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적을 만나다
[그림책 이야기] 『심부름 가는 길에』 (미야코시 아키코/ 북뱅크)
    2018년 05월 31일 06: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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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름 가는 길에

심부름 가는 길에. 참 멋없는 제목입니다. 왠지 주인공이 심부름 가는 길에 나도 뭔가 부탁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아마도 심부름 가는 길에 생긴 일을 다룬 작품인가 봅니다. 그런데 별다른 기대가 생기질 않습니다. 도대체 심부름 가는 길에 뭐 대단한 일이 생기겠습니까?

게다가 작가는 성격도 급한 모양입니다. 보통은 속표지에 작은 그림과 저자 이름과 옮긴이 이름만 소개되는데, 그림책 『심부름 가는 길에』에는 속표지부터 꽉 채운 그림과 함께 그림 하단에는 텍스트도 있습니다. 속표지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밤새 눈이 왔어요!

주인공 꼬마 키코가 일어났을 때 눈은 이미 그쳤습니다. 눈은 모두가 잠든 동안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따로 사시는 할머니가 걱정입니다. 이윽고 아빠는 할머니 집에 눈을 치우러 집을 나섭니다.

아빠가 집을 나선 뒤, 키코는 현관 의자 위에서 케이크 상자를 발견합니다. 할머니에게 갖다드릴 케이크를 아빠가 깜빡하고 그냥 간 것입니다. 키코는 재빨리 집을 나섭니다. 서두르면 아빠에게 케이크를 전할 수 있을 겁니다.

할머니 집은 숲을 지나면 있습니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키코는 눈 위에 난 아빠 발자국을 따라 걷습니다. 조금 지나자 까만 외투를 입은 아빠가 보입니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던 키코가 그만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집니다. 그 바람에 케이크 상자마저 찌그러집니다. 키코는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그러는 사이 아빠는 점점 더 멀어져 갑니다. 키코는 눈물을 참고 케이크 상자를 주워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과연 키코는 아빠의 걸음걸이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할머니에게 갖다드릴 케이크를 아빠에게 무사히 전해줄 수 있을까요? 찌그러진 상자 속의 케이크는 괜찮을까요? 눈 내린 숲 길을 홀로 걷는 주인공 꼬마 키코를 따라가며 독자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그림책, 『심부름 가는 길에』입니다.

노랑머리 빨강모자

『심부름 가는 길에』는 기본적으로 흑백 그림책입니다. 작가 미야코시 아키코는 하얀 눈으로 뒤덮인 숲을 하얀 종이 위에 흑백의 나무와 등장인물로 표현했습니다. 정말이지 눈 쌓인 겨울 풍경 그대로입니다. 주인공 꼬마 키코를 제외하면 말입니다.

미야코시 아키코는 주인공 키코에게만 색깔을 선물합니다. 바로 노랑머리와 빨강모자 그리고 빨강치마입니다. 마치 노랑머리는 키코의 밝고 긍정적인 성격을 상징하고, 빨강모자와 빨강치마는 키코의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주인공 키코는 아빠가 깜빡하고 두고 간 케익 상자를 전해주기 위해 열정적으로 집을 나섭니다. 할머니를 걱정하고 아빠를 돕고 싶은, 따뜻한 마음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그 마음을 행동으로 표현할 줄 아는 실천력도 지녔습니다.

그래서 주인공 키코의 노랑머리와 빨강모자가 더욱 빛이 납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품은 사람은 많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며 살고 있을까요? 아마 모든 사람이 품고 있는 사랑의 감정을 모두 표현한다면 세상은 훨씬 더 아름다운 곳이 될 겁니다.

위기에 빠진 키코

하지만 지금 주인공 꼬마 키코는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눈 쌓인 숲 속에서 넘어졌습니다. 그 사이 아빠는 더 멀리 가버렸고 할머니에게 드릴 케이크 상자는 찌그러졌습니다. 넘어져 부딪힌 다리고 아프고 눈물이 나지만 주저앉아 있을 수도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키코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계속 아빠를 찾아 따라가겠습니까? 아니면 그냥 집으로 돌아가겠습니까? 아니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리겠습니까?

주인공 키코는 울음을 참고 일어나 아빠를 찾아 다시 길을 다섭니다. 마침내 아빠를 따라잡습니다. 그리고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이 놀라운 사건이 바로 그림책 『심부름 가는 길에』에서 가장 매혹적인 하이라이트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기적을 만든다!

우리는 그림책이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마법 같은 기적을 만납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을 예술가들은 왜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 걸까요?

사실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기적 같은 일이 날마다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엄마아빠들이 현실은 정말 죽을 것처럼 힘든데 아이들을 생각하면 죽을 것 같은 현실을 버텨냅니다. 심지어 아이들이 웃으면 죽을 것 같은 현실이 행복한 현실이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떤 난관도 극복하고 사랑을 이루고, 어떤 사람은 불치의 병조차 사랑의 힘으로 치유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기적은 매일 일어납니다. 오늘 여러분에게는 어떤 기적이 일어났나요? 심부름 가는 길에도 사랑의 기적을 만나는 그림책, 『심부름 가는 길에』입니다.

필자소개
이루리
동화작가, 그림책 평론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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