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계조작이다 vs 명예훼손이다
        2006년 04월 24일 04: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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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FTA를 연구하는 국회의원 모임(대표 권영길 김태홍 김효석 의원)은 24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한미FTA 대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는 김종훈 한미FTA 협상 수석대표의 경과보고, 이경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과 이해영 한신대 교수의 기조발제, 그리고 고진화 의원, 권영길 의원, 채수찬 의원,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등의 지정토론 순서로 진행됐다.

    한미FTA에 대한 여론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이날 토론회는 의원회관 대회의실을 청중들이 가득 채운 가운데 진행됐다. 한미FTA를 반대하는 시민단체 등에서 참관한 청중 가운데 일부는 정부측 토론자들의 발언과 주최측의 토론 진행 방식에 대해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다. 오늘 토론회의 주요 내용을 쟁점별로 요약한다.

    ‘4대 현안 선결 보장’ 약속했나

       
     
    ▲’한미FTA를 연구하는 국회의원 모임’이 24일 주최한 ‘한미FTA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김종훈 한미FTA 협상 수석대표의 경과보고를 듣고 있다. ⓒ정제혁 기자
     

    토론 참석자들은 우리 정부가 미국에 스크린쿼터, 쇠고기수입, 의약, 자동차 등 4개 부문의 선결과제를 약속한 의혹이 있는 것과 관련해 집중적인 비판을 가했다.

    우리 정부의 4대 선결조건 약속과 관련된 내용이 명시되어 있는 미 의회의 문서를 입수, 언론에 공개한 이해영 교수는 "미 의회가 미국 행정부에 보낸 공문의 두번째 문단에는 미 연방 의원들이 농업, 자동차. 영화, 제약업체의 관심사항에 대해 경청하였고 여기에 대해 공감했다. 한미 FTA로 가기 위해서는 한국이 이런 이슈들을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한국의 통상장관은 방미하여 적절한 시점에 관심사들이 해결될 것이라고 우리에게 보장했다"고 명시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 문서는 미 의회 의원들의 공식 문서"라며 "우리가 주도한 협정이라는 둥 정부가 불필요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몰아붙였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한 국회 차원의 진상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영길 의원도 "4대 선결조건에 대해 외통부장관, 통상본부장 등 정부는 일반적인 통상과제였다고 말했다"며 "위증한 것이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권 의원은 이에 대한 국회의 국정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태인 전 비서관도 "미국은 처음 8개의 선결조건을 제시했고, 이후 4개로 줄어드는 과정이 외교부가 말하는 성과"라며 "정부가 미국측 요구에 따라 선결조건을 들어준 것인가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1차에서 6차까지의 대외경제위원회의 관련 문건만 공개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정 전 비서관은 "관련 내용 가운데 비밀로 할 것이 있다면 통외통위나 재경위 위원들에게만 공개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종훈 수석대표는 스크린쿼터를 제외한 나머지 3개 분야는 FTA와는 무관하게 이뤄진 통상 과제였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김 수석대표는 "쇠고기를 다 풀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며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수입 금지 조치를 해제한 것은 30개월 미만의 소를 도축한 것과 뼈가 없는 부위는 광우병 위험이 없다는 국제 수역기구의 기준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약가 문제와 관련해서도 "담당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이에 대해 검토하고 있는 단계로 아직 확정된 것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정태인 전 비서관은 "정부가 4대 선결조건을 보장했다는 문서가 확인된다면 책임을 질 것인가"고 물었고, 이에 대해 김 수석대표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통계 조작 의혹"

    정태인 전 비서관은 KIEP에 의한 통계조작 의혹을 또 다시 제기했다. 정 전 비서관은 "KIEP의 통계조작이 권영길 의원과 말지에 의해 다 밝혀졌는데도 오늘 이경태 원장은 조작된 통계를 자료에 실었다"며 "황우석 스캔들의 재판"이라고 말했다.

    정 전 비서관은 "이 정도면 학자로서의 양심을 저버린 것"이라고 비판하고 "KIEP 연구원들이 일부러 이런 거짓말을 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통계 조작에 정부의 압력이 작용했을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정 전 비서관은 "이것 역시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데이터 검증을 하면 된다"면서 "계량경제학회가 KIEP의 방법론과 기초 데이터를 받아 검증하면 될 것"이라고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했다.

    이에 대해 이경태 원장은 "민주노동당과 함께 데이터를 검증하기로 이미 약속된 상태"라고 밝히고 "데이터 검증 결과 문제가 없는 것으로 드러날 경우 정 전 비사관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사기’, ‘조작’, ‘왜곡’ 등의 표현을 써서 KIEP의 명예를 훼손한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전 비서관은 "KIEP가 제시한 두 개의 연립방정식이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응수했다.

    정부의 비민주적 협상 추진 절차

    토론 참석자들은 정부의 비민주적 협상 추진 방식을 집중적으로 문제삼았다.

    권영길 의원은 "정부는 자유무역 협상 체결에 관한 절차라는 대통령 훈령을 완벽하게 무시한 채 협상을 추진했다"며 "이것이 무시되었다면 이후에 결정되는 어떤 것도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권 의원은 "대통령 훈령에 따르면 공청회를 미리 진행하고 그 결과를 통상추진위원장이 대외경제장관회의에 보고하면 그 보고에 바탕해서 추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며 그러나 "공청회와 대외경제장관회의, 그리고 한미 양국의 FTA 협상 개시 선언이 같은 날 이뤄졌다"고 말했다.

    "공청회 결과 보고서를 작성, 보고해야 할 통상본부장이 그 시간에 워싱턴에서 협상 개시를 선언했다"는 얘기다. 권 의원은 "외교부조차도 공청회가 ‘중단’ ‘무산’ 되었다고 표현했다"며 "이런 식의 절차 규정이라면 있으나 마나 한 것"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고진화 의원은 자신은 적극적 개방론자라고 규정하고, 그러나 한미FTA와 관련해 문제가 되는 것은 "개방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라 준비된 개방인가 졸속 개방인가 하는 문제"라고 진단했다.

    고 의원은 지난달 참석한 한 소프트웨어 관련 단체와의 FTA 토론회 경험을 말했다. "업계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소프트웨어산업협회가 한미FTA에 대한 어떤 대응논리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을 뿐더러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입장이 갈려 단일한 입장 정리도 어려운 상태였다는 것이다.

    고 의원은 이런 사례가 한미FTA에 대한 우리측 준비정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지적하고 특히 "6월에 협상을 시작한다면서 2개월전인 4월 7-8일 협상준비팀을 꾸려 첫 모임을 갖는다는 것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최소한 1년 전에는 각 단위별 논의가 진행되고 의견수렴이 이뤄졌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고 의원은 "의견을 조정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상태에서 의견수렴을 해야 의견수렴이라고 할 수 있지, 그것을 거쳤다는 형식적 절차만 거쳐서는 제대로 된 의견수렴을 했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토론자들은 한미FTA의 현재 같은 일방통행을 막기 위해서는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고진화 의원은 "현재 정부의 일방독주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통상절차법의 조속한 통과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또 "국회의원 한 사람이 한미FTA의 모든 분야를 다룰 수는 없다"며 "각 분야별 연구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려면 국회 차원에서도 학계, 시민단체와 연계된 전문적인 대책 기구를 꾸려야한다"고 지적했다.

    정태인 전 비서관도 "각 정당 의원, 국책연구원, 민간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초당적인 FTA 연구 모임을 국회 내에 만들어야 한다"며 "우리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해서는 안되는 것이 무엇인지 국회가 수렴해서 전달하는 것이 FTA가 제대로 가게 하는 첩경"이라고 말했다. 정 전 비서관은 "현재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은 국회밖에 없다"며 "한미FTA가 졸속 추진되면 참여정부와 함께 17대 국회 역시 역사의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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