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민주항쟁,
    그 서막을 연 도심의 성소
    [한국교회]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2018년 06월 12일 11: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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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사에 남는 걸작들은 언제나 한 시대의 빛나는 정신으로 충만해 있다” (『건축, 사유의 기호』, p.23)

    건축철학 ‘빈자의 미학’에 기초하여 작업을 하는 승효상 장로의 책에 있는 글입니다. 그런데 건축물은 시대를 넘어 계속 존재한다는 점에서 오늘의 시대정신을 담고 있으면 더욱 빛나는 걸작이 된다는 사실을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격조 높은 석조 예배당에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을 연 1987년 6.10 민주항쟁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운치있는 한옥 사제관과 서울시 등록문화재인 양이재 주교관 사이에 6월 민주항쟁 십년을 기념하여 세운 “유월 민주항쟁 진원지” 기념석이 있습니다. “6월 민주항쟁이 이 자리에서 시작되어 마침내 민주화의 역사를 열다.” 걸작답게 고난에 찬 한국 근현대사와 동행하며 예언자적인 사명을 다한 자랑스런 표지입니다.

    1987년 1월에 일어난 박종철 물고문치사 사건에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고 대통령 직선제 개헌논의가 활발해지자, 정권 유지에 불안해진 전두환은 개헌 논의를 전면 금지하는 4.13 호헌조치를 단행하며 공포정치로 몰아갔습니다. 이에 적극적으로 대항하기 위하여 결성하여 6월 민주항쟁을 주도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는 개신교계가 앞장섰습니다. 5월 27일 경찰의 감시를 피해 향린교회에서 150여명의 민주인사들이 발기인대회를 열었고, 6월 9일 이한열 연세대생이 경찰의 최류탄에 희생되면서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은 고조되었습니다.

    6.10 1차 국민대회는 극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오후 5시 김성수 주교(현 강화도 ‘우리 마을’<지적장애인 직업재활공동체>의 촌장)의 집례로 성당에 사흘 전에 미리 들어온 이들이 ‘4.13 호헌철폐를 위한 미사’를 드린 후, 저녁 6시 성당 종탑에서는 분단 42년을 끝장내자는 의미의 42번 종이 울렸습니다. 이에 맞춰 주변의 차량들이 경적을 울리며 시민항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성공회의 너른 품이 우리나라 역사의 새 장을 열었으니, 87년 6월 민주항쟁은 군사독재를 종식시켜 민주주의의 발전뿐만 아니라 시민운동이 비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국민운동본부가 직선제 개헌 성사만을 위해 8월 이후에 전개된 노동자들의 대투쟁을 외면함으로 사회민주화운동으로 나아가지 못하였고, 이후 야당 대통령 후보 단일화문제를 두고 양김의 대립하여 6월 항쟁은 퇴색하고 말았습니다.

    복잡한 서울 한복판인데도 이렇게 고요할 수 있을까요? 서울시 문화유산의 예배당이 주는 천상의 선물입니다. 우리나라의 유수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으로, 화강암으로 된 외벽은 질박하면서도 무게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림=이근복

    성당에 들어가니 성당의 내부가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 두 사도를 상징하는 화강암 열두 기둥이 받치고 있는 높다란 천장에는 검은색 나무 서까래가 있습니다. 거기에다 지붕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아치형으로 만들어진 천정이 참 우아합니다. 기둥 좌우의 벽면의 창문의 아래쪽은 한국전통 오방색을 바탕으로 한 스탠드글라스로 되어 있고, 위쪽 창문은 한옥의 문살 모양입니다. 1927년부터 10여 년 동안 작업한 성당의 정면 중앙의 황금색의 모자이크 제단화는 화려하면서도 품위가 있습니다. 제단 양쪽 십자가의 날개에 해당되는 공간에도 의자와 제단이 자리 잡았고, 2층에는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주일예배에 참석하니 파이프의 음이 예배당 공간과 어우러져 깊고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성공회는 가톨릭, 러시아 정교회에 이어 세계적으로 세 번째 교세를 가진 프로테스탄트교회이지만 낯설게 느끼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나이요 거룩하고(聖) 공번되고(公, 보편적), 사도적인 교회’라는 교회에 대한 신앙고백에서 나온 명칭으로, 보통 영국의 헨리 8세의 결혼문제에서 유래되었다고 말하지만 로마교황권에서 독립하고자 하는 민족국가를 향한 열성과 종교개혁의 전통에서 탄생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성공회는 1890년 고요한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존 코프 주교가 제물포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조선종고성교회(朝鮮宗古聖敎會) (나중에 ‘대한성공회’로 개칭)는 처음에 한옥을 구입하여 장림성당이라고 이름하고 주일감사성찬례를 드리다가 1922년 현재의 위치에 성당을 짓습니다. 제3대 주교 마크 트롤로프(한국 이름 조마가)가 영국왕립건축협회 회원인 아서 딕슨이 완성한 설계도와 모형을 토대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하였는데 지붕에 기와를 올리는 등 한옥의 전통 건축양식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1919년 3.1 혁명의 실패로 실의에 빠진 한국 민중들에게 신앙으로 위로를 주고자 서울 중심에 십자가 형태로 설계된 성당은 1926년에 건축되지만, 공사비 부족으로 인해 설계도면대로 완성하지는 못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1993년, 우연히 영국의 어느 도서관에서 첫 설계도를 발견하여 1996년에 성당을 완공합니다.

    성당 왼쪽에는 6.25 당시 순교한 윤달용 주임사제 등 여섯 분을 추모하는 조형물과 추모비가 있고, 사제관 뒤의 성가수녀원이 대한성공회의 영성을 고양하고 있습니다. 지하 세례자요한성당에는 성당을 건립한 조마가 주교의 유해가 아름다운 동판 아래 모셔져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크리스챤아카데미가 인문학을 토대로 목회자들과 신학생, 평신도를 위한 배움터를 운영하는데, 서울주교좌성당에서 2008년에 시작한 인문학모임이 모델이 되었습니다. 독서대학 ‘르네21’은 대중적 문화공간으로 미술, 클래식, 역사, 동양철학, 서양철학 분야의 책을 매개로 저자와 독자의 소통하는 인문학강좌를 열었는데, 지금은 맥이 끊어져 아쉽습니다.

    “도심의 쉼터, 시대의 성소,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얼마 전 그림을 마무리하기 위해 방문하고 주성식 주임사제를 만나러 갔다가 성당 출입구에서 본 글귀입니다. 누구든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여기 도심의 역사적 성소에 잠시 머물 수 있기에, 그 자체로 서울주교좌성당은 우리 시대의 빛나는 걸작입니다.

    필자소개
    이근복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 전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을 맡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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