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마트가 월마트 이겼다고?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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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4월 21일 02: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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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한 동네에 가로등 불빛이 알맞게 조화를 이루는 골목을 지나면, 24시간 문을 열어놓는 슈퍼마켓이 나타난다.

    2년 전 처음 이사를 올 때만 해도, 이 가게는 24시간 동안 장사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 점차 영업시간을 늘리더니, 이제는 아예 밤새 영업을 한다. 내가 집으로 들어오는 시간은 대부분 새벽이다. 두 시도 좋고 세 시도 좋다.

    엄마-아빠-아들의 3조 맞교대 가족

    가게 안에는 상관의 눈을 피해 잠을 청하는 보초와 같은 모양으로 주인이 잠들어있다. 문을 열면, 화들짝 놀라 손님과 눈을 마주친다. 차라리 누가 가게에 오지 않고 잠을 더 잤으면 하는 표정이라고 느끼는 건 순전히 내 생각일까.

    난 이 슈퍼마켓에 올 때마다 “오늘은 과연 누가 가게를 지키고 있을까”하고 궁금해 한다. 어느 날은 아주머니, 어느 날은 아저씨, 어느 날은 아직은 고등학생인 아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마디로 가족이 돌아가면서 가게를 지키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 이 가족은 ‘3교대 근무’를 한다. 아들이 시험기간이면 좀 열외가 되지만, 주말에는 좀 더 장시간 가게를 지켜야 한다. 물론 평일에도 틈틈이 돕지만, 부모에게 외부 일이 생기면 ‘무조건’ 슈퍼마켓 계산대에 앉아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먹고 살지 않으면 안 되니 방법이 있나요.”
    어느 날 심각한 가족회의를 통해 24시간 영업이란 고뇌에 찬 결단을 내렸을 그들의 모습이 상상 된다. 막내아들은 부모에게 불평 한마디쯤 던졌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부모의 심각한 분위기에 짓눌러 순순히 따랐을 수도 있다.

    “막내아들이 가게를 보면서 공부해서 대학에 입학했어요. 막내한테는 늘 미안했죠. 첫째 아이는 군대에 있는데, 동생한테 미안한지 휴가를 나오면 늘 새벽에 가게를 지켜요.” 어머니의 말이다.

    “그 놈의 까르푸 때문에 동네 구멍가게 다 망했지”

    슈퍼마켓에서 언덕 하나를 넘으면 빛나는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이 있고, 그 안에는 영세자영업자들의 ‘공공의 적’ 대형할인매장 까르푸가 있다.

    어느 날 밤 귀가 길에 만나 얘기를 나눴다. 주인집 아주머니의 말.
    “그 까르푸 때문에 이 동네가게 다 망했어요. 구멍가게가 뭔 재주로 거기랑 경쟁이 된답니까. 가게 영업시간이라도 늘려야 먹고살죠.” 가족 간의 3교대 근무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슈퍼마켓의 영업방침은 바로 이 까르푸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

    까르푸와 같은 대형 할인매장 문제는 정부가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서 유통시장의 대대적 개방을 약속했던 것에서 출발한다. 1996년, 소매유통시장을 개방하고 난 뒤, 정부는 이에 맞서는 국내 대형유통자본의 육성을 추진하는 정책을 펼쳤고, 이에 따라 이마트 등 국내유통재벌이 성장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정부는 대형할인점에 대한 영업활동규제 완화 등의 조치를 취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간혹 월마트, 까르푸 등의 외국 자본이 국내 자본인 이마트 등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한다며 뿌듯함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주로 정부와 언론, 국내 대자본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외국 마트든 국내 할인점이든 우리한테는 다 똑같아"

    하지만, 본인과 가족의 생사를 걸고 10평 남짓한 곳에서 죽을 고생하는 영세 자영업자가 과연 외국 대형할인마트를 누른 국내 대형할인마트의 승리에 ‘애국심’을 발휘해 박수를 칠 수 있겠는가. 이건 국가 대항 축구게임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그놈이 그놈이다.

    다시 3교대 24시간 슈퍼마켓 가족을 생각해 보자. 이 가족은 1996년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서 대대적인 유통시장이 개방될 때, 지금의 상황을 예측이나 했을까. 신문에서 봤던 우루과이 라운드가 과연 한 가족의 잠자리를 파괴하며, 가족 중 한 명은 매일 형광등 불빛 아래 선잠을 자야하는 상황을 예측이나 했겠는가.

    정책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내수를 살리기 위해 시도된 무분별한 카드발급의 후유증으로 우리 사회는 심각한 홍역을 치러야 했다. 신용불량자 400만명, 생계형 범죄의 등장, 카드 빚으로 인한 자살로 이어진 걸 우리는 너무도 잘 안다.

    요즘은 5월31일에 있을 지방선거 예비 선거운동 기간이다. 민주노동당 마포구위원회 예비후보와 함께 상가를 다닐 때 하는 말이 있다.

    “유통시장이 개방돼서 이렇게 장사가 안 되는 건 줄 모르셨을 겁니다. 그런데 더 큰 게 와요. 한미FTA 들어보셨죠. 그거 체결되면 남아나는 게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늘 관심을 가지고, 누가 도대체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지 누가 이익을 보고 손해를 보는지 잘 봐두셔야 합니다.”

    초국적 자본이 구멍가게 가족에게 남긴 것들

    수많은 시민사회 단체들이 모여 한미FTA를 저지하기 위한 운동본부도 구성했다. 그런데 한미FTA 체결 이후 누구보다 피해를 볼 서민들이 ‘구체적이고 끔찍한 상상’을 하게끔 만들어 주기에는 많은 한계를 느끼게 된다.

    도대체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 건지, 어떻게 우리 이웃의 삶이 가족의 미래가 피폐화 될지, 나조차 구체적이고 끔찍한 상상을 하지 못한다. 사람들의 피부에 와 닿는 ‘경고’가 필요하다. 은근슬쩍 흘리는 경고가 아닌,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경고말이다.

    다시 슈퍼마켓 가족의 얘기다.
    “슈퍼하시기 전에는 뭐하셨어요.”
    “우리도 넥타이 매고 다니는 직장에 다녔어요. 처음부터 이 장사한 건 아니에요.”
    슈퍼마켓 아주머니가 조금은 공격적으로 반응을 한다.

    “아, 그럼 아이엠에프 때 직장 관두시고 장사를 하셨나 봐요.”
    “그런 건 아니고, 아무튼 우리 아저씨도 넥타이 매고 다니는 직장에 다녔어요.”
    아저씨의 넥타이가 풀린 사연이 기구한 듯, ‘넥타이 매고 다니는’ 직장을 강조하며 입을 닫는 아주머니. 지금은 슈퍼마켓 사장으로 신분이 ‘몰락’했지만, 과거엔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모습이 오히려 더 서글프다.

    초국적 자본과 맞서는 슈퍼마켓 가족의 돌파구는 3교대 근무다. 어쩌면 너무도 가냘프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살아야겠기에 아직은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보정당이라면, 언제까지 슈퍼마켓 가족이 편안한 잠자리를 포기하게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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