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러나는 재판거래 의혹,
    변호사 2015명 시국선언
    “전국 판사회의 개최 32곳 중 25곳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추궁 요구”
        2018년 06월 11일 05:3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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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 문건들이 법원행정처에서 작성된 직후에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의 핵심 측근인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기조실장과 박근혜 정부 실세인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청와대에서 비밀 회동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에 힘이 실리고 있다.

    11일자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재판거래’ 관련 문건 생산을 진두지휘했던 임종헌 전 실장과 우병우 전 수석의 만남은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건을 13대 0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파기 환송하고 보름이 지난 시점인 2015년 7월 31일에 이뤄졌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기 1주일 전이며, 이후 임 전 실장은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승진했다.

    임 전 실장은 대법원 특별조사단에 “우병우 민정수석은 카운터파트를 법원행정처장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나와는 통화한 적이 없다”고 진술한 바 있다. 특별조사단은 임 전 실장의 이런 진술을 근거로 양승태 대법원이 청와대와 재판거래를 하지 않았다고 결론을 냈었다. 그러나 <경향>의 취재 결과, 임 전 실장이 2015년 7월 31일 청와대에 들어가 우 전 수석을 만난 사실이 확인되면서 ‘재판 거래’가 실제로 이뤄졌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게 됐다.

    두 사람이 만난 시점은 대법원과 청와대의 재판거래 정황으로 꼽히는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 등 문건들이 집중적으로 생산되던 때다. 두 사람 회동 1주일 뒤인 8월 6일에는 양 전 대법원장이 대법관 제청을 위해 박 전 대통령과 만났다. <경향>은 “이 자리에서 양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을 요청하면서 그동안의 판결을 박 전 대통령에게 제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법원행정처 간부와 청와대 민정수석의 회동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한다. 행정처 전직 최고위 관계자는 “차장이나 기조실장이 청와대 수석을 만나는 일 자체가 없고 전화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법조계 관계자들 역시 “두 사람이 특별한 내용을 가지고 만났을 가능성이 높고, 내용은 양 전 대법원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 아니겠냐”고 말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실제로 당시 작성된 법원행정처 문건에는 “실세 보좌진인 민정수석을 제쳐 둔 채 상고법원 관련 설득·타협 전략 구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 → 획기적인 설득 카드로 민정수석을 돌파하는 정공법 필요”라고 적시돼있다.

    전국 변호사 2천여명 시국선언
    “미공개 문건 전면 공개…책임자 형사 처벌하라”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거래’ 등 사법권 남용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전국 변호사 2천여 명은 양승태 대법원에 대한 검찰 수사와 책임자 형사처벌, 징계, 탄핵 등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에 나섰다.

    서울, 경기북부, 경기중앙, 충북, 전북, 인천, 대전, 부산, 광주 등 9개 지방변호사회를 주축으로 한 변호사 2015명은 11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전국변호사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변호사들은 시국선언문을 통해 “대법원이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스스로 법관과 재판의 독립을 무너뜨리고 국민의 사법 신뢰를 저버린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며 “관련성 유무나 공개의 적절성 여부에 대한 자의적 판단을 배제하고, 사법행정권의 남용과 관련된 미공개 문건을 전면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각 문건의 작성자와 작성경위, 해당 문건이 어떤 경로를 통해 어느 선까지 보고되었는지, 보고 후 최종 실행 여부 등에 대해 성역 없이 철저하게 조사하고, 책임이 있는 자에 대해서는 반드시 형사처벌, 징계, 탄핵 등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서 “대법원 및 사법행정의 개혁 등을 통해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변호사들은 “공정하게 헌법과 법률에 따라 처리해야 할 사건의 재판결과를 청와대에 대한 설득과 협상의 수단으로 활용하려고 기도하고, 지도부와 다른 의견을 가졌다는 이유로 법관들의 연구모임을 와해시키려 하거나, 판사들에 대한 사찰로 볼만한 활동을 했음이 대법원 문건을 통해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는 단순한 사법행정권의 남용을 넘어 조직적인 사법농단이라는 비난도 과하지 않을 정도”라며 “어떠한 권력으로부터도 독립되어 공정하게 재판을 수행한다는 숭고한 사법권의 독립을 사법부 스스로 훼손하고 무너뜨렸다”고 질타했다.

    변호사들은 이날 시국선언을 마치고 대법원까지 “검찰은 즉각 수사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가두행진을 벌이고,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회원들의 연명이 담긴 시국선언문 등을 전달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회의, 법원장 35명 잇따라 검찰 수사 거부
    현직 판사 반박 “집단 내 다양한 의견일 뿐…전체 판사 의견 대표하지 않아”
    판사회의 32곳 중 25곳이 진실규명·책임추궁 요구

    법원 안팎으로 양승태 대법원에 대한 검찰 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지지만, 법원 일각에선 여전히 검찰 수사를 거부하는 기류가 남아있다. 앞서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회의는 5일 사법행정권 남용과 ‘재판 거래’ 의혹 사태에 대한 검찰 수사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냈고, 원로 격인 전국 법원의 법원장 35명 또한 사법부의 고발조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사법부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검찰 수사의 필요성을 촉구하는 것이 법원 내부의 주된 기류라고 한다. 전국 법원장이나 서울고법 부장판사회의 등의 의견은 집단 내 다양한 의견 중 하나일 뿐 주류는 아니라는 뜻이다.

    임수희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부장판사는 11일 오전 MBC 라디오 ‘이범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지난 6월 1일부터 8일까지 전국 각급 법원 32곳에서 판사회의에서 개최한 결과 25곳에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추궁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임수희 부장판사는 “(법원 32곳에서) 의결한 공통된 내용은 ‘이 사태에 대해서 유감과 책임을 통감한다’, ‘실효적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이다”라며 “진상규명과 책임 추궁 관련해서 ‘법이 정하는 엄중한 진상규명과 책임 추궁이 돼야 된다’라는 포괄적 표현으로 의결한 곳이 7곳, 좀 더 구체적으로 ‘수사 필요성이 있다’ 또는 ‘책임추궁이 배제돼선 안 된다’, 더 나아가서 ‘사법적 고발 내지 수사의뢰와 촉구까지 해야 된다’가 각각 9곳이다. 합치면 25곳으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추궁 의견”이라고 전했다.

    검찰 수사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낸 서울고법 부장판사회의에 대해선 “그런 의견은 거기 하나 뿐이다. 어느 집단이나 있을 수 있는 비율 정도의 의견”이라고 일축했다.

    또한 “법원조직법과 판사회의 규칙 상에 모든 판사회의는 위계서열이 있지 않고 동등하다. 서울고등 부장판사회의라고 해서 다른 판사회의보다 더 높지 않다”고 덧붙였다.

    임 부장판사는 “판사 수가 2500명이 넘는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회의 숫자는 40여명 정도”라며 “40여명 밖에 안 되는 분들의 의견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마치 판사들이 갈라서거나 제동이 걸린다거나 하는 식의 보도들이 나온다”고 짚었다. 소수 의견을 법원 내 주류 견해인 것처럼 보도하는 언론에 대한 비판이다.

    그는 지난 7일 법원장 간담회에 대해서도 “법원장들 자신의 의견을 나눈 것에 불과하다”며 “법원장이 관내 판사들 의견을 대표할 권한이나 지위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법원장 간담회는 근거를 제대로 갖추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올해 3월에 제정한 전국법원장회의 규칙에 따라 정식으로 안건상정이나 회의록 작성한 게 아니고 관행적으로 해오던 간담회 수준”이라며 “큰 의미나 영향력 같은 것이 (일선) 판사들한테 그리고 국민들한테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임 부장판사는 거듭 “향후 재판에 영향을 미칠 것이 우려된다는 우려도 있지만 대부분 판사들은 그 우려보다는 ‘여기서 멈추고 수사로 나가지 않을 때 실추된 사법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이고 어떻게 해명할 것이냐’, ‘법원이 더 큰 위기에 처할 우려가 있다’는 그 우려가 더 크다”며 강조했다.

    “그들에겐 삶 전체인데 거래대상으로 전락…굉장히 참담”

    아울러 임 부장판사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KTX 승무원 해고·전교조 법외노조·쌍용차 정리해고 사건 등을 언급하며 “굉장히 비참하다. 오죽하면 판사회의 의결문 여러 곳에서 ‘참담하다’, ‘통탄한다’는 표현이 나오겠나. 모든 문건이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떤 사건이 중하고 어떤 사건이 가볍다고 말할 수 없다”며 “그 하나하나가 그분들한테는 자기 삶의 전체인데 거래 대상으로 언급되는 것 자체가 매우 심각한 위헌적인 상황이다. 굉장히 참담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미정상회담, 지방선거, 월드컵에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권 남용 의혹이) 묻히지 않을까 걱정이 많이 된다”며 “이 문제는 판사들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모두의 문제라는 점을 잊지 말아 달라”고 덧붙였다.

    한편 전국법관대표회의 소속 115명의 대표판사들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경기 고양 사법연수원에서 임시회를 열고 양승태 사법부 시절의 재판거래 의혹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 결론은 오후 8시경이나 돼야 나올 것으로 알려졌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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