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 북한 인권문제 침묵 더이상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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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4월 22일 04: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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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들어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은 지역적, 그리고 세계적 패권을 위해, 남한 우파세력들은 자기의 정당성의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그동안 열심히 목소리를 높여왔다. 북한은 인권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할 남한의 진보진영은 수수방관하고 있을 뿐이다.

    주로 탈북자와 국제구호단체 관계자들은 북한의 인권유린 사례로 이동권리, 정치참여, 강제노동수용소, 공개처형, 언론의 자유, 결사의 자유 등 다양한 문제들을 제기한다. 북한의 실상이 ‘블랙박스’이기 때문에 이런 정보의 신빙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지만 그렇다고 모두 다 환상이나 거짓말이라고 치부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물론 어떤 것이 인권의 문제인지, 또는 어떤 것이 단지 억압이나 ‘잘 못 사는’ 문제인지에 대한 시각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최근까지만 해도 남한의 이른바 진보진영이 북한인권에 대한 문제제기 자체를 거부하거나 침묵해왔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같은 태도는 이제 달라져야 하고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서독 좌파의 고민

    1970년대 말에 서독의 좌파도 비슷한 전환점에 직면했었다. 당시 서독과 현재 남한은 다른 부분이 많겠지만, 비교할 만한 부분도 분명히 있기에 당시의 상황을 잠깐 참고하고자 한다.

    영국 철학자이자 평화운동가인 버트런드 러셀이 1963년에 설립한 러셀재단은 1966년부터 서너 번에 걸쳐 이른바 러셀재판(Russell Tribunal)을 집행했다. ‘재판’은 베트남전(1966), 남미독재(1973), 서독의 인권문제(1978~1979) 등을 다뤘다.

    일종의 민간 ‘인권대회’ 형식과 비슷한 이 재판의 ‘배심원’으로 장-폴 사르트르, 시몬느 드 보봐르 등 유럽의 유명 좌파인사들이 참여했다. 서독 당국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서독의 인권문제를 다루는 재판이 열렸다. 그 과정에서 재판장이 동독인권에 대한 재판을 제기했다. 이 때문에 좌파 진영 내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한 쪽은 서독의 인권문제를 다룬다면 일관성 있게 다른 독일(동독)의 인권문제도 무시할 수 없고, 당시까지만 해도 우파들이 동독 인권문제 제기를 자신들의 전유물로 삼아 악용해왔기 때문에 그 독점을 깨뜨려야 된다는 입장이었다.

    다른 한 쪽은 동독 인권문제를 다루는 재판을 개최할 경우 “잘못된 친구(우파)에게 박수를 받는다”며 우려를 나타냈고,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추진하는 서독 좌파들의 정당성을 약화시킨다는 주장을 폈다.

    약 반 년 동안 진행된 논쟁 끝에 동독 인권문제를 다루는 재판을 열지 않기로 결정했다. 결정적인 이유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해당 국가(동독)의 국민이 참여한 가운데 재판을 진행해야 하는 원칙, 즉 공정성을 지키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실제성과 공정성이 결여됐기 때문에 역시 우파의 뜻대로 되고 좌파진영이 약화될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셋째, 동독 정권이 동독 내 인권침해 희생자나 다른 항의세력에 대해 더 강하게 탄압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도움은커녕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남한 진보진영은 당시 서독 좌파진영이 고민했던 문제와 비슷한 진퇴양난에 직면해 있다.

       
     
    ▲북핵저지시민연대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17일 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해운대에서 북한 인권 보장과 대북원조 투명성 확보를 촉구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연합뉴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조금씩 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참여연대, 평화네트워크, 인권운동사랑방 등 시민단체들은 토론자리를 마련하고, 우파들의 일방적이고 악의적인 의도를 폭로하는 한편, 국제적인 무대에서도 많은 애를 쓰고 있다. 이른바 지식인층의 목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북한 인권에 대한 ‘금기’를 깨고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제안되는 북한인권 접근의 대안은 남북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한 ‘인권대화’, 실질적 인권개선을 위한 노력, 북한 내부 갈등 해결을 위한 물질적, 그리고 사회정치적 토대 지원 등이다.

    이에 대해 이의가 제기될 수 있다. "지금 북한이 안고 있는 문제가 다른 저개발국의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는데 굳이 인권이라는 개념을 적용해서 이 문제의 악의적인 정치화의 위험을 초래할 필요가 있느냐"는 점이다.

    하지만, 내 답은 "그렇다"이다. 먼저 그동안 인권운동이 펼쳐지면서 인권유린에 대한 국제기준이 어느 정도 마련돼 있다. 때문에 북한만 예외로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남한 인권운동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또한, 우파세력들은 바로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이 문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숨은 의도를 효과적으로 폭로하려면 ‘적의 무기를 통해서 적을 이겨낸다‘는 생각으로 정면승부를 해야 한다.

    인권에 대한 상대주의론 주장해야

    진보진영은 먼저 우파의 대북 ‘인권보편론’의 악의성을 분명히, 그리고 합리적으로 폭로해야 한다. 인권은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에 북한에서도 존중해야 한다는 우파의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 진보진영은 ‘상대주의론’을 주장할 필요가 있다. 즉, 인권의 보편성은 옳지만 특별성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절대주의에 빠질 위험을 지적해야 하는 것이다.

    북한의 경제가 낙후돼 있고, 시민사회도 형성되어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런 상태에서 합리적이고 현실적으로 인권존중을 요구한 이후 북한에게 기대할 수 있는 반응을 따져봐야 한다. 북한만큼 선택권이 매우 협소한 행위자라면 합리적 선택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고찰과 인식이 필요하다.

    경제위기, 자연재해, 식량결핍, 경제제재 등으로 인해서 객관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에게 선진국 기준에 따른 인권을 요구하는 것이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최근에 제기되고 있는 상호주의, 동등주의와 대화 제안이야말로 진정한 대안적 접근방법이다.

    1980년대초에 서독 좌파들은 인권을 추상적인 가치로 보고 포괄적으로 적용해서 동독 인권문제를 다루는 재판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동독에서 발생하는 (인권)문제를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런 방식이 현재 남한 진보진영의 모형이 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남한 인권운동가와 지식인들이 북한의 실질적 인권문제 파악과 진정한 개선을 위해 노력하기로 한 것은 옳은 길이다. 북한 인권문제를 자신의 전유물인양 주장하는 우파세력들의 위선적인 가면을 벗기려면 진보진영은 당당하게 맨 얼굴로 마당에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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