있었고 전쟁 후 살아남은 사람이 몇 명인지 조사된 바가 없다. 다만 후에 학자들이 인류학과 생물학을 동원해 추정치를 뽑아낸 것이 전부다.

    2차대전으로 인해 소련이 입은 인명피해는 비교적 조사가 수월한 군인피해의 경우 사망 8백60만명이고 민간인의 경우 학자마다 추정치가 다른데 최소 1천6백9십만명에서 최대 2천4백만명이다. 군인피해와 합칠 경우 동부전선의 전투로 인해 당시 조선만한 규모의 나라가 사라져버렸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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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실리 자이체프의 실재 모습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는 참혹한 도시 스탈린그라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도시 자체보다는 당시 실존했던 명저격수 바실리 자이체프의 실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이체프는 평범한 병사에서 저격수로 변신해 전쟁기간동안 257명의 독일군을 저격한 전쟁영웅이다. 그는 자신의 기술을 다른 병사들에게도 전수해 ‘저격수 부대’를 만들기도 했다. 스탈린그라드의 무너진 흙더미 사이로 혼자 암행하는 소련의 저격수들은 독일군의 골칫거리 중 하나였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달리 이 영화는 모든 것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데 중점을 뒀다. 몇 가지 드라마 장치가 추가되기는 했지만 영화 속 이야기는 대부분 사실에 기초해 있다. 오히려 스탈린그라드의 참상에 비하면 많은 부분이 순화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몇 가지 현실의 이야기와 다른 부분은 영화 말미에 자이체프와 타니아가 병원에서 재회하는 장면은 해피엔딩을 위해 꾸며낸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둘은 서로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지내다가 세월이 지나서 서로 결혼한 후에야 소식을 알게 됐다고 한다. 자이체프, 타니아와 삼각관계를 이루는 정치장교 다닐로프는 허구의 인물이다.

    영화에서 자이체프와 숙명의 대결을 치르는 독일군 저격수학교장 쾨니히 중령도 가상의 인물이다. 자이체프가 자신을 특별히 노리고 독일군이 급파한 일급 저격수와의 대결 끝에 사살하고 상대방의 라이플을 노획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쾨니히 중령은 이 이야기를 모델로 했지만 자이체프의 일대기에는 실화와 전설이 뒤섞여 있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알기 힘들다. 독일군의 정보기록에도 당시 자이체프를 잡기 위해 독일이 따로 저격수를 스탈린그라드에 파견했다는 내용은 없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사소한 실수 몇 가지를 들자면 흐루시초프와 자이체프가 만나는 만찬 장면에서 나오는 음악은 소련국가로 이 노래는 1944년에 가서야 만들어졌다. 실제 이런 행사 자리에서라면 당시까지 소련의 국가였던 ‘인터내셔널’이 연주됐어야 한다. 다닐로프가 영화속에서 계속 정치장교(코미싸르)로 나오는 것도 실수다. 소련군은 전쟁의 경험 속에서 보다 원할한 지휘를 위해서는 정치장교의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1942년 10월에 정치장교 제도를 폐지했다. (전쟁의 승리가 가까워오자 정치장교제도는 다시 부활했다.)

    그리고 굳이 이야기하자면 실제 자이체프는 배역을 맡은 주드 로 같은 미남이 아니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전쟁 중에 있었을만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라면 <에너미 앳 더 게이트> 진짜로 전쟁 중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다뤘다. 다만 모든 인간성이 말라 비틀어 버리는 전쟁터에서 인간성의 흔적들을 되살려 보려한 <에너미 앳 더 게이트>의 시도가 얼마만큼 성공적이었는가 하는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다만 이 영화가 개봉한 직후 9.11사건이 벌어졌고 세계는 또 다른 전쟁 속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보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안토니 비버, 서해문집)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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