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난대비 명분 노동자 통제 끼워넣기?
        2006년 04월 19일 06: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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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정자치부가 정부입법으로 발의해 현재 국회 행자위에 계류중인 ‘재난 및 안전기본법 개정안’의 오남용 가능성을 둘러싸고 노동계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행자부(산하 국가기반체계보호상황실)가 에너지, 교통수송, 의료, 금융 등 9개 분야의 주요 기관이나 업체를 국기기반시설로 분류, 지정하도록 규정한 대목이다.

    개정안은 국가기반시설로 지정된 업체나 기관에 대해서는 국가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일상적으로 관리하고 ‘위기상황’이 닥칠 경우 신속한 대응체계를 구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국가기반시설 재난관리책임기관장이 인력 및 장비를 별도로 지정,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일상적 관리는 일상적 노동권 침해로 귀결될 것"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이 20일 국회 기자회견실에서 행정자치부가 입법발의한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의 위헌적 요소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정제혁 기자
     

    민주노동당과 노동계는 이 가운데 특히 ‘일상적 관리’라는 표현에 주목하고 있다. 국가기반시설에 대한 일상적 관리란 곧 이들 기관이나 업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일상적인 노동권 침해’와 동의어가 될 소지가 크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노동쟁의가 발생할 경우 재난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노동권을 제약할 개연성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국회 행정자치위 소속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이 "재난 예방과 대비를 핑계로 전 사회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과도하게 확대되고 이로 인해 노동기본권이 심각하게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개정안이 △국가기반체계에 전 산업분야를 망라하고 있어 국가기반시설에 대한 일상적인 지정·관리(D/B 구축)·대응시 전 산업 분야에 걸쳐 노동기본권을 제약할 우려가 있고 △노동관계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화물연대 등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 폭넓은 적용이 가능하며 △대체인력과 장비의 일상적인 확보는 물론 비상시 대체인력도 관리하도록 하고 있어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파업에 대한 대체인력 투입에 용이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 통제하는 도구 될 것"

    이영순 의원은 "이번 개정안이 사실상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있는 이들의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제약하고, 단체교섭력을 약화시키는 등 헌법이 보장한 노동자들의 기본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올 3월 화물연대파업 당시 행자부 장관이 이 법안을 준용해 관계기관 대응을 지시했고 건교부도 표준메뉴얼을 갖고 대응한 바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화물연대, 덤프연대, 레미콘연대 등과 같이 사실상 노동자인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쟁의행위에 대한 정부 측의 강경한 시각을 볼 때 이번 개정안을 원용하면 국가의 상시적인 ‘지배개입’적 ‘노동통제’가 합법화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노동관계법이 우선한다는 조항 개정안에 명시해야"

    민주노동당과 노동계의 이같은 우려에 대해 행자부는 △노동조합의 쟁위행위에 대해서는 노동관계법이 우선하며 △노동쟁의에 대해서는 파업권의 침해가 없을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는 행자부가 이런 주장을 실효적으로 뒷받침하려면 △노동조합의 합법적 쟁의행위에 대해서는 노동관계법을 우선 적용하며 △개정안 제 77조(재난관리에 대한 문책요구)의 적용 범위에 대해서도 노동조합의 쟁의행위에 대한 대응과 관련한 관리영역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을 개정안에 명시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이영순 의원은 "제 8조(다른법률과의 관계) ④제3조제1호 다목의 재난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의 노동쟁의와 관련되는 경우에는 동법을 이법에 우선 적용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수정안을 제출해 놓은 상태다.

    이 의원은 "노동자는 국가기관에 비해서는 사회적 약자임을 감안하고, 법을 준용하는 과정에서 오남용을 막고 노동자의 기본권에 대한 보장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개정안 제 8조에 이러한 내용을 명확히 하는 내용을 신설할 것을 요구한다”고 수정안의 취지를 설명했다.

    "수정안 요구 수용되지 않으면 강력히 대응할 것"

    그러나 정부는 민주노동당의 수정안 요구에 대해 확답을 미룬 채 국회쪽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이영순 의원실 관계자는 "국회에서 합의안을 내면 수용한다는 게 정부측 입장"이라며 그러나 "다른 당 의원들은 이 문제를 그리 심각하게 느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행자부와 법제처가 이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18일 성명서를 통해 “이번 4월 국회에서 정부가 제출하고 있는 법 가운데 ‘재난 및 안전기본법’ 제정이 노동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위헌적 요소가 있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며 “이 법이 가진 심각한 문제는 단순히 여름철 전기난, 에너지난에 대한 범정부차원의 수급대책을 마련하는 수준을 넘어서 국가기반시설로 지정된 사업장의 노동자 파업에도 법 적용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국가재난 관련 개정법의 본질은 결국 노동자의 파업 자체를 재난에 준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으로 본다"며 "국가재난을 빌미로 노동탄압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고 이는 전근대적인 방식의 노동탄압 책동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번 개정안은 지난 18일 행자위 대체토론을 거쳐 20일 행자부 전체회의에 회부된다. 이날 회의에서 법안심사소위 회부가 결정되면 오는 25일 법안소위를 거쳐 26일 전체회의에서 처리되는 일정이다. 열린우리당측 행자위 간사인 최규식 의원은 "논의를 통해 합의점에 이르면 이번 국회 내에 처리하겠지만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할 경우 다음 국회로 넘길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영순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행자위에 계류 중인 법률도 많고 선거와 관련해서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법안도 있어 이 문제가 오늘 주요하게 검토되거나 오는 25일 법안소위에 회부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레디앙>의 취재 결과 행자위 소속 의원들 가운데 일부는 이번 개정안의 주요 내용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였다.  

    <정부 개정안 중 관련 조항>
    ① 제 10조 중앙안전관리위원회에서 국가기반시설지정사항심의
    ② 제 19조 재난관리책임기관의 상황실과 국가기반보호상황실간의 정보관리체 연계 및 정보공 유근거조항신설
    ③ 제25조의2 재난관리책임기관(중앙행정기관)으로 하여금 국가기반시설을 지정, 체계적으로 관리유지
    ④ 제25조의3 국가기반시설을 지정결과를 중앙본부장에게 통보하고 중앙본부장은 D/B를 구축·운영, 중앙행정기관장이 재난관리정책수립에 이용하도록 하는 등 국가기반시설 관리
    ⑤ 제 26조(재난관리책임기관의 장의 재난예방조치) ①항 8호 국가기반시설의 관리
    ⑥ 제 35조 국가핵심기반의 최소한의 기능유지를 위하여 재난관리책임기관장에게 국가기반재난시 응급조치에 사용할 보호자원(장비 및 인력 등)지정근거 신설
    ⑦ 제 36조 현행 중앙안전관리위원회 승인을 득한 후 재난사태선포를 국무총리에게 건의 또는 직접선포하도록 하였으나 개정안에서는 현장의 효율적 대처를 위해서 중앙본부장이 재난사태선포 후 사후승인(국가기반시설도 해당됨)
    ⑧ 제77조 국가기반재난관리와 관련한 지시위반, 임무태만 공무원등의 명단을 행정자치부 장관이 소속기관의 장에게 통보하도록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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