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장시간노동, 노동인권 유린···
의료 현장의 간호사 인력 부족 “심각”
"임신하면 ‘죄인’…육아휴직 쓰면 나쁜 간호사 ‘낙인’"
    2018년 05월 10일 05: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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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 부족으로 인한 장시간 노동, 공짜노동, 열악한 노동환경부터 ‘태움’ 논란까지. 오랫동안 제기돼온 문제이지만 여전히 달라진 것 없는 의료진 노동문제에 대해 현장 간호사들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국제 간호사의 날’을 이틀 앞둔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의료기관의 노동인권 보호와 노동존중 병원을 위한 과제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과 강병원 더불어민주당·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주최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4명의 간호사들은 장시간노동과 공짜노동, 노동인권 유린, 일·가정 양립과 모성보호, 태움 문화에 대해 현장 증언을 했다. 각기 다른 주제로 현장의 상황을 전달했으나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문제는 ‘인력부족’이다.

토론회에서 증언하는 현장 간호사들 모습(사진=유하라)

공짜노동 강요당하는 간호사들
“간호사 인력 확충으로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첫 번째로 현장증언에 나선 홍슬아 씨는 경희의료원 소속 13년 차 간호사다. 두 달 전부터 노조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10년 넘게 이어왔던 불규칙한 생활패턴 때문에 아직도 불면에 시달리고 있다.

홍 씨는 “아마 일주일 동안 데이(오전근무)-이브닝(오후근무)-나이트(야간근무)라는 3교대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는 직종은 간호사밖에 없을 것”이라며 “교대 근무를 하는 간호사들 대부분이 경미하게 혹은 수면제를 복용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수면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아파도 진통제를 먹어가면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야간근무제 때문에 의료현장을 떠나고자 하는 간호사들이 많다고 한다. 홍 씨는 “간호사의 야간근무는 기존의 당직의 개념과 완전히 다르다. 주간에 이뤄지는 모든 업무가 밤에도 동일하게 이뤄지고 심지어 병실 물품 정리와 청소까지 해야 한다. 하지만 인력은 대폭 줄여 간호사 1명이 보는 환자가 20명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홍 씨의 증언에 따르면, 간호사들에게 주어진 식사시간은 고작 20분이다. 병동을 나와 병원 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양치를 하고 업무에 복귀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홍 씨는 13년 간 근무하면서 밥 한 번 편히 먹은 적이 없다. 그는 “병동에 밀려 있는 업무와 곧 쏟아져 나올 업무, 저 이후에 식사를 해야 할 간호사들을 생각하면 빨리 식사를 끝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마시는 수준이라고 봐야 한다”며 “다른 직장엔 보장된, 인간생활의 기본 요소인 ‘식’도 보장 받지 못하는 것이 현장 간호사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보건의료노조가 54개 병원 간호사 77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장 간호사 중 100% 식사시간을 보장받는 경우는 고작 11.9%밖에 되지 않는다. 응답자의 56.1%가 일부만 보장받고 있다고 했고,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답변도 31.1%나 됐다.

간호사들은 자기 근무 시간에 이렇게 치열하게 일하고도 정시 출·퇴근은 꿈도 꿀 수 없고, 휴일엔 워크숍과 친절교육, 병동 컨퍼런스 참여 등 각종 행사에 불려가야 한다. 그럼에도 홍 씨가 13년 간 시간외근무 수당을 신청한 건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대부분의 간호사들이 이런 식으로 공짜노동을 강요당하며 근무한다.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해도 시간외수당을 받지 못했다는 응답이 70.6%, 근무시간 외에 교육, 회의, 워크숍이나 환자위안행사, 송년회 등 병원 공식행사에 동원되고도 별도의 수당을 받지 못했다는 답변도 50%가 넘었다.

홍 씨는 “퇴근 시간이 지나도 일을 하고, 인계 전 환자파악 등을 위해 최대 2시간 일찍 출근해서 미리 일을 시작해왔다”며 “간호사들에게 공짜노동, 장시간노동이라는 개념이 없다. 아니 공짜노동인 줄 모르고 해왔다”고 말했다.

시간외근무를 하고도 수당을 신청하지 못하는 건 병원 관리자의 암묵적 압력도 있지만 그 신청 자체를 금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경험을 한 간호사도 28%에 달했다.

그러면서 “병원과 부서장은 ‘별 보고 출근하고 별 보고 퇴근하는’ 간호사들에게 공짜노동을 시키는 것에 익숙하고 너무나 당당하다. 오히려 간호사 개인이 일을 못해서 (초과근무를) 자율적으로 한 것이라며 시간외근무 수당 신청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며 “가끔 일부 간호사가 시간외근무 신청을 하면 ‘왜 제시간에 일을 끝내지 못했냐’며 묵시적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홍 씨는 “현장의 많은 간호사들이 공짜노동과 장시간노동으로 자신의 몸도 돌보지 못하고 있다고 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면서 “간호사 교대근무로 인한 업무 과중과 초과근무에 대한 대가 지급에서 나아가 간호사 인력 확충까지 확대돼 논의해야 한다. 지금도 일하고 있는 현장의 간호사들이 간호사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국가적인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인력부족으로 모성보호도 받지 못하는 간호사들
“임신하면 ‘죄인’…육아휴직 쓰면 나쁜 간호사 ‘낙인’”

홍성의료원 소속 23년차 간호사인 진락희 씨는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에 어렵게 이야기를 꺼낸다”며 말문을 열었다. 진 씨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홍성의료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임산부 야간노동 문제였다. 근로기준법 상 임산부의 야간노동과 휴일근로, 연장근무는 금지돼 있다.

지난해 말에도 대구가톨릭대병원에서 간호사가 임신을 하게 되면 야간근로 동의서부터 작성하게 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논란이 된 바 있다. ‘임산부 강제 야간노동’이 일부 병원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닐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진 씨 역시 “홍성의료원을 비롯한 많은 병원의 임신한 간호사들이 야간노동을 하고 있다”면서 “당연히 유산도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진 씨는 “현장의 간호사들은 임신했다는 사실을 죄인처럼 이야기해야 한다. 임신하는 사람이 야간노동을 못하면 나머지 간호사들이 그 업무를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산부에게 야간노동까지 강제되는 상황에서 육아휴직 사용은 더 힘들다. 진 씨는 “육아휴직을 내면 환자와 병원을 생각하지 않는 굉장히 나쁜 간호사라는 낙인이 찍힌다”며 “5~6년 전에 한 간호사가 육아휴직 사용 문제로 법정소송까지 걸겠다고 하면서 병원이 울며 겨자 먹기로 휴직을 허락한 적이 있는데 결국 병원에선 ‘못된 간호사’가 됐다”고 전했다.

진 씨는 간호사들이 1년의 육아휴직을 어렵게 내고도, 휴직 기간 내내 병원으로 하여금 조기 출근을 압박 받는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병원은 인력부족을 이유로 전화해서 수시로 나오라고 한다. 회유하는 것이지만 거절하면 또 다시 그 간호사는 병원을 생각하지 않는, 동료애 없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힌다”고 말했다.

홍성의료원의 간호사 정원은 221명이지만 현재 실인원은 180명 정도다. 수시로 공고를 내서 간호사를 충원하고 있지만 높은 업무강도 때문에 병원을 나가는 간호사가 더 많다. 때문에 이 병원의 간호사들이 한 달에 쉴 수 있는 날은 2~3번 정도가 전부다.

진 씨는 “교대 근무자임에도 한 달 간 휴일을 5~6일 정도밖에 보장받지 못한다. 그 중에 밤근무 다음날 쉴 수 있는 날이 2~3번이니 실제 보장받는 휴일은 3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휴가 보장 여부에 대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휴가일수를 모두 보장받는 간호사는 23.6%에 불과했고 일부만 보장받는다는 응답은 57.5%, 전혀 보장받지 못한다는 답변도 17.1%나 됐다.

문제는 이러한 임산부 야간노동, 육아휴직, 휴가보장과 같은 문제를 노사가 보장해주기로 합의해도 현장에선 전혀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근기법 상 임산부 야간노동이 금지돼있지만 현장에선 이미 빈번하게 야간노동이 강요되고 있는 현실과 다르지 않다.

진 씨는 “임산부와 육아기 간호사 노동시간 단축 문제로 교섭해 단축 근무와 휴무 등에 대해 합의했지만 현장에서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한 간호사가 육아휴직을 하면 다른 간호사는 휴가를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라며 “(노사합의나 임산부 야간노동을 금지하는 근로기준법도) 허울 좋은 법일 뿐이고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병원 내 악습 ‘태움’…근본 원인은 간호사 인력부족

서울아산병원 6개월차 간호사였던 고 박선욱 씨는 지난 2월 15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다. 병원 내 악습인 ‘태움’이 사망의 원인으로 제기됐다.

‘태움’은 경력 간호사가 신입 간호사를 괴롭히며 가르치는 악습을 일컫는 용어로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말에서 나왔다. 박 씨는 사망하기 직전 남긴 메모엔 ‘업무에 대한 압박감’, ‘의기소침해지고 불안한 증상’, ‘하루에 세 네 시간의 잠과 매번 거르게 되는 끼니’ 등의 괴로움을 호소했다고 한다.

의료·시민사회·노동계는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산재인정 및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병원과 고용노동부 등에 책임을 묻고 있다. 특정 간호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고질적인 간호인력 부족이 그 근본 원인이라고 보는 것이다.

일부 의료 현장에선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업무이기 때문에 엄격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업무라는 이유로 태움이 정당화될 순 없다고 공대위는 반박하고 있다.

한양대의료원 소속 20년차 간호사인 공지현 씨는 “태움 문화는 반드시 없어져야 하고, 신입간호사에 대한 비하발언도 절대 있어선 안 된다”면서 “태움의 근본적인 문제는 인력 부족이다. 이미 답이 나와 있는 문제다. OCDE 국가의 중간 이상만 맞춰줘도 태움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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