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생 200년, 2018년에
    다시 마르크스의 삶을 보는 의미
    영화 〈청년 마르크스〉가 현재의 우리에게 건네는 것
        2018년 06월 08일 01:1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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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 마르크스가 탄생하고 200년이 흘러 2018년이 되었다. 그 전 해였던 2017년은 러시아에서 최초로 공산주의 혁명이 발발한 지 100주년이 되는 시기였다. 운명의 신은 얄궂게도 러시아 혁명이 발생한 날과 칼 마르크스를 세상에 태어나게 만든 날을 붙도록 만들었다. 그 덕분에 여전히 ‘공산주의’라는 말은커녕 ‘사회주의’라는 말도 쉽게 못 꺼내는 한국 사회에서 2017년부터 ‘현실 사회주의’를 비롯한 다양한 변혁적인 사상을 배우고 고민할 수 있는 많은 행사와 출판물이 발간되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애석하게도 ‘영상물’의 위치는 많지 않았다. TV나 라디오 같은 지상파 매체에서 별로 다루지 않은 것은 이해가 간다. 정권이 바뀌어도 이들은 여전히 체제에 안전한 내용의 콘텐츠만을 편성하기에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인민들이 자유롭게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만들 수 있는 ‘퍼블릭 엑세스’조차도 숱한 제약을 겪어야만 한다. 기본적인 노동권을 다뤘는데도 방송 불가 판정을 받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물론 ‘서울아트시네마’를 비롯하여 영화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상영관에서는 지속적으로 러시아 혁명을 비롯하여 68 혁명, 다양한 변혁적 활동을 기념하는 특별전을 기획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소들은 태생적으로 소위 ‘씨네필’(cinephile)이라 불리는 영화광들이 주로 찾을 따름이다. 학술적, 또는 영화예술을 탐구하는 공간으로서 해당 공간은 분명 유효한 가치를 지니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다가가기에는 너무나도 문턱이 높은 장소이며, 실제로 상영된 작품들도 접근성이 높지는 않았다.

    ‘러시아 혁명’이라는 역사적으로 중대한 사건도, ‘칼 마르크스’라는 꼭 짚고 넘어가야만 할 인물도 어느 순간 대중과 유리되어 학술 세미나나 시네마테크와 같은 한정된 공간에서만 이야기되고, 기념된다. 어떤 식으로든 혁명과 사상가를 기억한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가 있다고 해도, 대중과의 접점이 사라지는 것은 역설적으로 사회주의-공산주의가 지녔던 힘을 박제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따름이다. 이런 고민이 점차 짙어질 때쯤, 유럽에서 건너온 한 편의 영화가 한국의 문을 두드렸다. 지난 5월 17일에 개봉한 라울 펙 감독의 <청년 마르크스>(Le jeune Karl Marx)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흑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던 감독, 라울 펙

    라울 펙 감독은 본디 아이티를 기반으로 활동하던 감독이다. 카리브해에 위치한 아이티는 남미 부근에 위치한 나라 여럿이 그랬듯 오랜 식민지의 역사가 만든 질곡으로 가득한 국가이다. ‘신대륙 개척’이라는 명목 아래 수많은 국가들을 제국주의의 탐욕에 노출시킨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유럽인으로써는 최초로 아이티에 발을 내딛은 이래, 아이티는 스페인을 거쳐 프랑스, 그리고 미국의 오랜 식민 지배를 거쳤다. 어렵사리 독립을 한 이후에도 불안정한 국가의 토대는 한동안 끊임없는 쿠데타와 군사 독재를 낳았다.

    제3세계 국가에서 태어나고 자란 라울 펙은 바람 잘 날 없는 국가의 모습을 보며 많은 고민과 번민을 거쳤던 듯하다. 미국의 영화 잡지 <필름메이커>(Filmmaker)와 <청년 마르크스>의 개봉을 맞이해 나눈 인터뷰에서 (링크 보기) 그는 스스로 “젊은 시절이었던 1970-80년대 베를린영화방송아카데미에 유학을 할 때부터 마르크스의 저작을 공부했다”고 밝혔다. 영상을 배우러 독일에 유학을 갔지만,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시각을 바꿔놓을 사상을 접했던 것이다.

    그 영향 덕분이었을까. 라울 펙은 1992년 장편 데뷔 다큐멘터리 <루뭄바>(Lummumba)에서부터 거침없이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면서도 논점을 꿰뚫는 작품을 만들었다. <루뭄바>는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운동가였던 ‘파트리스 루뭄바’(Patrice Lummumba)의 생애를 통해 제국주의의 폭력과 식민지의 저항, 그리고 다시 이를 짓밟는 미국의 패권주의의 단면을 인상적으로 그려냈다.

    이후 제작한 작품 역시 동일한 선상 위에 놓여 있었다. 2005년 영화 <4월의 어느 날>(Sometimes in April)에서는 르완다 내전을 르완다인의 시선으로 그려내며 내전에 얽혀있던 국제적인 모순을 함께 드러내었다. 2009년 영화 <몰록 트로피컬>(Moloch Tropical)은 가상의 어느 아프리카 국가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을 블랙 코미디와 풍자를 섞어 표현하며 현대 아프리카 국가가 놓인 모순과 불안정한 현실을 강하게 꼬집었다.

    특히 한국의 관객들은 <청년 마르크스>가 개봉하기 전까지 유일하게 개봉한 그의 작품이었던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I Am Not Your Negro)로 라울 펙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는 제임스 볼드윈이 생전에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떠난 에세이 <리멤버 디스 하우스>(Remember This House)를 토대로 제임스 볼드윈은 물론, 그가 다루고자 했던 인물들의 삶과 미국 흑인들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다뤄내는 다큐멘터리였다. 제임스 볼드윈은 흑인이자 동성애자였고, 차별을 견디다 못해 끝내 프랑스로 이민가는 길을 택한 ‘경계인’이었다.

    <리멤버 디스 하우스>는 미국 흑인 민권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들인 메드가 애버스, 마틴 루터 킹, 그리고 말콤 X를 다루는 에세이였다. 미완성 상태의 에세이를 라울 펙은 끝내 날카로운 영상으로 완성시켰다. 그렇게 그는 꾸준히 자신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전 세계 흑인들이 겪고 있는 문제에 집중하던 감독이었다.

    청년들의 행보, 사상이 태어나는 순간

    이렇듯 꾸준하게 흑인 문제에 천착하던 감독이 조금은 달라 보이는 길을 걷게 되었다. 눈 씻고 찾아봐도 흑인인 등장인물은 잘 보이지 않고, 세련된 편집과 문제적인 연출로 주목을 받았던 전작들과 달리 영상미도 평범한 편이다. 하지만 라울 펙이 그동안 걸었던 길을 생각하면, 이 길은 그가 걸어왔던 방향 위에 놓여 있다. 흑인의 문제는 단순히 문화적인 거부감의 문제를 넘어 제국주의와 밀접하게 연관된 근본적인 차원의 것이며, 제국주의의 시작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와 연결된다. 라울 펙에게 있어 흑인 민권의 문제를 파고드는 것은, 곧 자본주의에 맞서 새로운 대안을 추구하는 사상을 발견하는 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청년 시절 처음으로 마르크스를 접했던 감독은, 노년의 나이인 65세가 되어 청년 시절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모습을 다루게 되었다.

    그가 바라본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청년 시절 모습은 완벽하지 않다. 마르크스는 거침없이 정부를 비판하고, 자신의 뜻과 논리에 맞지 않는 사상가는 거침없이 비판하지만 동시에 자기 주변에는 한없이 무심하다. 가족을 부양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온갖 일자리를 전전하지만 번번이 차이기 일쑤다. 마르크스의 자기중심적인 태도는 귀족의 신분을 포기하면서 자신과 결혼한 아내 ‘예니’는 물론, 평생의 동료였던 엥겔스에게도 질책을 듣는 원인이 된다. 한편 엥겔스는 방직공장을 여럿 운영하고 있는 아버지 덕분에 사는 것에는 큰 문제는 없지만, 그러기에 아버지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한 존재가 된다. 노동자 계급이 처한 처참한 현실에 가슴 아파하고, 지금 당장이라도 세상을 바꾸고 싶지만 행동을 뒷받침할 사상은 물론 동료도 없다.

    라울 펙은 높은 이상을 갖추고 있지만, 홀로 행동하기엔 결점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뭉치고 행동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의 사상이 탄생하는 과정을 그려나간다. 동시에 많은 이들에게 박힌 ‘마르크스가 주도하고, 엥겔스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보조하며 공산주의 사상이 탄생했다’는 식의 흔한 고정관념 역시 파괴한다. 대신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어떻게 서로의 생각을 공유했는지, 프루동이나 바이틀링을 비롯한 당대의 사회주의 사상가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어떠한 지점에서 대립했는지를 충실하게 묘사한다. 이러한 표현법은 현실 사회주의가 흔히 빠졌던 함정인 ‘교조주의’적인 인식관에 관객이 빠지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지닌다. 동시에 사회주의-공산주의가 단순히 한 명의 ‘천재’가 만든 것이 아니라, 당대의 사회와 경제적 배경과 사상이 맞물리며 탄생한 결과물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시선이 된다.

    이러한 시선 아래 관객들에게 제시되는 ‘공산주의’는 단순히 뜬구름을 잡는 수사에 머물지 않는다. 사상의 역사적인 궤적을 비추며 어떻게 사상이 빚어지고, 그 과정에는 어떠한 영향들을 받았으며, 중간에는 어떤 시행착오가 있었는지를 묘사하며 공산주의가 지닌 역사적인 의의를 관객으로 하여금 고민하도록 유도한다. 라울 펙의 전작들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춰 제작된 ‘대중영화’지만, 단순히 공산주의의 의미를 관객들에게 주입하는 대신 능동적으로 사고하며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셈이다.

    2018년, 우리는 무엇을 바꿀 수 있는가

    물론 <청년 마르크스>에는 아쉬운 점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감독은 나름대로 마르크스-엥겔스와 프루동-바이틀링 사이의 대립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며 이상적 사회주의와 과학적 사회주의의 차이, 마르크스-엥겔스가 나가고자 했던 길의 의미를 충실히 드러내고 싶었던 듯하다. 하지만 2시간에 육박하는 상영 시간으로 이를 드라마와 함께 담기에는 부족했던 것일까. 이전까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사상을 접하지 못했던 이들이 영화의 내용을 바로 따라오기에는 너무나도 벅차고, 조금이리라도 공부를 했던 이들이 보기에는 너무나도 두루뭉술하다.

    영화의 전반적인 서사 역시 작품 후반 ‘의인 동맹’이 마르크스-엥겔스의 제안으로 ‘공산주의자 동맹’으로 바뀌는 클라이맥스가 다가오기 전에는 상당히 평이할 따름이다. 라울 펙의 바로 전작이 미국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올랐던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였음을 생각하면, 감독이 영화의 대중성을 고민하다 조금은 삐끗한 게 아닌지 걱정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 마르크스>는 2018년 현재를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많은 미덕을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단순히 ‘공산주의’를 북한이나 소련이 우겨온 ‘낡고 고리타분한 사상’이 아니라, 철저히 과학적이며 현재적인 가치에 입각한 이론이었음을 영화는 명백히 보여준다. 사상이 탄생하는 과정에서도 ‘한 명의 천재’가 활약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개입된 것은 물론 마르크스의 아내인 ‘예니’나 엥겔스의 연인이었던 ‘메리’가 <공산당 선언> 집필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며 계급과 지향, 그리고 젠더를 넘어서는 연대가 있었음을 내비춘다. 수작이라 부를 수는 없지만, 마르크스-엥겔스의 사상을 처음으로 접하는 이들이 보기에는 이보다 더 적합할 수 없는 ‘입문서’와도 같은 영화가 등장한 것이다.

    <청년 마르크스>는 결말부 마르크스-엥겔스가 함께 집필한 <공산당 선언>이 발표되고, 아무도 당시 예상치 못했던 1848년 혁명이 일어났음을 보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스탭롤에서는 세계 대공황이나 2차 세계대전, 베트남 전쟁,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위기 등을 비롯한 20세기와 21세기를 뒤흔든 여러 역사적 사건들을 연이어 보여준다. 어떤 의미에서는 20세기는 끝없는 혁명과 반혁명이 연속되었던 시기이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언>에서 자신만만하게 ‘자유주의의 승리’를 외쳤던 것과 달리 21세기에 접어든 현재도 혼란과 격동은 계속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일 것이다.

    비록 영화는 한국은 물론 영화가 제작된 유럽에서도 많은 관객들이 관람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최소한 극장에서 영화를 봤을 관객이라면 이 장면들을 보면서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마음으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동시에, 마치 영화 초반의 엥겔스처럼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불안감이 함께 들었으리라. 2018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특히 한국을 사는 사람들은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청년 마르크스>는 단순히 ‘사회주의를 믿으라’는 식으로 사람들을 현혹하지 않는다. 대신 수많은 사회적 모순과 고민이 응축된 결과가 과학적 사회주의-공산주의였음을 보이며 움직일 것을 촉구한다. 같이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움직이는 것. 그것이 마르크스-엥겔스의 방식이자, <청년 마르크스>가 진정 전달하고 싶었던 주제 의식이 아니었을까.

    필자소개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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