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으로 상경한
    강정·밀양 주민들의 분노
    “한전 불법은 다 눈 감고, 할매들은 다 죄인 됐다···이건 나라가 아니다”
        2018년 06월 08일 03: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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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에 끌려가고 검찰에서 기소 당하면서도 이렇게 생각했다. ‘최후의 보루인 대법원은 공정하겠지, 판사님은 공정하겠지’. 그런데 한전의 모든 불법은 눈감아주고 힘없는 할매들은 다 죄인이 됐다. 그 일들이 모두 사법부와 박근혜 정권의 거래에 의해 이뤄졌다는 사실에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다. 이건 나라가 아니다”

    경남 밀양 단장면 용회마을 주민인 구미현 씨(69세)는 밀양 송전탑 건설을 허용한 판결이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였다는 사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구 씨는 “(사법부가 정권과 밀양 재판을 거래했다는)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우리가 거대권력에 당했던 그때의 일이 생각이 나서 너무 많이 북받친다. 그 억울함을 생각하면 정말, 너무 마음이 찢어질 듯하다”며 “정말 한 점 의혹 없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서 밀양 주민을 비롯해 곳곳에 힘없는 사람들의 피눈물을 닦아 달라”고 말했다.

    지난 5월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공개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문건 98건 중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라는 제목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왔다”고 명시하고 있다. 사법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한 ‘최대한 노력한 사례’ 중엔 밀양 송전탑 건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관련 판결이 포함돼있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주민회,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밀양대책위) 등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동문 앞에서 강정·밀양 공동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건의 진상을 끝까지 밝힐 것”이라며 양승태 대법원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관련자 처벌을 촉구했다. 또한 정권과 사법부의 거래로 주민들이 패소한 제주 해군기지, 밀양 송전탑 건설 관련 판결을 전면 재조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 문건에 언급된 판결들은 정부가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밀양 송전탑 건설을 강행하는 데 근거가 됐던 주요한 판결들이었다.

    밀양, 강정주민들의 대법원 앞 기자회견(사진=유하라)

    밀양 주민들, 양승태 등 고발장 접수
    ‘재판 거래’된 사건에 대한 재심 청구 예정
    “특검으로 이 사건의 진실 규명해야”

    이 문건을 보면 정부에 대한 ‘협력 사례’로 “송전선로 공사는 공익사업이고 주민들이 공사를 방해할 경우 변전소의 과부하와 전력수급에 차질이 발생한다”는 지난 2013년 10월 9일자 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의 결정문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판결이 “고압송전선 및 송전탑 위치 문제를 두고 밀양 주민과 한국전력 사이에 대립과 농성이 이어지면서 사회적 갈등으로 확산되던 상황→한전의 주민들에 대한 공사 방해 금지 가처분 인용 결정, 주민들의 공사중지 가처분 기각결정으로 갈등의 확산 방지와 분쟁 종식에 기여했다”고 적시했다.

    밀양대책위는 이 문건에서 인용하고 있는 2건의 사건판결과 관련해 “한전이 반대 주민들에게 제기한 공사방해금지 가처분은 40여일 만에 전격 인용했지만, 환경영향평가법 위반, 헬기 소음 기준치 위반 등 한전의 명백한 불법 사유로 제기한 주민들의 공사중지 가처분은 공사가 대부분 진행되도록 방치한 후 무려 7개월 만에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기각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계삼 밀양대책위 사무국장은 “법원이 어디 붙어있는지도 몰랐던 69명의 주민들이 수백 번씩 경찰과 검찰, 법원으로 불려 다녔던 이 밀양 송전탑 건설 사건이 박근혜 정부의 국정 협력사례로 자랑스럽게 기재돼있는 것을 알고 주민들이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며 “검찰이든 특검이든 철저한 수사를 통해 헌법 유린 사건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밀양 상동면 여수마을 주민인 김영자 씨(63세)는 “밀양 싸움은 산으로 가야 하는 송전탑 노선이 마을로 내려오면서 시작됐다. 마을을 두 동강 내고 마을 중간에 송전탑 세워놓으면서 어떻게 살 수 있냐고, 내 생명 지켜보겠다고 길거리에 나왔는데 잡아가더라”며 “그런데 대법원에서까지 이런 장난을 칠 줄은 몰랐다. 특검으로 라도 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 달라”고 말했다.

    밀양 주민들은 이날 회견 직후 중앙지검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했다. 또한 대법원이 박근혜 정부와 거래한 사건에 대해선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다.

    원심 뒤집은 대법원 판결로 군사기지 건설 합리화
    강정마을 주민들 “양승태 대법원 수사하라”

    “부당한 정부의 해군기지 불법 소송을 하다보니 벌써 팔순을 넘겼다. 인심 좋고 평화로웠던 강정마을이 국가권력에 의해서, 국가의 폭력에 의해서 무참히 공동체를 파괴당하고 짓밟혔다.”

    이날 대법원 앞에 선 강정마을 주민인 윤성효 씨는 “강정마을에 대한 국가폭력으로 강정 주민들 사이에 쌓인 갈등이 10년 째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그런데 그 모든 일이 사법부의 농단에 의한 것이라는 보도를 접하고 나선 가슴이 떨리고 치가 떨렸다”고 말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관련 판결은 2012년 7월 대법원이 강정마을 주민들이 일부 승소했던 1, 2심 판결을 뒤집고 ‘국방·군사시설 사업 실시계획 승인처분 무효확인’ 소송을 파기 환송한 판결이다. 양승태 대법원이 작성한 문건에는 이 판결과 관련해 “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정부의 국방·군사시설 사업 실시 계획 승인 처분이 법률적으로 유효함을 선언”했다고 적시했다.

    당시 대법원이 원심을 뒤집은 이 판결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 문제의 향방을 가르는 중요한 판결이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주민회 등은 “양승태 대법원이 강정마을 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판결을 상고 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협력 사례’로 자화자찬하고, ‘거래’의 수단으로 여겼다는 사실에 참담한 분노를 느낀다”고 규탄했다.

    강동균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주민회 회장은 “불법, 편법으로 점철된 해군기지 공사를 막아내기 위해 싸웠던 680명의 선량한 주민들은 범법자가 됐다”며 “정의사회 구현을 해야 할 대법원까지 정권과의 거래를 통해 국민들을 내팽개친 것”이라고 비판했다. 강 회장은 “정부와 사법부는 국민을 위협했던 모든 사태에 대해 무릎 꿇고 사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회 등도 “대법원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포함한 관련자를 고발 또는 수사 의뢰 조치하고, 검찰 수사에 필요한 모든 사항을 협조하라”며 “사법 행정권 남용 의혹이 있는 문건도 모두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강정마을 주민들 역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에 대한 고발에 나설 예정이다.

    이처럼 피해 당사자들의 형사고발이 잇따르고 있지만, 전국 법원의 법원장들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박근혜 정권과 ‘재판 거래’를 시도한 의혹과 관련해 전날인 7일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며 ”사법부가 고발 등의 조치를 취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국 법원의 법원장 35명은 이날 ‘전국 법원장 간담회’를 열고 이번 사태에 대해 논의한 결과 “조사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인다”, “사법행정권 남용 행위가 법관의 독립과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점에 그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고발 조치엔 반대해, ‘제 식구 감싸기’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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