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회사 통한 재벌개혁?
[비정규직 투쟁의 방향 정립⑧-2] 문재인 정부 재벌개혁의 한계
    2018년 06월 21일 10: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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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회의 글 [비정규직 투쟁의 방향 정립⑧-1] 재벌개혁의 세 방안

문재인 정권 하에서 재벌들이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작업이 한창이다. 얼마 전 국내 재벌 순위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이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놓아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엘리엇 국제투자펀드 등의 반대로 결국 무산되긴 하였지만,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 조만간 어떠한 형태로든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럴 경우 이제 5대 재벌 중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문제만이 남게 된다.

현재 문재인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재벌개혁은 이 같은 순환출자 고리의 차단과 함께 지주회사로의 전환 유도를 큰 축으로 삼는다. 이 경우 기존의 무분별한 선단식 기업지배구조를 단순화 하고 전문경영을 정착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주회사제도를 통해 한국 재벌문제에 대한 획기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비록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통해 기존의 순환출자 문제를 일정 해소할 수는 있을지언정, 이 같은 지주회사 하의 기업집단은 여전히 ‘재벌’이라는 규정을 벗어나기는 힘들다. 그럴 경우 현 재벌체제가 갖고 있는 기본문제를 고스란히 간직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정권의 재벌개혁은 과거 역대정권 재벌개혁의 연장선상에 서있다. 때문에 먼저 왜 최근 들어 지주회사 방안이 돌출되게 되었는지 그 배경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그간 한국에서 재벌개혁의 큰 방향으로 추진되어 왔던 ‘출자총액제한제도’가 폐지되고 지주회사제도로 정책이 수정된 이유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좌절

출자총액제한제도는 한국에서 1986년 공정거래법 개정 때 처음 도입되었다. 이 제도는 원래 우리나라 기업집단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로 지적되어 온 자신의 출자능력을 넘는 기업 확장, 특히 부채에 의한 기업 확장을 추진함으로써 기업의 재무구조가 취약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이 법안이 처음 제정되었을 때는 대상기업에 대한 출자총액제한 상한선을 순자산의 40%로 제한하였다. 그러나 상한이 너무 높아 규제의 실효성이 적다는 판단에 따라 1995년부터는 출자총액한도를 순자산의 25%로 인하하여 출자총액제한을 강화하였다. 예를 들어 자산 총액이 5조원을 넘는 재벌그룹의 계열사는 순자산이 1조원일 경우 2500억 원 범위 내에서만 타회사에 대한 출자 또는 신규법인 설립이 허용되게 된다.

이후 1997년 말 IMF 경제위기 이후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M&A가 전면 허용됨에 따라 국내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위하여 1998년 2월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잠시 폐지되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의 주된 이유였던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M&A 사례가 실제로는 한 건도 발생 하지 않은 반면, 이 제도의 폐지 결과 대규모 기업집단의 계열사 간 출자가 증가하고 내부 지분율이 크게 높아졌으며, 동일인이 적은 지분만을 가지고 많은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가 심화되었다. 결국 계열사 간 출자로 인한 연결고리가 형성됨으로써 대우그룹처럼 일부 계열사의 부실이 전체 기업집단의 동반 부실로 이어지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이러한 폐해를 막기 위해 1999년12월에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다시 도입하게 된다.

이후 2001년 4월 1일부터 다시 시행된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순자산의 25%를 초과하여 다른 국내회사의 주식을 취득 또는 소유하는 것을 금지시키면서, 한도초과 출자는 2002년 3월말까지 해소하도록 1년간의 유예기간을 부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출자총액제한제도가 당시 국내경기 침체의 장기화와 증권시장 위축을 초래하여 기업에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반론에 따라, 2002년 제10차 개정법은 출자총액제한의 예외 인정 범위를 확대하는 등 이 제도에 다시 수정을 가하였다. 또한 2005년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일정요건을 갖춘 기업에 대해선 출자총액제한제도로부터 면제시켜주는 ‘졸업기준’을 새로 도입하였으며, 그밖에 적용제외와 예외인정 범위에 대한 확대도 수행하였다.

이처럼 몇 차례 수정을 거친 이 법의 최종 개정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에 이루어졌다. 그동안 논란이 되어온 순환출자규제를 아예 도입하지 않는 대신,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자산 10조원 이상 기업집단 소속의 자산 2조원 이상 중핵기업에만 적용키로 하였으며, 출자한도를 순자산의 40%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새로 발표되었다. 이로써 출자총액제한 적용 대상 그룹과 기업은 기존의 14개 그룹 343개사에서 7개 그룹 24개사로 대폭 축소되었다.(표1 참조) 그러나 이렇듯 크게 완화된 개정안마저 실행이 어렵게 되자,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3월 국회에서 여야의 결의를 통해 마침내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정식 폐기되고 만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긴다. 출총제 원칙이 여러 차례의 개정을 통해 대폭 완화되었음에도 왜 결국 포기될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의문을 규명하는 일은 이후 이를 대체하는 ‘지주회사제도’가 도입된 배경과 그 전망을 밝히는데 있어서도 매우 관건적이다.

출총제가 포기된 표면적 이유는 간단하다. 대폭 완화된 위의 출총제 방안조차도 현실에서는 실행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앞에서 지정된 7대 재벌과 해당 기업들은 당시 정해진 기한 내에 법규가 요구하는 규정, 즉 순자산의 40% 내에서 계열사에 대한 출자비율 목표를 맞출 수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따라 정부와 국회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나는 계속해서 출총제를 고집하는 것인데, 이 경우 해당 기업들은 초과 지분을 시장에 강제로 내다 팔아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주식시장의 대혼란과 함께, IMF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 투자가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한국 주식시장의 현실을 놓고 볼 때 경영권 지분 방어에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것은 정치권으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방안이었다. 이 때문에 할 수 없이 그들은 ‘타협’안을 선택하게 되며, 결국 출총제를 포기하고 그 차선책인 지주회사제도를 남기게 된다.

후퇴적 대안 ‘지주회사제도’

한국에서 지주회사제도는 나름대로 짧지 않은 연역을 갖고 있으며, 외환위기 훨씬 이전부터 일부 지주회사가 존재하였다. 그러나 기업경영 감시체제 등이 미흡한 우리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키는 역기능(이 점을 기억하자!)이 더 크게 나타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 1987년 이후 금지되었다. 그러나 IMF 위기를 거치면서 나름대로 그 장점을 활용할 필요성이 인정되어 다시 검토되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출총제가 정식 포기된 2009년 이후에는 재벌개혁 대안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지주회사(Holding Company)는 “주식의 소유를 통하여 국내회사의 사업내용을 지배하는 것을 주된 사업으로 하는 회사”로 정의된다. 한국의 현 공정거래법은 자산총액 1,000억 원 이상으로서 자회사의 주식가액합계액이 자산총액의 100분의 50이상인 회사를 지주회사로 규정한다.

이러한 지주회사제도를 도입할 경우 다음과 같은 유리한 점이 있다고 보여 진다. 첫째,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한 계열회사 출자의 수직적 체계화를 통해 대기업집단 지분소유구조를 단순․투명화 할 수 있다. 둘째, 법적 지위가 명확치 않은 구조조정본부 등을 통한 통괄경영방식에 비해, 기업경영에 대한 책임소재의 명확화를 이룰 수 있다. 셋째, 분사화를 통한 사업의 분리매각이나 유연한 사업의 진입과 퇴출이 가능함에 따라 원활한 구조조정에도 유용하다.

지주회사제도는 이처럼 자회사와 손회사 등 수직적 체계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확실히 지금까지 한국 재벌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되어 온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데는 도움이 된다. 물론 이 역시 의의가 적다고는 할 수 없다. 그동안 총수일가가 매우 적은 지분만 가지고서도 거대한 재벌 자산을 점유하였던 문제점을 일정 완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며, 또 이로부터 재벌의 무분별한 문어발식 확장을 어느 정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거기에다 만약 금산분리 원칙을 확실히 적용할 수만 있다면, 특정 재벌 기업의 경영부실이 그룹 전체로 확산되고 나아가 국민경제 전체를 위협할 가능성도 얼마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추진해왔던 출총제 원칙을 포기하고 지주회사제로 재벌개혁의 큰 방향을 전환한 것은 지금의 한국 현실을 감안할 때 ‘후퇴적’ 조처라는 비판을 면하기가 어렵다. 왜 그러한가?

우선,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기업집단은 그 형식에 있어 여전히 ‘재벌’이라는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왜냐하면 그 같은 기업집단의 피라미드 최상층에 있는 지주회사는, 한국적 현실에 비추어 그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가 여전히 ‘법인기업’이 아닌 총수일가라는 ‘자연인’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제7회 연재 “한국 재벌의 후진성과 반역사성” 참조) 이 때문에 이러한 지주회사제도를 통해 재벌개혁을 추진한다고 하는 것은, 그나마 역대 정권에서 암묵적으로 인정되어 왔던 ‘재벌해체’라는 궁극적 지향점에 대한 공식 포기선언에 다름 아니다.

실제 현재 추진 중인 지주회사의 소유구조 하에서 일본처럼 다른 기업집단에 속하는 ‘법인기업’들이 서로 침투하는 사례가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특정 자연인에 의한 기업집단 전체에 대한 지배 역시 지속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재벌들이 한국경제를 주도하는 상황 역시 전혀 변화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설령 지주회사제도가 전면화 되더라도 한국경제는 여전히 ‘재벌체제’의 범주 내에 머무르게 된다.

모든 문제는 이로부터 발생하게 된다. 결국 지금의 재벌과두체제가 나타날 수 있었던 원인도 한국경제가 바로 이 같은 ‘자연인’이 지배하는 기업집단에 의해 주도되는 경제구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재벌 총수일가는 앞으로 이 같은 지주회사제도를 오로지 한 가지 목적, 즉 자신이 지배하는 재벌의 외형적 확장과 내부 경영권 강화의 수단으로 활용하려 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렇듯 사실상 ‘재벌해체’를 최종적으로 포기하고 재벌체제를 법적으로 공고화하였다는 점에서 지주회사제도는 커다란 후퇴라 아니할 수 없다.

앞서도 지적했듯이, 자본 사회화는 자본주의가 자신의 틀 내에서 생산 사회화의 고도화에 조응하고자 하는 나름의 생산관계 측면에서의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재벌체제는 이 같은 자본 사회화의 진척에 있어 매우 불리하다. 그렇다면 이 같은 불리함을 감내하면서까지 지주회사제도를 통해 관철하려고 하는 ‘재벌확장 제한’이라는 차선의 목표는 달성될 수 있는 것일까?

지주회사제도가 한국 재벌의 고질적인 문제인 문어발식 혹은 선단식 경영방식을 해소할 수 없다는 조짐은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다름 아닌 ‘모범적인’ 지주제 재벌경영을 하고 있다는 LG그룹이다. 얼마 전 이 그룹 3대 회장이었던 구본무 씨의 사망을 계기로 언론에서는 LG그룹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룹 승계를 위한 내부분란이 별로 없고 또 경영승계 과정에서 불법 잡음이 없다는 측면에서 삼성이나 현대 같은 재벌과 비교되었다. 그리하여 그 원인으로 ‘장자 승계’ 전통과 이를 뒷받침하는 ‘친족 집단소유 지분 구조’, 그리고 이와 함께 일찌감치 자리 잡은 ‘지주회사제도’가 지적되었다.

그런데 정작 이 같은 언론의 칭송을 받는 LG의 본 모습은 어떠한 것이며, 과연 LG는 한국 재벌문제의 근본적 해소를 위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일까? 이 LG의 현재 모습을 보게 되면 장차 지주회사제도가 보편화 될 한국 사회에서의 재벌의 미래를 얼마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LG그룹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은 ‘LG지주’ 회사 산하 70여개나 달하는 기업군이며, 친인척 경영과 분가에 의한 중소 재벌의 끝없는 양산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지난해 말 기준 LG그룹 지주사인 ㈜LG의 지분 구조를 보면, 구본무 회장을 중심으로 특수 관계인 31명이 46.65%를 보유하고 있다. 공익재단인 엘지연암학원과 연암문화재단 등 두 곳을 빼면, 구본무(11.28%) 회장을 중심으로 6촌 이내 혈족과 4촌 이내 인척 등 사주 일가 29명이 지주사 지분 절반을 보유하고 있는 구조다. 대주주 구 회장의 아들 구광모 상무(6.24%)는 물론 부인 김영식(4.2%), 부친 구자경 명예회장(0.96%), 여동생 구훤미(0.79%), 고모 구자영(0.35%), 조카 구형모(0.60%), 매제 최병민(0.34%) 등이 지분을 갖고 있다. 이들은 엘지 지주사를 통해 그 아래 엘지전자, 엘지화학, 엘지생활건강 등 70개 자회사 및 손자회사 등을 사실상 공동 지배한다. 이 같은 집단 소유구조 외에 엘에스(LS), 엘아이지(LIG), 희성그룹 등 차남 이하 형제들의 계열분리도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이는 장자 승계에 대한 불만을 터주면서 본가와 연계를 갖는 군소 재벌을 만들어 내주는 역할을 한다. (한겨레신문, 2018년 5월 22일 참조)

70개에 이르는 자회사와 손회사! 이는 결국 지주회사제도라 할지라도 한국에서는 친족경영과 거대한 기업집단의 형성을 막지 못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비록 ‘손회사’까지만 허용한다 할지라도 (현재 이미 증손회사까지도 ‘예외적으로’ 인정되었다!), 이 같은 확장을 막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자회사를 여러 개 두고 또 이들 자회사가 다시 손회사를 여러 개 거느리게 되면 기업집단의 크기는 얼마든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주사인 모회사 밑에 자회사 10개, 그리고 그들 자회사가 각자 손회사 10개씩을 두게 되면 전체로서는 10×10=100(개)의 거대한 기업집단이 형성되는 셈이다.

또 혈족을 중심으로 한 ‘파생적 재벌’의 부단한 형성 역시도 결코 ‘재벌과두체제’를 뒷받침하는 거대 재벌집단의 형성을 약화시키거나 방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지배구조의 방어와 사업상의 필요에 의해 언제든지 상호협력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에서 지주사 격인 삼성물산의 경영권 확보를 위해 이건희(2.84%)·이재용(17.08%) 부자, 그리고 이미 호텔신라와 신세계그룹으로 분가한 이부진(5.47%)·이서현(5.47%) 자매가 함께 참여하는 데에서 알 수 있듯, 그들은 여전히 범 ‘삼성그룹’의 일원일 뿐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 지주회사제도는 애초부터 ‘출총제’ 원칙을 제대로 집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같은 현실을 인정하는 타협 내지 편법적 방안으로 도입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 같은 태생적 한계는 아래서 보는 것처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여러 가지 ‘현실 조치’에 의해 이 제도의 본래 취지가 이미 상당정도 퇴색되게끔 만들었다.

예컨대, 공정위는 그간 지주회사제도와 관련하여 다음 세 가지 핵심 규율은 꼭 지킬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즉 자회사 외 계열사 출자금지(순환출자 금지), 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를 넘는 3단계 이상 출자 금지, 자·손자 회사에 대한 보유 지분율 최소한도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1999년 도입된 지주회사제도는 참여정부 때 이미 크게 훼손된 바 있으며, 이명박 정부의 법 개정으로 다시 한 번 중대한 고비를 맞았다. 당장 핵심 규율인 지분율의 경우 애초에는 자회사와 손자회사 모두 상장사는 30%, 비상장사는 50% 이상 갖도록 의무화했다가, 2007년에 20~40%로 완화했다. 또 다른 핵심 규율인 출자 단계도 원래는 증손회사 보유가 금지됐으나 이후 허용됐다. 부채비율도 100% 이내로 묶여 있다가 2007년에 200%로 완화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이 같은 지주회사제도에 대한 훼손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예컨대, 김상조 현 공정거래위원장은 “딱딱한 법률 개정을 통해서 재벌 변화를 압박하고 강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실제 지금까지 재벌 정책과 관련한 별다른 입법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공정위는 또 대기업 지주회사나 대표회사가 계열사로부터 쉽게 벌어들이는 브랜드 수수료에 대해 한 때 칼을 대려고 했지만, 이내 내려놓고 대신 공시제도 확대로 방향을 틀었다. 브랜드 적정가치의 산정이 쉽지 않기 때문에 공시의무를 강화해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적정가치가 산정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그밖에 공정위는 재벌이 설립한 문화재단 등 공익법인 문제와 관련해서도 실태조사를 마쳤지만, 시장 안팎에서는 일관된 규제를 적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경직된 재벌 규제 사라진다…금산분리 규제도 완화되나”, 이데일리, 2018년5월14일)

더군다나 한국의 가장 큰 재벌인 삼성에 대해선, 여전히 언제 순환출자의 고리를 끊고 지주회사로 전환할지에 대해 기약이 전혀 없는 상태이다. 삼성은 주력기업인 삼성전자의 시가 총액이 워낙 큰 관계로 ‘삼성생명’이라는 금융회사를 지렛대로 삼지 않는 한 전자에 대한 지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마도 현대차처럼 총수 일가가 보유한 다른 회사의 지분을 상당부분 처분할 계획을 갖는다 할지라도 삼성전자에 대한 안정적 지배 지분을 갖기는 힘들 것이다. 비록 국제 투기자금의 반대로 무산되기는 하였지만, 현대차그룹은 원래 글로비스 주식을 매각하고 그 대금으로 모비스 주식을 사는 방식 (실상은 기아차가 보유한 모비스 주식을 글로비스와 일정 비율로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순환출자를 해소하려 했었다. 만약 이처럼 재벌 순위 1위인 삼성의 순환출자 해소 작업이 어려워진다면 문재인 정부의 지주회사제도 개혁은 큰 흠집이 생기는 셈이다.

한국 재벌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은 ‘국유화’

재벌개혁을 논하는데 있어 ‘기업지배구조’의 형식보다 노동자계급에 있어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그것의 내용적 측면, 즉 대외 예속적 수출주도형 경제구조가 궁극적으로 바뀔 수 있느냐 일 것이다. 비정규직의 범람을 가져오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기초한 축적방식이 모두 이것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지주회사제도를 도입한다고 해서 쉽게 바뀌어 질 문제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현재의 지주회사제도가 재벌 기업들의 생산력발전이나 기술혁신 등 축적방식의 근본적인 혁신을 가져오기 보다는, 단순히 총수일가의 지배력 강화나 유통적 착취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사례가 이미 적지 않게 보도되고 있다.

예컨대, 지난 5월 13일 재벌닷컴이 자산 5천억 원을 넘는 대기업 지주회사 가운데 상표권 사용료 수익을 올린 13개사를 분석한 결과, 상표권 사용료 수익은 7074억원으로 전체 매출 4조7356억원의 14.9%에 달했다. 그중 동아쏘시오홀딩스, 제일홀딩스(하림그룹), 코오롱 등 6개사는 상표권 사용료가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도 했으며, 모범적인 지주회사 재벌경영을 한다는 엘지(LG) 역시도 40.4%, 앨에스(LS)는 24.7%, 지에스(GS)는 18.2%로 모두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이는 지배주주 일가가 과반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지주회사에 종속 자회사들이 브랜드수수료, 용역수익, 임대료 등 각종 명목으로 상당한 일감을 몰아주고 있음을 보여준다. 브랜드 가치는 주력 계열사에서 주로 기여하지, 지주회사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지주회사가 이미 한국의 ‘주력산업’(?)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상표권 등 부수익 급증, 지주회사 ‘배보다 배꼽’ ”, 한겨레신문, 2017년 11월 14일)

이렇듯 한국 재벌체제 하에서 지주회사제도는 순환출자 고리의 차단과 책임경영을 통해 생산력 발전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총수일가의 변칙적인 가치이전과 경영권 강화 수단으로 전락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서 이미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른 비정규직 문제를 지금 이 정도의 재벌개혁을 통해서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다른 방도는 없을까?

여기서 우리는 애초 출총제의 좌절 과정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출총제가 포기된 표면적 이유는 두 가지인데, 원칙대로 그것을 감행할 경우 주식시장과 경제 전반에 대한 커다란 충격과 함께,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가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문제는 간단하게 ‘매수주체 부재’ 문제로 성격 지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두 출총제 규정에 따라 초과 물량이 대량으로 시장에 쏟아져 나올 경우, 그것을 소화해 줄 국내 매수 주체가 마땅치 않은 데서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약 합당한 매수 주체가 존재한다면 출총제의 실시는 결코 문제될 것이 없다. 비록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상위 재벌들의 규모가 일부 축소되고 심지어는 그들로서는 자신들의 전략적 기업에 대한 경영권을 상실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국내의 다른 주체에 의해 대체됨으로써 경제 전반에는 별반 혼란을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매수 주체 부재’ 문제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재벌과두통치’ 단계에 접어든 한국사회의 곤혹스러움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한국에서 자본주의 기본모순인 생산 사회화와 자본주의적 점유 간의 모순이 너무 극대화되어 더 이상 정상적인 방식으로 치유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에선 재벌 대기업들이 글로벌화를 통해 국제독점자본으로 발전할 만큼 생산사회화가 고도로 진행되었음에 반해, 다른 한편에선 이에 상응하는 ‘자본 사회화’가 충분히 진행되지 못하고 오히려 ‘재벌적 점유’, 즉 극소수 총수일가에 의한 거대한 사회생산력에 대한 점유가 계속해서 심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양자 간의 격차가 너무 커서, 재벌 대기업으로 하여금 규정대로 순자산 40%를 넘는 지분을 매각케 할 경우 현실에서는 이를 소화시켜 줄 다른 국내의 사적 매수 주체를 발견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 같은 출총제의 좌절은 거꾸로 한국사회에서 ‘재벌과두통치’가 객관적으로 실재함을 입증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객관과 주관, 양 측면에서 모두 그러한데, 첫째, 객관적 조건에서 볼 때, 만약 지금처럼 소수 상위재벌로의 거대한 경제력 집중이 이루어진 상태가 아니라 군소 재벌이 난립한 채 상호 경쟁하는 구조였더라면, 재벌을 해소하는 과정에 있어 제기되었던 위 두 가지 문제, 즉 시장혼란과 경영권방어의 어려움은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경우 시장이 소화해야할 물량의 규모도 작을 뿐만 아니라, 또 정상적인 M&A 때처럼 다른 많은 경쟁 재벌들에 의해 충분히 그것이 소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주관적 측면에서 볼 때, 출총제의 직접적 대상인 삼성과 같은 소수 상위재벌들의 강력한 개입과 방해공작 역시도 이 제도의 관철을 가로 막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국회의원과 관료 등 정치세력을 매수하고, 또 보수언론을 동원하여 강한 여론 공세를 펼쳤다. 최후에는 정부가 정한 기한까지 ‘버티기’와 고의적인 경제 흔들기 등의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였는데, 이로 인해 당시 재벌개혁 프로그램의 진척이 순조롭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지난 출총제의 실패가 보여주는 바는, 한국사회가 ‘재벌과두체제’에 이르러서는 이제 더 이상 ‘자본주의적 점유’라는 통상의 규칙을 가지고서는 한국의 재벌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미 사회적 생산의 고도화와 소수 기업집단에의 과도한 집중, 그리고 그것이 최종적으로는 총수일가 집단의 ‘점유’로 이어지고 있는 조건하에서는, 그것이 가져오는 객관과 주관적 조건, 그리고 내부와 외부 요인 등 모든 요소의 상호 작용의 결과로써, 재벌체제는 종전 후의 ‘서구사회’에서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이미 그 영구적 시민권을 확보하였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되면, 우리는 삼성이나 현대 재벌 산하의 대기업과 같은 거대한 사회적 생산력을 누구 의지의 지배하에 두는 것이 옳은가 하는 근본 문제를 다시 제기할 수밖에 없다. 앞서 우리는 ‘사적 주체’ 만을 염두에 두었기에 마땅한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었는데, 사실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설정한 제한이었다.

만약 상식적 사유에 순응하여 그 같은 사회적 생산력을 ‘사회의지’에 놓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재벌문제의 해결은 그리 어려울 것이 없다. 매번 재벌개혁의 관건적 순간마다 등장하는 시장 혼란과 경영권 방어 문제 역시도 쉽사리 해결될 수 있다. 왜냐하면 한국사회는 이 같은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과 수단이 이미 존재하며, 그 수많은 방안 중 하나가 바로 필자가 지난 호에서 소개했던 ‘연기금’이라는 ‘공적 주체를 동원하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여전히 소수 개인의 권리를 절대시하는 ‘신성한 사적 소유’라는 신화에 갇히게 되는 순간, 문제는 복잡해지고 거대한 곤란으로 다가오게 된다. 왜냐하면 삼성과 같은 재벌이 상징하는 그러한 거대한 사회적 생산력을 소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적 주체를 우리 내부(국내)에서는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사실상 소수 상위재벌만이 출총제에 따라 쏟아져 나오게 될 거대한 물량을 받아 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데, 딜레마는 이들 상위재벌 또한 똑같은 문제, 즉 자신들의 능력과 법규정을 초월하는 과도한 점유로 인해 동일한 출총제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총수일가에 의한 재벌식 점유는 이 같은 ‘사적 소유의 신성불가치성’과도 걸맞지 않다. 오히려 이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채 1%에도 못 미치는 소유지분을 가지고서 나머지 그룹자산 전체에 대한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이야 말로 나머지 99% 자산 소유자에 대한 무시가 아닐 수 없다. (참고로, 공정위가 2017년 11월 30일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 등 삼성그룹 총수 일가의 전체 계열사에 대한 지분율은 0.99%이다. SK(0.32%), 금호아시아나(0.33%), 현대중공업(0.89%) 등도 총수일가 지분율이 1%를 밑돈다.)

더군다나 이 같은 자산이 한국경제 전체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 그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그리하여 전체 사회운명을 좌지우지 하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이는 너무 지나친 사유재산에 대한 ‘관대’ 내지는 그 점유자의 ‘횡포’에 대한 사회적 무기력증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이제 우리 스스로가 내걸었던 위의 매수주체와 관련된 두 가지 조건, 즉, ‘국내의’ 그리고 ‘사적’ 가운데서 후자의 그것은 재고할 필요가 되었다고 본다.

필자소개
과거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을 했으며 사노맹 사건으로 3년간 감옥 생활을 했다. 2001년부터 2017년까지 중국 사회를 연구할 목적으로 16년간 중국 유학생활을 보냈다. 중국인민대학과 상해재경대학에서 각각 금융(학사)과 재정(석사)을 전공했고 최종적으로 북경대 맑스주의학원에서 레닌의 정치신문사상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7년 8월 귀국하여 울산에 정착해 현재 울산 평등사회노동교육원에서 교육강사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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