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4일 차별하고 하루 기념하면 되겠니?
        2006년 04월 21일 12:1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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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0일. 스물여섯번째 장애인의 날이다. 올해도 여지없이 보건복지부와 전국의 지자체에서는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떠들썩한 행사를 준비하고 역경을 딛고 일어선 장한 장애인에게 포상을 내렸다. 이날만큼은 각종 방송과 신문의 주인공은 장애인이다.

    이에 대해 장애인 당사자들은 “한국은 364일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회”라며 단 하루, 장애인에 돌리는 시혜와 동정의 시선을 거부하고 장애인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올 때까지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로"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교육지원법, 활동보조인제도화를 촉구하며 1000여명의 장애인들이 거리행진에 나섰다.
     

    “우리의 요구를 약간의 떡고물로 무마시키려하지 마라”

    지난 2002년 발족한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이하 공동투쟁단)은 장애인의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외로운 투쟁을 벌이다 음독자살한 최옥란 열사의 기일인 3월 26일부터 장애인의 날인 4월 20일까지를 장애인차별철폐 주간으로 정하고 장애인권과 관련된 다양한 투쟁을 전개해왔다.

    올해로 다섯 번째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인 20일 오후 2시 서울역 앞에 모인 1000여명의 공동투쟁단은 시청앞에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외친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장애인교육지원법, 활동보조인제도화 등 3대 요구안의 정당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 자리에는 민주노동당 천영세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희망사회당 신석준 대표, 민주노총 조준호 위원장 등이 참석해 이들의 씁쓸한 기념일에 동참했다.

       
     
    ▲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교육지원법, 활동보조인제도화를 의미하는 각기 다른 색깔의 조끼를 입은 집회 사회자들.
     

    공동투쟁단은 이 자리에서 지난 한달 간 정부와 서울시를 상대로 벌인 투쟁경과를 보고하고 이들의 요구안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투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을 촉구하며 37일간의 단식을 진행한 장애인교육권연대는 지난 14일 김진표 교육부총리와의 면담을 성사시키고 장애아의 의무교육을 포함한 3가지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합의사항을 문서화하라는 장애인교육권연대의 요청에 교육부는 ‘믿어달라’는 대답만 할 뿐이다.

    활동보조인 제도화를 촉구하며 지난 3월 19일부터 서울시청 앞에서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은 이명박 서울시장과의 면담과 활동보조인 제도화와 관련된 서울시의 공식적인 입장표명을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서울시로부터 어떠한 대답도 듣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장애당사자가 만든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이미 지난해 9월 국회에 입법발의되었지만 차별시정기구를 단일화하라는 정부방침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가 발의할 차별금지법과 병합심의될 예정이어서 독립적인 장애인의 차별금지법 제정에 제동이 걸려있다.

    이에 따라 장애인차별철폐추진연대(준)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지지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하면서 인권위 점거농성을 진행중이며 오는 28일 인권위와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공동투쟁단은 “우리 사회와 정부는 여전히 약간의 떡고물을 던져주며 무마하려할 뿐 어떠한 성의있는 답변도, 변화된 모습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면서 “장애인의 교육권을 말로는 보장할 수 있지만 문서로 약속할 수 없다는 교육부에, 1조원을 들여 오페라하우스를 지으면서 활동보조인제도화 예산은 없다는 서울시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최고권력자의 한마디에 휴지조각을 만드려는 정부에 더욱 가열찬 투쟁으로 화답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루뿐인 장애인 잔치판을 그만둬라”

       
     
    ▲ 활동보조인제도화를 촉구하며 지난 17일 삭발한 한 중증장애인이 경찰병력과 대치하면서 행진에 나서고 있다.
     

    공동투쟁단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는 기만에 빠져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장애를 극복한 훌륭한 장애인과 장애인을 위해 봉사하는 아름다운 이웃에 박수칠 동안 부산에서는 40대 아버지가, 서울에서는 70대 할아버지가 장애를 지니고 있는 아들과 손자의 목숨을 끊어버리고 말았다”면서 “사회에서 배제되고 시설과 집안에 처박히고 그것도 모자라 부모의 손에 죽어가야만 하는 한 생명에 대해 우리 사회는 그저 안타깝다는 말 한마디를 남길 뿐”이라고 성토했다.

    공동투쟁단의 박영희 공동대표는 얼마 전부터 인터넷에 회자되고 있는 패스트푸드점의 한 중증장애인의 사진을 언급하면서 “중증장애인에 음식을 먹여주는 점원의 모습에는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극찬하면서도 정작 그 중증장애인이 어떤 심정일까 생각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개탄했다.

    박 대표는 “활동보조인을 제도화하라며 머리를 삭발한 39명의 중증장애인과 37일간 곡기를 끊은 장애아 학부모, 5년에 걸쳐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는 우리의 목소리는 아직 메아리에 그칠 뿐”이라고 성토했다.

    연대사에 나선 민주노동당 천영세 원내대표는 “장애인의 날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는 뻑적지근한 행사는 장애인의 처우개선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면서 “더욱더 허리띠를 졸라매서 장애인 대중이 사회구성원으로 자리잡을 때까지 싸워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투쟁은 계속된다

       
     
    ▲ "장애인에게 좋은 세상은 비장애인에게도 좋은 세상입니다" 행진이 진행되는 도중 경찰측과의 물리적 충돌로 한 장애인의 휠체어가 길을 가지 못하고 있다.
     

    “4월 20일이 지났다고 우리의 투쟁은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내일도, 모레도 같은 자리에 서서 장애인 차별을 철폐하는 투쟁에 나설 것이다”

    공동투쟁단은 서울역에서 집회를 마친 뒤 시청까지 향하는 행진을 시작했다.

    오후 3시 30분부터 시작된 행진은 경찰과 점거차로 간격을 두고 잦은 실랑이를 벌이며 가다가 서다를 반복했다.

    이로 인해 남대문 앞에서는 2시간동안 행진이 중단됐고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을 빚기도 했다.

    몸이 오그라드는 추운 날씨에도 이들의 행진은 장장 4시간에 걸쳐 계속됐다. 서울역과 시청을 잇는 거리는 1.14km이고 비장애인이 걸어갈 경우 약 2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국가인권위원회 앞에 대오가 도착한 시작은 이미 날이 저문 오후 7시 30분이었다.

    정리집회를 갖고 자진해산을 한 이들은 내일도 계속될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을 위해 시청앞과 국가인권위원회에 자리잡은 농성장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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