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 입국 예멘 난민 문제,
    일각에선 무슬림·난민 혐오정서 확산
    국가인권위, 신속한 심사와 지원 등 정부 대책 촉구
        2018년 06월 19일 05: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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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 내전을 피해 제주도로 입국한 예멘 난민이 500명을 넘어서는 등 점차적으로 그 수가 늘어나자 난민 수용 여부를 둘러싸고 찬반 여론이 가열되고 있다. 예멘 난민 문제를 계기로 한국 정부의 난민수용 인프라를 재정비하고 확장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는 한편, 치안 문제 등을 이유로 난민 수용에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예멘 난민들은 2015년 벌어진 수니파 정부군과 시아파 후티 반군 사이의 내전으로 제주도까지 떠밀려오게 됐다. 지난 4월 유엔은, 4년차를 맞은 예멘 내전을 올해 최대의 인도주의 위기 상황이라고 규정했다.

    유엔난민기구에 의하면, 2017년 11월 기준 예멘을 떠난 난민은 28만여 명이다. 예멘 난민 중 일부는 무사증 입국이 가능했던 말레이시아로 가서 체류를 시작했다가 체류 기간 연장이 가로막히면서 다시 무사증 입국이 가능한 제주도로 오게 됐다. 올 들어 예멘인 561명이 제주도에 입국했고, 이 가운데 519명이 난민 신청을 했다.

    제주도 예멘 난민들의 모습(유투브)

    예멘 난민 반대 국민청원 20만명 넘어

    예멘 난민 신청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온라인상엔 추방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지난 1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른 난민 수용 반대 취지의 청원에도 19일 기준 25만여 명이 동의하는 등 그 호응이 매우 뜨겁다.

    이 청원자는 “그들의 생계를 지원해주는 것이 자국민의 안전과 제주도의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지 심히 우려와 의문이 든다”며 “대한민국이 난민 문제에 대해 온정적인 손길을 내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지까지도 의구심이 든다”고 밝혔다. 또한 “신청을 받으러 온 난민들이 진정 난민들일지도 의문이 있다. 가까운 유럽이 아닌 먼 대한민국까지 와서 신청을 한 이유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든다”며 “유럽과 다른 선진국은 난민문제에 대해 사죄해야 할 역사적 선례가 있다. 과연 대한민국이 난민을 받아줘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적었다.

    전쟁으로 인해 갈 곳 잃은 사람들을 보호하는 일을 경제적 이득의 잣대나 과거사에 대한 책임 여부 문제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진정 난민들일지도 의문’이라는 주장은 전체 예멘 난민들에게 ‘가짜 난민’이라는 낙인을 찍는 일이기도 하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난민·무슬림 혐오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난민 수용 그 자체를 반대하는 여론이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오른 이와 같은 내용의 게시물은 한 두 개가 아니다. 제주도 치안 문제에 대한 우려, 일자리 문제 등도 있지만 극단적인 난민·무슬림 혐오를 드러내는 글이 지배적이다.

    한 청원자는 “이슬람 근본주의 난민들이 어떤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지 우리는 예측할 수 있다”며 “선진화된 나라에서도 엄청난 사회문제들이 초래되고 있다. 부녀자는 성폭행 당하고, 테러가 자행되고 있으며, 온갖 재산범죄가 횡행하다”고 주장했고, “우리가 낸 세금으로 왜 그들을 먹여 살려야 합니까? 살인, 강간하는 그들을요”라는 내용의 또 다른 청원글도 있다. 이 밖에도 대부분 예멘 난민 신청자들을 강제추방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게시물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난민·무슬림 혐오를 드러내는 일부 기독교계

    정치·종교적 자유를 빼앗기고 전쟁으로 인해 갈 곳을 잃은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저버리는 차가운 시선들은 단순히 온라인 상 여론만은 아니다. 일부 국내 기독교 단체마저도 우리 정부가 난민 수용을 거부해야 한다는 의견을 적극 개진하고 있다는 점은 부끄러운 대목이다.

    한국교회언론회 대변인 이억주 목사는 19일 오전 MBC 라디오 ‘이범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단순히 인도적 차원의 문제로 접근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최근 중동 국가의 난민들로 인해 유럽 국가들에 국가적인 문제, 사회적인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목도하고 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이억주 목사는 ‘한국이 25년 간 UN난민협약 가입국인 만큼 난민들을 무조건적으로 추방할 순 없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선 “(난민협약이) 무조건 강제송환을 금지하는 건 아니다. 난민협약 33조에 보면 국가 안보나 안보 위험이나 국가 공동체에 위험한 난민에 대해선 강제송환 금지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 목사는 난민 반대의 주요한 이유로 치안 문제를 꼽았다. 그는 “테러를 가장 염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들(무슬림)의 규범이 거주하는 지역의 법과 상충될 때엔 언제든지 규범을 우선하지 않나”라며 “그 규범이라고 하는 것은 코란의 내용인데 우리나라 국민들이 또 용인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무슬림들은 남편이 아내를 폭행해도 된다고 가르치고 있고 남편이 허락하지 않은 외출을 아내가 했을 때 아내를 때려라, 남편이 허락하지 않은 복장을 착용했을 때 아내를 폭행해라, 그리고 남편이 아내를 때릴 때 제3자는 간섭하지 말라는 법 규정까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코란의) 실제 그 내용을 보면 국민청원에 대한 것이 어떤 포비아가 아니다”라며, 난민·무슬림 혐오를 드러낸 청원글을 옹호하기도 했다.

    세계의 난민 인정률 30% 정도, 한국은 2% 수준에 불과

    반면 난민을 포용해야 한다는 이들은 난민 수용에 소극적이었던 한국 정부가 이번 기회로 난민 수용 인프라를 확장하고 재정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세진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이날 같은 매체에 출연해 “우려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며 “유럽에선 수만 명씩 난민을 받는 상황에서 생겨난 문제들이고 난민의 범죄율은 높지 않다.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데 난민의 범죄가 크게 부각되어서 보도되는 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무슬림계 난민 수용 이후 유럽에서 사회적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는 이유로 난민 수용을 거부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이다.

    김세진 변호사는 “안전이나 안보 문제를 무시하자는 것도 아니고 신중하자는 것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모든 무슬림 난민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일반화하는 것은 안 된다고 본다”고 강조하면서 “두려워하는 지점인 범죄와 테러에 대한 실제적 위험을 검증해본다든지 하는 신중함으로 다가서야지 ‘모든 무슬림 난민들을 막자’, ‘입국을 금지하자’는 방향으로 가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국정원에서 2011년 ‘시리아 난민 200명이 한국에 한꺼번에 입국했다’고 오보를 낸 후 국회에서 국민의 권리를 통제할 근거가 되는 테러방지법이 제정된 사례를 언급하며 “우리 사회가 약자인 난민들에 대한 무자비를 계속 연습하게 됐을 때 결국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은 1992년 유엔난민협약에 가입한 국가다. 하지만 법무부는 지난 1일 예멘을 무비자 입국 불허 국가로 추가 지정했다. 급증하는 예멘 난민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한국이 유엔난민협약에 가입했다는 것은 국제적으로 난민을 보호하겠다고 약속을 한 것이다. 그런데 예멘 난민이 한국의 문을 두드렸을 때 바로 무비자 금지 국가로 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였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공익법센터 ‘어필’, 제주지역 인권단체 연석회의,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 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 이주인권연대 등 또한 지난 9일 낸 공동성명에서 “객관적 정황 검토와 근본적 대안 제시 없이 현 시점에서 예멘 국적에 대한 무사증 허가를 제외시킨 법무부의 행보는 세계인권선언과 난민협약의 가치를 명백히 위반하는 처사”라고 비판했고, 난민인권센터는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난민제도 운영” 정부 규탄성명 서명 운동을 시작했다.

    김 변호사는 “1994년부터 한국의 누적 난민 신청자 수는 3만 2000명 정도였지만 난민으로 인정된 수는 800명 정도”라며 “전 세계 난민 인정률이 30% 정도인 것에 비하면 한국은 2%정도로 굉장히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난민 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것이 난민 문제에 관한 갈등을 더 크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하며, 이번 예멘 난민 문제를 계기로 이주노동자와 난민 문제에 대한 사회적 토론에 불을 지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 안팎에서도 난민 문제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을 비판하는 입장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지난 1일 낸 성명에서 정부에 신속한 심사와 심사기간 동안의 주거 지원 등 범정부적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인권위는 “정부가 구체적인 방안 없이 방치하고 있다”며 “사람답게 살기 위한 희망으로 본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예멘 난민 신청자의 절박한 처지에 대한 공감과 수용은 선택이 아닌 국제 사회와의 약속”이라고 밝혔다.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또한 “유엔난민기구는 최근 제주도에 도착한 예멘 난민신청자들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예멘 난민을 강제소환해서 안 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한국대표부는 전날인 18일 낸 성명에서 “대한민국은 ‘1951년 유엔난민협약’에 가입한 소수의 아시아 국가 중 하나이자 독자적인 난민법을 가진 유일한 아시아 국가다. 대한민국에 보호를 요청하는 모든 사람의 난민신청은 신중하게 심사되어야 한다고 난민법이 규정하고 있다”면서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에 처한 예멘으로 그 어떤 예민인도 강제송환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유엔난민기구의 단호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25만여 명의 동의를 얻은 청원글의 주장처럼 한국은 ‘난민문제에 대해 사죄해야 할 역사적 선례’는 없지만, 조국을 떠나야 했던 한국 난민들이 타국의 도움을 받았던 과거와 그런 과거를 바탕으로 세계 12위권의 경제대국이 됐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유엔난민기구 전신은 과거 한국전쟁 난민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것”

    김 변호사는 “한국이 과거에 유엔난민기구(UNHCR)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제연합한국재건단(UNKRA)은 한국전쟁으로 인한 난민을 돕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식민지배나 분단과 전쟁으로 많은 이들이 조국을 떠나야 했던 과거에 타국의 도움을 받았던 과거사를 기억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울러 “난민보호는 근본적으로 생명 존중, 자유에 대한 우리 인류가 추구하는 가치들을 보호하고 이러한 가치들을 존속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한국이 유엔 난민협약에 가입한 상황에서 난민들을 받지 않겠다고 해버리는 것은 국제 사회 일원으로서 책임을 거부하는 일”이라며, 한국정부의 난민 수용을 촉구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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