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하느라 '왕의 남자'도 못봤어요
    2006년 04월 25일 05:44 오후

Print Friendly

영화배우 최민식은 1천만명이 넘는 관객이 본 영화 <왕의 남자>를 안 봤다. 아니 못 봤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마침 보러 가려고 했을 때 스크린쿼터 문제가 딱 터져 버린 겁니다. 지금껏 못 봤죠.”

배우는 무대나 스크린을 통해 관객을 만난다. 배우는 연기를 통해 대중을 만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요즘은 연기가 아닌 연설을 통해 무대가 아닌 광장을 통해 직접 대중을 만나고 있다. 그러나 그가 만나는 대중은 양면적이다. 인터넷 공간을 통해 그의 진정성에 지금도 의문을 표시하는 날선 비판자들도 있고, 한미FTA반대의 목소리를 함께하는 농민과 노동자들도 있다.

두 얼굴의 대중을 만나면서 혹시 무섭다는 생각이나 한계가 느껴지지는 않는지 물었다.

“뼈저리게 느끼고 살지는 않았지만 (배우라는) 우리의 한계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를 보는 이중적인 잣대가 있어요. 우리는 문화생산자로서 문화를 만들어 내고 그 생산물은 대중이 향유하고 즐겨요. 또 우리 자체를 대중들이 즐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 한순간 지탄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땅바닥에 패대기쳐질 수도 있죠. 소위 딴따라 광대라는 이유 만으로요. 그런 우리의 직업적 특성이 있어요.”

   
 

“요즘 들어서는 그러니까 우리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너네는 쉽게 일하지 않느냐, 너희가 무슨 생산활동을 하냐, 다시 말해 우리의 ‘노동의 가치’를 인정 안 해요. 소위 말해서 너네는 얼굴 잘생기고 반반하게 생기고 매니저 잘 만나서 그런 거 아니냐? 땀과 눈물 이라는 노동의 대가 너네는 모르는 거 아니냐. 이런 이야기들을 해요.”

연기도 노동이라는 인식이 필요

“CF한번 찍고 몇 억씩 벌어가는 것 보고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그런 심리적인 배경이나 정서를 전혀 이해 못하는 건 아니죠. 저도 연극할 때 저보다 소득 많고 스타라는 이유로 대우가 다른 모습을 저도 느꼈거든요. 하지만 그것은 다분히 감정적인 비판입니다.”

그도 대중에 대한 서운함이 없지는 않았다.

“일부 배우들의 호의호식하는 모습이나 경제적 능력이 스크린쿼터축소와 한미FTA체결이 합당한 이유는 아니죠. 만일 배우들이 부도덕한 행위로 부를 축적했다거나 스탭들을 착취하고 부의 분배를 막았다면 비난이 아니라 맞아죽어도 할 말이 없는 겁니다.”

배우답게 말소리 조절을 잘하는 그였지만 이 대목에서는 목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그것은 영화계 내부 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하는데 그런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해나가는데 노력하지 못한 점은 인정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루아침에 저를 비롯한 동료배우들이 착취세력이 돼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제 스스로 스타라거나 기득권이라고 생각해본 적 결코 없습니다. 스탭들과 좋은 관계 맺으면서 영화 촬영현장에서 성실히 일한 것 밖에 없는데 어느 날 갑자기 모 감독이 어떤 잘못된 충정심이 발동해 이런 사태를 촉발시켰죠. 잘못된 여론 형성의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때 나온 이야기들이 기정사실이 돼서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고 또 믿고 있어요.”

“저는 언젠가 그분에게 책임을 물을 겁니다. 그분 지금 침묵하고 있잖아요? 그 분의 잘못되고 왜곡된 지적을 자격미달의 언론과 기자가 ‘대한민국 배우들 돈 너무 밝혀요’ 이렇게 내보내면서 이구동성으로 배우들에게 지탄을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기자의 질문을 잘못 이해했나 생각했다. 그러나 듣다보니 지난 해 강우석 감독이 최민식 씨와 송강호 씨를 지목해 충무로의 일부 스타들이 올려놓은 몸값으로 영화제작이 어렵다고 주장했던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다.

스스로 스타라는 생각을 가져본 적 없어

“제가 지금도 천추의 한인 게 왜 그때 좀더 논리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을까. 왜 좀더 이성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을까. 왜 감성적으로 대응했을까. 그런 후회가 들어요. 처음 당한 일이라 일단 화부터 났고, 그때 좀 더 대중들을 설득하고 이건 배우들의 도덕성 문제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알렸어야 했는데…”

그는 미안했던 거다. 언론들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나서 쉽게 잊었지만 그 때의 기억이 올해 초 스크린쿼터 문제가 불거졌을 때 배부른 영화인들에게 동조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부정적 여론을 불러왔다고, 최민식은 믿고 있었다. 자기 때문에 다른 동료 영화인들이 함께 도매금으로 넘어간 것은 아닌가하고 그는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런 연예인들이나 기획사가 없지 않지만 대부분의 배우들은 그런 생각 없습니다. 저만해도 개런티 가지고 제작진과 트러블 겪어본 적이 없어요. 저는 지금도 궁금해요. 작품을 같이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 왜 그때 그런 말을 했을까.”

“그런 왜곡된 시선을 놓고 제가 그런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죠.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고 잘못된 비판입니다. 일부 네티즌이나 언론의 잘못된 잣대에 겁먹고 숨을 이유가 없습니다. 잘못된 거니까.” 그는 억울하다고 했다.

지난 해 개런티 논란 상처로 남아

   

이야기를 돌려봤다. 지난 1999년에도 스크린쿼터 축소를 놓고 영화계가 거리로 나선 적이 있다. 그때 명동성당 앞에서 유명배우들이 상복을 입고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당시의 사진에 찍힌 얼굴들과 지금 영화인대책위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얼굴들은 한두명을 제외하고 모두 바뀌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하나.

“사실 지금도 영화인대책위에 적극 활동하는 배우가 소수에요.” 의외로 솔직한 대답이다.

“하지만 후배들에게 섭섭하지는 않습니다. 이것도 어떤 이슈에 대한 정치의사나 노선의 표현인데 배우라는 직업상 그게 쉬운 일이 아니죠. 얼마 전 영화 <사생결단> 시사회를 갔다가 뒤풀이 자리까지 갔습니다. 저는 아무렇지 않은데 후배들이 자꾸만 죄송하다 그러더라고요. ‘야, 무슨 소리야’ 그랬죠. 그런 소리 말라고 원래 싸움은 쪽수 많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내가 싸울 만큼 싸우다가 정말 힘들어지면 그때 부르마 그랬어요. 좀더 양질의 작품을 만들고 창작에 매진할 때 우리가 국민들에게 설득력도 생기는 거죠.”

“임필성 감독, 임창정, 류승범, 황정민 이 친구들 말하길 자기들은 5분대기조라고 그럽니다. 자기들은 전화 한통화면 바로 달려 나온다 이거에요.”

5분대기조는 언제쯤 써먹을 생각이냐고 물었다.

“근데 이게 길게 가는 싸움이라 자주 나온다고 되는 건 아니죠. 그런 면에서 전략적으로 동료들이 동원되는 시점이나 시기를 연구해서 힘을 모아야죠.”

우문현답이다. 긴장을 풀어볼까 하고 던진 질문인데 너무 진지한 답변이 되돌아온다.

영화계 내부의 문제, 제대로 드러낸 적 없다

말이 나온 김에 영화계 내부의 문제로 방향을 돌렸다. 지금까지 배급의 문제, 투자의 문제, 스탭들의 문제 같은 영화계 내부의 문제들은 왜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걸까. 혹시 영화계 스스로 그것을 감추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닌지 물었다.

“일반 관객들, 대중들은 완성된 영화를 즐길 뿐이지 영화가 만들어지는 내부 시스템은 몰랐고 알 필요도 없었죠. 스크린쿼터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는 우리가 어디에다 이야기할 곳도 사실 없었어요. 영화계 내부사정이 알려지지 않고 홍보가 안됐다는 사실이 지금 우리에게는 매우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누군가의 감정적인 발언에 좌지우지되고 믿을 수밖에 없어요.”

“제가 강연을 다니는 이유도 그런 거 에요. 강연에서 제가 하는 이야기가 배우들이 그동안 영화계 내부의 문제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는다거나 우리를 합리화시키고 변명하자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영화 한편이 만들어지는 시스템의 과정을 설명합니다. 그걸 꼭 빼놓지 않아요. 영화라는 것이 다른 문화와 차별화되는 면이 독특한 작업 문화와 공동창작 그리고 배급구조 시스템이거든요. 이걸 설명하며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주류언론이 이런 현안에 대해 감시와 견제의 기능이 전혀 없고 그저 선정적인 스타 동정 보도만 해요. 언론으로 기능하는 데가 별로 없어요. 우리는 우리의 입장을 대변할 창구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발품 팔면서 강연을 다닙니다. 요즘은 강연을 가면 듣는 분들에게 강의실이나 일터, 하다못해 미팅장소를 가더라도 한미FTA문제에 대한 전도사가 돼달라고 부탁합니다.”

주류언론은 감시와 견제의 기능을 상실

   

그는 인터뷰 내내 모든 주제에 대해 거의 빼놓지 않고 언론을 언급했다. 그러나 영화 전문 주간지가 3개나 발행되고 모든 매체가 영화를 ‘특별하게’ 다루는데 왜 영화가 제대로 보도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걸까. 언론의 문제가 무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우리 언론에는 배우비평이 없어요. 영화개봉 할 때쯤 되면 영화 주간지에 ‘스타덤’이라는 코너 있잖아요? 거길 보면 칭찬 일색이에요. 신인배우면 모두 차세대 주자고, 기존배우면 뭐 신들린 연기, 절정의 연기력, 칭찬하기 바쁘거든요.

그 영화를 좋게 포장하는데 이용할 뿐이지 그 배우에 대한 적절한 비평이 없어요. 외국처럼 기자가 배우의 작품 행보와 의식을 따라가면서 함께 늙어가는 문화가 없어요. 그런 곳에서는 배우가 상업적으로 타락했다든지 안 좋은 행보를 보이거나 하면 기자가 신랄한 비난을 퍼부어요. 그런 것들이 필요해요.”

자기 연기에 대해 깐깐한 비평이 부담스럽지 않은 배우는 세상에 없을 거다. 그런 관계가 정말 부러운지 확인했다.

“당연히 부럽죠. 칭찬이 배우를 키우는 게 아니에요. 배우에 대한 적절한 비평이 영화계의 건강성을 키우는 거죠.”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에요. 방송이나 신문 같은 주류언론의 영화전문기자들이 영화의 역사적 배경이나 작품 세계 같은 심층적인 고급 정보를 관객들과 영화생산자들 사이에서 제공했어야 했죠. 그러나 <왕의 남자>가 관객천만을 넘어갔다는 보도만 있지 평소에 영화에 대한 정보나 문제제기는 없어요.

오히려 연예프로그램 보면 리포터들이 와서 그 씬 찍을 때 분위기가 어땠나요, 촬영 에피소드나 물어보고 하니까 일반대중들은 아, 영화는 쉽게 만드는 거구나, 저 사람들의 노동에는 진실성이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없구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영화를 홍보만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알리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절실해요.”

제대로 된 배우 비평 한번 받아보고 싶다

   

<레디앙>이라는 생소한 매체를 위해 3시간 가까운 인터뷰에 응해준, 동행취재까지 포함하면 하루를 허락한 최민식 씨는 “원래 찬밥 이슈였던 한미FTA문제가 지방선거다, 월드컵이다 하다보면 또 뒷전으로 밀려나겠지만 그러더라도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묻지도 않은 대답을 이어나갔다. “솔직히 저야 스크린쿼터의 혜택을 볼만큼 봤습니다. 지금 절반으로 축소돼도 제가 받는 타격은 그리 크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대학 연극영화과에 입학하는 학생들, 이제 막 데뷔하려는 감독 이 친구들에게 내가 누렸던 만큼의 ‘기회’라도 보장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 친구들 앞에서 떳떳한 선배이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꼭 한미FTA를 막아야죠. 그리고 잘 될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어요.” 바램 섞인 전망을 끝으로 최민식 씨와의 하루 일정을 마쳤다.

최민식 씨는 저녁에 ‘팔만대장경 동판간행 범국민추진위원회’의 홍보를 위한 육성녹음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팔만대장경이야말로 고려시대에 원의 침략으로부터 나라의 주권과 문화주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 아니었겠느냐”고 덧붙였다. 요즘 그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어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었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