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상은 '정말' 가능하다
    2006년 04월 20일 05:5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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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프랑스에서 ‘승리’의 소식이 들렸지만 사기업화(민영화), 탈규제, 사회복지 축소, 노동 유연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선 세계민중들의 투쟁은 패배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국제금융기구들이 차관 제공의 조건으로 내거는 민영화 압력 앞에 제3세계 정부들은 자산을 초국적 자본에게 힘없이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골리앗에 맞선 다윗과도 같이 이들의 거센 민영화 추진을 저지한 사례도 적지 않다. 국제자유노련(ICFTU)는 우루과이, 남아공, 크로아티아,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 탄자니아 등에서 있었던 민영화 반대투쟁 사례를 연구한 결과를 담은 보고서 <대안을 위한 투쟁>을 19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는 피할 수 없다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노동자, 민중들의 투쟁에 의해 끝내 저지된 기록들이 담겨있다. 

우루과이, 국민투표로 물 민영화 저지

2001년 아르헨티나가 외채 1천4백억 달러에 대한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하자 인접국인 우루과이 경제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실업률은 20%에 육박했고 정부가 대량 현금인출 사태를 막기 위해 시중은행에 대해 일시적인 영업중지를 지시할 정도였다.

   
 
 

호르헤 바트예 대통령은 2002년 3월 상하수도 업무를 포함해 공공부문 전반을 신속히 민영화하는 내용이 담긴 아이엠에프와의 협약에 서명했다. 세계은행은 물 민영화를 추진하는 조건으로 1억5천만 달러의 구조조정차관을 제공하면서 우루과이의 국영수도회사(OSE)가 비효율적이며 말도나도 지방의 물 민영화를 사례를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2000년에 민영화된 말도나도 지역의 주민들은 수도공급업체가 요금을 7배나 올리는 바람에 고통받고 있었다.

물 민영화가 진행되면서 우루과이의 노조와 시민단체, 환경단체들은 ‘물과 생명 수호 전국위원회’(CNDAV)라는 광범위한 연대조직를 지역에서부터 결성하고 국민투표를 대안으로 내놓았다. 국영수도회사 노동자들은 말도나도 민영화 저지투쟁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국민투표만이 물 민영화를 저지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2004년 10월31일 대선과 함께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물 민영화를 금지시키고 물 서비스는 정부가 보장해야 할 “기본적인 인권”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헌법 47조 개정에 대해 투표자의 64.6%가 찬성표를 던졌다.

대선에 당선된 우루과이 최초의 좌파 대통령 타바로 바스케스는 이미 민영화된 곳은 개정헌법을 소급적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이었지만 노조와 시민단체들의 반발로 이를 철회했다. 국민투표 1년 뒤인 2005년 10월 우루과이의 국영석유회사는 과거 민영화됐던 일부 지역의 물 서비스까지 재국유화했다. 우루과이의 물 민영화 저지는 국제금융기구들과 초국적 기업들의 사유화 추진에 대해 국민투표를 이용해 저지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남아공, 철도 분할매각 막아내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흑백인종분리정책)에 맞선 투쟁 끝에 집권한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1996년 ‘성장 고용 재분배’(GEAR)라는 이름의 거시경제 프로그램을 채택했다. GEAR는 “전략적이지 않은 국유 자산의 매각”과 “운송, 통신 분야의 공공-민간 협력”을 통해 공공부문의 자산을 재조정하고 정부지출을 줄이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남아공 정부는 1999년 국영운수회사인 트랜스넷에 대한 구조조정을 단행해 노동자 1만7천명을 해고했다. 트랜스넷은 영국의 거대 금융그룹인 로스차일드의 자문을 받아 남아공 철도를 6개로 분할해 사기업체에 매각할 계획을 수립했다. 세계은행의 민영화 모델이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남아공 정부가 이같은 방침을 발표하자 코사투를 비롯한 노조진영은 △노조와의 협의가 없고 논의과정이 투명하지 못한 점 △안전성이나 효율성에서 문제가 있는 분할매각이라는 점 △대량해고 사태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들어 민영화에 대한 반대입장을 정리했다.

노조측은 반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 역제안을 했다. 철도에 대한 감독시스템을 개선하고 교육훈련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노동자 경영참여를 시행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노조와의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자 코사투는 이틀 동안 총파업을 벌이며 정부를 압박했다. 결국 정부는 2001년 3월부터 노조와 철도 구조조정 방향에 대한 협상을 벌이기 시작했고 이듬해 민영화 철회를 약속하는 합의서에 서명했다.

크로아티아, 노동시장 유연화 맞선 총파업

2002년말부터 2003년초까지 크로아티아에서는 한국의 1996~1997년 총파업과 비슷한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다. 통신, 체신, 보건의료, 교사, 제조업 등 전 분야에서 아이엠에프와 세계은행이 추진하는 노동개혁에 맞선 총파업이 벌어졌다.

2002년 의회는 노동법 상 해고제한 규정을 없애는 법안을 상정했다.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세계은행과 아이엠에프가 요구한 사항이었다.

크로아티아 노총은 대대적인 총파업에 돌입했고 정부와 협상을 통해 기간제 계약의 경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에 한해 허용하고, 취업 6개월 내에는 고용주가 아무런 사유 없이도 해고할 수 있는 조항을 삭제하는 등의 성과를 얻었다. 국제금융기구들에 의한 노동시장 유연화 시도는 동유럽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크로아티아 노조의 투쟁으로 현실화되지 못했다.

아르헨티나, 우편 서비스 재국유화

1989년에 집권한 카를로스 메넴 정부는 아이엠에프와 세계은행의 조언을 충실히 따랐다.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에 따르면 1990년부터 1994년까지 메넴 정부는 항공, 가스, 철도, 발전 및 송배전, 통신, 우편, 상하수도, 석유채취, 석유화학, 석탄, 제철, 은행 등 거의 모든 국유자산을 매각했다. 메넴은 민영화 추진과 함께 단체교섭을 산별에서 기업별로 전환하는 노동법도 도입했다.

메넴 정부는 1997년 마크리라는 사기업체에 20년 계약으로 우편서비스의 운영권을 넘겼다. 메넴 대통령을 지지했던 노조진영에서는 민영화를 놓고 찬반으로 의견이 갈렸다. 주로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따로 노총을 결성하고 메넴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였다.

2000~2001년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집권한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2003년 마크리 그룹과의 계약을 취소하고 우편 서비스를 재국유화했다.

인도네시아, 전력 민영화 위헌판결 받아내

인도네시아 헌법재판소는 2004년 12월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다. 세계은행과 아이엠에프의 압력으로 전력산업 민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법안에 대해 헌법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세계은행이 2조4천260만 달러 차관을 제공하면서 강요한 합의서에 따라 만들어진 법안은 국영전력회사를 분할 매각하고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전력공사 노조는 민영화 반대 캠페인에 들어갔다. 노조는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을 내기로 하고 시민단체들과 함께 2개월 이상 서류를 준비해 헌법재판소로부터 “인도네시아 전력 서비스는 국가에 의해 관리돼야 한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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