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번 ‘아하! 체험’을 겪다
    [종교와 사회] 남북의 만남을 보며
        2018년 05월 08일 08: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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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그제 남북 정상회담이 감동적으로 진행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왠지 편안해지고 모든 일들이 잘 될 것 같은, 그리고 그냥 모든 사람들이 이뻐 보이는 것 같고, 앞으로 살 날보다 산 날이 더 많은 사람인데, 왠지 더 오래 살 수 있을 것 같은 희망(?)과 예감이 들었다 할까. 아무튼 좀 더 오래 살아서 북한의 아버지 고향도 가보고, 평양, 신의주 등등 여기저기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재인, 김정은 두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할 것 같다. 생전 처음 보는 두 사람일 텐데 반갑게 웃으면서 손을 맞잡고 인사를 나누고, 정답게 길을 걷는 모습, 밥을 같이 먹고, 술을 한잔씩 권해 가면서 한바탕 웃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나는 물론 많은 사람에게 큰 행복감을 주었으니 도대체 무슨 일인가?

    홍콩에서 온 어느 여기자는 그런 장면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왜 자기와 별로 상관없는 나라의 정상들이 악수하고 웃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을까?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 며칠 전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것 같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무기자랑하며 죽기 아니면 살기다하는 식으로 으르렁 거리던 사이가 남북 아니었던가? 늘상 만나며 하는 악수하고 인사하는 일이 이렇게 큰일이라는 걸 나도 예전에 미처 몰랐던 것 같다.

    여하튼 생전에 시라는 걸 거의 써 본 적이 없는 나는 그날 오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노트북을 켜고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뭔가를 끄적끄적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한반도 땅, 사랑이라 (20180427) / 남북정상회담을 보면서

    두 사람 웃는 얼굴이 조오타
    쇠로 만든 괴물들을 자랑할 때 보다 훨씬 인간답다
    사실 두 얼굴들은 인간의 얼굴들이 아니었다
    아버지 할아버지 올라가 보면
    고통과 죽음, 절망과 미움, 배신과 보복으로 굵게 주름진
    인간의 얼굴이라고 할 수 없이 조오치 않았다.
    흉 했다
    그런데 같이 웃으니 얼마나 좋은가
    왜 흉하게들 살았지?

    두 사람 맞잡은 손보니 눈물이 난다
    지나 간 많은 손들은 서로 손가락질하고 목 졸랐다
    인간의 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더럽고 무서웠다
    서로 얼싸안고 보듬어주고 어깨 두드려주는게 손인데
    더구나 두 사람이 손을 맞잡으니
    그 무서운 철조망이 사르르 녹아버리네
    그리고 드디어 인간이 되었다
    옛날에 인간 손 없는 인간들이 많았구나

    두 사람 같이 걸으니 땅이 흔들린다
    총 칼 탱크 무게로가 아니라
    나도 모르는 이상한 지진이 일어나네
    늘 자기네 땅 자랑만하고 살 때는
    땅들은 갑자기 꺼지거나 뒤집어 졌었다
    같이 손잡고 걸으니 그 땅이 달라졌네
    인민복, 양복 멋지게 어울리는 착한 땅이 되었구나
    이제 땅 투기꾼들 없어지고
    애들 어른 넉넉하게 놀 수 있는 우리들 땅이다
    역시 같이 걸어야 땅도 선하게 웃는구나

    오늘 나는 땅이 춤추는 걸 봤다

    어느 종교학자는 말했다. ‘진리의 길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산을 오르기 전에는 눈앞에 들어오는 몇 그루의 나무와 풀만이 전부인 줄 알고 그것만 주장하지만 점점 높이 올라가면 갈수록 시야는 점점 넓어져서 저 너머에 강이 있는 것도, 호수가 있는 것도, 더 멀리에는 바다가 있는 것도, 섬이 있는 것까지도 알게 된다. 점점 높이 올라갈수록 몰랐던 것, 실상의 새로운 측면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적 진리 체험의 길을 ‘아하! 체험’이라고 했다.

    엊그제 전혀 시라는 걸 모르는 내가 시 비슷한 것을 나도 모르게 여하튼 쓸 정도였으니, 나는 남북정상회담을 보면서 ‘아하! 체험’을 한 것이라고밖에 해석할 수가 없다. 남북 이해에 대한 좁은 소견, 한정된 시야를 통해 갖고 있던 제한된 부정적 생각들, 일방적 견해, 편향된 이념, 선입견 이런 것들로부터 순간 해방되면서 아하! 하는 종교적 체험을 했다고 하면 과장된 말일까? 하긴 종교적 진리체험이라는 것도 결국 날마다 버리는 작업 아니겠는가. 계속해서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입는 일일 것이다. 과거에 죽고, 내일에 대해 부활하는 죽음과 부활의 체험이 진리 체험이라면 나는 일종의 그런 체험을 하면서 시를 쓴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런데 그날 어느 정당의 대표가 남북정상회담을 ‘위장된 정치 쇼’라고 말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나는 다시 한 번 진리 체험 같은 것을 했다. 아하! 그렇구나, 그렇게 보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말이다. 그러면서 시각 장애인이 코끼리 만지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A는 코끼리 코를 만지고는 코끼리는 구렁이처럼 생겼다고 하고, B는 코끼리 배를 만지고는 바람벽처럼 생겼다고 하고, C는 다리를, D는 귀를 각각 만지고 나름대로 해석했다는 이야기다. 그저 자기가 만진 코끼리가 진짜 코끼리라고 주장하며 절대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태도, ‘구렁이같이 생긴 코끼리’ 하나 만을 진리로 여기고 다른 견해는 배척하고 정죄하는 태도, 바람직한 자세는 아닐 것이다.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위험한 사고다. 마음 문을 닫고, 경직된 사고로, 고정관념에 빠져서 실상의 코끼리에 가까운 코끼리를 파악하도록 발전하고 성장하는 길을 스스로 막는 어리석은 탐구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위장된 정치 쇼’라고 단정했다는 말을 듣고 들은 생각이다.

    성서의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나는 내가 아직 잡은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빌3:14)고 했다. 날마다 실상의 모습을 발견하고 새로워지고 감동하면서 자라게 하는 종교가 참 종교라는 것을 뒷받침 해주는 말이다. 그렇다고 꼭 종교만이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여하튼 나로서는 며칠 전, 두 번의 ‘아하!’ 하는 종교체험을 통해 진리와 좀 더 가까워진 것 같아서 행복했다.

    필자소개
    목사. 거창 씨알평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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