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취’ 이름의 유래 논란
[푸른솔의 식물생태] 올바른 이름?
    2018년 05월 09일 09: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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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미취란?

개미취(Aster tataricus L.f.(1781))는 국화과 참취속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깊은 산의 습윤한 곳에서 높이 1~1.5m가량 자란다. 줄기에 달린 잎은 좁고 어긋나며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톱니가 있다. 꽃은 두상화가 산방상으로 달리는데 7~10월에 자주색으로 핀다. 총포와 꽃자루(화경)에는 짧은 털이 밀생한다. 열매는 수과로 관모가 달리고 10~11월에 결실한다. 뿌리는 짧은데 땅속줄기(根莖)가 옆으로 길게 뻗으면서 마디에서 새싹이 돋아난다.

옛부터 어린 잎을 채취하여 나물로 사용하였고, 뿌리와 땅속줄기(근경)를 토혈이나 천식 등을 치료하는 것에 약용하거나 식용하였다. 현재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 기록하고 있는 개미취라는 이름을 포함하는 식물은 아래 4종으로, 모두 국화과 참취속(Aster)에 속한다.

– 개미취<Aster tataricus L.f.(1781)>
– 좀개미취 <Aster maackii Regel(1861)>
– 벌개미취 <Aster koraiensis Nakai(1919)>
– 갯개미취 <Aster tripolium L.(1753)>

이러한 이름의 기본을 이루는 ‘개미취’라는 한글명은 어디에서 왔고 그 유래는 무엇일까?

개미취의 전초

개미취의 꽃

[2] 개미취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한 여러 주장들

개미취의 유래를 둘러싸고 개미(蟻)+취(나물)로 보아, 꽃대에 개미가 붙어 있는 것처럼 작은 털이 있고 나물로 식용한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보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이었다[이러한 견해로는 허북구 및 박석근, ‘한국의 야생화 200’, 중앙생활사(2008), p22]. 그런데 이 견해의 문제점은 꽃자루와 총포에 있는 작은 털의 모습이 전혀 개미(蟻)와 닮아 보이지 않아 해석이 억지스러워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으로 인하여 최근에는 개미를 곤충으로 보지 않고 국어사전에 나오는 ‘연줄을 질기고 세게 만들기 위하여 연줄에 먹이는 물질’로 개미를 이해하기도 한다. 연줄을 세게 하기 위하여 흔히 아교에 유리나 사기의 가루를 섞어 연줄에 먹이는데 그 모습이 마치 꽃자루와 총포에 붙어 있는 작은 털의 모습과 같다는 것이다. 더불어 최근에는 개미취의 ‘개’를 개울의 ‘개’와 같은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보아 습한 지역에서 사는 식물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이에 대하여는 후술).

꽃자루에 있는 작은 흰털을 보고 있노라면 최근의 견해가 꽤나 설득력이 있는 것 같기도 한다. 그런데 근대 식물 분류학이 도입되어 정착되기 이전에 형성된 식물명은 그 당시의 사람들이 식용, 약용이나 목재의 활용 등 그 식물과 맺어 온 관계를 설명하는 역사이기도 하다. 따라서 남는 의문점은 분류학과 무관했던 당시 사람들이 꽃자루에 있는 털을 주목하여 식물명을 붙였다는 상상이 과연 현실성과 타당성이 있는지 하는 것이다.

개미취의 총포와 꽃자루 : 작은 흰털이 보인다

[3] 개미취라는 이름의 기록에 대한 고찰

1. 개미취에 대한 기록

현재 우리 식물명의 주요 골격을 제공한 조선식물향명집(1937)은 한자어 紫菀에서 유래한 ‘자원’만을 기록하였을뿐 ‘개미취’라는 이름은 등재하지 않았다. 개미취라는 이름은 이보다 1년 앞선 1936년에 정태현 박사가 일본인 하야시 야스하루(林泰治)와 함께 공저한 조선산야생약용식물(朝鮮産野生藥用植物)에 최초로 기록되었고, 1949년의 조선식물명집에 다시 등재되어 추천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개미취라는 이름이 문헌에서 확인되는 최초는 정태현 박사가 중심이 되어 저술한 ‘조선산야생약용식물(1936)’이다.

정태현외 3인, ‘조선식물향명집’, 조선박물연구회(1937)

林泰治 , 鄭台鉉, ‘朝鮮産野生藥用植物’, 朝鮮總督府. 1936

정태현외 2인, ‘조선식물명집’, 조선생물학회(1949)

​2. 개미취의 옛이름에 대한 고찰

일제강점기에 저술된 문헌에 최초로 이름이 기록된 개미취는 약재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옛 문헌에서도 널리 기록되었다. 주요한 것만을 추려보면 아래와 같다.

– 향약구급방(1236), : 紫菀/反魂/迨加乙/扡加乙
– 향약채취월령(1431) : ​紫菀/吐伊遏
– 향약집성방(1433) : 紫菀/迨伊遏
– 구급간이방언해(1489) : 紫菀/ᄐᆡ알
– 사성통해(1517) : 紫菀/퇴알
– 동의보감(1613) : 紫菀/ᄐᆡᆼ알
– 제중신편(1799) : 紫菀/ᄐᆡᆼ알
– 물명고(1824) : 紫菀/ᄐᆡᆼ알
– 방약합편(1884) : 紫菀/ᄐᆡᆼ알

위 이름 중에서 향약구급방, 향약채취월령 및 향약집성방에 표현된 迨加乙(태가을), 扡加乙(타가을), 吐伊遏(토이갈) 및 迨伊遏(태이갈)은 모두 이두식 차자(借字)표기로서 이를 당시 음으로 환원한 한글명은 ‘ᄐᆡ갈’ 및 ‘ᄐᆡ알’로 이해된다[이에 대하여는 남풍현, ‘차자표기법연구, 단대출판사(1981) 등 참조].

​​한약재로 생약명은 紫菀(자원; 자완 또는 자울로 읽기도 한다)인데, 이에 대한 문헌에 나타난 우리말 이름은 ᄐᆡ갈==>ᄐᆡ알==>퇴알==>ᄐᆡᆼ알로 변화하여 왔다. 그런데 왜 탱알(ᄐᆡᆼ알)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느닷없이 개미취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고 있는 것일까?

[4] 개미취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1. 개미취에 대한 중국명과 일본명

중국명은 紫菀(zi wan)으로 자주색의 꽃이 무성하게 또는 동산처럼 자란다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일본명 シヲン(紫菀)은 한자어 紫菀(자완)에 대한 음독한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중국명과 일본명은 모두 한자어 紫菀(자원)으로 우리말 이름 ‘개미취’와는 직접 관련이 없다.

결국 개미취는 외국 이름이 아닌 한반도 내에서 개미취와 함께 생활을 영위해 온 사람들이 형성한 이름이므로 식물의 생태사와 그 식물을 이용하고 관계를 맺어온 역사를 살펴보아야 그 유래의 윤곽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 개미취의 유래는?

(1) 옛사람들이 개미취와 맺어온 관계

개미취는 자원(紫菀)이라는 이름으로 약재에 사용하였는데, 그 주요 약용부(藥用部)는 조선산야생약용식물에서 표시된 바처럼 뿌리(根)이다. 보다 정확하게는 뿌리와 더불어 땅속에서 옆으로 자라 번식을 하는데 이 땅속줄기(根莖)을 약용한다.

​개미취는 봄의 어린 싹을 데쳐서 묵나물을 만들어 먹는다[이에 대하여는 林泰治, ‘救荒植物と 其の 食用法(구황식물과 그 이용법)’, 동도서적(1944) p199 참조]. 뿌리와 잎을 식초에 담궈 저장하여 절임채소로 식용하기도 하였다. 뿌리와 잎을 식초에 담궈 절임채소로 식용한 것에 대하여 유희가 1820년대에 저술한 물명고(物名考)는 紫菀(자원)에 관한 설명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仙菜 連根葉浸醋收藏者”[선채는 (자원의) 땅속줄기와 잎을 식초에 담구어 저장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하야시 야스하루(林泰治)가 저술한 ‘구황식물과 그 식용법'(1944) p199는 개미취에 대하여 “多く 庭園に 栽培せられる 多年生草本”(대개 정원에서 재배하는 다년생 초본)”라고 기록하였다. 현재는 약용의 상업적 목적을 위하여 종종 재배하기도 하지만, 일제강점기에만 하더라도 많은 가정의 정원에서 재배하여 약용이나 식용을 하였다는 것이므로, 땅속줄기를 포함한 뿌리와 잎을 식용하는 것이 지금에 비해 더 널리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옛사람들은 새로 돋은 부드러운 잎뿐만 아니라 땅속줄기를 포함한 뿌리를 주요한 약용과 식용재료로 사용하였고 그 방법도 절임(장아찌) 형태로 이용하기도 하였다는 것을 주목해 본다.

개미취의 어린잎 : 어린잎은 나물로 하거나 삶아 말려 묵나물을 만들기도 하였다

(2) 개미취에 대한 방언

국립수목원은 2013년에 개미취에 대한 지역의 방언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이 자료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방언이 확인된다[이에 대하여는 국립수목원, ‘한국의 민속식물’, 2013년간 p918 참조).

– 전라도 : 개미취
– 경상도 : 개미초/개미추/개미취/갬초/갬취/깨뚜가리/깨뚜까리/깜추/자옥나물/자원
– 강원도 : 개미초/개미취
– 함경북도 : 개미취

이 조사 기록은 여러가지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먼저, ‘개미취’는 자생 지역의 대부분에서 방언으로 여전히 널리 불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개미취가 그 자생지역에서 실제로 널리 불리던 이름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둘째, 개미취는 개미추/갬초/갬취/깜추/개미초와 같이 개미취가 변형된 것으로 보이는 이름으로 함께 불리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TV나 라디오 및 교육기관 등을 통해 추천명(또는 표준명)이 파급되어 지역에서 불리우는 이름이라면 그 이름은 동일한 발음으로 불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개미취라는 이름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더불어 뜻은 같지만 발음에서 상당한 변화의 폭을 가진 차이가 있는 여러 이름이 함께 있다면, 이는 추천명을 통해 이름이 파급된 것이 아니라 실제 개미취가 널리 사용되었던 이름이었고 이로부터 이름이 채록되어 추천명이 되었다는 것을 추론케 한다.

셋째, 옛 문헌에 기록된 탱알은 실제 분포지역에서 유사한 이름으로도 전혀 발견되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탱알’이 아주 오래 전에 어떤 지역에 불리어 문헌에 기록된 이름일 수는 있어도, 어느 시점부터 소멸하여 실제 사용되지는 않아 문헌에서만 존재하는 이름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넷째로 아주 흥미로운 것은 경북지역의 방언으로 개미취(그 유사한 방언)과 더불어 ‘깨뚜가리’와 ‘깨뚜까리’라는 이름이 함께 발견된다는 점이다. 깨뚜가리(또는 깨뚜까리)는 깨뚜+가리의 합성어로 ‘깨뚜’는 개똥벌레(=반딧불이)의 지역 방언이고 ‘가리’는 단으로 묵은 곡식이나 장작을 차곡차곡 쌓은 더미(또는 곤충이나 새등에 붙은 접미사)의 의미로 해석되므로 그 뜻의 추론이 가능하다(이에 대하여는 표준국어대사전 중 ‘깨뚜’와 ‘가리’ 참조). 즉, 깨뚜가리는 개똥벌레(=반딧불이)를 단으로 묶어 더미로 놓은 것이거나 깨똥벌레(=반딧불이) 자체를 닮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떤 부위가 곤충인 개똥벌레를 모아 놓은 듯한 느낌을 갖게 하였을까? 개미취의 땅속줄기는 여러 해를 걸치면서 발달하고 굵어진다. 그리고 그 주위에 잔뿌리가 달리는데 마치 이 모습은 벌레들이 기어가는 듯하다(위 사진 5 참조). 이것을 약용하거나 식용하기 위하여 모아 놓았거나 그 모아 놓은 것을 식초나 간장에 넣어 장아찌류의 절임 음식을 만들었다면 더 쉽게 벌레의 모습이 연상되었을 것이다.

(3) 개미취를 개울의 ‘개’의 의미로 보는 견해에 대한 검토

최근 개미취를 물기를 머금은 땅을 뜻하는 개울의 잇닿아 있는 이름이라고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물기를 머금은 땅을 뜻하는 개울이라는 고유 명사처럼 우리말 ‘개’에 잇닿은 이름이다. 서식처 조건과 관련 있는 산간지역(강원도 정선)의 방언으로 추정한다…(중략)…개미취의 개미는 곤충 ‘개미’와 전혀 상관없어 보인다. 오히려 물기를 머금은 또는 물기가 풍부한 땅에서 사는 취나물인 것에서 비롯했을 것이다…(중략)…개미는 분명 물기 많은 땅을 지칭하는 사라진 우리말일 것이다.”(김종원, 한국식물생태보감2, 자연과 생태, p442)

​매우 난해한 문장이어서 해석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일단 개미취의 주된 서식처가 산간의 물기가 많은 지역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개미’와 ‘개울’이 같은 ‘개’라는 단어를 공유한다는 것에서 둘은 잇닿은(?) 이름이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여기서 일단 논리 비약이 발생한다. 개울은 일반적으로 개+골의 합성어로 개골>개올>개울로 변화한 것으로 ‘개’는 포(浦; 강이나 내에 조수가 드는 곳)을 의미하고 ‘골’은 谷(곡; 골짜기, 고랑)을 의미하는데 이는 개천, 개골창, 갯벌, 개펄 등과 같이 직접적으로 물이 흐르는 곳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백문식, 우리말 어원사전, 박이정 p33 참조).

​개미취가 습기진 장소를 주된 서식지를 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계곡가나 개울가 같은 냇가를 주된 서식처로 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개미취와 개울이 모두 ‘개’를 포함한다는 이유로 이를 직접 대비하는 것은 논리 비약이 따르는 주장으로 보인다.

​나아가 위 해석은 ‘개미’의 ‘미’에 대한 유래를 찾기 어렵게 한다. 위 책은 산간지역의 방언이라고 하여 해석을 피하는데, 구체적 방언을 예시하여 근거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방언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방언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방언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일까? 그런데 그나마도 ‘사라진 우리말’이라고 함으로써 ​드는 의문과 질문을 봉쇄한다. 구체적인 존재를 증명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사라진 말이므로 더 이상 묻을 수도 의문을 가질 수도 없다. 믿거나 말거나가 된다.

(4​) 소결론

이와 같이 깨뚜가리(깨뚜까리)와 비슷한 지역에서 함께 방언으로 사용되었다면, 개미취는 깨뚜가리와 같은 의미구조를 가진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 즉, 개미취는 깨뚜가리와 마찬가지로 약용이나 식용으로 사용하는 뿌리(땅속줄기), 그리고 식용에 사용하기 위하여 식초(간장)에 절임(장아찌)을 해 놓은 모습이 곤충 개미를 연상하게 하였고, 그것을 식용한 것에서 나물이 붙여 졌을 것으로 추론된다는 것이다.

개미취의 뿌리 : 해가 갈수록 땅속줄기가 발달하고 굵어진다. 오래된 개체의 뿌리를 모아 놓은 모습은 개미나 기타 벌레(곤충)가 연상되기도 한다.

[5] 보론 : 탱알이라는 이름을 부활하자는 주장에 대하여 ​

우리 식물 이름의 뿌리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으로 작성되었다는 최근의 어느 책은 탱알이라는 옛 이름을 되살펴 그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타당성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 옛이름 ‘탱알’은 어디에서 유래하였고 그 이름은 왜 조선식물향명집에 기록되지 않았을까?

앞서 실제 분포지역에서 탱알이라는 이름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것에 비추어 문헌상에서만 존재하고 실제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사문화된 이름일 가능성을 지적하였다.

​한편 조선식물향명집(1937)의 저자 중의 한명이었던 이덕봉 교수는 조선식물향명집이 출간되기 직전인 1937년 1월에 조선어학회가 출판한 잡지 ‘한글’에 ‘조선산식물의 조선명고’라는 짧은 논문을 투고한 바 있다. 이 논문은 조선식물향명집에 실린 식물명 중 국화과를 대상으로 하여 식물명의 내력에 대한 짧은 해설을 그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조선산식물의 조선명고(1937)은 조선식물향명집에 기록한 ‘자원’에 대한 우리말로 동의보감(1613)과 제중신편(1799)에 실려 있는 것으로 ‘탱알’이라는 이름이 있음을 기록하였다. 그렇다면 한국식물향명집의 저자들은 우리말 이름 ‘탱알’을 알고 있었던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식물향명집이나 그 이후의 문헌에서 이를 기록하지 않았던 것으로 이해된다.

이덕봉, ‘조선산식물의 조선명고’, 조선어학회, 한글 5(1), 1937.1. p11 참조

왜 조선식물향명집의 저자들은 ‘자원’이라는 이름을 조선식물향명집에 등재하고, ‘탱알’이라는 우리말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을까? 이에 대한 단서는 조선식물향명집의 사정요지에 나타나 있다.

[過去(과거) 數十年間(수십년간) 朝鮮各地(조선각지)에서 實地 蒐集(실지 수집한)한 鄕名(향명)을 주로 하고 從來 文獻(종래 문헌)에 記載(기재)된 것을 參考(참고)로 하여 鄕名集(향명집)을 上梓케 되얏스나 敎育上(교육상) 實用上(실용상) 不得已(부득이)한 것에 限(한)하야는 다음 諸點(제점)에 留意(유의)하야 學究的(학구적) 態度(태도)로 整理(정리) 査定(사정)함.

1.朝鮮(조선)에서 一般的(일반적)으로 使用(사용)하는 朝鮮名(조선명)은 그대로 採用(채용)함
2. 從來 文獻上(종래 문헌상)에 記載(기재)된 朝鮮名(조선명)은 될 수 있는 대로 그대로 採用(채용)함][( )의 한글은 이해 편의를 위하여 추가함]

조선식물향명집의 사정요지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조선명을 그대로 채용하는 것이 조선식물향명집의 제1의 원칙이고, 그것이 없을 때 종래 문헌의 기록을 찾아 그 기재 조선명을 채용한다는 것이므로, ‘탱알’은 문헌에 있는 이름이기는 하였지만, 실제 사용하는 이름은 아니었고 오히려 ‘자원’이 한의원을 중심으로 해서라도 사용된 이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1936년 조선산야생약용식물에 기록되었던 개미취는 왜 조선식물향명집에 기록되지 않았을까? 1936년 조선산야생약용식물을 작성할 때 지역에서 ‘개미취’라고 불리우는 이름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그 이름을 조선산야생약용식물에는 이를 기록하였지만, 조선식물향명집을 편찬할 때 그 이름이 자원보다 더 널리 사용되거나 실제 사용되는 보편적인 이름인지에 대하여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1937년의 기록에서는 한의원을 중심으로 해서라도 불리던 ‘자원’이라는 생약명을 기록하였다가, 1949년에 이르러서야 개미취가 자생지에서 널리 사용하는 보편적인 이름이라는 것을 확인하였고, 그래서 조선식물향명집의 사정요지에 나타난 원칙에 따라 조선식물명집(1949)에서 ‘개미취’라는 이름을 우리 식물명으로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조선식물향명집과 그 저자들이 저술한 식물명에 관한 문헌에서 그들이 사정요지에 나타난 그 원칙에 따라 우리 식물명을 기록하여 왔고, 각 문헌에서 관철시켜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위와 같은 추론은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 높은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2. 탱알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무엇일까?

“그런데 개미취라는 이름 이전 500년 동안이나 계속 사용했던 고유 명칭이 있었다…(중략)…개미취의 본명 ‘탱알’은 처음부터 뿌리의 질감과 모양에서 비롯한다. 19세기 물명고에는 ‘ᄐᆡᆼ알ᄐᆡᆼ알’이라는 표기가 나온다. 탱글탱글한 뿌리에서 비롯할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케 한다.”(김종원, 한국식물생태보감2, 자연과 생태, p443)

​500년동안이나 계속 사용했던(!) 고유 명칭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계속 사용하였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문헌에 의한 기록이 있다는 의미라면 ‘사용’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이 땅 위에서 살아 왔던 민중들이 널리 실생활에서 사용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앞서 살펴 본 것처럼 분명 근세에 이르러서는 이 이름을 실제 사용한 예를 찾기는 어렵다.

또한 위 책의 저자는 ‘탱알’은 뿌리의 질감과 모양에서 유래한다고 하면서 그 근거로 물명고에 ‘ᄐᆡᆼ알ᄐᆡᆼ알’이라는 표기가 나온다고 한다. 과연 그러한 표현이 나오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1820년대 유희에 의하여 저술된 물명고(物名考)의 해당 부분을 살펴보자.

“紫菀則東醫謂之ᄐᆡᆼ알 ᄐᆡᆼ알與풀소옴少異”(동의보감은 자원을 일컫어 ᄐᆡᆼ알이라 하였다. ᄐᆡᆼ알과 풀소옴은 다름이 적다)

물명고의 해당 문장을 얼핏보면 ‘ᄐᆡᆼ알’과 ‘ᄐᆡᆼ알’이 이어져 있어 ‘ᄐᆡᆼ알ᄐᆡᆼ알’이라는 표현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앞의 ‘ᄐᆡᆼ알’은 동의보감에 나오는 표현을 인용한 것이고, 뒤의 ‘ᄐᆡᆼ알’은 당시 유사한 표현으로 사용되던 ‘풀소움’과 비교하기 위하여 주격으로 별도 문장에서 사용된 것이다. ‘ᄐᆡᆼ알’을 해설한 것이고, ‘ ᄐᆡᆼ알ᄐᆡᆼ알’이라고 기록한 것이 전혀 아니다(이에 대하여는 정양원외 3인, ‘조선후기한자어휘검색사전, 한국정신문화 연구원, p368 참조).

​따라서 탱알에 대한 그의 유래 해설은 근거 없는 주장이다. 문헌의 기록으로 남아 있는 옛이름인 ‘탱알’에 대한 유래는 현재 알려져 있지 않다.

​3. ‘탱알’이라는 이름을 되살리자는 주장에 대한 검토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임업시험장에서 채택한 개미취라는 이름이 등장하기 전, 1417년부터 1936년까지 500년 이상 ‘탱알’이 통용되었다. 탱알이야말로 아름다운 고유 이름이기에 되살려야 한다. 식물 분류 명명규약에서 이름의 선취권을 따라서 지금이라도 국가표준식물목록을 바로 잡는 것이 옳다”(김종원, 한국식물생태보감2, 자연과 생태, p443 참조)

위 책은 개미취를 최초 기록한 ‘조선산야생약용식물'(1936)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채. 이를 지속적으로 조선총독부의 연구보고서라고 한다. ‘조선산야생약용식물’이라는 문헌이 조선총독부의 이름으로 발간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위 책을 저술한 鄭台鉉(정태현)과 林泰治(햐야시 야스하루)가 소속된 조선임업시험장이 조선총독부의 산하기관이었던 것에서 조선총독부의 이름으로 발간된 것이지 조선총독부가 그 내용을 통제하거나 관리하였다는 것은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임엄시험장도 대단한 기관이 아니라 정태현 박사를 비롯한 몇 명의 직원이 배치된 조림을 연구하고 재배를 실험하는 기관에 불과하였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조선산야생약용식물'(1936)은 정태현의 박사의 주된 노력에 의하여 발간된 책이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개미취’라는 이름은 조선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조선명을 그대로 채용하겠다는 원칙에 따라 실제로 사용되었던 이름을 채록한 것으로 추론되며, 조선총독부가 창출하거나 강요하여 형성된 이름이 결코 아니다. 위 책의 저자처럼 따지자면 부활을 원하는 ‘탱알’이라는 이름도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어사전(1920)에 기록된 이름이고, 일본인 村田懋麿(무라다 시케마루)가 단독 저술한 토명대조선만식물자휘(1932)에도 기재된 이름이다.

그리고 1417년부터 1936년까지 문헌에 기록된 이름이 ‘탱알’이라고 한다면 이는 근거가 있는 주장이겠지만, ‘탱알’이 실제 민중들 사이에 실생활에서 통용(!)된 것이라고 한다면 현재까지 그러한 근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문헌에는 나오는 이름이지만, 그 유래도 알려져 있지 않고 실제 사용여부가 불명확하기에 아름다운 이름인지도 알 수가 없다.

나아가 위 책의 저자는 식물 분류 명명규약(?)의 선취권에 따라서 탱알이라는 이름을 되살려야 하고 국가표준식물목록의 이름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먼저 ‘식물 분류 명명규약’이 아니라 정확히는 ‘조류, 균류와 식물에 대한 국제명명규약'(International Code of Nomaenclature for algae, fungi, and plants, 이하 “국제명명규약”)이다. 이 국제명명규약은 학명(scientific name)의 국제적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제정된 것이지 각 나라마다 각자의 언어로 부르는 국명(國名)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다시 말해 국제명명규약에도 불구하고 각 나라는 또는 그 지방은 각기의 언어로 부르는 명칭에 대해서는 국제명명규약은 적용 자체가 되지 않으며, 각국이 각자의 언어로 식물명칭을 정하고 부르더라도 어떤 하자나 잘못도 없다.

국제명명규약 Division 1. Principles(제1부 원칙)의 원칙3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여 그 적용대상이 ‘분류학적 학명’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Principle III(원칙3)

The nomenclature of taxonomic group is based upon of priority of publication(분류학적 생물체의 학명은 출판의 선취권에 근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책의 저자의 주장을 선회하여 국제명명규약의 규정을 유추하거나 준용하여 국명(國名)에도 적용시켜 보자는 주장으로 이해하여 보자. 국제명명규약 제7.8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7.8 A name of a taxon assigned to a group with a nomenclatural starting-point later than 1 May 1753(see Art. 13.1) is to be typified by an element selected from the context of its valid publication(Art 32~45).[명명법상 출발점인 1753년 5월 1일(제13.1조 참조) 이후의 새로운 분류군 학명은 합법적으로 출판(제32-45조)한 내용에서 선별된 요소에 의하여 기준화한다].

이 규정에 따르면, 린네(Linne)가 근대 식물분류학의 기초를 확립하여 그 기준을 제시한 1753년 Species Plantarum(식물의 종) 발간 이후를 선취권의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선취권은 먼저 이름을 부여하였다는 것만으로 되지 않고, 분류군의 계급을 따라야 하며, 기준표본을 지정하여야 하고, 출판물은 특정한 언어로 작성되어야 하며, 다른 종과 구별되는 특징이 기재되어야 하고, 다른 선행 기재문을 정확히 인용해야 하는 등의 엄격한 규정을 준수한 경우에만 유효하게 선취권이 있는 것으로 인정된다(국제명명규약 제6조, 제7조, 제11조, 제12조. 제29조, 제30조, 제31조, 제32조 등 참조).

향약구급방, 향약채취월령 및 향약집성방이 우리의 식물 문화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임에는 분명하지만 원천적으로 국제명명규약이 정하고 있는 선취권을 적용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고, 그러한 원칙을 준수하여 저술한 출판물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 배 양보하여, 1753년 이전 그리고 식물명명규약의 원칙에 따른 언어와 특징기재 및 기준표본의 채집 등이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의 옛 서적에도 선취권이 있는 것으로 가정해 보자. 즉, 선취권을 식물분류학적 의미가 아니라 단순히 말 그대로 먼저 기재한 이름이 있다는 통속적(?) 의미로만 파악하여 보자. 그러면 선취권이 있는 이름은 후대의 표기법에 맞추어 기록된 ‘탱알’이 아니라, 향약구급방(초간본 1236년, 중간본 1417년)에 기재된 ‘迨加乙’일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개미취라는 이름이 아닌 ‘迨加乙’이라고 남아 있지도 않은 발음을 찾아 그 이름을 불러야 하는 것이 논리 일관적이지 않겠는가?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우리의 옛 문헌에 우리말 이름 ‘탱알'(또는 그 유사한 표현)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의 역사에서 소중한 자산이기에 그 이름을 기억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식물명은 공동의 언어를 가진 공동체가 식물과 맺어 온 관계의 역사라는 독특성을 가지지만, 동시에 언어의 한 영역이다. 사람의 언어는 생성되고, 발전되고 ,변화하며, 소멸하기도 한다. 왜 옛사람들이 실생활에서 음식으로 그리고 약으로 사용하면서 보고 느낀 바에 따라 만들어 부르고 우리에게 계승하여 준 ‘개미취’라는 곱고 아름다운 우리 이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긴 과정에서 소멸하여 문헌으로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름을 현재에 살려 불러야 하는지는 이해하기 어렵다.

더욱이 식물학의 기초적인 명제나 과학적 토대까지 다 무시하고 옛사람들이 실생활에서 만든 삶 속에서 살아 있는 것으로 우리에게 이어지고 있는 이름까지 버려야 하는 것이 ‘우리 식물 이름의 뿌리를 바로 잡는 것’인지 모르고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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