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남미 좌향좌, 전문가는 '심드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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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4월 21일 05:4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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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8일 베네수엘라 의회는 차베스 대통령이 제안한 국기와 국가 문장의 교체안을 의결하였다. 이에 따라 국기에는 8번째 별, 즉 볼리바르의 별이 추가되었으며, 국가 문장에는 말이 달리는 방향이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오른쪽으로 달리며 왼쪽을 보고 있었는데, 새로운 말은 오로지 왼쪽으로만 달리게 되었다.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의 표현을 빌리면 이는 “역사적 과오를 바로잡는 일”이었다.

    실제 정책은 오른쪽으로

    주로 언론들이 “라틴아메리카의 좌파 선풍”을 열심히 보도하는 데 반하여 막상 라틴 아메리카의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매우 심드렁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의 대략적인 견해는 ▲이들이 스스로를 “좌파”라고 부르지만 대체적으로 정책적인 내용이 아니라 정치적 동원을 위한 수사라고 볼 수 있고, ▲브라질의 경우처럼 당선이 된 이후에 실제 정책은 도리어 우파적인 정책을 실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중남미의 좌파정권 

    국가 국가원수

    인구수
    (백만명)

    1인당
    GNP($)
    성장률
    (%)
    지니
    계수
    총외채
    잔액(백만$)
    쿠바 피델 카스트로 11 2,867 3.9 12,700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26 4,315 17.9 49.1 33,700
    브라질 루이스 아나시오 룰라 다 실바 179 3,377 5.2 59.3 220,800
    아르헨티나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39 3,954 9.0 52.2 *166,207
    우루과이 타바레 바스케스 3.4 3,765 12.3 44.6 12,600
    볼리비아 에보 모랄레스 0.9 944 3.6 44.7 5,700
    칠레 미체예 바첼렛 15 6,110 6.1 57.1 43,900

    출처 :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정보, 2004년 기준 (* 2003년)
    지니계수는 World Bank Indicators 2005

    우선 위의 간단한 표만 보아도 몇 가지 주요 함의를 얻을 수 있다. 첫째, 2004년의 경제성장률이 상당히 높다는 점이 특이하다. 차베스의 베네수엘라는 석유라는 자원이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룰라의 브라질이나 키르치네르의 아르헨티나, 바스케스의 우루과이도 좋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볼 때 경제성장률이 좋은 볼리비아나 칠레에서 연이어 좌파 정당이 집권하였다는 점은 일시적인 거시경제지표와 실제 사회상황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정치적 냉소주의와 비관주의의 구조화

    둘째, 빈부의 격차가 여전히 극심하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 점이 실제 상황이다. 실업률의 증가는 이 빈부 격차가 앞으로 더욱 증대할 것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 사회에서 왜 정치적 냉소주의와 비관주의가 구조화되고 있는 지를 잘 설명해 준다.

    셋째, 여전히 방대한 총외채의 존재이다. 브라질은 여전히 2,208억불, 아르헨티나도 1,662억불을 기록하고 있다. GNI(국민총소득)에 대한 총외채 잔액의 비율이 대개 50%를 넘고, 아르헨티나 경우에는 무려 130%를 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좌파 국가들인들 파산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처신해야하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정치적 동원을 위한 수사로서의 ‘좌파’는 이전에 집권한 ‘우파’ 정권의 책임을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효율적일 수 있다. 그 ‘우파’적 경향은 대체로 신자유주의라는 명칭으로 불러왔다. 실제로 많은 연구들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상황을 악화시켜왔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소위 ‘워싱턴 콘센서스’는 이러한 모색에 대한 미국 측의 신자유주의적 충고였다. 1980년대 후반에 미국의 주요 기관과 국제기구들이 모여 검토한 결과 라틴 아메리카의 경제적 위기 원인이 대내지향적 경제정책, 국내저축과 투자의 결핍, 국가의 과도한 경제관여 및 민간부문의 허약성에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대외지향적 경제정책, 국내저축 신장 및 투자활동 촉진, 국가의 경제적 역할 축소를 제안하였다.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이 요청되었다.

    신자유주의 정책 부자에겐 희망 빈자에겐 절망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은 라틴 아메리카에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가져다 준 정책이었다. 확실히 1990년대 이후로 라틴 아메리카 경제는 안정화되었다. 무엇보다도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고 재정적자를 감축하였다.

    경제자유화와 자유무역지대 설치를 선점하기 위한 외국자본의 유입이 진행되었으며 만족할 정도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의 경제성장도 나타나고 있었다. 사실상 경제체제의 합리성과 효율성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적 정책 추구는 당연한 측면이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거시적 지표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빈곤층은 더욱 증가하고 삶의 질은 더욱 하락하였다는 점이다. 이미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이 진행될 때에 적지 않은 충고들이 쏟아졌었다. 합리성과 효율성 추구는 좋지만 평등성과 정당성에 대한 고려도 있어야 한다는 주장들이었다.

    만일 구조개혁의 부담이 사회적 약자에게만 돌아온다면 이 정책의 정당성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불행하게도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은 부유한 자에게는 희망이지만 가난한 자에게는 절망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이 성공하려면 최소한 두 가지의 전제는 충족되어야 했다. 첫째는 이곳에서 사라진 일자리가 저 곳에서 만들어져야한다는 점이다. 새로운 일자리의 창출이 전제되지 않으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실업자를 양산하는 정책이 된다. 둘째는 일자리를 바꿀 때 까지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32개국 수천 개 사회단체로 구성된 미주사회연대(ASC)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의 비용을 일방적으로 부담하고 있는 일반 서민들이 이 정책의 결과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중에서 선진국 자본에 의해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세계화에 대한 반대가 가장 조직적이라고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미주지역 32개국의 수 천 개 사회단체들로 구성된 ‘미주사회연대(ASC)’는 이 자유무역협정(FTA)이 가난과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노동자들의 권리와 복지 프로그램을 약화시키며, 환경파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이러한 종류의 협상들은 비민주적 절차를 통해 극히 일부의 정치가와 자본의 이익만을 위해 봉사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노동당이나 노동운동조직이 좌파 집권의 주체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 노동운동의 역할이 의외로 취약하다는 점이 자주 지적되고 있다. 노동자들의 권익이 현저하게 손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노동조직은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운동 역할 의외로 취약…민중 동원 코드는 ‘민족주의’

    아마도 라틴 아메리카의 전통적 노동포섭력과 주요 사회부문의 국가 예속성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예컨대 브라질 노동운동의 경우를 보면 도리어 더욱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적 대안을 포용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지난 1월 26일 브라질에서 개최된 제5차 세계사회포럼에서 룰라 대통령 뿐만 아니라 브라질 노총(CUT)위원장이 야유의 대상이 된 것은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라틴 아메리카의 민중들을 동원하는 코드는 여전히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다. 9·11 테러 이후에 더욱 노골화되고 있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에 대한 반감이 라틴 아메리카의 민족주의를 자극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북미의 거인인 미국에게 과감히 대항하였다는 점에서 카스트로나 차베스의 인기는 앞으로도 매우 높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요소들을 고려할 때에 라틴 아메리카의 좌파 선풍은 그야말로 ‘정치적인 것’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좌파 정치가들은 각 국이 처한 현재의 질곡을 기반으로 ‘신자유주의’라는 목표를 공략하고 있지만 실제 정책에서는 현실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새로운 발전전략을 모색하지 않는 이상 시간이 지나면 그 스스로가 용도 폐기되는 상황이 도래할 것으로 예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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