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배 무관심한 자본주의 뒤엎는 게 사회주의"
        2006년 04월 24일 04: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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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률적으로나 실용적으로 가장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사회주의란, 사유재산을 공공재산으로 전환시키고 이로써 얻게 되는 공공 수입을 모든 주민에게 차별 없이 평등하게 분배함으로써 사유재산제를 완전히 철폐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유재산 즉 ‘물적’ 재산은 최대한 축적하되 수입의 분배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는 자본주의를 뒤엎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완전한 도덕적 전환을 수반한다."

    아일랜드 태생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는 <사회주의: 원칙과 전망>이라는 제목의 소논문에서 "사회주의에서 사유재산은 저주의 대상이며 수입의 평등한 분배가 최우선적으로 고려된다. 반면 자본주의에서는 사유재산이 으뜸이며, 어떤 사회적 부작용이 따르든 분배 문제는 사유재산에 근거한 자유 계약과 사적 이익의 작용에 맡겨진다"고 설명했다.

    페이비언 사회주의 이론가

       
     
    ▲ 1923년 타임지 표지에 나온 죠지 버나드 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극작가로만 알려진 버나드 쇼는 작품활동뿐 아니라 논문과 개설서, 팜플렛 등을 통해 사회주의의 이상과 가치를 알리는 선동가였으며 영국 노동자계급의 정당을 결성하는 데 큰 공헌을 한 사회주의자였다.

    조지 버나드 쇼는 1856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옥수수 상인이었던 부친 조지 카 쇼와 루신다 엘리자베스 걸리 쇼 사이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더블린에서 학교를 다니다 부동산 사무소에서 일하던 그는 스무살이 되던 1876년 런던으로 이사갔다.

    대학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던 그는 대영박물관에서 책을 읽거나 당시 런던사회 중류계급 지식인들의 논쟁을 접하며 스스로 지식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19세기 말 유럽사회에서 널리 퍼지기 시작한 사회주의 사상을 자연스럽게 접하기 시작했다.

    사회주의그룹 활동

    쇼는 이 시절 틈틈이 소설을 쓰기도 했지만 20대 청년시절 그가 발표했던 소설들은 모두 출판사의 외면을 받았다. 그러던 와중에 쇼는 사회민주연맹 등 당시 속속들이 출현했던 사회주의그룹에 속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특히 1884년에 가입한 페이비언 협회(Fabian Society)는 그의 남은 인생을 규정할 만큼 의미가 컸던 조직이었다. 그는 페이비언 협회 가담과 함께 이 협회의 중심인물이 됐다.

    노동조합 및 노동운동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베아트리스·시드니 웹 부부가 함께했던 온건 좌파 조직인 페이비언 협회는 의회를 통한 점진적인 사회개혁을 추진하려는 사회주의 조직으로 나중에 영국노동당 건설의 일주체가 된다.

    시드니 웹의 표현에 따르면 이 협회는 혁명이 아닌 지적·정치적 생활의 ‘침투’를 통한 영국 사회의 변화를 목표로 했다. 버나드 쇼는 이 협회 일을 하면서 <페이비언 선언>, <진정한 급진 프로그램> 등 사회주의 저작을 발간하고 1889년에는 영국 사회주의의 고전이 된 <사회주의에 대한 페이비언적 연구 Fabian Essays in Socialism>를 편집하는 등 페이비언 사상의 형성에 많은 기여를 했다. 이 책은 최근 고세훈 고려대 교수의 번역으로 <페이비언 사회주의>(아카넷)라는 이름으로 출간됐다.

       
     
    ▲ 1889년에 발간된 <페이비언 사회주의>의 표지.
     

    페이비언주의는 사회주의가 민주주의와 전문엘리트를 도구로 삼아 성취될 수 있다는 확신에 근거해 있다. 쇼는 페이비언 사회주의에 대해 이렇게 규정했다.

    “페이비언협회가 주창하는 사회주의는 전적으로 국가사회주의이다.…영국은 현재 정교한 민주적 국가기구를 가지고 있다.…우리에게는 대륙의 군주제 국가들에서 볼 수 있는 국가와 인민 간의 대립이라는 장애물은 없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처럼 국가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 간의 구분은…영국에서는 의미가 없다.”

    노동자 정당 결성 활동

    당시 영국은 산업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됐던 만큼 노동계급의 형성도 빨랐으며 이에 따라 조직된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를 향한 모색이 조금씩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페이비언 협회의 대표적인 활동가였던 조지 버나드 쇼는 영국 노동조합과 정치그룹을 오가며 노동자 정당 결성을 위한 활동을 펼치게 된다.

    1893년에 쇼는 영국노동당의 전신인 독립노동당 결성으로 이어진 브래드포드 회의에 페이비언 협회를 대표해서 참석했다. 당시 영국 노조운동 안에서는 독자적인 정당의 결성보다는 자유당을 통한 정치적 영향력 행사를 원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쇼는 1896년 영국의 노동조합평의회(TUC)에 노조운동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 정당의 결성을 제안하는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후 쇼는 노조평의회에서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최선의 방안을 마련하는 일을 맡기도 했다.

    그의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영국의 노동조합운동진영은 독립노동당, 페이비언협회, 사회민주연맹 등 정치조직과 함께 1900년 노동대표위원회(LRC)를 결성했다. 1900년 결성 첫해 선거에서 초대 당수인 탄광노동자 케어 하디를 당선시킨 노동대표위원회는 1906년 29석을 확보하면서 이름을 현재의 노동당으로 바꿨다.

    작품 속에서도 사회주의 암시

    이 무렵 그는 페이비언 협회 활동과 함께 서평, 미술평론, 음악평론, 연극평론 등 왕성한 글을 쓰기 시작하며 문필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또 비평과 함께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극작가로서의 명성도 얻기 시작했다.

    쇼의 초기작품 가운데는 〈홀아비의 집 Widowers’ Houses>, 〈워렌 부인의 직업 Mrs. Warren’s Profession〉, 〈유쾌한 극과 유쾌하지 않은 극 Plays Pleasant and Unpleasant〉등 ‘돈’이라는 경제적 요인으로 인한 당시 영국의 사회문제를 풍자하는 희곡들이 대부분이다.

    한 예로 <홀아비의 집>은 사랑에 빠진 선량한 영국 젊은이가 미래의 장인의 재산과 자신의 수입이 가난한 이들을 착취한 결과임을 깨닫는다는 줄거리다.

    <인간과 초인 Man and Superman>등 1900년대 초에 그가 쓴 희곡들은 가난과 여성의 권리 등을 다루면서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문제를 사회주의로 해결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1차대전시 반전평화운동 전개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쇼의 인생에 있어 하나의 전기를 마련했다. 쇼는 다른 저명한 사회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철저한 반전평화주의자가 됐다. 그는 작품활동을 중단하고 ‘애국심’이라는 미명하에 젊은 생명을 앗아가는 전쟁에 반대하는 선동문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독일은 물론 조국인 영국의 제국주의적 침략도 범죄행위로 규정한 그는 평화와 협상을 주장했고 일부 우익세력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의 이같은 반전평화운동은 1920년 무대에 올려진 <상심의 집 Heartbreak House>에서 극화되기도 했다. 쇼는 이 작품을 통해 전쟁 발발 직전의 한 시골집을 배경으로 전쟁의 유혈에 책임져야 할 세대의 정신적 파탄을 폭로했다.

    잔 다르크의 이야기를 다룬 <성녀 조앤>은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고 1925년 버나드 쇼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쇼는 이후에도 <여성을 위한 사회주의 안내> 등 사회주의의 이념을 쉽게 설명하는 팜플렛과 정치선동문을 작성하는 한편 사회적인 이슈에 대한 저서를 발간하며 1950년 11월 2일 숨을 거두기까지 사회주의에서 멀어지지 않고 한 평생 영국 사회민주주의운동에 속해 있었다.

    그의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은 다음과 같은 서술에서 잘 드러나 있다.

    "사회주의가 대중과 지식인의 신뢰를 쌓아 온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자본주의는 대중적 신뢰를 상실해 왔다. 그 결과 20세기 첫 4반세기 말 현재 유럽 정치 상황은 혼란스럽고 위험하다. 안정된 사회주의 국가의 실현은 사유재산―이를 개인 재산과 혼동해서는 안된다―의 철폐와 소득의 평등이라는 두 가지 주요 신조가 종교적 도그마처럼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게 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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