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저임금법 개악,
    왜 민주당만 욕 하냐고?
    [기자칼럼] 문재인과 민주당, 별개?
        2018년 05월 30일 06: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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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한국당 비리 국회의원 체포동의안이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표 이탈로 부결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민주당은 지난 28일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국회 밖에선 성난 노동자들이 총파업 집회를 열어 국회를 압박했고, 국회 안에선 정의당과 민중당 의원들이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최저임금 삭감법’이라며 절박한 심정으로 부결을 호소했다. “여기 있는 국회의원들에겐 10만 원이 한 끼 식사비일지도 모르지만 그분들에겐 자식들의 학원비이고, 아이들의 급식비다. 너무나 절박한 그들의 임금을 이렇게 쉽게 결정해야 되겠느냐”고 말하는 이정미 정의당 의원의 표정엔 수심이 가득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가난한 노동자 주머니 터는 담합 대신 경제민주화법 전격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국회가 가난한 노동자들을 위한 민주주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줘야 한다”며, 일부 민주당 의원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김종훈 민중당 의원은 시간 초과로 정세균 국회의장과 다른 의원들의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이 개정안이 부결돼야 하는 이유를 설파했다.

    반면 민주당 내에 소위 노동 전문가 의원들은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라고 주장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와 함께 이 개정안 처리를 주도했던 한국노총 출신의 한정애 민주당 의원은 매우 온화한 표정을 하고 찬성토론을 위해 단상에 섰다. “반대토론에 나서주신 의원님들에게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한정애 의원은 “이 개정안으로 최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다. 임금 삭감이 아니다. 그들을 보호하는 안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그야말로 여론 호도였다.

    최저임금법 표결 현황(녹색 찬성. 적색 반대, 흰색 기권)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도 찬성했는데 왜 민주당만 욕 하냐고?

    진보언론들은 “이 개정안이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것”이라는 여당의 궤변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자료와 사례들을 쏟아냈다. 최저임금의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니며, 중소영세상공인들의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것도 아니며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포함해 연봉 2500만원 언저리를 받는 노동자들에게 피해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기사들의 댓글을 보면 드물지 않게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도 찬성했는데 왜 민주당에만 그러느냐”는 취지의 민주당 옹호론자들을 목격할 수 있다. 어찌됐든 이 개정안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그 책임을 다 민주당에 지울 일은 아니라는 주장으로 해석된다.

    심상정 의원은 본회의 당일 반대토론에서 “과거 정리해고법 도입할 때도 해고 줄이기 위해서라도 했고, 비정규직법 도입할 때도 비정규 줄이려고 한다고 했지만 다 거짓말로 판명났다”고 말했다. 민주당을 겨냥한 말이었다.

    정리해고법과 비정규직법, 현 우리 사회의 최대 문제가 된 이 두 법안을 주도해 처리한 정당은 자유한국당이 아니라 민주당이다. 심 의원 말대로 민주당은 비정규직법을 통과시키면서 “비정규직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며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강한 반대에도 결국 이 법을 처리했다. 결과적으로 비정규직법으로 비정규직은 양산됐고 소위 돌려쓰다 버려진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엔 삶을 포기하는 이들도 생겼다. 나는 민주당이 이런 결과를 모르고 비정규직법을 처리한 바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비정규직법 처리 때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정의당·민중당 등 진보정당과 민주노총은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강하게 항의했고, 민주당은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것”이라는 비정규직법 때와 똑같은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오히려 노동계를 “기득권 집단”으로 몰아세웠다. 국회 앞에 모인 마트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 고령의 청소노동자, 하청노동자가 대체 어떻게 기득권으로 분류되는지 알 수가 없지만, 어쨌든 민주당의 말은 그렇다.

    본인들이 관철하고자 하는 바에 맞선 노동계를 기득권이나 이기주의적 집단으로 몰아세웠던 행태는 박근혜 정부와 자유한국당, 조선일보 같은 보수기득권 세력들이 자주 해오던 ‘전략’이기도 하다.

    민주당에 분노하는 지점도 여기다. 자유한국당처럼 노골적으로 재벌 대기업 편에 서서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을 자임하는 정당이었다면 표를 안 주면 그만이다.

    하지만 소득주도성장론이니 뭐니 하면서 최저임금 인상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노동자를, 촛불시민을, 진보를 대변하는 정체성을 가진 정당이라고 자청해왔던 곳이 바로 민주당이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로 화장하고 유권자의 표를 가져갔던 정당이 바로 민주당 아닌가. 그런 정당이 저임금 노동자에 한 치도 도움이 안 되는, 그저 대기업을 위한 이런 법안을 졸속 처리한 거다. 자유한국당처럼 앞에서 대놓고 달려들면 막을 수나 있지, 이건 거의 가슴에 칼 품고 있다가 뒤에서 기습으로 찌른 격이다.

    여전히 민주당은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법이라고 떠들어댄다. 재벌대기업을 위한 법안이라는 수많은 분석기사가 쏟아져도, 민주당 전국노동위원회 위원장(이수진, 한국노총 출신)이 사퇴하고 노동위 소속 의원들이 반발해도 민주당은 여전히 비정규직법 처리 때와 똑같은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과거를 토대로 미래를 상상해보면 이렇다. 민주당이 보수정당에 정권을 내어주는 날이 오면, 아마도 민주당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문제 삼을 거다. 최저임금 노동자나 그 언저리에 있는 노동자의 삶을 옭죄고 있다고.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자신들은 한 톨의 책임도 없는 양, 보수정부에 책임을 전가할 것이라는 게 내 예상이다.

    민주당이 촛불시민을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이었는지 자체에 의구심을 품고 있었던 터라, 배신이니 뭐니 하는 얘기는 할 생각이 없다. 다만 “야당에 회초리를 들어 달라”는 추미애 민주당 대표의 말을 듣고 있자니, 어리둥절할 뿐이다. 도대체 회초리를 맞아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가.

    민주당이 개악안 처리한 것과 문재인 대통령과는 별개의 일이다?

    “의결은 국회가 하는 것이다. 행정부와 입법부를 헷갈리지 말라”는 정부 옹호론자들의 댓글도 종종 있다. SNS 상의 게시물을 봐도 문재인 정부와 별개로 민주당이 이 개정안을 처리했다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민주당의 실책으로 인한 비판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지키고자 하는 심리로 보인다.

    그런데 의아하고 당황스러운 건 이런 주장이 진보정당 내에서도 나온다는 것이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30일 오전 KBS 라디오 ‘최강욱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최저임금법 개악 과정에서도 나타났던 것처럼 민주당이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개혁 방향에 정치력을 발휘해서 확실히 끌어나가기보다는 무사안일주의에 빠져서 민심에 반하는 결정들을 자유한국당과 짬짜미해서 통과시켰다”며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이끄는 것을 우선적인 목표로 하는 정의당 같은 정당이 민주당을 제대로 견제할 때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기조인 소득주도성장론의 대표적인 정책이 바로 최저임금 인상이었다. 집권여당이 소득주도성장론을 역행하는 이 개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 정부와 논의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원내 진보정당 당대표가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마치 민주당이 독단적으로 저지른 일일뿐, 문재인 정부와는 별개의 일이라는 식의 소위 ‘문빠’의 논리를 펴는 것이 옳은 일인지 묻고 싶다.

    또 정부와 공감대 형성도 없이 민주당이 이 개정안을 처리했다면 정부와 여당이 엇박자를 낸 것이고, 이는 경제정책에 관한 정부여당의 무능함을 고스란히 드러낸 대표적 사례가 될 것이다.

    당 지도부 등의 발언을 봤을 때 정부와 여당이 사전 공감대를 이뤄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처리했다는 짐작은 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날인 29일 직접 주재한 ‘가계 소득 동향 점검 회의’에서 최저임금법 개정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집권초기부터 노정관계 회복과 야당과의 협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정의당과 한국노총은 이 개정안에 대한 문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요구했다. 양대노총은 사회적 대화기구 불참을 선언했고, 그간 문재인 정부의 협조적이던 정의당은 민주당을 향해 “어떤 협조도 기대말라”는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에 침묵한 것이다. 여당이 이 개정안을 강행 처리한 것을 받아들인 셈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30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노동계가 대정부 투쟁을 벌이겠다고 하고 있다. 정책상 문제가 없고, 재논의를 할 여지도 없다고 보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전혀 없다”고 답했다.

    “당정청이 긴밀하게 협의, 교감을 끝내고 표결을 한 것이기 때문에 거부권 행사 여지도 없는 건가”라는 거듭된 질문에도 홍 원내대표는 “네”라며 “이 문제를 너무 선동적으로 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우선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억제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 처리와 동시에 정부와 여당이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 주장을 조심스럽지만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것 또한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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