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레이시아서도 FTA반대 본격화
        2006년 04월 21일 07: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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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추진되고 있는 말레이시아에서 FTA 반대운동이 힘을 얻고 있다고 홍콩에서 발행되는 <아시아타임스> 인터넷판이 21일 보도했다. 미-말레이시아 FTA는 국민적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등 한미FTA와 매우 흡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미국이 지난 3월8일 FTA 협상을 공식 개시했을 때 라피다 아지즈 말레이시아 통상산업부 장관은 FTA에 대한 국내의 반대는 없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아지즈 장관의 말과는 달리 ‘지구의 친구들’, ‘제3세계네트워크’, ‘페낭소비자협회’ 등 말레이시아의 사회단체들은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이 말레이시아의 경제와 사회에 득보다는 실이 많다며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부시 행정부는 2007년 6월에 만료되는 무역증진권한(TPA)을 이용, 내년 초까지 말레이시아와 협상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정부, “무역과 투자 확대될 것”

    미국은 말레이시아의 최대 수출시장으로 말레이시아가 수출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20%가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 또한 말레이시아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나라도 미국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 점을 들어 FTA가 무역과 투자 흐름을 보다 확대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FTA에 반대하는 통상전문가들은 말레이시아의 경제규모가 작고 미국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미국과의 FTA가 말레이시아에게 전혀 유리하지 않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인권단체, 노동단체, 에이즈 감염자단체 등 말레이시아의 시민사회단체들도 FTA가 고용과 식량안보, 의약품 접근권을 비롯해 영세농·소기업·서비스업체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아지즈 통상장관은 이미 “계산을 마쳤다”며 FTA협상이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 계산이 어떤 것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FTA 경제적 효과 분석도 제대로 안돼

    <아시아타임스>는 말레이시아 재무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 미국은 이미 말레이시아와의 FTA에 대한 비용편익분석을 하고 있지만 말레이시아는 아직까지도 FTA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분석을 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말레이시아의 시민사회단체는 FTA와 같이 중요한 문제에 대한 결정을 국민들의 의사도 묻지 않고 의회의 감독절차도 없이 진행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FTA반대단체의 림킷시앙 대표는 “(비용편익) 분석도 없이 미국과 협상을 본격적으로 벌이는 것은 눈감고 하늘을 날으는 것과 같으며 무책임한 행보”라며 정부의 투명하지 못한 협상진행을 비판했다.

    이같은 불만은 말레이시아의 인접국인 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태국 정부 역시 미국과의 FTA협상을 비밀리에, 의회의 감시도 없이 추진해 물의를 빚었다. 반대진영은 FTA는 주권을 침해하고 정치권과 결탁된 일부 대기업들에만 혜택이 돌아간다고 주장하고 있다. 태국의 FTA협상은 반정부 시위로 탁신 총리가 물러날 뜻을 밝힌 뒤 새 정부 출범 이후로 미뤄졌다.

    <아시아타임스>는 미국이 9.11 테러 이후 자국의 대테러 정책에 협력한 나라에게 FTA를 선물처럼 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시아태평양 국가들 가운데 처음으로 미국과 양자간 협정을 맺은 싱가포르와 호주는 미국의 전략적 동맹국이다.

    처음에는 미국의 대테러 정책에 미온적이었다가 나중에 협조하기 시작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뒤늦게 FTA 협상을 제안 받았다.

    강제실시 제한 HIV 감염자 생명 위협

    통상전문가들은 세계무역기구(WTO)의 다자간 교섭 하에서 얻을 수 있는 잠재적 이익이 FTA로 인해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를 겨냥한 과거 미국의 양자간 협정과는 달리 FTA는 투자, 서비스, 지적재산권 등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고 있다. 게다가 미국 기업이 말레이시아에서 공정한 대우를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정부를 제소할 수도 있고, 미국으로부터 무역제재를 당할 수도 있다.

    특히 지적재산권과 관련, 미국은 자국의 제약산업 보호를 위해 WTO가 이미 허용하고 있는 강제실시(compulsory licensing, 비상시 일반의약품 생산을 허용하는 조치)마저 FTA로 제한하려 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태국에서는 특히 HIV 감염자 치료에 쓰이는 항리트로바이러스 치료법에 대한 접근권이 우려되고 있다. 말레이시아 HIV 감염자단체는 FTA로 지적재산권 조항이 강화돼 일반의약품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고 미국의 특허 치료법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비싸지는 것을 우려하는 편지를 압둘라 바다위 총리에게 보냈다.

    FTA는 말레이시아 정계 내에서 이미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총리는 미국과의 FTA가 화교들과의 경제격차를 줄이기 위해 말레이계 등 원주민들에게 특혜를 주도록 한 ‘신경제정책’을 해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제단체들도 정부조달 분야를 FTA에서 제외시켜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FTA 추진에 매우 적극적이다. 미국의 기업들은 현재 말레이계 원주민들의 손아귀에 있는 금융분야 접근을 노리고 있다.

    미국쌀 들어오면 농업 파탄

    얼마 전까지 무역대표를 맡았던 롭 포트먼은 말레이시아와의 FTA는 미국의 기업들, 특히 통신, 금융서비스, 에너지, 보건, 시청각, 전문서비스 분야에 시장개방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은 또한 현재 4억 달러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대 말레이시아 농산물 수출을 확대시킨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현재 수입쌀에 40% 관세를 매기고 있다.

    FTA 반대진영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멕시코에 옥수수 수입이 세배로 늘어나면서 2백만이 넘는 농민들이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된 사례를 들며 미국의 쌀이 저가로 공급되면 취약한 말레이시아 농업은 파탄이 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 FTA가 말레이시아의 무역수지 흑자를 적자로 돌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현재 말레이시아의 관세는 미국의 두배 수준이다. 미국의 전미제조업협회(NAM)는 제조업의 대 말레이시아 수출이 2010년까지 두 배로 늘어 220억 달러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더구나 미국과 FTA를 맺은 국가들의 경험을 보면 무역량도 줄어들게 된다. 미-호주 FTA의 경우 협정이 발효된 첫 1년 동안 호주의 대미 무역량은 실제로 줄어들어 무역적자를 야기한 바 있다.

    과거 말레이시아는 세계무역기구 안에서 정부조달, 투자, 경쟁정책에 대해 미국이 주도한 정책에 주로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2020년까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겠다는 말레이시아의 계획에 반하는 조치들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시아타임스>는 세계무역기구에서 다른 개발도상국들과 함께 싸우는 것은 쉽지만 미국 주도의 FTA 시대에 말레이시아와 같이 수출의존적인 나라들은 미국의 요구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위험에 처해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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