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 못지않은 트럼프의 벼랑끝 전술
    “아직 완전히 판 깨진 건 아냐”
        2018년 05월 25일 12:5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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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6.12 북미정상회담을 돌연 취소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한반도 정세가 중대 고비를 맞았다. 다만 북미 모두 향후 회담 개최의 여지는 남겨둔 상황이라 “완전히 판이 깨진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 다수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당신들의 최근 담화가 보여준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 적대감”을 이유로 북미회담을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나온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담화를 통해 리비아 방안을 언급한 펜스 미국 부통령에 대해 원색 비난한 것이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회담을 취소하기로 한 결정적 이유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는 “언젠가 다시 만나기를 고대한다”며 “당신 마음이 바뀐다면 전화하거나 편지를 쓰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에 북한은 25일 중앙조선통신을 통해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를 발표했다. 김 부상은 담화에서 북미회담 취소가 “조선반도는 물론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인류의 염원에 부합되지 않는 결정”이라면서도 “역사적 뿌리가 깊은 조미(북미) 적대관계의 현 실태가 얼마나 엄중하며 관계개선을 위한 수뇌 상봉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며 대화의 재개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한 “미국 측에 시간과 기회를 줄 용의가 있다”, “우리는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음을 다시금 미국 측에 밝힌다”며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다.

    “북한 못지않게 더 강력한 벼랑 끝 전술을 쓰는 사람이 트럼프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이 돌연 회담을 취소하기로 한 것에 대한 배경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펜스 부통령을 비난한 최선희 부상의 담화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날 오전 MBC 라디오 ‘이범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자신이 제시한 기준인 CVID을 충족시키지 않으려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북한을 20일 내에 설득할 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 부상 명의의 담화에 ‘CVID 같은 그런 얘기를 하면서 횡설수설하고 주제넘게 놀아났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어 “국제사회 반대에도 이란핵 합의를 깼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북한에 이란핵 합의보다 더 강력한 비핵화를 얻어내야 하는데 도저히 자신이 없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 수석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중회담 이후 북한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한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 표시가 “(북미회담 파기에 대한) 책임회피를 위한 복안을 마련해둔 게 아닌가 의심이 있었다”며 “그런데 마침 최선희 담화를 듣고 ‘원하는 성과는 도저히 못 낼 수 있다’, ‘망신당하겠다’ 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도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인터뷰에서 “최선희 부상이 펜스 부통령을 아주 심하게 인격공격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회담장에서 만날 것인지 핵 대결장에서 만날 것인지 미국이 선택하라’는 강한 대미 불만, 내지는 공격적인 담화를 낸 것이 트럼프뿐만 아니라 미국의 지도부를 상당히 분개하게 한 것 같다”면서 “보좌관에 대한 공격, 비난까지는 참을 수 있지만 부통령까지 공격하는 건 대통령으로 가만있을 수 없다는 정서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은 최선희 부상의 그런 담화가 나오게 한 것은 펜스 부통령”이라고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미국을 상대로 자기네들이 써왔던 벼랑 끝 전술이 트럼프에게도 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완전히 잘못 짚은 것”이라며 “풍계리 핵 실험장 폐기를 확인하고 회담 취소한 걸 보면 북한 못지않게 더 강력한 벼랑 끝 전술을 쓰는 사람이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미국도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상당한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김연호 존스홉킨스대 연구원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회담 성사 자체를 협상 카드로 흔들어온 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렇게 회담을 목전에 두고 대통령이 직접 공개서한을 통해서 취소를 했다는 사실에 대해선 미국 내에서도 굉장히 충격이 크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TV와 라디오 뉴스 채널은 하루종일 북미 회담 취소 소식을 헤드라인으로 다루고 있다”며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국무부 예산안 청문회에서 예산안보다는 북미 회담 취소에 대한 질문을 집중적으로 받았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러한 결정을 한 데엔 미국 내 강경파의 역할이 있었을 것이라는 일각의 분석에 대해선 “백악관 강경파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최종적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며 “공개서한을 봐도 말투나 논리적인 전개 방식이 굉장히 트럼프 대통령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북미회담 취소 결정 배경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항상 ‘나 자신과 미국은 북한보다 강하다’ ‘미국의 압박으로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나왔다’는 논리를 폈다. 그런데 자기 바로 밑에서 국가안보보좌관 또 부통령 이렇게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비판을 했을 때는 거기에 대해서 더 강력한 반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북미 회담 일정 등 재논의 가능성 있어

    다만 북미 양측 모두 향후 회담의 가능성을 열어둔 상황이라 전망이 아주 어둡지는 않다.

    홍현익 수석연구위원은 북미회담 취소 발표 후 나온 북한의 입장에 대해 “다행스럽다”며 “(북한이 미국을 비난했다면) 감정싸움으로 치달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북한도 아직 협상의 가능성은 충분히 남아 있다고 보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도 “신경전이 극에 달해서 트럼프가 최고난도의 협상의 기술을 건 것뿐이지 진짜로 북한과 회담을 안 하겠다는 건 아니다”라며 “회담의 여지는 향후에 남아 있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김연호 연구원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서한에 굉장히 표현을 절제하고 그리고 전쟁 위협을 피하고 협상을 계속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동안 봤던 트럼프 대통령하고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모습”이라며 “(6.12회담은 깨졌지만 전체적으로 북미관계가 파탄난 것으로) 성급하게 판단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관측했다.

    북미회담 일정 등을 재논의할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이에 따른 한국 정부의 역할이 더 막중해진 상황이다.

    정세현 전 장관은 “미국은 지금 북한한테 굽히고 들어오라는 얘기인데, 북한이 그렇게 할 수 있겠나”라며 “결국 북한이 고개 숙이는 것이 아니고 ‘남한 대통령 때문에 내가 회담에 나가준다’하는 식으로 변명할 수 있는 거리를 문재인 대통령이 만들어 줘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남북 정상 간에 직접대화를 해야 되는 상황이 된 것 같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에 대해 반발하는 멘트가 김정은 위원장 입으로 직접 나오기 전에 문 대통령이 서둘러서 핫라인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을 달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현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사람은) 김정은 위원장 한 사람밖에 없는데, 김정은 위원장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사람도 문재인 대통령 뿐”이라며 “문 대통령의 집요한 노력이 다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으리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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