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전환점,
포퓰리즘·극우 연정 탄생
[세계는 지금] 극우 '동맹당' 급성장
    2018년 06월 05일 10:0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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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총선이 끝난 지 석 달이 되면서 정부 구성을 위한 연정은 지리한 대립과 합의, 파국, 그리고 극적인 재합의로 마무리되었다. 총리 자리를 놓고 대립하던 오성운동의 디 마이오 대표와 (극)우파연합 살비니 동맹당 대표가 제3의 인물인 주세페 콘테를 총리 후보로 내세워 연정을 추진했다. 총리 지명자로 내정된 콘테는 볼로냐대학의 교수 출신으로 정치 문외한인데다 마이오 대표의 개인변호사로 활동한 이력이 확인되면서 ‘꼭두각시’ 총리라는 비난에 휩싸였다. 사실상 마이오 대표가 커튼 뒤의 총리가 아니냐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극)우파연합은 베를루스쿠니 전 총리의 ‘전진이탈리아’, 극우파인 살비니의 ‘동맹당’, 파시스트인 ‘이탈리아 형제들’의 정치연합-편집자)

마타렐라 대통령이 콘테에게 내각 구성권을 부여한 것은 재선거만은 피해야한다는 절박감 때문이었다. 정부가 석 달간 표류하면서 시급한 예산 집행과 내년도 예산안의 방향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작용했다. 재선거를 하더라도 연정을 구성해 일시적으로 정부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내각 구성 과정에서 동맹당이 내세운 경제장관이 다시 발목을 잡으면서 파국으로 치달았다.

동맹당이 철저한 반EU주의자인 파울로 사보나를 경제장관으로 추천하자 마타렐라 대통령은 곧바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마테렐라 대통령이 EU 탈퇴 반대론자인 탓도 있지만 가뜩이나 침체되고 있는 경제를 최악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마타렐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자 이탈리아 증시는 폭락했고 스페인 등 주변 국가들의 증시마저 요동쳤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일시적으로 경제가 혼란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최악의 상황은 막아야 한다는 결단으로 거부권을 했다. 하루아침에 유럽 전역의 주목을 받았던 콘테는 즉시 사임했다.

오성운동의 디 마이오와 동맹당의 살비니(오른쪽)

(극)우파연합 동맹당 살비니의 후퇴냐, 재선거냐

총리 후보까지 오성운동에 양보한 살비니가 경제장관까지 다른 정당의 입맛에 맡는 인물을 추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지면서 재선거는 불가피해보였다. 살비니 역시 재선거를 공언하면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하지만 마테렐라 대통령은 제3의 인물을 내세워 내각을 구성하겠다는 강경책을 들고 나왔고, 격분한 살비니는 대통령 탄핵을 선언하면서 이탈리아 경제가 요동쳤다.

마이오의 타협안이 살비니를 다시 테이블로 끌어들였다. 중립적인 인물을 경제장관으로 기용하는 대신에 살비니가 부총리 겸 내무장관을 맡는 방안이었다. 타협안에는 살비니의 자존심을 살려주기 위해 사보나 경제장관 후보는 유럽담당장관으로 내각에 참여시키자는 내용도 포함됐다. 요동치는 경제를 진정시키기 위해 마테렐라 대통령도 한발 물러났고 살비니도 차선을 선택했다. 경제장관에는 색깔이 거의 없는 조반니 트리아 로마대 교수가 임명됐다.

살비니가 재선거를 공언하는 이유는 총선 이후 오성운동의 지지율은 하락하는 반면 동맹당의 지지율은 계속해서 오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연정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발다오스타에서 실시된 주의회 선거 결과도 살비니를 자극했다.

북부지역을 기반으로 전국으로 지지를 확산하고 있는 동맹당의 정작 약점은 북부지역이었다. 동맹당이 높은 지지율을 올리고 있는 지역이지만 북부지역의 맹주는 지역정당들이다. 스위스로 넘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발다오스타는 지역정당인 발다오스타동맹이 역대 선거에서 다수당을 차지했고 무늬만 중도좌파인 민주당이 추격하는 곳이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동맹당은 제1당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지만 발다오스타동맹을 2% 차이까지 추격하는 최대의 성공을 거두었다. 두 배 이상의 약진이었고 민주당은 원외정당으로 밀려나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았다.

주도가 베네치아이고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는 길목인 베네토주에서도 동맹당의 지지율이 급상승하고 있다. 베네토주의 맹주는 지역의 오래된 서커스 이름을 딴 지역우파정당인 Zaia for President가 역대로 다수당이고 당대표 이름을 전면에 내걸고 활동하고 있는 중도정당인 Tosi List for Veneto가 또 다른 유력정당이다. 최근에 실시된 여론조사는 동맹당이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년 동안 넘지 못했던 지역정당의 벽을 단 몇 달 만에 동맹당이 모두 흡수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베로나(포타 누오바)와 볼차노(보젠)이 주요도시인 트렌티노 주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나고 있다. 요컨대 20년 동안 20%를 넘지 못하던 동맹당의 지지율이 짧은 기간에 40% 이상으로 폭등하면서 북부지역 전체가 동맹당의 독립공화국으로 진행되고 있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오성운동의 지지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고 30%대를 웃돌던 지지율은 20% 후반까지 추락했다. 동맹당의 독자적인 지지율은 25%를 넘어서고 있고, 같은 (극)우파동맹 소속의 전진이탈리아와 형제당의 지지율의 합계는 과반수에 육박하고 있다.

살비니는 불안한 연정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당장 재선거를 실시해도 동맹당이 유리하다는 여론조사가 이어지고 있지만 살비니는 (극)우파연합을 재정비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북부 지역정당들의 지지율을 시간을 가지고 흡수하고 지지율이 낮은 나폴리 등 남부지역의 거점을 강화하는 것에 전력을 쏟기로 결정했다. 남부지역의 지지율을 어느 정도 높이기만 하면 (극)우파 단독으로 차기 선거에서 과반의석을 장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남부지역의 최대 현안은 난민문제였고 살비니는 반 난민정책을 전면에 내세워 지지율을 높이겠다는 단순한 전략이었다. 내무장관으로 첫 행보에 나선 살비니의 방문지는 아프리카 난민으로 반 난민정서가 극에 달해있는 시칠리아였다.

(극)우파 단독집권의 야망으로 유턴한 동맹당
극우파 동맹당의 역사와 극좌에서 극우로 변신한 살비니 대표

IMF 체제를 눈앞에 둔 (이전 집권당이었던) 민주당은 유럽의 전통적인 사민주의 정당의 노선을 그대로 답습했다. 민주당은 재정지출을 줄이는 긴축재정과 연금제도를 후퇴시키는 경제정책을 전면적으로 밀어붙였다. 민주당의 지지기반은 흔들렸고, 전통적인 지지자인 노동자(노동조합)들이 대거 이탈했다. 중도좌파가 실종된 이탈리아에서 포퓰리즘 포괄정당인 오성운동과 극우정당인 동맹당의 연정은 정책노선에서 집권 민주당의 노선을 정반대로 주장하고 했다. 오성운동은 재정지출을 늘리자고 주장했고, 동맹당은 연금제도를 유지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세금을 더 낼 것인가, 연금제도를 유지할 것인가 하는 단순한 논쟁의 승자는 동맹당이었다.

동맹당의 연원인 롬바르드 자치 동맹을 만든 인물은 움베르토 보시(Umberto Bossi)다. 1981년 움베르토 보시가 롬바르드 자치 동맹(Lombard Autonomist League)을 만들 때만 하더라도 정당을 결성할 목적은 아니었다. 북부지역을 기반으로 기존 정당들을 공격하고 북부지역의 독립을 주장하는 극우 정치결사체였다. 북부 독립에 대해서는 중도우파정당들도 냉담한 반응을 보였고 북부동맹의 정치행동을 비난했다. 1인 극우정치조직이라고 불릴 정도로 보시의 카리스마는 뛰어났고 북부동맹에 환호하는 주민들도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조직의 규모가 늘어나면서 의회에서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는 주장도 커졌다.

1987년 롬바르드동맹이라는 정식 명칭으로 총선에 참여해 북부지역의 저명인사로 부상한 보시가 상원의원으로, 보시의 강력한 지원을 받은 인물이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지역정당이 원내에 진출하자 북부지역의 독립과 더 많은 자치를 주장하는 조직들이 롬바르드동맹의 깃발로 모여들었다. 1989년 동맹당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북부연합(Northern Alliance. 1991년 북부동맹으로 변경)이 탄생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국경지역의 지역조직들 대부분이 참여하면서 북부연합의 규모는 급성장했다. 북부동맹(NL)으로 당명을 개정한 보시는 1992년 총선에서 55석을 획득하는 성과를 거두면서 단숨에 전국정당의 위치에 올랐다.

이런 정당들이 대거 의석을 차지하면서 하원에서는 과반수를 확보하는 정당이 사라졌다. 이탈리아 정치에서 야당정치가 붕괴하고 교착상태가 반복된다는 의미였다. 기독민주당이 1당을 차지했지만 과반수에 백여 석이 모자라 연정을 불가피했다. 불안한 정부를 이끌던 기독민주당에서 대규모 부패사건이 터지면서 연정은 붕괴했다. 유권자들은 기독민주당에 등을 돌렸지만 공산당의 후신으로 지목받는 좌파민주당(DC)의 집권도 바라지 않았다. 기독민주당의 빈자리를 미디어재벌인 베를루스코니가 전진이탈리아(FI)를 창당하면서 차지했다. 전진이탈리아의 지지율을 급등했지만 과반의석을 차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베를루스코니와 보시의 담판으로 선거연합정당인 ‘자유동맹’을 결성했다.

1994년 조기선거에서 전진이탈리아는 첫 총선에 참여한 정당으로 1당에 오른 기록을 남겼고, 북부동맹은 두 배까지 의석을 늘리며 연립정부에 참여했다. 안정적인 과반의석을 가지고 있었지만 연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베를루스코니가 북부지역의 독립을 반대한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으면서 북부동맹 내에서는 연정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계속되는 베를루스코니의 추문과 부패도 일조했다.

1996년 실시된 총선은 다시 극적이었다. 전진이탈리아와 북부동맹은 독자적으로 선거에 참여했고, 기독민주당 출신의 명망가인 로마노 프로디를 앞세워 ‘올리브동맹’이라는 단일한 중도좌파 선거연합을 결성했다. 전진이탈리아는 2당으로 내려앉았고 올리브동맹은 과반의석을 차지했다. 색깔은 희미해졌지만 그람시의 후예들이 참여한 좌파민주당(PDS)은 전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집권당이 되는데 성공했다.

전진이탈리아와 결별 이후 북부동맹의 지지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북부동맹에게 더 치명적인 것은 북부지역에서 주나 국경도시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정당들의 출현이었다. 이런 지역정당들의 특징은 극우적인 색채가 옅다는 것이었다. 중도우파 성격이 강하거나 중도정당에 가까웠다. 이들은 그동안의 중앙정치가 지역을 소외시켰으며 주민들이 낸 세금이 적절하게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부각시키면서 지역현안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지역정당의 출현은 북부동맹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보시는 베네치아를 수도로 독립공화국을 선포하는 등 고군분투했지만 당의 지지율은 회복되지 않았다.

2008년 총선에서 보시는 다시 베를루스코니와 선거연합을 결성하면서 반전을 도모했다. 유권자들은 부패와 추문의 대명사인 베를루스코니와 북부동맹을 다시 선택했다. 북부동맹은 지지율을 회복하는데 성공했지만 베를루스코니의 부패 의혹은 멈추지 않았다. 베를루스코니 개인에 대해 지지를 보내는 유권자들로 인해 전진이탈리아의 지지율은 치명적이지 않았지만 유탄을 맞은 북부동맹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북부동맹의 당원들은 보시의 지도력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고 지지자들도 새로운 인물을 요구하면서 당은 내분에 빠졌다. 보시는 측근인 롬바르디 주지사 로베르토 마로니(Roberto Maroni)를 대표로 내세우고 후일을 도모했지만 2013년 총선에서 다시 참패를 기록하면서 당원들은 젊고 새로운 인물인 마테오 살비니를 선택했다.

밀라노 태생의 살비니는 일찍부터 정치에 눈을 떴다. 평범한 직장인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는 뚜렷한 정치색깔이 있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정치에 입문한 것은 오로지 살비니의 선택이었다. 십대 초반 살비니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오페라 극작가의 이름을 딴 극좌 정치조직인 레온카발로(Leoncavallo)에 참여했다. 북부지역의 소규모 조직에 불과한 레온카발로는 이탈리아공산당도 타락했다고 주장하는 극좌조직이었다. 독특하게도 이 조직은 북부지역 (사회주의) 독립국가 건설이 당의 노선이었다. 독립국가 건설 노선에 매료되었던 살비니는 이제 막 정당으로 변모한 북부동맹이 북부지역의 독립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을 보고 운명처럼 보시를 만났다. 너무 어린 나이였는지 보시의 화려한 언변에 빠졌는지 살비니는 극좌조직에서 극우조직으로 급선회했다.

대중연설이 보시를 능가한다는 평판을 받는 살비니는 북부동맹이 주목을 받는 것과 동시에 밀라노의 유명인사로 등장했다. 살비니가 스무 살의 나이로 밀라노 시의원에 당선되자 당내에서는 곧바로 차세대 대표주자로 호명됐다. 살비니가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알려진 것은 2004년 유럽의회 의원으로 당선되면서였다. 유럽의회에서 극우정치인의 행보는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고 인지도는 계속 상승했다. 살비니는 20년간 밀라노 시의원을 역임했지만 국내정치보다는 국제정치에서 극우정치인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살비니가 재선거보다는 연정이라는 후퇴를 선택한 것은 차기 선거에서 (극)우파연합의 단독집권을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 지지율 변동이 잦은 전진이탈리아가 발목을 잡을 것을 대비해 동맹당의 지지율을 더 끌어올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살비니는 극우정치인으로는 드물게 전략적인 판단에 뛰어나고 대중적인 메시지를 던지는데 탁월하다는 평가다. 이를테면 지난 총선에서 나이지리아 출신의 흑인을 동맹당 소속으로 상원의원으로 내세워 당선시킨 것을 꼽을 수 있다. 반 난민노선을 분명히 하면서도 국적을 가진 이탈리아인은 하나라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이탈표를 최소화했다. 지난 총선에서 단일정당으로 1위를 차지한 오성운동의 현재 지지율은 30% 밑으로 하락하고 있는 반면, 동맹은 25%를 넘어서고 있다.

반 유럽연합과 극우정당의 연정이 문제가 아니라 (극)우파연합의 단독집권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이 이탈리아가 직면한 오늘이다.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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