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이 그러실 줄 정말 몰랐죠
    2006년 04월 25일 12:26 오후

Print Friendly

24일 최민식씨와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국회는 배우와 기자가 만나 이야기를 나눌만한 장소가 아니다. 하지만 최민식씨는 이날 오전 10시 ‘한미FTA를 연구하는 국회의원 모임’이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요즘 배우 최민식씨는 극장에서 만나기 어렵다. 그의 얼굴을 보려면 거리의 집회장으로, 토론회장으로, 대학이나 노동조합의 강연회장을 찾아야 한다.

올해 초 정부가 일방적으로 스크린쿼터 축소방침을 발표하고 영화인들이 이에 반발하고 나섰을 때 누가 등 떠밀면서 앞에 세운 것도 아닌데 그는 무대의 전면에 나섰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애초 스크린쿼터축소 반대라는 주장이 한미FTA반대라는 더 큰 목소리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약속장소에는 최민식씨와 양기환 영화인대책위 대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잠시 뒤 정지영 감독이 왔다. 일행은 토론회장으로 들어갔다.

   
 

소란스러운 한미FTA 토론회

여야국회의원들이 마련한 토론회는 쟁쟁한 인물들이 섭외돼 있었다. 이런 토론자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김종훈 한미FTA협상 수석대표를 비롯해, 전날 미국 하원의원들이 부시 대통령 앞으로 한국과 미국간의 사전밀약 내용을 담아 보낸 공문을 공개한 이해영 교수 그리고 최근 일련의 대정부비판 발언으로 주목을 받은 정태인 전 청와대비서관 등이 이날의 출연진을 구성하고 있었다.

여야 국회의원들의 길고 지루한 인사말이 지나가고 최민식씨가 무대 위에 올랐다. 주최 측은 영화배우의 의례적인 인사말을 기대(?)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무대에 오른 배우는 15분이 넘는 ‘연설’로 인사를 대신했다.

최민식씨는 우선 정권에 화살을 돌렸다. “생존권과 문화주권을 지키려고 애를 쓰는 국민들을 ‘집단이기주의’라고 몰아세우더니 이제는 방해세력이라고 공격한다. 내부의 결속을 도모하기는커녕 정권이 상식과 도를 넘어서고 있다.”

집권자들의 문화에 대한 천박한 인식도 공격했다. “배우 이준기를 앉혀놓고 조롱하고 무시하는 대통령의 모습에서 문화와 예술을 대하는 태도를 알게 됐다. 국민들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기보다 무시하는 모습은 오만불손하다.”

언론도 빠트리지 않았다. “이런 정권의 모습을 지적하지는 못하고 국가의 주권을 지키려는 노력을 ‘반미를 표방한 운동권’의 철없는 짓거리로 매도하거나 모욕에 가까운 비아냥이나 하는 것이 주류 언론의 행태”라며 “탄식을 넘어 분노를 금치 못하겠다”고 격한 감정을 쏟아냈다.

그가 내려오고 시작된 토론회는 초반부터 소란스러웠다. 국회의원들을 ‘모시고’ 진행되는 토론회가 보통은 점잖게 진행되기 마련인데 이날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방청석에서 고함이 터져 나오기 일쑤였고 토론 순서를 조정하기도 했다. 토론회장의 소란은 FTA를 둘러싼 우리 사회 내부의 갈등을 축소해놓은 듯이 보였다.

연설로 대신한 인사말

 

토론회를 방청하고 나오는 최민식 씨에게 몇가지 질문을 던졌다.

요즘 작품활동은 하는지 물었다. 대답 대신 알면서 뭘 묻느냐는 표정으로 기자를 바라본다.

지난 2월 7일 서울 광화문에서의 1인시위와 함께 정부로터 받은 문화훈장을 반납한 이후 그는 두 달 넘게 영화 아닌 영화 일에 매달려있다. 집회와 강연, 기자회견으로 꽉 찬 그의 일정은 제대로 소화하기도 힘들어 보였다.

배우가 영화를 찍지 못하고 두 달 넘게 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에 대한 느낌을 물어봤다.

“처음에는 상당히 어색했어요. 이게 제가 하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렇게 살았던 사람도 아니고 오로지 연극하고 영화만 알고 살았는데, 하지만 어쩔 수가 없잖아요.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제 스스로가 너무 화가 납니다. 처음에 스크린쿼터축소 발표를 듣고 화가 막 나더라구요.”

그는 분노를 ‘화가 난다’고 표현했다. 그토록 화가 나는 이유를 계속 들어봤다.

“권태신 (재경부) 차관보, 한덕수 부총리가 영화계에도 집단이기주의가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들만 생각한다는 거죠. 애국하는 배우들이 외제 차는 왜 타느냐는 근거도 없는 비아냥을 공개적으로 들었을 때는 어떤 배신감마저 들었습니다.”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사람들, 자기들의 정책을 관철시키고 싶을 겁니다. 그러나 그 모양새가, 국민들 앞에서 특정 집단이나 이해당사자들을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하고 거기에다가 인격적인 모욕까지 줍니다. 이게 너무, 너무 괘씸한 겁니다.”

“정부관료들이 인신공격성 발언을 서슴지 않고 그렇게 해서 정책을 관철시키는 것이 결국 누구를 위한 거겠어요. 국가의 정책이라는 것이 자국민을 위하고, 국익을 위해 이루어지는 건데 그럼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요?”

“사실 정부가 교활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론을 호도하고 또 그런 여론과 영화인들이 대립하고 있는 양 몰아세운 뒤에 자기들은 뒤로 쏙 빠져버립니다. 이런 교묘한 술책에 일부 여론이 또 호응했습니다.”

한 배우를 분노케 한 정부

   

나중에 따로 마련한 인터뷰 자리에서 이 문제에 대해 다시 질문했다. 왜 FTA에 그토록 반대하는지.

“얼마 전에 노무현 대통령이 이준기 불러놓고 그랬잖아요. 영화인들, 그렇게 자신감이 없냐고. 그건 아니죠. 그렇게 일방적으로 이야기하고 몰아세우고 그러는거 불쾌합니다.”

“돌발영상이라는 것을 우연히 봤는데 대통령이 나왔어요. 북악산 뒷길을 시민에게 개방하면서 대통령이 우스개 소리로 ‘대통령 혼자 산책하고 등산하는 특권을 누려서 마음에 불편했는데 혼자 걷다보니 그런 생각이 듭디다. 저 북악산을 팔면 얼마에 팔 수 있을까, 삼각산을 팔면 또 얼마에 팔 수 있을까’ 그걸 보면서 아 저건 지도자의 농담이구나 이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농담으로 안들리더라구요.”

최민식 씨는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대통령에 대한 실망이 그를 한미FTA반대의 투사로 내모는 것은 아니었다.

“무역 하지 말자는 게 아닙니다. 무역을 하되 깐깐하게 거래를 하자는 거죠. 깐깐하게 협상도 하고요. 국가와 국가의 협상에서 자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항상 우선이 돼야지요. 국민들이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는 게 우선 아닌가요? 궁극적으로 국가가 부유하고 국민이 풍요롭게되는게 당연한 목적인데 FTA는 그렇지 않아요.”

“론스타가 좋은 예입니다. 론스타가 한미FTA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잖아요. 사태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고 이런 일이 이제는 사회 전분야로 확산되는 겁니다. 저도 분명히 기억하는데 언론들은 론스타에 비판적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공적인 외자유치라고 추켜세웠지요. 위험합니다. 무엇보다 언론이 나서서 무엇이 우리를 살리고 무엇이 우리를 망하게 하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해요.”

론스타가 한미FTA의 미래 모습

“스크린쿼터 때문에 싸움을 시작했지만 이 투쟁에 동참하면서 많은 전문가들을 만나고 조언을 들으면서 내 상식을 깼습니다. 그러다보니 문득 ‘지금 뭐하고들 있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중대한 이렇게, 위험한 문제가 코앞에 있는데 말이죠. 눈뜨고 코 베가는 경우가 이겁니다. 그래서 우리라도 꼼꼼히 짚고 넘어가고 많은 사람들을 자극해야겠구나하는 사명감이 듭니다.”

그는 영화계에 대한 공격과 비난이 억울해서, 부당해서 그래서 화가 나서 행동을 시작했지만 여러 사람을 만나고 내용을 공부하고,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것이 비단 영화계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됐다고 한다. 또한 영화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더 큰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그는 현재 자신의 목표는 한미FTA의 무산이라고 힘주어 강조한다.

“막을 수밖에 없습니다. 전 국민적인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개시선언하고 그런 막무가내 식으로 몰아붙이는 것을 동의해서는 안돼죠. 한미FTA가 정말 국익에 도움에 되고 그것만이 살 길이라면 그것에 따른 사전작업이 중요합니다. 안그래요?

뺨을 한대 맞는 한이 있더라도 대국민 설득과 홍보를 하고 이해를 시켜 나가야죠. 누구를 위한 한미FTA인가. 몇몇 독점자본과 재벌들이 호의호식하고 사회 양극화가 심해지고, 지금 ‘두개의 조국’이 생긴다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양극화가 심해지면 이렇게 된다는, 이런 극단적인 이야기도 나와요. 그럼 그게 과연 누구를 위한 ‘자유무역협정’이냐는 거죠. 그건 결단코 막아야합니다.”

그는 그런 사회에서 영화를 만드는 게 무슨 보람과 의미가 있겠냐고 덧붙였다.

   

"사회양극화는 두개의 조국을 만들지도 모른다"

“정말 필요하다면 꼼꼼한 진단이 필요하죠. 농업과 의료에서, 법률과 교육에서 어떤 현상이 벌어지고, 또 얻을 것은 무엇이고 잃을 것은 무엇인지 따져봐야죠. 그래서 얻는 것이 더 많다는 국민적인 동의가 있을 때 그런 자국민의 든든한 지지기반을 등에 업고 협상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내년 3월까지 체결한다는 것은 미국이 준비한 서류 번역하고 읽어보고 도장 찍는 것 밖에 안 됩니다. 협상 주도하는 사람들도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국민에게 비공개하에 밀실에서 협상을 추진한다는 것은 정당성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베일에 가려지고 졸속으로 단시일안에 처리하겠다는 저의를 우리가 모르는 이상 어떻게 동의를 하겠어요.”

“내막을 모른다 할지라도 이미 드러난 것만 봐도 정상적인 협상이 아니라는 게 밝혀졌어요. 이미 많은 이들이 공통으로 우려를 표명합니다. 현재 협상은 결렬시켜야 합니다.”

"귀싸대기 맞더라도 만나서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했다"

하지만 대통령에게는 이미 한미FTA가 신념으로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반대해도 결국 언젠가는 모두가 박수를 칠 날이 올 거라고 믿는 듯이 보인다. 자신은 지금 욕을 먹더라도 옳은 길을 가겠다는 대통령과 대립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는지 물었다.

“그런 부담이 왜 없겠어요. 하지만 저는 이 분이 이러실 줄은 몰랐습니다. 슬로건이 참여정부인데 참여를 배제하고 있어요. 누구보다도 독선적으로 가고 있는 거거든요. 누구보다도 좋아했고 개인적으로도 지지했었습니다. 그 5공청문회 때 날카로운 질문들, 독재정권의 하수들에 대해 쏟아 붇는 질타. 누구보다도 정말 돋보였습니다.”

“제가 지도자의 고뇌를 다 알지는 못하겠지만, 왜 고뇌가 없겠습니까? 말 못할 사정이 있겠죠, 하지만 소중히 생각할게 있어요. 바로 사람들을, 국민들을 소중히 해야 합니다. 영화계가 그분이 대통령될 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 집단이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농민이나 영화계에 대해 그분이 그런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됩니다.”

“저는 비대위안에서도 이런 말을 합니다. 다분히 감정적이지만, 스크린쿼터 축소하기 전에 대통령이 우리를 불러 ‘영화계가 희생을 해주셔야겠습니다. 고뇌에 찬 결정이었습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대신 정부정책상 영화계가 타격을 받지 않게끔 제도적으로 재정적으로 뒷받침 하겠습니다’ 그런 언질이라도 미리 받고 이런 날벼락을 맞았으면 이렇게까지 화가 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공청회라는 제도는 왜 있습니까. 가서 싸대기를 맞더라도 설득하고 이해시키라고 있는 거잖아요.”

"대통령, 그 누구보다도 좋아했었다"

   

“작년 11월에 정동채 전 문광부 장관이 한미FTA와 스크린쿼터는 무관하고 주무장관으로서 사수의지는 확고하며 이건 나뿐만 아니라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이건 문화적 예외조항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래놓고 2월에 축소하겠다고 정부가 기습발표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동채 장관이 배재된 상황에서 경제관료들이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거나 정동채 장관도 알면서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거나 둘 중의 하나인 겁니다. 어느 쪽도 우리는 납득이 안가지요. 그래서 훈장 반납했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에요. 한낱 고철일 뿐이지. 그런데 정작 우리보고 집단 이기주의라고 호도했습니다. 우리는 속은 거 에요.”

“왜 국민들을 그런 식의 태도로 대하느냐, 오늘 국회 토론회 무대에서 이 이야기는 꼭 하고 싶었습니다. 국민을 믿고 가고 최후의 보루로 만들어야 하는데 국민을 오히려 내부의 방해세력으로 봅니다. 대통령이 해외순방하면서 문제점을 지적하는 교사들을 놓고 개혁의 최대방해 세력이라고 했다고 하잖아요. 왜 그런 식의 경솔한 발언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선생님들이 어떻게 개혁의 방해세력이 됩니까."

"김명곤 장관 가지 말았어야, 정치적 야욕이다"

정동채 장관 이야기가 나온 김에 넌지시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에 대해 물어보았다.

“(장관으로) 가지 말았어야 해요. 그럼 안돼요.” 그의 대답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바로 나왔다.

“제가 참 좋아하는 선배인데 그분은 대학 강연에서 스테이지쿼터까지 주장했어요. 문화수장이 됐으면 그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정부가 고뇌에 찬 결정을 했으니 따라야한다’ 이 따위 소리나 하고 있으니…”

잠깐 이야기를 쉬는 그의 입가에는 분노만큼이나 짙은 안타까움이 배어있었다.

“전주영화제 개막식(27일) 가면 분명히 만날 텐데 제가 물어볼 거 에요. ‘선배님 그거(장관) 왜 하세요.’ 아마 나중에 이야기하자 그러실 텐데 그건 아니에요. 존경하는 선배였는데… 장관은 문화주권이나 이런 것에 대한 명백한 자기노선을 가지고 정책을 펴야 하는데 오히려 옳지 못한 것을 옳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리에 연연할 필요가 뭐가 있어요. 영화계를 뭉개면서 정작 우리나라를 문화적으로 어떻게 더 발전시킬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장관직을 수락한 것은 정치적인 야욕으로밖에는 볼 수 없죠.”

야욕이라는 단어에 놀라 거듭 확인했다. 야욕이라고 생각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장관에 대한 비난보다는 현 시기 영화인들이 김명곤 문광부 장관을 바라보는 시선의 일면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