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동진정책,
그 역사와 전말 파헤치다
[책]『러시아의 만주 한반도 정책사, 17~19세기』(김용구/푸른역사)
    2018년 06월 03일 12: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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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동북아 시대가 열리고 있다. 정치가 앞에서 판을 깔고 있지만 사람들은 시베리아, 만주, 한반도를 잇는 교통, 막대한 자원의 개발, 인프라 구축 등이 불러올 새로운 경제 벨트라는 장밋빛 미래를 꿈꾼다. 기대와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그 미래는 사실 역사에서 시도되었던 ‘실패했던 꿈’이기도 했다.

우리가 오랫동안 잊었고 어느새 낯설어진 연해주, 시베리아, 만주, 한반도 북부 일대는 러시아가 17세기 이래 ‘모피의 길’을 열며 시베리아로 ‘동진’하고 이에 대해 중국(청), 조선이 치열하게 대응했던 또 다른 무대였다. 그 무대에서 교류와 교섭, 침략과 약탈, 전쟁과 회담 등이 활발히 진행되며 세계 외교의 또 다른 한 축을 구성했다.

이 책은 17세기에서 20세기 초 정확하게는 러일전쟁 직전까지 시베리아, 만주, 한반도를 둘러싼 러시아, 청, 조선 및 일본ㆍ구미가 얽혀 치열하게 다투고 외교전과 통상을 벌였던 자취를 국제정치학의 시각에서 조명하였다.

저자는 한국 국제정치학의 대부인 김용구 교수. 국제정치학의 필독서인 《세계외교사》(1988, 2006-개정판)의 저자로서 유명한 그가 심혈을 기울인 19세기 한국외교사 5부작 시리즈의 마지막 책이다. 250여 년에 걸친 오랜 시기, 유럽·시베리아·연해주-만주-한반도 북부에 걸친 방대한 공간, 러시아ㆍ조선ㆍ청ㆍ일본 및 구미 학계의 자료와 연구서를 종횡하는 내공, 80순을 넘긴 나이에 선보인 왕성한 필력이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미 세계 정상에 도달한 한국 학계의 역량을 보여주는 역저이다.

‘모피의 길’에서 러ㆍ일전쟁까지

러시아는 우랄 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팽창한 지 불과 60년이 지난 1639년에 오호츠크해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난 1741년에 알라스카를 영유하게 되었다. 그들이 개척한 이 길은 모피를 찾아 개척한 ‘모피의 길’이었다. 대서양 항로를 비롯한 세계무역권이 형성되던 16세기, 또 하나의 길이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가 유럽, 시베리아, 아메리카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보유한 제국이 될 무렵, 동아시아에는 또 다른 제국이 융기하고 있었다. 17세기 중반 청은 베이징에 입성하였고 새로운 패자가 되었다. 17세기 후반까지 청은 만주, 몽고 일대로 영역을 확대하였고, 팽창하던 두 제국은 흑룡강 지역에서 부딪쳤다. 이 충돌은 동북아시아에 큰 충격을 주었고, 조선 역시 휘말렸다. 조선이 청과 연합하여 치른 두 차례의 전투는 우리에게 ‘나선정벌’로 익숙하다.

러시아와 청은 1689년에 바이칼 호 근처의 한 촌락 네르친스크에서 처음으로 대면하였고, 유명한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하였다. 조약 형식은 1648년 베스트팔렌 회의에서 합의한 절차에 입각하였다. 유럽 변경의 러시아와 사대질서의 중심에 있던 중국이 유럽 공법의 절차에 따라 합의한 문건이라는 점에서 동·서 교섭사의 큰 분수령이었다. 이후 1727년 러시아와 청은 일련의 캬흐타 국경 조약을 체결하였다. 캬흐타 무역이 번영하며 러시아는 한층 부흥하였고, 1814~1815년 빈 회의에서 영국과 함께 세계국가로 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영국이 아편전쟁 후 청과 체결한 난징 조약 이후 동북아시아까지 영국의 세력 안에 속하게 되자 캬흐타의 육로 교역도 후퇴하였다.

캬흐타 무역이 쇠퇴의 길로 접어들자 러시아는 연해주를 병합하는 정책으로 선회하였다. 이는 차르 니콜라이 1세와 알렉산더 2세의 뜻이기도 했다. 러시아는 흑룡강 좌안을 계속 점령하였고 마침내 1858년 무력으로 아이훈 조약을 체결하였고 곧이어 텐진조약을 체결하였다. 이로서 러시아는 연해주라고 불리는 지역을 현실적으로 점령하였고 내친 김에 두만강 하구 20리에 이르는 영토까지 병합하였다. 이로서 세종 이래 조선의 고유 영토였던 녹둔도가 하루아침에 러시아에 귀속되었다.

1880년대 러시아는 한반도에 정치, 군사, 경제의 이해관계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아시아에 대한 우월의식이 강했고 조선에 대해서는 협박외교로 임하였다. 때마침 일어난 영국의 거문도 점령처럼, 러시아는 조선의 일부 지역을 점령하겠노라고 위협했다. 그러나 협박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결국 조선에 대한 현상 유지라는 기왕의 정책으로 회귀하였다.

1894년 청일전쟁이 일어났다. 이 분야는 많은 연구가 축적되었는데 저자는 청일전쟁 과정에서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를 어떻게 인식했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외교 문서는 조선 주재 러시아 공사 베베르가 철저히 소외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청일전쟁에 관한 중요한 문서집에 청, 일본, 조선 주재 공사들의 전보는 모두 106개에 달하는데, 베베르가 주고받은 것은 고작 6개에 불과했다. 또 청과 일본의 러시아 공사들은 베베르에게 전쟁에 관한 정보도 알려주지 않았다. 청일전쟁 종결 후 조선 사절단이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였다. 조선 사절단이 처음으로 러시아 황제를 비롯한 고위 관계자들과 만났던 이 사건은 상호 인식에 관한 중요한 장면을 제공하고 있다.

1890년대에 들어서면서 러시아는 아시아 지역에 러시아의 장래가 달려있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세기적인 사업인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놓였고, 이제 ‘아시아적’이란 형용사는 ‘천시’에서 ‘선망’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러시아 집권자들이 한반도를 어떻게 인식했는가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였다. 특히 한반도 북부의 병합을 주장한 베조브라조프 그룹의 부상과 몰락을 파헤쳤다. 차르 니콜라이 2세 또한 만주, 조선까지 병합하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 같은 흐름 속에서 1903년에 극동에 총독관할구가 설치되었고 이윽고, 이 지경으로 본격적으로 진출했던 일본과의 외교 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베조브라조프의 구상에 동의하는 러시아와 대륙 진출을 도모한 일본의 만남은 전쟁이라는 불안한 결말을 향해가고 있었다.

슬라브적 외교 정책, 세계외교사 한 장면을 밝히다

저자는 러시아의 동진東進 과정과 청ㆍ조선과의 만남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독특한 국제정치적 행동 양태를 종종 ‘슬라브적’이라는 형용사로 표현했다. 그것은 러시아적인 특징적인 대외 인식으로서, 서유럽에 대한 열등의식, 아시아에 대한 우월의식, 세계를 구제한다는 구원의식의 3가지로 대별된다. 열등감과 우월감 그리고 스스로를 구원자로 여기는 독특한 심정에 기반한 러시아의 극동 정책은 태생부터 침략과 약탈을 동반하였고 결국 러일전쟁으로 파탄났다. 조선과의 만남에서도 이 같은 태도가 유례없이 드러났다.

한편 저자는 이 지역의 장구한 외교사를 복원하는 작업이 서양 중심에 경도된 기존 세계외교사를 보완하고 풍부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서유럽의 동아시아 침략 이른바 영국이 주도한 아편 무역과 뒤이은 동아시아 침탈을 중심으로 한국의 근대 외교사는 집필되었다. 저자는 이 같은 전통적 서술이 무의식적으로 ‘유럽중심주의’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을 반성하고 있는 것이다. 본서에 흐르는 한반도-만주-시베리아ㆍ연해주에서 벌어진 치열한 외교, 투쟁, 교류는 세계 외교사의 한 장면을 복원하는 일이었다.

방대한 자료, 치밀한 고증

이 책은 원로 국제정치학자의 학문 여정의 결정판이다. 저자 김용구 교수는 일찍이 19세기 한국외교사를 5부작으로 집필하겠다고 구상하였다. 《세계관 충돌과 한국외교사, 1866~1882》(2001),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사대질서의 변형과 한국 외교사》(2004), 《거문도와 블라디보스토크. 19세기 한반도의 파행적 세계화 과정》(2009), 《약탈제국주의와 한반도》(2013) 등이 전 4부작이다. 본서는 그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한다.

5부작을 마감하는 저작답게 저자의 치밀함과 방대한 여정은 이 책에도 곳곳에 숨어 있다. 우선 사료. 《동문휘고》, 《통문관지》와 같은 한국의 사료는 물론, 방대한 러시아 문서를 비롯해 중국(청), 일본, 구미의 문서와 고전적 연구서가 종횡으로 망라하며 인용되었다. 특히 부록에서 본문의 각 장에 소개되었던 사료와 주요 연구서를 일일이 소개하였다. 이 지역의 정치, 외교사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보론에서 〈국경 개념을 둘러싼 중국과 러시아의 논쟁〉, 〈KA(붉은문서)와 동북아 연구〉 등을 따로 실은 점도 특기할 대목이다.

꼼꼼한 실증 또한 이 저서의 강점이다. 워낙 많은 자료와 지명, 인명이 등장하는데 저자는 러시아, 중국의 지명, 인명 등을 일일이 병기하여 충실한 길잡이 역할을 했다. 꼼꼼한 실증의 일례. 모든 날짜는 양력으로 환산했고 필요한 경우는 음력을 명시했다. 그런데 저자는 이것 말고도 까다로운 러시아력을 필요한 경우 병기하였다. 이유를 알려면 일러두기를 읽어보는 것이 필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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