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핵'을 노래했던 미국의 양심들
        2006년 04월 24일 08: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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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 Nukes"
    1979
    .

    Disc 1
    1.  The Doobie Brothers – Dependin’ On You     
    2.  Bonny Raitt – Runaway    
    3.  Bonny Raitt – Angel From Montgomery
    4.  John Hall – Plutonium Is Forever
    5.  John Hall & The Doobie Brothers – Power
    6.  James taylor, Carly Simon & Graham Nash – The Time They Are A-Changin’
    7.  Graham Nash – Cathedral
    8.  Jackson Brown & Graham Nash – The Crow On The Cradle
    9.  Jackson Brown – Before The Deluge

    Disc 2
    1.  Nicolette Larson & The Doobie Brothers – Lotta Love
    2.  Ry Cooder – Little Sister
    3.  Sweet Honey In The Rock – A Woman
    4.  Gil Scott-Heron – We Almost Lost Detroit
    5.  Jesse Colin Young – Get Together
    6.  Raydio – You Can’t Change That
    7.  Chaka Khan – Once You Get Started
    8.  James Taylor – Captain Jim’s Drunken Dream
    9.  James Taylor – Honey Don’t Leave L.A.
    10.  James Taylor & Carly Simon – Mockingbird

    Disc 3
    1.  Poco – Heart Of The Night
    2.  Tom Petty & The Heartbreakers – Cry To Me
    3.  Bruce Springsteen – Stay
    4.  Bruce Springsteen – Medley
    5.  Crosby, Stills & Nash – You Don’t Have To Cry
    6.  Crosby, Stills & Nash – Long Time Gone
    7.  Crosby, Stills & Nash – Teach Your Children
    8.  The Doobie Brothers & James Taylor – Takin’ It To The Streets

     

    베트남 전쟁이 종전으로 치닫고, 닉슨이 다시 대통령이 되고, 신좌익운동이 사분오열되면서 70년대 초반 미국의 혁명적 열기는 급속도로 식어갔다. 그리고 혁명운동에 참여했던 세력 중 살아남은 사람들은 두 갈래 길로 나뉘어졌다. 한 무리는 체 게바라 티셔츠를 입고 혁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을 털었고 다른 무리는 여성, 환경, 인권 운동에 전념했다.

    후자의 길을 택한 사람들은 꽤 성공적인 길을 걸어갔다. 미국의 여성운동은 ‘전국여성기구(NOW)’같은 조직을 결성하면서 ‘새로운 사회운동’의 중심이 됐다. 환경운동도 공해문제와 생태계보존 등의 이슈를 가지고 전투적인 운동의 전통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1979년 3월 28일,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쓰리마일섬에 있는 원자력발전소에서 노심붕괴로 인한 방사능 유출사고가 발생했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이후 최악의 방사능 사고로 기록된 이 사건을 통해 ‘핵’의 안전성에 대한 회의와 대체에너지 운동이 불붙게 됐다.

    대중음악계에서도 핵무기뿐만 아니라 핵발전의 위험성에 대한 고민이 번져나갔다. 쓰리마일섬 사고 이전부터 핵발전에 반대해왔던 잭슨 브라운(Jackson Browne), 그래엄 내쉬(Graham Nash), 보니 레이트(Bonnie Raitt), 존 홀(John Hall)은 음악을 통해 ‘반핵’의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해 뮤즈(MUSE)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음악의 여신을 뜻하는 단어지만 “안전한 에너지를 위한 음악인연합Musicians United for Safe Energy”의 줄임말이다.

    뮤즈의 활동은 반핵 집회나 시위를 조직하고 반핵운동 단체의 활동자금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 공연을 여는 것이었다. 그런 공연활동의 절정이 바로 1979년 9월 뉴욕의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No Nukes>라는 이름으로 5회에 걸쳐 진행한 콘서트다.

    뮤즈의 취지에 동감하거나 추가로 가입한 아티스트들이 총출동한 이 공연은 음반과 다큐멘터리 필름으로도 제작됐다. 물론 모든 수익은 반핵운동단체에 기부됐다. No Nukes의 무대에 함께 했던 아티스트들은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 당시까지만 해도 부부였던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와 칼리 사이먼(Carly Simon), 두비 브라더스(The Doobie Brothers), 60년대의 생존자들인 크로스비, 스틸스 앤드 내쉬(Crosby, Stills, and Nash)와 제시 콜린 영(Jesse Colin Young)과 질-스캇 헤론(Gil Scott-Heron), 아직은 풋풋한 신인이었던 톰 페티(Tom Petty)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뮤즈의 창립멤버들이다.

    공연 직후 LP 3장에 담겨 나온 공연 실황에는 40쪽에 가까운 홍보책자가 같이 들어있다. 여기에는 공연에 참여했던 아티스트들이 ‘나는 왜 반핵을 주장하는가’에 대한 짤막한 글들과 함께 쓰리마일섬 사고에서 시작해 핵발전이 안전하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과 전문가들의 글, 후에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영화로도 만들어진 카렌 실크우드의 이야기, 태양열과 바람 같은 대체 에너지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다. (90년대 CD로 다시 제작될 때는 체르노빌 발전소 사고에 대한 언급이 추가됐다.)

    재미있는 것은 1996년과 2000년 미국 대선에서 녹색당 후보로 출마했던 위노나 라두크와 랄프 네이더가 ‘시민운동가’로서 이미 이 책자에 글을 싣고 있다.

    이 공연의 내용적 절정은 비교적 앞 시간대에 배치됐던 존 홀의 무대다. 그는 70년대 초반 ‘올리언스Orleans’라는 밴드를 결성해 다소 인기를 끌었고 이후 솔로로 독립해서는 반핵운동을 하는 가수인지, 노래도 부르는 반핵운동가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맹렬한 반핵운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뉴욕에서 민주당 하원의원 후보가 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선거운동 홈페이지는 johnhallforcongress.com 이다.)

    무대에서 존 홀은 핵 발전과 관련 기업들을 반어법으로 비꼰 ‘플루토늄이여 영원하라Plutonium Is Forever’와 ‘파워Power’를 불렀다. 특히 태양열의 따뜻한 힘과 풍력의 무한한 힘을 찬양한 ‘파워’는 지금도 대체에너지 운동의 주제가로 쓰이고 있다.

    존 홀의 무대가 이 공연의 목적이 무엇이고 주장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했다면, No Nukes 콘서트의 음악적 절정은 후반부에 배치된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잭슨 브라운의 무대다. 공연의 첫 번째 목적이 기금을 마련하는 것인 만큼 많은 관객을 모이게 한다는 첫 번째 목적의 반은 아마도 이 두 명의 아티스트가 달성했다고 봐도 될 정도다. 그만큼 70년대 이 둘의 무게감은 남다른 것이었다.

    * * *

    2004년, 뮤즈의 중추적 활동을 했던 브루스 스프링스틴, 보니 레이트, 잭슨 브라운, 크로스비, 스틸스 앤드 내쉬는 다시 캠페인 콘서트를 벌이기로 뜻을 모았다. 이번에는 반핵운동이 아니라 ‘부시 낙선 운동’이었다. “변화를 위한 투표Vote for Change”라는 이름의 이 공연은 9월부터 10월까지 공화당이나 민주당 후보의 승리가 확실하지 않은 지역을 집중적으로 돌며 유권자 등록과 부시에 대한 반대를 선전했다.

    ‘어제의 용사들’만 부쉬 반대에 나섰던 것은 아니다. 이들이 1979년 No Nukes 무대에 섰을 때 아직 고등학생이거나 그보다 더 어린 나이였던 아티스트들이 선배들의 주장에 호응해 함께 미국을 돌았다.

    결과야 우리가 아는 대로 ‘변화를 위해 투표’한 미국인들보다 ‘부시’를 위해 투표한 미국인들이 더 많았다. 대선에서 “변화를 위한 투표”가 공연했던 주들 중에 민주당으로 넘어온(?)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러나 미국 대중음악계에 ‘부시 아저씨, 너무 멋져요’를 연발하는 브리트니 스피어스 같은 친구들만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은 그나마 작은 위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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