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책연구기관 내세워
    최저임금 속도조절론 주장
    ILO 이상헌 “외국 추정치로 짐작, 자료의 부정확하고 편의적 인용 문제”
        2018년 06월 05일 01: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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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이 국책연구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을 주장하는 보고서를 발표한 가운데, 이 보고서가 “부정확”하고 “편의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최저임금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전제하고 최저임금 인상에 관한 부정적인 외국 사례만을 ‘편의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책연구기관 KDI, 최저임금 속도조절론 총대 메나

    KDI는 4일 발표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2년간 최저임금을 연 15%씩 올리면 올해 8만4000명, 2019년 9만6천 명, 2020년 14만4천 명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노동시장의 임금질서를 교란할 수 있다며 인상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이 실현될 경우 대규모 실업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보고서는 헝가리와 미국 등 해외 사례를 적용해 국내 상황에 적용해 추정했고,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나 일자리안정자금 등의 국내 정책은 반영하지 않았다.

    KDI는 국내 임금근로자 수 2천만명에 미국과 헝가리 사례에서 추출한 고용의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탄력성을 각각 곱하고, 지난해 대비 올해 임금중간값 대비 최저임금 비율 상승폭 12%(2017년 0.49→2018년 0.55)를 곱한 결과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헝가리의 사례를 보면, 2000~2004년 최저임금을 실질기준 60% 인상했는데, 그 결과 임금근로자 고용이 약 2% 감소했다. 이 사례를 통해 보고서는 최저임금을 10% 인상하면 고용은 0.35% 감소한다는 주장을 편 것이다.

    미국의 사례도 보면, 최저임금 10% 인상은 10대(16~19세)의 고용을 1.5%, 20~24세 고용은 이보다 작은 정도로 감소시키고 성인고용에 대한 영향은 없다는 결론을 1977년부터 4년간 대규모 연구에 걸쳐 도출했다. 최저임금 10% 인상시 고용은 0.15% 감소한다는 결론이다.

    다만 KDI는 올 들어 4월까지 고용동향을 보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고용감소 효과는 거의 없는 수준이라는 상반된 견해를 밝혔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최경수 KDI 인적자원정책연구부장은 5일 오전 MBC 라디오 ‘이범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최저임금 1만원 공약에 따라 2020년까지 15%씩 인상하면 고용감소가 실제로 실현될 것으로 예측하느냐’는 질문에 “(고용감소가)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특히 최 부장은 한국의 최저임금이 높은 편이라 고용감소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최저임금이 이미 높은 수준에 가 있는 경우 고용에 대한 효과가 크게 나타나게 된다. 한국은 (최저임금이 이미) 높은 편”이라며 “예를 들어 최저임금 수준을 임금의 중간값 대비로 보는데 선진국 중에서 가장 높은 나라인 프랑스가 한 60%정도다. 우리나라는 현재 한 50% 정도이고, 15%를 인상하면 내년 말에 프랑스 60% 정도 수준에 도달한다”고 말했다.

    최 부장은 이 같은 자료가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인상해 1만원에 도달할 경우 고용감소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보고서의 결론의 주요한 배경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래 (정부의) 계획은 15% 인상이었지만 주휴수당도 도입됐고 여러 가지 있는 만큼 인상 속도를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며 보고서에서 내린 결론을 재차 짚었다.

    최 부장은 그러면서도 “최저임금의 높은 인상에도 불구하고 고용을 감소시키는 영향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상반된 주장을 펴기도 했다. 올해 최대치로 최저임금이 인상됐지만 고용감소 영향은 극히 미미해 거의 없는 수준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최저임금이 인상되어서 고용감소 효과가 있는데 일자리 안정자금이 투입되었기 때문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원래 고용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인지 이 두 가지를 분명하게 구분할 순 없다”고도 했다.

    ‘외국의 경우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고용 영향이 전체적으로 어떠한가’라는 질문에도 “최저임금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고용이 크게 감소한 사례는 별로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정부에서 최저임금 올릴 때 여러 가지 사정을 상황을 봐가면서 올리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고용감소 현상에 대한 실제적 사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ILO 이상헌 국장 “KDI 보고서, 외국의 추정치로 ‘짐작’··· 편의적”

    KDI의 이러한 내용의 보고서에 전문가들은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고용정책국장이 된 이상헌 박사는 4일(현지시간)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고용이 감소할 것이라는 KDI 보고서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상헌 박사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연구기관은 통계와 자료를 잘 챙겨서 토론의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탄탄한 분석 없이, 토론에 불기운만 보태는 일은 피해야 한다”며 “KDI 분석은 그런 점에서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고 총평했다.

    그러면서 이 박사는 “이렇게 부정확하고 편의적인, 그것도 외국에서 ‘수입된’ 추정치를 기초로, KDI는 한국의 최저임금에 대해 논평했고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으로 결론을 냈다. 여기에 외국 정책 사례도 부적절하게 사용됐다”며 “분석보다는 용기가 더 돋보인다”고 비판했다.

    이 박사는 KDI 보고서에 대해 구체적으로 최저임금 효과는 노동시장 사정이나 구조에 따라 다르다면서 “이번 분석은 엄밀히 따지면 한국을 분석한 것이 아니다. 우선, 미국과 헝가리의 최저임금 고용탄력성 추정치를 가져다가 한국의 사례를 ‘짐작’했다”고 지적했다. ‘탄탄한 분석’을 기초로 추정하지 않고 외국의 추정치로 ‘짐작’한 것이 KDI의 보고서라는 설명이다.

    그는 KDI보고서가 인용한 외국의 추정치에 대해서도 “편의적”이라고 지적했다.

    KDI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감소의 근거로 제시한 미국의 추정치 -0.015(고용 0.15% 감소)는 대부분 1970~1980년대 자료인데다, 그 이후 추정치는 0에 가까워 전체적인 고용 감소 효과는 없는데도 오래된 데이터를 사용한 것은 부정적 효과를 전제하고 분석했다는 느낌을 준다고 짚었다.

    헝가리의 사례에 대해선 “헝가리의 고용탄력성 분석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단 한가지 헝가리 연구만 인용했고, 이 연구의 추정치가 KDI의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의 유일한 실증적 근거가 됐다”면서 “(KDI가) 최저임금의 상대수준이 비슷한 영국의 탄력성은 사용하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최저임금의 고용감소 효과가 생겨나지 않았다”고 했다.

    KDI가 최저임금의 빠른 인상이 고용을 감소시켰다는 단 하나의 사례인 헝가리 사례를 인용하면서도 최저임금 인상에 고용감소 효과가 없다는 영국의 사례를 배제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을 주장을 뒷받침할 외국의 사례만을 골라 끼워 맞췄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박사는 또한 “(KDI는) 왜 한국의 고용탄력성 추정치는 사용하지 않았나. 한국 연구가 부족하지만 최근에는 많이 늘었다.”며 “요약하자면, 부분·연령별 차이는 있지만 총계 차원에서 고용탄력성은 0에 가깝다”고 짚었다.

    그는 KDI가 자신의 결론을 추가적으로 뒷받침하고자 제시한 프랑스 사례 또한 정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KDI 분석이 주목한 프랑스의 2000년대 최저임금 인상은 노동시간을 35시간으로 줄이면서 불가피하게 시간당 임금을 조정하면서 생긴 일일 뿐, 급작스러운 최저임금 인상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끝으로 “이런 분석에 한 나라의 경제부처 수장이 ‘침묵’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온갖 잘난 척하면서도 정작 어설픈 우리시대의 자화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KDI 분석을 토대로 최저임금 인상을 중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조언한 것으로 읽힌다.

    노회찬, 산입범위 확대
    “손에 쥐는 돈은 별로 늘어나지 않았는데 많이 인상된 것처럼 보이게”

    노동계는 최근 정부에서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는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KDI 보고서가 나온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박사의 말대로 ‘탄탄한 분석 없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보고서라는 비판이다.

    민주노총은 5일 보도자료를 내고 KDI 보고서에 대해 “부끄러운 엉터리 어용자료”라며 “엉터리 분석을 통해 어용적 결론을 자의적으로 제시했다”고 질타했다.

    최근 정부여당의 최저임금 속도조절론 기류를 견제하고 있는 진보정당에서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YTN 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과 인터뷰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고용을 연관 지은 KDI보고서에 대해 “다른 나라보다 너무 높아서 비용의 증가에 영향을 미치는 부동산이나 상가 임대료 같은 것, 신용카드 수수료가 다른 나라들보다 획기적으로 높아서 미치는 악영향엔 어떤 대책이 있나”라며 “왜 비용 증가와 관련된 문제를 인건비 낮추는 것만으로 해결책을 찾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노 원내대표는 “정책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마찰적 요소에 대해선 그것을 극소화시키기 위해 여러 대책이 필요하다. 그런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한 것이지, 무조건 임금 인상을 안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자세는 좀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정부여당이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한 것에 대해선 “손에 쥐는 돈은 별로 늘어나지 않았는데 굉장히 많은 최저임금 인상된 것처럼 보이게 한다”며 “국민들에게 내건 (최저임금 인상) 약속을 그런 눈가림으로 약속을 지킨 것처럼 위장하는 측면이 있다”고 질타했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근거 없는’ (KDI의) 우려에 정부여당이 동조하고 있는 현실이 유감스럽다”면서 “‘내 삶을 바꿔달라’는 촛불의 열망을 안고 탄생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끝까지 노동자의 반대편에 설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최 대변인은 “지금 손대야 할 것은 최저임금이 아니다”라며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이라는 필수 과제는 그대로 두고, 대다수 노동자의 임금만 빼앗으며 민생을 저버린 정부여당은 국민적 심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래는 이상헌 박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전문을 본인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최저임금에 대한 토론이 뜨겁다. 뭔가 분명하지 않아 열기가 더한 듯하다. 따라서 이럴 때일수록 연구기관은 통계와 자료를 잘 챙겨서 토론의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탄탄한 분석 없이, 토론에 불기운만 보태는 일은 피해야 한다. 오늘 KDI에서 내놓은 짧은 분석과 언론보도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최저임금을 “지나치게” 올리면 좋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어느 수준이 “지나친” 것인지, 그런 지점은 언제 오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연구기관의 역할이고, 나의 거듭되는 고민이다. 이번 KDI 분석은 그런 점에서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 몇가지만 지적해 둔다.

    이번 분석은 엄밀히 따지면 한국을 분석한 것이 아니다. 우선, 미국과 헝가리의 최저임금 고용탄력성 추정치를 가져다가 한국의 사례를 “짐작”했다. 최저임금 연구자들이 동의하는 영역이 좁긴 하지만, 그 와중에 동의하는 것은 최저임금 효과가 노동시장 사정이나 구조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고용탄력성이 country-specific하다는 점이다. 남의 나라의 추정치를 가져다 분석해 볼 수는 있지만, 그걸 근거로 자기 나라의 최저임금 효과를 예상하고 공개적으로 대서특필하는 경우는 드물다.

    둘째, 그 추정치마저 편의적이다. 미국의 추정치 -0.015는 그마나 옛날 것 (대부분 1970-1980년대)이고, KDI 논문에서도 인정했듯이 그 이후 추정치는 0에 가깝다. 즉 전체적인 고용감소 효과는 없다. 그런데도 굳이 이 추정치를 사용하는 것은 최저임금의 부정적 효과를 전제하고 분석한다는 느낌을 준다. 헝가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헝가리의 고용탄력성 분석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KDI 연구는 복수의 출처에서 나온 “평균적” 추정치를 사용한 미국과 달리, 단한가지 헝가리 연구만 인용했다. 이 연구의 추정치가 KDI의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의 유일한 실증적 근거가 되었다. 최저임금 속도가 빨리 올랐다는 이유로 헝가리를 살폈지만 (최저임금 조정속도와 탄력성 간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는 내가 알기로는 없다), 사실상 최저임금의 상대수준 (임금중간값 대비 0.5 수준. 현재 한국 수준과 비슷)이 비슷한 영국의 탄력성은 사용하지 않았다. 후자는 역시 0이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최저임금의 고용감소 효과가 생겨나지 않았다.

    셋째, 그럼 왜 한국의 고용탄력성 추정치는 사용하지 않았을까? 한국 연구가 부족하지만, 없지는 않고, 최근에는 많이 늘었다. 요약하자면, 부분별 (예컨대, 서비스 산업) 연령별 차이 (예컨대, 청년고용 감소 효과)는 있지만, 총계 차원에서 고용탄력성은 0에 가깝다. 올 초에 유럽연합에서 회원국들 (헝가리 포함)을 대상으로 분석했는데, 고용탄력성은 0에 가까운 마이너스였으나,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KDI 분석은 자신의 결론을 추가적으로 뒷받침하고자 프랑스 사례를 들었는데, 이조차도 정확하지 않다. KDI 분석이 주목한 2000년대의 최저임금 인상은 프랑스가 35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불가피하게 시간당 임금을 조정하면서 생긴 일이다. 너무 급작스레 최저임금을 올려서 생긴 부작용 탓이 아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최저임금은 formula에 입각 (SMIC라는 관련법이50년 동안 있어 왔다)해서 반자동적으로 조정된다. 한국의 사례와는 전혀 맞지도 않다.

    이렇게 부정확하고 편의적인, 그것도 외국에서 “수입된” 추정치를 기초로, KDI는 한국의 최저임금에 대해 논평했고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으로 결론내었다. 여기에 외국 정책 사례도 부적절하게 사용되었다. 분석보다는 용기가 더 돋보인다. 그리고 이런 분석에 한 나라의 경제부처 수장이 “침묵”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온갖 잘난 척하면서도 정작 어설픈 우리시대의 자화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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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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