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 자리에 조재진? 아니거든…안정환 밖에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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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4월 20일 08: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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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국이 부상을 당했다. 6월에 있을 월드컵 본선 출전이 불가능해졌다. 정말 지독한 고통이리라.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국가대표에서 탈락한 이후, 그야말로 절치부심으로 달려온 4년 가까운 시간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동국의 부상으로 그를 대신할 선수가 누구냐를 둘러싸고 논란이 한창이다. 현재 물망에 오르고 있는 선수는 독일 분데스리가 뒤스부르크에서 뛰고 있는 2002한-일 월드컵 최고의 스타 안정환, 영국 프로축구 2부 리그인 챔피언십리그 울버햄프턴에서 뛰고 있는 설기현, 일본 J리그 시미즈 에스펄스의 조재진 등이다.

큰 경기에서 골을 넣어본 경험이 필요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안정환만이 이동국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고? 그것은 우선 ‘경험’ 때문이다. 큰 경기에서 결정적 골을 넣어본 적이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 지금의 한국 대표팀이 2002 한-일 월드컵 때와 달리 홍명보 같은 뚜렷한 전적을 보유하고 있는 베테랑이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더욱더 그렇다.

   
 
   ▲ 이동국과 안정환의 연습 장면 ⓒ연합뉴스
 

안정환은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을 전전하며 유럽축구 분위기를 아주 잘 알고 있다. 설사 박지성과 같이 주전자리를 꿰차고 뚜렷한 업적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그는 견뎌내고 있다.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보기 힘든 경우다.

게다가 그는 여전히 한국 축구 최고의 테크니션이다. 한 박자 빠른 슛 타이밍, 움직이면서 패스를 받아 슛을 때리고 크로스를 골로 연결시킬 수 있는 위치선정 능력 등에서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개인기로 수비수를 제치고 슈팅할 수 있는 능력도 겸비하고 있다.

쉐도우 스트라이커 자리에 배치되어 최전방 스트라이커에게 찬스를 만들어주거나 공격형 미들필더의 후방 침투를 도와주는 능력도 우수하다. 경기 감각과 적응능력이 뛰어나 교체출전에도 무리가 없다.

설기현, 전형적인 윙포워드이지 타겟 맨 아니다

반면에 설기현은 전형적인 타겟 맨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경기 스타일은 물론이고 그간 맡아왔던 보직도 스트라이커는 아니었다. 벨기에 리그 시절 소속팀 안드레흐트에서 중앙 공격수를 맡은 바도 있었고 골을 성공시킨 적도 있었지만 강한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오랫동안 그의 주특기는 측면 돌파와 크로스였다. 2002 한-일 월드컵 시절 히딩크 사단의 3-4-3 시스템에서도 그는 윙포워드였다. 좁은 공간에서 순간적인 움직임을 통해 작은 틈새를 노려야 하는 스트라이커가 되기에는 동물적인 감각도 부족하고 보폭도 큰 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담력이 부족하다. 결국 설기현은 적은 경험과 약한 체력에 허덕거리면서도 왼쪽 측면 공격수로 활약하고 있는 박주영을 대신하거나 경합할 카드이지 이동국을 대신할 카드는 아니다.

조재진, 자질은 있으나 더 커야 한다

끝으로 조재진? 한숨이 나온다. 최근 골 감각이 좋다는 이유로 조재진이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출신의 공격수 중 일본 J리그에 가서 어느 정도 골을 ‘못 넣는’ 선수는 없다. 왜냐고? 일본축구는 전반적으로 스트라이커보다 미들 필더를 중점적으로 육성하는 등의 이유로 대체적으로 주전을 쉽게 차지하는데다가 양질의 패스 공급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그런데도 미들필더로서 ‘교토의 별’이 되었던 박지성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특히 한국 최고의 미들 필더로 명성이 자자했던 윤정환의 부진에 비했을 때 더욱 그렇다).

그리고 J리그는 K리그와 더불어 가장 느린 경기템포를 자랑하는 ‘굼벵이’ 축구이다. 월드컵과는 하늘과 땅만큼의 큰 차이가 있다. J리그에서의 업적을 그 자체로 평가해주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J리그에서 득점왕이 되는 등 한창 날렸던 최용수를 기억해보라. 조재진보다 훨씬 경험도 많고 날카로운 공격력을 갖고 있어 독수리로 불렸던 그마저도 J리그의 경험이 월드컵과 같은 큰 무대에 별반 도움이 되지 못함을 여실히 보여주지 않았던가 말이다.

홍명보, 유상철, 황선홍, 김도훈 등 모두 J리거로서 위용을 떨쳤으나 그들은 이미 그 이전부터 국가대표로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었다. 물론 조재진이 폭넓은 움직임과 헤딩력, 볼키핑 능력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얼마 전 이동국 부상 후 그를 대신할 선수를 찾기 위해 일본에 날아가 조재진을 보고 온 2002 한-일 월드컵 4강신화의 주역이자 과학축구의 대명사인 펨베어백 코치도 그에 대해 “전형적인 타겟맨”으로서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나도 조재진이 자질 있는 선수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펨베어백 코치의 말이 바로 그 자질 자체에 대한 평가였거나 여전히 딜레마에 빠져 있음을 토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히딩크가 선택한 것은 결국 황선홍이었다

2002 한-일 월드컵 때 히딩크가 결국 선택한 것은 노장 황선홍이었다. 난 당시 황선홍이 히딩크에게 무언가 확신을 주는 플레이를 보여주었다고 기억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딩크는 황선홍을 선택했다.

그래도 1994년 강호 독일과의 월드컵 본선 경기에서 폭염을 이겨내며 고군분투하며 골을 넣어본 공격수가 나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드보카트가 알려진 바와 같이 명감독이라면, 난 그가 결국 안정환을 선택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안정환만이 대안이다. 단 페털티킥은 안정환에게 맡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동국이 이 바보야, 살살 좀 뛰지 그랬어

이동국이 부상을 당했다. 6월에 있을 월드컵 본선 출전이 불가능해졌다. 정말 지독한 고통이리라.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국가대표에서 탈락한 이후, 그야말로 절치부심으로 달려온 4년 가까운 시간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동국은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단 한 경기도 보지 않았다고 했다. 아니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그랬을까. 하지만 2002 한-일 월드컵이 끝나고 난 후 그는 괴로움을 이겨내고 달라지기 시작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까지만 해도 이동국은 탁월한 발목 힘에 바탕을 둔 터닝슛 능력은 쓸만하지만, 움직임이 부족하고 공간을 창출하면서 스스로 찬스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가대표에서 탈락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랬던 그가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자신의 단점들을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면서 ‘포스트 히딩크’ 시대를 대표하는 ‘믿음직한’ 스트라이커가 되었다. 이 때문에 한국의 많은 축구팬들은 그가 독일 분데스리가 시절의 부진을 이번 독일 월드컵을 계기로 말끔히 씻어내고 월드스타로 거듭나기를 바랐던 것이었다. 말 그대로 ‘고진감래(苦盡甘來)’진하길 기원했던 것이다.

비애가 배어있어 더욱더 찬연히 빛나는 스트라이커가 되길

그러나 그는 아주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대표팀 엔트리 확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각각의 선수들은 K리그 소속팀에서도 열심히 뛰어 자신의 역량을 입증해야 한다고 언명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알 수 없지만, 이동국은 7경기에 출전해서 6득점을 올리며 경기당 0.86득점이라는 높은 골 감각을 선보이면서 국가대표 스타라이커로서의 기대와 신뢰를 차근차근 쌓아가고 있던 중이었다.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하면 월드컵에 나가 뭔가 일을 저질러도 저지르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는 정말 ‘바보 같이’ 열심히 뛰었다. 2002년 겪어봤던 머리와 가슴이 터져 죽을 것 같았던 그 아픔을 결코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그는 그러다가 그만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팬들의 성원은 물론 그의 강한 의지조차 부상이라는 ‘불운’ 앞에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워낙 답답해서 하는 말, “이 바보야 살살 좀 뛰지 그랬냐”.

이제는 어쩔 수 없다. 황선홍 역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막판 부상으로 벤치를 지키며 안타까움의 세월을 보낸 바 있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도 황선홍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의 시작을 알린 폴란드전에서 결승골을 넣는 등 기어코 뭔가 보여주고 말았다. 이동국에게도 2010년을 기대해보자. 결코 굴하지 말고 비애가 배어 있기에 더욱더 찬연히 빛나는 스트라이커가 되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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