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라도 너~무 다른
    친정집과 시댁의 풍경
    [행복 코너] 의도적인 활동의 실천
        2018년 05월 30일 11: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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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이 오는 집’

    물휴지 겉봉에 쓰인 문구다. ‘행복’이란 단어가 다양한 상품의 브랜드 이름으로 여기저기 등장하는 것을 보면 행복이 이 시대 우리 모두의 로망이요, 화두인 것을 알 수 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에 대해 아는 것이 도움이 된다.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무엇일까? 학자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에 크게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유전적 설정값, 다른 하나는 외부 조건, 나머지 하나가 의도적 활동이다.

    이 중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건 유전적 요인이다. 예를 들면 컵에 물이 반 남아 있는 걸 보고 누군가는 반 밖에 납지 않았다고 부정적으로 얘기하는가 하면 다른 누군가는 아직 반씩이나 남았다면 반색을 한다. 키 작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도 성장에 필요한 영양과 운동 등을 통해 키를 조금 키울 수는 있지만, 유전적 요인은 타고 나는 것이기 때문에 바꾸기 어렵다.

    내 개인적으로는 유전적 요인에 따른 차이를 극명하게 느끼는 건 바로 명절 때이다. 부모님이 모두 이북 출신인 친정집 형제들은 다들 성질이 활달한 편이다. 그래서인지 집안에 어려움이 생겼을 땐 끽해야 5분이면 문제를 해결한다. 하지만 팔팔한 성격에다가 대대로 술과 친했던 탓에 명절에 모이다보면 어느새 고성이 터지고 자칫 몸싸움으로 이어질 위험상황으로 치달을 때가 많았다. 바로 이때 저쪽 구석에 조용히 앉아있던 사위들이 나서서 처남들을 뜯어 말려서 가까스로 파국을 막곤 하였다. 세월이 흘러 처남들이 술을 끊었고, 아쉽게도 명절이면 상한가를 치던 사위들의 값어치가 뚝 떨어졌다.

    반면에 시아주버니, 시동생 등 집안 남자의 숫자가 친정집에 비해 서너 배가 넘는 시댁의 모임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시집 간 지 40년 가까이 되지만 시댁에서 싸움은커녕 언쟁조차 일어나는 걸 본적이 없다. 국문과 출신이 자그마치 8명이나 되는 집안이라 그런가, 조용한 목소리로 음악이나 새로 나온 시집에 대한 얘기 등을 나누다가 헤어진다. 하지만 집안에 문제가 생기면 친정에 비해 해결이 더딘 편이다. 명절 때마다 친정과 시댁을 오가며 유전적 기질에 따라 만들어지는 두 집안의 풍경이 달라도 너~무 다름을 실감한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 충족될 때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성공하기 위해 오늘의 개고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연구결과에 의하면 그 반대다. 성공해야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행복하면 성공한다.

    또한 돈이 많아지면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밤낮 없이 기를 쓰고 돈을 벌려고 한다. 돈은 비타민과 같다. 우리 몸에 비타민이 부족하면 비타민 결핍증세가 나타난다. 비타민 C가 부족하면 잇몸이나 점막에서 피가 나는 괴혈병에 걸리고, 비타민 B1이 부족하면 각기병이라는 영양실조 증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비타민을 많이 먹는다고 양에 비례해서 몸에 이로운 것은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비타민을 많이 섭취해도 필요한 만큼만 우리 몸에 흡수되고 나머지는 모두 몸 밖으로 배설된다.

    돈도 마찬가지이다. 먹고 사는 의식주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돈은 필수적이며, 돈이 삶을 풍족하게 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비타민과 마찬가지로 가진 돈에 비례해서 계속 더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게다가 현실에서는 난데없이 떼돈이 생길 일은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눈 먼 돈이 많다는데 어찌된 일인지 좀처럼 나한테까지 차례가 오지 않는다.

    공부 못하는 자녀를 둔 엄마의 경우는 어떨까. 친구들과 모이면 자연스레 자식 얘기가 나오기 마련이다. 좀처럼 바닥에서 올라올 줄 모르는 자녀의 성적 때문에 주눅이 들어 번번이 대화에서 슬며시 빠지게 되는 엄마의 소원은 당근 자식의 성적 상승이다. 그것도 수직 상승. 하지만 애석하게도 자녀의 성적이 하루아침에 일취월장 점프하는 일은 거의 없다.

    연애할 땐 이 사람 아니면 죽을 것 같아서 부모님이 그렇게도 뜯어말리는데도 기를 쓰고 결혼한다. 그런데 웬열? 결혼하고 나서 보니 뱀이 허물 벗듯 옷 벗어서 그 자리에 그대로 두질 않나, TV에 눈을 고정시키느라 밥 먹고 나서도 손 하나 까딱하질 않는다. 급기야 밥 먹는 모습조차 꼴 보기 싫어진다. 남편을 무해하고 달달한 남자로 좀 바꿔치기하면 좋겠다 싶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많은 TV 드라마에선 이혼하고 애 딸린 이혼녀에게 돈 많고 잘 생긴 총각이 목숨 걸고 달려든다. 한두 번도 아니고 자꾸 보다보면 착각하기 쉽다. 어쩐지 내가 이혼해도 드라마에서처럼 멋진 남자가 내 앞에 나타날 것 같다. 하지만 착각은 파도를 넘을 뿐 우리가 손예진 같은 미인도 아닌 이상 이혼한 후 맘에 쏙 드는 남편으로 갈아치울 확률은 복권당첨 확률처럼 극히 희박하다.

    행복해지고 싶어 하면서 행복에 가장 적게 영향을 미치는데다가, 바뀔 가능성이 적은 외부 조건에 목매고 살아서는 행복에서 점점 멀어질 뿐이다. 유전적인 설정값은 거의 고정되어 있고, 외적인 조건도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면 행복하기 위해 남은 것은 무엇일까? 바로 의도적인 활동이다. 내가 행복하겠다고 마음먹고 일상생활에서 열심히 실천하는 것이다. 이 또한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영역인 것이다.

    행복하기 위한 의도적인 활동의 실천, 이것이 있기에 우리는 행복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가지려고 애쓸수록 존재는 더욱 왜소해진다 (안드레 밴덴브뤼크)

    필자소개
    20년 가까이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병동 간호사 및 수간호사로 재직했고 현재는 경인여자대학교 간호학과 교수(정신간호학)로 재직. 저서 및 논문으로 심리 에세이 ‘마음 극장’ “여성은 어떻게 이혼을 결정하는가”“ 체험과 성찰을 통한 의사소통 워크북”(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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