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미정상회담 이후 의지의 낙관 넘어
    [국제정치 이슈] '이란 핵 협정 탈퇴와 미 중간선거'
        2018년 06월 18일 09: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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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인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선전포고에 가까운 말폭탄을 주고받던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카펠라 호텔의 양 쪽 회랑을 천천히 걸어와 중앙 현관 앞에서 두 손을 맞잡는 장면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감동이었다. 다분히 연출된 장면이었지만, 한국전쟁 이후 7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적대적 대치를 이어 온 양 국 정상의 첫 만남에 걸맞은 장면이기도 했다. 양 정상이 싱가포르행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정상회담이 제대로 개최될 것인지 마음을 졸여야 했던 사람들에게 보내는 안도의 선물이었는지도 모른다.

    정상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1) 새로운 북미관계의 구축, (2) 영구적이고 안정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공동 노력, (3) 판문점 선언에서 밝힌 북한의 비핵화 의지 재확인, (4) 미군 전쟁포로 및 실종자들의 유해 발굴과 송환 등 4개 항의 합의 사항을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기대를 모았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과 같은 극적인 반전은 없었다.

    미국과 한국의 강경 보수파들이 신주단지처럼 떠받드는 CVID, 즉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비가역적인 비핵화라는 문구도 공동성명에 담기지 않았다. 대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문구가 들어갔고, 정상회담 이후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입을 통해 ‘한국전쟁이 곧 끝날 것’임이 확인되었다. 싱가포르 북미공동성명에 모든 것이 담기길 기대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트집 잡을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불과 몇 달 전까지 전쟁 위기가 고조되었던 점을 상기하면 그야말로 역사적인 정상회담이었고 공동성명이었다.

    이번 북미공동성명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북핵 위기의 핵심 쟁점이었던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안전보장 사이의 맞교환이 명문화되었다는 것이다. 공동성명은 4개 항의 합의 사항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안전보장을 제공하기로 약속하였고,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약속을 재확인했다”고 명시하였다.

    물론 이것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지난 2005년의 9.19 공동성명 또한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 핵 계획들을 포기”하고 미국은 “핵 또는 상용무기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공격하거나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언”한다고 명시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9.19 공동성명은 차관급 회담의 결과로서 도출된 것인 반면, 이번 공동성명은 역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결과이다. 북미공동성명을 두고 새로울 것이 없다는 볼멘소리들이 터져 나왔지만, 그 무게의 차이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행된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처음부터 간단한 것이었다. 양 측의 주장과 요구사항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무장을 용납할 수 없었고, 적어도 북한의 공식적인 입장에 따르면 미국과의 적대적인 관계가 핵무장의 이유였으므로 미국으로부터 완전한 안전보장이 없는 한 핵무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안전보장과 비핵화의 맞교환이 해답인 것은 처음부터 분명했다.

    문제는 마치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와 같은 끝을 알 수 없는 논란 속에서 양 국이 이 맞교환을 담판 짓는데 지속적으로 실패해 왔다는 데 있다. 9.19 공동성명에서 이 맞교환에 가장 근접했었지만, 차관급 회담이라는 중량감의 한계와 뒤이어 미국이 단행한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의 북한 계좌 동결 조치로 빛을 바랬다. 9.19 공동성명 이후 벌어진 갈등은 2년 후인 2007년 2.13 합의로 일단 봉합되는 듯 했으나 다시금 갈등과 교착의 긴 터널로 빠져 들었다. 그로부터 10년 동안 북핵 문제는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 실험과 핵실험, UN의 대북제재, 2008년 이후 한국을 지배한 보수정권의 대북 강경노선으로 악화일로를 걸었다.

    이 모든 상황은 작년 문재인 정부의 등장과 금년 초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를 계기로 급격히 반전되었다. 신년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의 핵 무력 완성을 재확인하고 핵탄두와 탄도로켓의 대량생산과 실전배치를 강조하면서도,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남북대화와 평창올림픽 참가를 제안하였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급물살을 탄 남북관계는 4월 27일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정점에 이르렀고, 남북한의 교류와 협력은 물론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체제 수립 등의 내용을 담은 판문점 선언은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교두보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리고 마침내 6월 12일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의 해법인 비핵화와 안전보장의 맞교환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사이에 공식적으로 합의되었다. 북핵 문제의 자명한 해법이 실효성 있게 추진될 가능성이 처음으로 열린 것이다.

    북미정상회담 이후 의지의 낙관을 넘어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으로 한반도의 봄은 시작되었다. 남은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사이에 전격적으로 합의된 비핵화와 안전보장의 맞교환이 향후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맞교환의 한 축인 북한의 비핵화 조치만 놓고 보자면 충분히 낙관적이다. 정상회담에 뒤이은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신뢰를 수차례 강조하면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즉시 실행될 것이며 여기에는 공동성명에 담기지 않은 미사일 발사체 시험장 폐쇄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북미정상회담에 뒤이어 방한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2년 반 내에 끝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장관 모두 북미공동성명의 내용을 넘어서는 심도 깊은 합의가 있었음을 강조하면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적어도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 이행 여부에 대해 충분히 낙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안전보장 약속은 성실히 이행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도 낙관할 근거는 충분히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시행되는 동안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다소 파격적인 발언을 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후속조치들이 숨 가쁘게 논의되고 있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은 비록 먼 미래의 일이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주한미군 철수까지 언급하기도 했다. 북한의 안전보장을 위한 가시적 조치들을 언급한 것이다. 충분히 낙관할 근거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잠시 숨을 돌려 몇 가지 문제를 냉정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북미정상회담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 기조라는 측면에서 볼 때 대단히 예외적이라는 점이다. 다른 모든 문제를 차치하고 북핵 문제와 가장 유사한 이란 핵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지난 5월 8일 트럼프 대통령은 2015년 체결된 이란 핵 협정에서 일방적인 탈퇴를 선언하고 이란에 대한 제재를 재개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이후 ‘위대한 미국’의 기치 아래 일방적인 외교정책을 고수해 왔다는 점을 상기할 때, 향후 북미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이 충실히 이행될 것인지 신뢰성에 의문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외신에 따르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란이 북한에게 트럼프 대통령을 신뢰하지 말라는 조언을 했다는 후문이 들릴 정도이다.

    물론 이란 핵 문제와 북핵 문제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우선 이란과 달리 북한은 핵무기는 물론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보유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상대방의 협상력에 현저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란 핵 협정은 트럼프 행정부가 그 흔적을 지우는데 총력을 기울이는 전임 오바마 행정부에서 체결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가볍게 볼 충분한 이유가 있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오는 11월 미국의 중간 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서 북핵 협상 타결이 대단히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다. 이란 핵 협정 문제는 물론 대외정책의 곳곳에서 벌집을 쑤셔 놓은 듯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무언가 외교적인 성과를 내야 할 절박한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에 대단히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은 이러한 사정에 기인하는 바 큰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의 평화와 비핵화에 사활적 이해를 가진 우리의 입장에서 이러한 사정은 어쩌면 천우신조와 같은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수 있는가에 있다. 여기서 냉정하게 살펴봐야 할 두 번째 문제는 미국 국내정치의 급격한 변동 가능성이다. 이미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 시기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조사 중이거나 고발된 상태이다. 이것이 탄핵이라는 극단적인 경우까지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11월 중간 선거를 트럼프 행정부의 운명을 가르는 분기점으로 만들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11월 중간 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어도,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의 공화당이 선전해도 문제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민주당이 압승을 거둘 경우 이미 북미공동성명 발표 이후 논란이 되고 있는 CVID 명문화 문제가 본격적인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북한에 대해 오히려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공화당이 선전할 경우 우리로서는 존 볼턴으로 대표되는 트럼프 행정부 내의 초강경파를 걱정해야 할 것이다. 북미정상회담에 이르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미 이들의 어깃장을 경험한 바 있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미국 국내정치 상황이 향후 상황 전개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 모든 불확실성은 결국 단지 합의문에 불과한 이번 북미공동성명을 어떻게 구속력 있는 제도로 구체화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낙관론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의지에 대한 낙관에 기초해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의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의지에 대한 낙관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 북미공동성명에서 합의된 사항을 지속가능한 것으로 전환시켜야 할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한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북미공동성명을 토대로 한반도와 동북아 일부를 포함하는 ‘비핵지대 협정’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미 남미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등에서 현실화된 비핵지대는 비핵화와 안전보장의 맞교환을 제도화한 것이다. 북미공동성명의 의의가 이 맞교환에 있다면, 그리고 이 맞교환을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할 것인가가 우리의 과제라면 비핵지대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여기에는 당연히 미국과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 모두가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요컨대 미국과 북한 사이의 담판으로 만들어진 북미공동성명을 다자화 하는 것이다. 당연히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을 회담장에 마주 앉도록 했던 과정보다 훨씬 더 어렵고 험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러나 꿈조차 꾸지 않는다면 현실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분명하다.

    필자소개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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