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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사람, 바다일 이야기
    [책소개] 『포클랜드 어장 가는 길』(최희철/ 앨피)
        2018년 05월 05일 12: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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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롤어선은 어떤 배일까? 공해와 배타적경제수역은 어떤 관계? 예망은 뭐고, 앙망은 또 뭐지?

    뉴스와 다큐멘터리에 자주 나오지만 우리가 별다른 관심 없이 흘려듣는 단어들이 이 책에는 예사로 등장한다. 수산대학교를 졸업하고 7년간 항해사로 일한 뒤 육지를 거쳐 다시 바다로 돌아간 초로의 사내가 수줍게 내미는 원양어선 조업 기록이다.

    그의 직업은 ‘어업 옵서버’. 나라와 선사船社에서 반반씩 돈을 받고 원양어선에 승선하여 생물학적 자료를 조사하는 사람이다. 더 정확히는 불법 어업 감시 및 과학적 데이터 수집을 목적으로 국제기구나 국가의 권한을 대행받아 어선에 승선하는 사람.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먼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원양어선 선원이라면 그 엄청난 노동 강도와 각종 이해관계에 치여 엄두를 못 냈을 ‘기록’을 할 수 있었다.

    단순한 기록이 아닌 바다에서 바다로 먹고사는 사람들이나 하는 처량한 걱정과 사소한 즐거움, 오래도록 바다로 먹고살 궁리 등등이 바다와 바닷사람, 그들이 하는 조업과 어선 위 일상, 바다 생물들의 이야기로 버무려져 2만 킬로미터 떨어진 바다로 곧장 팔을 끌어당긴다.

    그 멀리서 보내온 생선 한 점

    책은 포클랜드 어장의 위치를 보여 주는 지도로 시작된다. 포클랜드가 대체 어디인가? 남대서양 아르헨티나의 오른쪽 아래에 붙어 있는 영국령 제도이다. 포클랜드 ‘어장’의 정식 명칭은 FAO(세계식량농업기구)-41해구 섹터 3.1해역의 공해 어장이다. 저자는 이 어장에서 조업할 899톤급 ‘77 오양호’를 타고 옵서버로서 각종 바다생물 자료를 수집할 예정이다.

    그러나 77 오양호가 있는 포클랜드 어장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기만 하다. 2016년 3월 21일 인천공항을 떠나 프랑크푸르트-상파울루-몬테비데오-러시아 운반선-또 다른 운반선-다른 트롤선-또 다른 배를 타고 내리기를 거듭한 끝에야, 한국을 떠난 지 12일 만에 89일간 과학 조사를 벌일 77오양호에 오른다. 그렇게나 멀고, 가기 어렵고, 가는 사람이 없는 곳이 대서양 남서쪽 41해구 남위 41-48 서경 62-56, 섹터 3.1해역에 있는 포클랜드 공해 어장이다.

    한국인 10명과 인도네시아인 18명, 필리핀인 16명 등 선원 45명과 1명의 옵서버는 2만 킬로미터 밖 그 바다 위 한 점에서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석 달간 조업을 일삼았다.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씹고 뜯고 맛보는 오징어와 가오리, 각종 생선들은 그들이 그렇게 올려서 붓고 자르고 얼려서 보내온 것들이다.

    바다도 걱정이고, 바닷사람도 걱정이고

    바닷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할까? 먼바다에서 끌어올린 바다 생물들은 어떻게 처리하고 보관할까? 바다에서 뭘 먹고 샤워는 어떻게 하지? 잠은 어떻게 자고 쉬는 시간에는 뭘 할까? …

    이 책의 묘미는 바로 이러한 사소하지만 궁금했던 바다 위의 삶, 선원들의 일상을 꼬치꼬치 보여 주는 데 있다. 바다 생물들의 상태를 조사하여 기록하는 옵서버는 바닷속 쓰레기와 오염이 걱정이다. 이젠 다 시어빠진 중늙은이들만 남은 한국 원양어업도 걱정이고, 선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도 걱정이다. 그러나 모진 바람을 만나 거칠게 ‘롤링’하는 배 위에서 이런 걱정은 차라리 배부른 소리다.

    망망대해 위에서도 매일같이 세 끼를 먹고 잠을 자고 샤워를 하며 속옷을 빨아야 한다. 바다에서도 USB에 담아 온 드라마와 영화, 각종 오락 프로그램을 봐야 이야기가 통하고, 급할 때는 이메일도 보내야 한다. 물고기만 잡으면 끝인가. 골라내고 분류하고 자르고 포장해서 얼리고, 청소하고 어구들도 손봐야 한다. 옵서버라고 예외는 아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조업과 잔업의 쳇바퀴 틈틈이 밀려오는 그리움은 어쩔 것인가. 결국 바다 걱정으로 시작된 여정은 바다 걱정에 바닷사람 걱정을 얹어서 끝이 난다.

    지금도 거기서 꿈틀대고 있을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먼바다 생물을 먹을 수 있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정작 그것들이 어떤 경로로 우리 식탁에 오르는지 잘 모른다. 일종의 ‘바다맹盲’이라고나 할까. 다른 직업에 비해 원양어업이나 그 선원들에 대한 관심도 적다.

    저자는 그러나 세상의 모든 육지가 세상의 모든 바다와 연결되어 있듯, 육지의 삶과 바다의 삶도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은 육지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원양어업은 지금 벼랑 끝에 서 있다. 저자는 이 고단한 ‘여정’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그때까지 모두 힘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먼바다에서 오늘도 힘차게 살아가는 사람들, 거기서 꿈틀대는 생명체들을 잊지 말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그렇게 최희철 옵서버는 육지에서 몇 달간 어슬렁어슬렁 두 다리로 마음껏 걸어서 돌아다니다 출간 열흘 전 다시 칠레 푼타아레나스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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