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재판 거래 부인
법원행정처에 책임 미뤄
민평당 ”전형적 유체이탈 화법···당당하다면 수사기관에 자진 출두“
    2018년 06월 01일 06:29 오후

Print Friendly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재임 시절 청와대가 재판으로 거래 의혹, 재임 기간 특정 성향 판사들에 대한 사찰 및 뒷조사 등 ‘사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대법원 재판이나 하급심 재판에 부당하게 간섭, 관여한 바가 결단코 없다”고 전면 부인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1일 경기 성남시 시흥동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을 흥정거리로 삼아서 재판 방향을 왜곡하고 그걸로 거래를 하는 일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라며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냥 말로써만 표현하는 건 부족할 정도로, 결단코 그런 일은 없었다”고 이같이 말했다.

재판 거래 등에 대해 해명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앞서 지난달 25일 사법권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양 전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이던 상고법원을 도입하기 위해 청와대와 KTX 승무원 불법파견, 2009년 철도노조 파업, 정리해고 등 사건의 재판 거래를 시도한 의혹이 있다는 조사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다만 양 전 대법원장은 “제가 있을 때의 법원행정처에서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면서 “국민 여러분께 정말 송구스럽고, 마음의 고통을 받은 분들이 있다면 제가 사과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재판 거래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항변하면서도, 재임시절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재판 거래’ 의혹 자체에 대해선 부인하지 않은 것이다. 법원행정처 독단적으로 ‘재판 거래’를 했을 뿐 자신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뜻으로 읽힌다.

양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의 재판은 정말 순수하고 신성한 것이다. 그걸 함부로 폄하하는 걸 저는 견딜 수가 없다”고 말했다. 특별조사단의 보고서가 대법원을 폄하한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이다. 이어 “국민 여러분께서 이번 일에서 대법원 재판에 의구심을 품으셨다면, 그런 의구심은 거두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청와대가 원하는 방향의 판결을 내리고 그 대가로 상고법원을 추진하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상고법원 추진) 과정에서 법원행정처에서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면 잘못된 것”이라면서도 “제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법관에게 편향된 조치를 하거나 불이익을 준 적이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회견 말미에 그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제가 재직할 때 있었던 일 때문에 법원이 이렇듯 불행한 사태에 빠지고, 부적절한 법원행정처의 행위가 지적된 데 대해 사법행정의 총수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과했다.

‘법원행정처가 저지른 일일 뿐 나는 몰랐다’는 항변이 주를 이룬 양 전 대법원의 기자회견은 사법농단에 대한 분노에 더욱 불을 지피는 형국이 됐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대법원장의 수족처럼 움직이는 법원행정처가 그 숱한 자료들을 자의로 만들고, 대법원장 모르게 멋대로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하고 판사들을 사찰하며 불이익을 줬단 말이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최 대변인은 “이 희대의 사법농단 사태에 대해 양 전 원장이 보이는 태도는 후안무치하기 짝이 없다”면서 “진실을 실토하고 국민들 앞에 석고대죄를 해도 모자랄 판에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조속한 구속 수사를 촉구했다.

장정숙 민주평화당 대변인도 논평을 내어 양 전 대법원장의 회견에 대해 “교묘한 말장난과 자기변명”이자 “전형적인 유체이탈화법”이라며 “이미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서 오히려 기름에 불을 부은 꼴”이라고 지적했다.

장 대변인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당당하다면 수사기관에 자진 출두해 입장을 밝히라”며 “대법원 역시 무너진 사법부 신뢰와 헌정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해 서둘러 형사고발을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양 전 대법원장이 의혹 일체를 부인하는 기자회견을 한 지 1시간 여 만에 김명수 대법원장은 피해 당사자인 법관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위로의 뜻을 밝혔다.

김 대법원장은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었다는 이유로 사찰과 통제의 대상이 되었던 법관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국민들의 무거운 질책을 견디고 계신 전국의 모든 법관들께도 마찬가지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수치심에 무너지지 말고, 우리의 양심을 동력으로 삼아 스스로를 되돌아보면서 오랜 기간 굳어진 잘못된 관행과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며 “각 법원의 판사회의와 전국법원장간담회, 전국법관대표회의 등을 통하여 지혜와 의지를 모아 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