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실을 넘어서 버린 사실
        2006년 04월 19일 08: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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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이라는 말이 있다. 원래는 미술에서 사진보다도 더 사실적인 묘사로 그린 그림을 말했다. 그러던 것이 의미가 확장돼 지금은 허구가 너무나 진짜 같아서 사실처럼 인식되는 것, 혹은 복제물이 원본을 대체해버리는 현상을 가리키게 됐다.

    컴퓨터 그래픽과 관련 기술의 빠른 발달은 영화에 있어서 상상도 하기 힘들었던 표현들을 가능하게 했다. 이전의 기술로도 가능했던 부분일지라도 이제는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보다 정교한 표현이 가능하다.

    이런 표현의 확장은 관객들로 하여금 수용의 임계치를 높여놓으면서 동시에 감각의 마비를 불러 일으켰다. 특히 이처럼 만들어진 현실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은 일상의 영역에서도 무수한 착시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사실이 아닌 것들이 사실이라고 굳게 믿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직도 절대 다수의 미국인들이 이라크에 주둔하는 미군이 ‘좋은 목적’을 위해 전쟁을 하고 있다거나 ‘미국을 지키기 위해(?)’ 그곳에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일종의 하이퍼리얼리즘 세계에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현상은 굳이 고도로 발달된 표현 기술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미디어의 대중화 단계에서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광고를 만들 때 병 따는 소리는 진짜 병뚜껑을 따는 소리가 아니라 풍선을 터트리는 소리를 이용한다. 후자가 훨씬 더 사람들의 인식 속에 들어있는 정형화된 이미지에 가깝게 들리기 때문이다.

    결국 사실적이냐 아니냐의 구분은 있는 그대로를 얼마만큼이나 완벽하게 재현해 냈느냐가 아니라 이게 사실이라는 관객들의 일반적인 믿음을 얼마나 충족시켜 줬는가에 달렸다. 움베르토 에코식으로 말하면 ‘진짜인 가짜’를 만들어내는 솜씨에 달린 것이다.

    진실이 곧 사실은 아닌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 * *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나왔을 때 많은 관객들은 이것이 사실에 기초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영화 서두와 마지막 장면에 늙은 라이언이 노르망디의 전사자 묘지에 묻힌 생명의 은인들을 찾아가 경례를 바치는 모습을 보면서 라이언이 실존인물이라고 믿었다.

    영화가 개봉될 무렵 많은 언론들이 영화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정보를 쏟아냈지만 지금도 수많은 미국인들은 이 영화가 실제로 있었던 일, 최소한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몇가지 에피소드는 더해졌을지 몰라도 라이언 일병을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투입됐던 구조대의 이야기는 사실이라고 믿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100% 스필버그 감독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세계다. 물론 모티브가 됐던 사건은 있었지만 영화의 이야기와는 많이 다르다.

       
    ▲ 같은 날 미 해군에 입대해 같은 배에 탔던 설리반 5형제. 지역신문에 자랑스러운 미국의 아들들로 소개되기도 했지만 타고 있던 순양함 쥬노가 침몰하면서 5형제가 모두 전사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됐다.

    스필버그의 상상력을 자극했던 이야기는 2차대전 당시 미국 전쟁성에서 만든 ‘단독생존자귀환정책’이다. 이 정책은 1942년 미해군의 순양함 쥬노가 일본의 공격으로 침몰할 때 배에 타고 있던 친형제와 사촌을 포함한 설리반 5형제가 한꺼번에 죽은 사건을 계기로 마지막 남은 형제를 귀환시킨 다는 것이었다.

    제도라기보다는 군 당국의 방침정도의 것으로 2차대전 동안 수혜자는 프레드릭 닐랜드 병장 한 명뿐이었다. 영화 속의 라이언 일병과 같은 부대였던 그는 같이 참전했던 3명의 형제가 거의 동시에 전사하면서 귀환조치 됐다.

    영화에서처럼 그를 구하기 위해 특공대가 투입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군목으로부터 소식을 전해 듣고 안전하게 귀환했다. 그리고 태평양 전선에서 죽은 줄 알았던 형은 나중에 구조돼 생환했다.

    스필버그의 출발점이 된 것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프랑스에 낙하한 공수부대원 중 같이 참전한 형제 셋을 동시에 잃은 병사가 있었고 미군이 그를 고향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감독은 ‘만약 그 병사가 연락두절 상태였고 그래서 구조대가 투입됐다면 어떻게 됐을까’하는 가정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완벽한 픽션이지만 마치 다큐멘터리를 찍는 듯한 연출과 기술효과는 영화의 사실성을 높이는 선에서 그친 게 아니라 영화에 대한 신뢰도를 높였다. 스필버그는 일부러 영화의 채도를 60%나 감소시켰다. 60여년 전 이야기인 만큼 낡은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려했던 것이다. 이런 기술적 손질은 역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한 신뢰를 가져왔다.

    이런 이유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작전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할리우드의 앞선 기술력은 이런 믿음을 뒷받침하는 ‘보증수표’ 역할을 했다. 대중의 이런 착각에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직전에 만든 스필버그의 작품들이 <쉰들러 리스트>나 <아미스타드> 같은 역사영화였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 * *

    기술과 자본과 스필버그가 만났을 때 우리는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의 가장 완벽한 영화적 재현을 경험하게 된다. 어쩌면 실제 전쟁터보다 이 영화는 더 사실적일지도 모른다. 실제 전장에 있는 병사는 고작해야 자기 주변의 일들만 볼 수 있거나 아니면 혼이 나가서 거의 기억을 못할지 모르나 관객은, 아주 ‘친절한’ 카메라를 따라 전장의 구석구석까지를 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시간 50분짜리 이 대작은 공허하다. 그것은 리얼리즘의 문제는 사실성이 아니라 진실성에 있다는 가장 단순한 원리에 기초한다. 할리우드의 기술력은 참혹한 전장을 가장 사실적으로 재현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영화에 불과하다. 팔이 잘려나가고 목이 굴러다니고 폭약에 온몸이 가루가 되지만 그것을 보여주는 감독의 의도가 불분명할 때 이 참혹한 전쟁터는 ‘쥬라기 공원’의 공룡들처럼 그저 하나의 볼거리에 불과하다.

    인간이 순식간에 고기덩어리로 바뀌는 모습들은 전투행위와 살인의 경계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병사들의 딜레마와 단절된 채 스크린에 놓여있고 따라서 관객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여전히 착한 미군 나쁜 독일군의 할리우드 전쟁영화의 장르적 규범에서 깨어나질 못한다. 오히려 이러한 규범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여 독일군이 죽을 때마다 안도하고 적군을 죽이지 못하는 미군병사를 나무란다.

    이 영화의 미덕은 테크놀로지가 영화의 미래가 될 것이라는 믿음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진실과 고통이 삭제된 사실성이란 일종의 가상현실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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