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보다 더 중한 범죄,
한진의 조직적 밀수 의혹
관세청 직원도 연루 의혹···'셀프 감찰' '부실 수사' 우려 커져
    2018년 05월 04일 06: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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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이른바 ‘물벼락 갑질’이 한진그룹 총수일가의 탈세·밀수와 자녀회사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검찰과 경찰에 이어 관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도 총수일가의 탈세·밀수 의혹 조사에 나섰다.

경찰은 4일 조현민 전 전무에 대해 폭행,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조 전 전무는 지난 1일 경찰에 출두해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했음에도, 조사에선 모든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전무의 모친인 이명희 이사장도 직원 폭행 영상이 공개돼 논란이 됐고, 이에 앞서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으로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바 있다.

재벌3세 인성 문제로 끝날 것 같던 이번 논란은 대한항공 전·현직 직원들의 폭로로 총수일가의 탈세·밀수 의혹으로 확대됐다.

가장 먼저 제기된 의혹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두 딸인 조현아·현민 자매가 대한항공 비행기와 직원들을 개인 쇼핑과 밀수에 상습 동원했다는 것이다. 이를 9년간 목격한 대한항공 직원과 한진그룹 계열사 직원들은 조씨 자매가 인터넷 쇼핑으로 고른 명품가방과 운동화, 과자 등 해외 물품이 해외지점으로 배송되면 이를 공항으로 옮긴 후 대한항공 1등석으로 실었다고 증언했다. 조씨 자매가 세관 신고 없이 해외 물품을 국내로 반입했다는 것이다. 일주일에 2~3번꼴로 대한항공 해외 지점 직원들은 조씨 자매의 밀수에 총동원됐다고 한다.

특히 이들은 이전엔 해외 물품을 박스에 담아왔는데 세관의 지적 이후 현재는 이민 가방에 담아 밀수한다고 전했다. 세관에서도 총수일가의 밀수를 알고도 눈 감아줬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조씨 자매에 한정했던 밀수 의혹은 한진 총수일가 전체로 번졌다. 총수일가 소유의 미국 로스앤젤레스 고급 별장에 있는 고가의 가구들이 미국 세관 당국에 관세를 내지 않고 밀반입된 것이라는 제보가 나오면서다. 총수일가는 고가의 가구들을 항공기 부품으로 속여서 반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만약 이 제보가 사실이라면 미국 세관국경보호국이 조 회장 일가의 밀수·탈세 의혹에 대해 조사할 가능성이 있다. 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조 회장 일가가 미국법에 따라 처벌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밀수는 조 전 전무가 받고 있는 폭행, 업무방해 혐의에 비해 형량이 무겁다.

업무방해의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1500만 원 이하의 벌금, 일반 폭행죄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나 구류나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밀수의 경우, 단순 밀수만 해도 5년 이하 징역형 또는 밀수 금액의 최대 10배 벌금이 부과된다. 관세포탈죄는 3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만약 조씨 일가가 대한항공 직원들을 동원해 상습적이고 조직적으로 밀수를 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10년 이상의 징역 또는 최고 무기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앞서 대한항공 전·현직 직원들은 10년 가까이 조씨 자매의 밀수를 목격하고 총동원돼 도왔다고 증언한 바 있다.

관세청, 한진 총수일가 압수수색했지만…
“고양이에 생선을 맡겼다” 불신 팽배

관세청은 서울 평창동에 있는 한진그룹 총수일가의 자택에 대해 3차례 압수수색을 벌인 결과, 총 3곳의 ‘비밀의 방’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 중 2곳은 지하와 2층 드레스룸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각각 책꽂이와 옷가지로 가려져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관세청은 3차례의 압수수색에도 관세법 위반 혐의와 관련된 물품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인천공항 세관당국과 대한항공의 유착 의혹이 일고 있다. 앞서 조씨 일가의 밀수를 눈감아준 대가로 대한항공 좌석 배정 편의를 제공 받고, 조씨 일가가 밀수한 양주를 상납 받았다는 증언이 나온바 있다. 관세청의 3차례 압수수색도 ‘보여주기식’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10년 가까이 이뤄진 밀수를 인천공항 세관당국과 관세청이 모를 수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고, 직원들의 구체적 증언도 이어졌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인천공항 세관당국 관계자가 총수일가의 밀수를 알고도 묵인하는 등 직간접으로 관여했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 예컨대 조씨 자매가 밀수품을 박스에 담는 점을 관세당국 관계자가 지적하자, 이후 이민 가방으로 바꿨던 점이 그렇다.

관세청 고위관계자가 대한항공 좌석 배정에 편의를 받았으며, 총수일가가 준 양주로 회식을 했다는 의혹이 있다.

대한항공 좌석 배정 편의 제공 의혹은 구체적 정황이 드러났다. <MBC>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대한항공 여객사업본부의 한 차장이 여객기 좌석 담당자에게 보낸 업무 메일을 공개했다. 인천공항세관 과장의 부탁이라며 지인 4명의 좌석을 보다 넓은 앞자리로 옮겨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이다. 이틀 뒤 해당 직원은 요청 사항이 반영됐다는 답장을 보냈다.

관세청이 제보를 받기 위해 만든 익명 단톡방 등엔 인천공항 세관당국과 대한항공의 유착에 대한 전·현직 대한항공 직원들의 제보도 다수 올라오고 있다. 총수일가가 밀반입한 고가의 양주를 세관에 상납했다는 것이다.

김영문 관세청장은 지난달 30일 대한항공과 세관 간 유착관계에 대해 감찰을 실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나, 애초에 불법을 묵인해 준 관세청이 자신들의 의혹에 대해 철저히 조사할 수 있겠냐며 ‘셀프 감찰’, ‘부실 수사’ 비판이 나온다. 일각에선 대한항공과 유착한 관계자 처벌 등 내부 쇄신 요구가 나온다.

장정숙 민주평화당 대변인은 4일 논평을 내고 “관세청은 조씨 일가의 밀수 의혹이 불거지고 한참 뒤에야 뒤늦게 밀수품을 숨겨둔 것으로 의심되는 ‘비밀의 방’을 발견했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찾는 시늉만 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장 대변인은 “국민은 지금도 조씨 일가에 대한 관세청 수사에 대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다’는 불신을 저버리지 못하고 있다”며 “조씨 일가의 밀수를 방조한 공무원의 파면과 형사처벌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관세청이 계속 조직 지키기로 일관한다면 자신이 수사대상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갑질, 막말, 일감몰아주기, 폭행, 밀수, 통행세까지
공정위도 수사 착수…조씨 일가 퇴진할까

공정거래위원회도 지난달 24일 한진그룹 총수일가의 밀수와 탈세 의혹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는 “지난 20일부터 대한항공 및 다수 계열사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며 “기내면세품 판매와 관련해 통행세와 사익을 편취한 혐의에 대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대한항공과 진에어는 기내에서 직접 면세품을 팔고 있다. 통행세란 일반적인 거래 과정의 중간에 총수 일가가 소유한 회사를 집어넣어 총수 일가에 부당 이득이 가도록 하는 방식을 뜻한다.

공정위는 한진 계열사인 정석기업 대표 원종승씨와 조현아·원태·현민씨가 공동 대표를 맡은 면세품 중개업체 ‘트리온무역’을 통해 통행세를 챙겼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 3남매 통행세 의혹에 이어 부인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도 트리온무역과 같은 방식으로 통행세를 챙겼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일 이명희 이사장이 미호인터네셔널이라는 업체를 통해 통행세를 거둔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미호인터네셔널은 도매 및 소매업으로 신고해 2003년 4월에 설립된 곳이다. 2011년 이명희 이사장이 공동대표로 추가 등록되면서, 중개무역 사업자로 업종을 전환됐고 트리온무역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통행세 여부에 대해 수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윤 의원은 주장했다.

일각에선 공정위와 관세청 조사 결과에 따라, 대한항공의 조직적인 밀수나 탈세 혐의가 드러날 경우 조양호 회장을 비롯해 아들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도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요구가 쏟아진다.

대한항공 전·현직 직원들의 자발적 모임인 ‘대한항공 직원연대’는 이날 오후 7시 광화문 인근에서 총수일가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개최한다.

정치권에서는 대한항공 청문회를 개최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노동이 당당한 나라 시즌 2 ‘갑질과의 전쟁’ 발대식에서 “국적기를 달고, 태극기를 마크로 지니고 있는 대한항공에서 그 경영을 이끌고 있는 사람들이 한낱 밀수꾼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제까지 그냥 내버려둘 것이냐”며 “즉각 국회를 정상화시키고, 관련 상임위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청문회를 통해 한진 재벌 그룹을 제대로 바로잡는 일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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