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개의 성, N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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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4월 24일 09: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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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통속적인 질문으로부터 시작해보자. 하리수는 남자인가, 여자인가?
    여자라구? 왜인가? 자기 스스로 여자라고 생각해서? 아니면 긴 생머리에 여성적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외모를 갖고 있어서? 아니면 드디어 주민등록번호가 1이 아니라 2로 시작하게 되어서?

    하리수는 남자인가 여자인가

    그렇다면 똑같이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했지만 머리도 짧고, 화장도 안하고 옷도 털털하게 입고 다닌다면, 그런데 여전히 주민등록번호가 1로 시작한다면 그 사람은 남자인가 여자인가?

    어떤 레즈비언 팜므가 자신의 남자친구가 여자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다면 그 남자친구, 즉 부취는 남자인가 여자인가? 아니면 어떤 여자가 남자에게 끌리는데, 그 남자의 여성적 면모에 끌린다면 그 여자는 여자인가, 남자인가? 드랙 퀸(여장 남자) 혹은 드랙 킹(남장 여자)은 여자인가 남자인가?

    질문이 극단적인가?
    그러나 트랜스젠더, 레즈비언/게이, 드랙의 존재는 이성애가 지배적 규범인 사회에서 이성애의 기초가 되는 남성/여성의 구분이 정말 자명한 것인가를 다시 질문하게 만든다.

    토마스 라커는 그의 책 『섹스의 역사』(Making Sex)에서 역사적으로 생물학적인 남성과 여성을 확정짓는 과정들이 따지고 보면 한 번도 생물학적이었던 적만은 없었다고 말한다.

    자명한 것이 아닌 섹스

    예를 들어 서구전통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2세기의 해부학자 갈레누스는 ‘남성 성기의 모든 부분이 위치만 바꾸어 여성 성기가 된다’고 주장했지만 그가 구분하고자 했던 해부학적 구조의 차이는 여성의 불완전함이라는 ‘현실’의 또 다른 은유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해부학이 운명이 아니라 운명이 해부학이 된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여성의 해부학적 몸은 덜 완성된 남성의 표지로 이해되었다. 즉 음경은 지위의 상징이지 섹스의 표시가 아니었던 셈이다.

    토마스 라커는 문화가 생물학에 기초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물학은 문화적 규범에 의해 제한된다고 말하며, 17세기 동안 남자 또는 여자가 된다는 것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는 것이고 문화적 역할을 상정하는 것이지, 신체적으로 남녀 중에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섹스는 존재론적 범주라기보다는 사회적 규범에 의해 구성된(making) 사회학적인 범주인 것이다.

    자명한 것이 아닌 섹스!

    뜨개질 하는 남성, 목소리 큰 여성

    얼마 전 내가 몸담고 있는 연구실에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남성과 여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린바 있다.

    남성(성)= 소심하다. 잘 삐친다. 속이 좁다. 섬세하다. 유약하다…..
    여성(성)= 목소리가 크다. 과감하다. 위풍당당하다. 활기차다……

    전공, 나이, 성별을 뛰어넘어 지식과 일상의 통일을 꿈꾸는 사람들의 공동체인 우리 연구실에는 뜨개질이 취미이고 목도리와 모자를 떠서 다른 회원들에게 선물하는 게 큰 즐거움인 남성회원도 있고 목소리도 크고 성정도 벼락같은 여성회원도 있다. 섬세해서 소심하기까지 한 남성들도 있고 매사에 거침이 없는 여성들도 많다.

    그러나 다만 연구실뿐이랴? 누구나 가까운 주변에서 ‘씩씩한 여자’, ‘세심한 남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남성보다도 더 남성적인 영국의 어떤 여성총리가 있었는가 하면 전업주부로 살고 있는 남성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상업적으로 포획된 언어이긴 하지만 콘트라섹슈얼, 메트로섹슈얼, 위버섹슈얼들이 새로운 트렌드로 각광받고 있기도 하다. 트랜스젠더나 드랙이 아니더라도 이미 남성/여성에 대한 기존의 분류로는 포착할 수 없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는 시대인 것이다.

    자명하지 않은 여성/남성 나누기

    여성/남성의 구분이 아직도 자명하다고 생각하는가?
    여전히 전형적인 남성, 전형적인 여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이미 세상에는 N개의 성이 존재하고 있고, 내 안에도 N개의 성이 존재하는데, 여전히 ‘진정한’ 여성과 남성을 찾아 헤매고 있다면, 이것은 폭력적이기보다는 헛되고 또 헛되고 또 헛된 것이 아닐까?

    여성은 없다. 물론 남성도 없다. 존재하는 것은 각자의 특이성들뿐. 또한 이 특이성이 서로 충돌하면서 생성하는 무지개빛 다채로운 관계들과 복수적 삶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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