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팔민중 아시아 민주화 투쟁에 한 획
        2006년 04월 25일 10: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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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일 네팔 카트만두에서 갸넨드라 네팔 국왕의 권력 이양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기뻐하며 춤추고 있다. .ⓒAP/연합
     

    네팔의 갸넨드라 국왕이 국민들의 민주화 시위에 굴복, 4년 전 해산한 의회를 복원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이로써 19일째 계속된 네팔의 왕정반대 시위와 유혈진압 사태는 의회복원을 요구해온 네팔 국민들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갸넨드라 국왕은 24일(현지시간) 저녁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유혈진압으로 사망한 희생자에게 애도를 표하고 하원의 복원을 선언했다. 네팔 국왕은 4년 전 비상사태 연장을 거부한 하원을 해산한 데 이어 지난해 2월에는 부패와 마오주의 반군 진압 실패의 책임을 물어 내각을 해임하고 절대왕정을 펼쳐왔다.

    이날 발표에 앞서 갸넨드라 국왕은 지난 21일 반정부 시위를 벌여온 7개 정당 연합에 대해 총리를 지명하고 내각을 구성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하원의 완전한 복원과 군주의 권한을 제한하거나 아예 없애는 새 헌법 제정을 요구해온 7개 정당들은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못 미친다며 국왕의 제안을 일축하고 25일 대규모 시위를 벌이겠다고 경고했다.

    이날 국왕의 발표에 대해 반정부 시위를 벌여온 7개 정당 연합은 환영의 뜻을 나타내고 25일 승리를 축하하는 시위를 펼칠 예정이다. 24일 밤에도 카트만두를 비롯한 네팔 곳곳에서 승리를 축하하는 인파가 거리를 메웠다.

    7개 정당들은 국왕이 4월28일부터 하원 회기가 시작될 것이라고 밝힘에 따라 25일 회합을 갖고 향후 정치일정을 논의할 예정이다.

    최대규모 시위와 총파업

    네팔 역사상 최대규모의 반정부 시위와 총파업이 벌어진 이번 사태는 아시아 지역 민주화 투쟁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네팔에서는 1991년 왕정반대 시위로 입헌군주제가 도입됐지만 민주주의가 확립되지 못한 채 불안한 정세가 지속돼 왔다. 지난 2001년에는 디펜드라 왕세자가 벌인 궁정유혈사태로 의회정치를 지지하던 비헨드라 국왕이 목숨을 잃는 참극이 발생했다.

    그의 뒤를 이은 갸넨드라 국왕은 마오주의 반군 척결을 이유로 절대왕정을 복구한 뒤 철권통치를 벌이기 시작했다. 지난 3월에는 국왕이 독재를 정당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방선거를 실시했지만 네팔 정당과 유권자들의 철저한 외면으로 오히려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이후 6일부터 시작된 총파업은 의사, 변호사들까지 참여하면서 급격히 확산됐고, 적어도 1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유혈진압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요구 시위가 가라앉지 않자 국왕은 무릎을 꿇고 말았다.

    군주제 폐지 요구 계속될듯

    하지만 네팔 국왕의 의회 복원 약속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풀리지 않은 문제들이 남았다. 먼저 국왕의 권한을 제한하거나 군주제를 폐지하자는 시위대의 요구는 여전히 남아있다. 갸넨드라 국왕은 텔레비전 연설에서 제헌의회를 소집해 새 헌법을 만들고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반정부 시위대의 요구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시위대의 요구가 의회복원에서 점차 군주제 폐지로 확대된 이번 시위의 양상을 놓고 봤을 때 국왕의 역할을 상징적인 의미로 제한하거나 아예 군주제를 없애는 새 헌법 제정투쟁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한편 지난 1996년부터 중앙정치무대에서 사라진 채 무장투쟁을 통해 지역을 장악해온 마오주의공산당 진영이 어떻게 나올지도 미지수다. 마오주의 반군은 이날 국왕의 의회복원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국왕의 항복선언으로 인해 왕정타도를 위해 무장투쟁을 벌인 마오주의 진영이 무장을 해제하고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9월 마오주의 반군은 정부에 대해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언한 데 이어 이번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7개 정당 연합과 연대하면서 무장해제를 약속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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