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월 판화는 기억투쟁!
    "예술은 인간의 생명을 위한 것"
    『오월 : 5.18광주민중항쟁 연작판화』(홍성담/ 단비)
        2018년 05월 12일 02: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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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의 뼈아픈 역사를 꼼꼼하게 기록한 판화집

    제주 4․3사건, 5․18광주민주화운동, 세월호 사건 등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꾸준히 사회 참여적 작품 활동을 이어온 화가 홍성담이 광주민주화운동 38주년을 맞이해 5․18을 소재로 작업했던 판화들을 묶어 5․18광주민중항쟁 연작 판화집 《오월》을 출간했다.

    2017년에는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탄생한 문재인 대통령이 5․18 정신을 헌법에 담겠다고 약속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던 한해였다. 그렇게 5․18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의 역사이다. 이때 많은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다 목숨을 잃기도 했고, 그 가족들은 아직도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뼈아픈 역사의 현장인 5․18을 그저 관찰자의 시선으로만 바라본 것이 아닌 직접 시민군으로 참여해 1980년 5월을 온몸으로 관통했던 화가가 연작 판화로 그려낸 5․18현장은 그래서 남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

    민주주의 의미를 온몸으로 지켜내려 했던 평범한 시민들의 얼굴을 기록한 50점의 판화는 그 자체로 잊지 말아야 할 역사가 된다. 권력을 가진 거대한 사람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역사가 아닌 작은 의미를 지키기 위해 온 몸을 던져 싸우는 시민들이 지키려 했던 것이 진정한 역사이고 시대정신임을 연작 판화를 통해 깨닫게 될 것이다.

    이처럼 홍성담의 연작 판화집 《오월》은 불의한 것을 보고도 눈 감고 뒤돌아선 것이 아닌 들불처럼 일어나 광장에서, 도청에서, 시내에서 군부의 총과 칼을 두려움 없이 막아섰던 평범한 시민들에 대한 꼼꼼한 기록이자 그들에 대한 고마움이자 헌사인 것이다.

    오월 판화는 기억 투쟁이다!

    화가 홍성담은 역사는 우리의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말한다. 고통스러운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고 잊어버리면 언제든지 다시 인간이 가진 악마성이 되살아날 수 있다고 말한다. 가까운 역사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특히 군인에 의한 민간인 학살의 순간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은 약 2천만 명의 아시아 민중을 학살했다. 올해로 70주년이 되는 제주 4.3사건은 또 어떤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또한 지울 수 없는 역사의 상흔이다. 5․18 또한 군인들에 의해 잔인한 일이 거짓말처럼 벌어졌던 사건이다.

    잔인한 역사의 현장은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다. 기억하지 못할 때 거짓말 같은 일은 되풀이될 수 있음을 역사는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홍성담은 역사를 기록한다. 판화가 기억 투쟁을 위한 하나의 프로파간다가 되기를 자처한다.

    “‘오월판화’는 기억투쟁을 위해서 만들어진 그림이다. 그래서 초기에는 오월판화를 두고 예술이기 전에 ‘선전선동화’라고 폄하하기 일쑤였다. 그 말이 맞다. 나는 예술이 예술이기 전에 인간의 생명을 위한 것이 아니면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_본문에서

    그리하여 홍성담의 오월 판화는 시민들의 피맺힌 외침이 울려 퍼지는 투쟁 현장의 생생함을 기록한 우리의 역사이면서, 국가 폭력의 민낯을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는 저항으로서의 예술인 것이다.

    오월 판화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손으로 그려진 그림!

    5․18 당시 광주는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였다고 홍성담은 말한다. 5월 27일 새벽 도청을 지키던 시민군 본부가 계엄군들의 막강한 화력 앞에 무너지기 전 열흘 동안 무시무시한 총칼 앞에서 광주를 지키며 함께 꿈을 꾸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홍성담은 그들의 이야기를 목판과 고무판 위에 고스란히 옮겨 판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홍성담의 판화는 바로 이 사람들의 마음과 손으로 그린 그림이라고도 할 수 있다.

    판화의 주인공 중에는 민주주의를 외치며 마지막까지 광주를 지켰던 시민군들도 있고, 광주에서 밥상공동체를 만든 주먹밥 아줌마들도 있다. 그녀들은 시내 여기저기 솥을 걸고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제공했다. 서로 밥을 나누면서 피를 나눈 형제임을 확신하게 된 시간이었다. 가진 것을 내놓아 함께 나누었던 시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기뻤던 열흘 동안의 항쟁이 가진 가치가 연작 판화 <밥>에 담겨 있다.

    사진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만든 판화도 있다. 바로 <갚아야 할 원수>가 그것이다. 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있는 소년의 사진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물음을 고스란히 판화에 옮겼다.

    또한 시내 큰 병원마다 피가 모자라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마다 시민들의 행렬이 장사진을 이룰 때 그 길에 동참했던 광주의 매춘부들도 있었다. 홍성담은 <황금동전투>라는 연작 판화에서 그녀들의 이야기를 새겼다.

    “광주에서 우리의 품에 안기지 않았던 남자가 한명도 없을 것이다. 그 젊은이들이 악마 같은 계엄군들에 의해서 붉은 피를 토하며 죽어가고 있다. 이제 그들에게 되돌려 주고 싶다. 우리 매춘부의 피는 당신들과 다르다더냐? 우리 몸에도 당신들과 똑같은 붉은 피가 흐르고 있다.” _본문에서

    518에서 세월호까지, 시대의 아픔을 기록하는 화가 홍성담

    전남 신안 출신인 홍성담은 목포에서 중·고 시절을 보내고 조선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주요 작품에는 광주오월민중항쟁 연작판화(새벽), 환경생태 연작그림 나무물고기, 국가폭력에 관한 연작그림 유신의 초상, 세월호 연작그림 ‘들숨날숨’ 등이 있다.

    오월에 관한 연작판화는 1981년부터 그려지기 시작해 80년대 내내 그려지고 1989년 봄에 몇 점을 더 보강하여 총 50점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해마다 5월이 되면 어딘가에서 수없이 많은 전시회가 열린다. 국내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작 1조가 소장되어 있고, 국외에는 영국 글래스고 국립현대미술관, 앰네스티 런던본부, 일본 오키나와 사키마미술관,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기도 하다.

    최근에는 광주민중항쟁 당시의 시민군과 대인시장에서 주먹밥을 나눠 주던 오월 어머니가 세월호를 힘차게 들어 올리는 장면을 그린 <세월오월>이라는 작품을 통해 세월호의 아픔을 위로했다. 이 작품은 박근혜 정부 동안 공개되지 못하다가 세월호 3주기였던 2017년에 일반에게 공개되어 시민들에게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불편한 역사의 길 위에서 펼쳐지는 기억투쟁을 위한 화가 홍성담의 이야기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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