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해자, 배려 대상 아닌
    권리 주체 관점 접근해야
    문재인 정부 1년 생명과 안전 정책에 대한 평가 토론회 개최
        2018년 05월 03일 06:20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문재인 정부 1년 생명과 안전 정책에 관한 평가 토론회가 3일 열렸다. 정부가 주요 국정과제를 생명과 안전의 영역에 두고 있다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참사의 주체인 ‘피해자의 권리’가 도외시되고 있는 점은 전 정부와 달라지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41.6가족협의회, 민주노총, 반올림 등 19개 노동·인권·시민사회단체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문재인 정부 1년, 생명과 안전의 권리는 어디쯤 왔나’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 모습(사진=유하라)

    “피해자 권리 보장되지 않으면 재난참사는 현재진행형”

    토론회 발제자인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에 생명과 안전 영역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고, 일부 안전 취약계층 보호를 언급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문제는 재난의 시작과 끝은 사람이고 권리의 주체로서의 피해자의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태도는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2015년 마련된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은 ‘예방·대비단계’, ‘대응단계’, ‘수습·복구단계’로 정리된다. 정부는 이 계획안을 토대로 피해자와 관련해 ‘재난피해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 부족’, ‘보상근거·기준 불명확’하다고 진단하면서, 재난 피해자 지원 확대를 위한 ‘사회재난 국고지원 기준 마련’, ‘사회재난까지 확대해 피해자 구호’ 등의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황필규 변호사는 “새 정부 전에 마련된 것이긴 하지만,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을 봐도 여전히 피해자 권리의 문제를 지원과 배려의 관점으로 접근한다는 근본적 문제가 있다”며 피해자 문제를 보호와 보상 문제만 봐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는 단순히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의 문제를 배려로 접근하는지, 권리로 접근하는지에 따라 현장에서 차이가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피해자의 권리가 도외시되고 피해자를 ‘배려의 대상’으로만 보는 정책은 문재인 정부 이후의 정책에서도 계속된다. 올해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업무추진계획은 포항 지진 참사 이후 즉자적으로 만들어진 대책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황 변호사는 “더 큰 문제는 ‘피해자 중심의 구호 복구체계 개선’의 내용의 전부가 ‘이재민 구호소 기준, 구호자 배려대책 등 세심한 운영 매뉴얼 마련’이 피해자 정책의 전부”라며 “재난대응체계에서 필요한 것은 피해자의 권리를 제대로 확인하고 충분히 보장하는 것이지, ‘배려대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피해자를 배려와 지원의 대상으로만 판단하는 시각은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2018~2022)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은 인권정책을 총망라한 것으로 문재인 정부 인권정책의 길잡이 정책이다.

    인권정책기본계획에는 안전취약계층 지원이나 트라우마 극복 지원을 위한 지원체계 구축, 독립적 재난사고 조사위원회 설립 등 일부 진전된 내용이 포함돼있기는 하다. 하지만 황 변호사는 “인권대책임에도 피해자를 대피와 지원의 대상으로 보고 있어서 우려스럽고, 그 내용도 국정과제의 내용과 대동소이하다”면서 “아직 정권 초기이기 때문에 내년에 수립될 국가안전기본계획에선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 제대로 된 내용이 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삼성반도체 작업환경 측정결과 보고서 비공개…피해자 권리 짓밟은 대표적 사례
    “산재 예방위해서라도 정보 접근권 보장해야”
    생명권, 알권리 보호 위한 법제도 마련 필요성도 제기

    “‘책상머리에 앉아서 고용노동부가 국가기밀을 유출한다’는 식의 선정적 기사들과 공공의 안전과 생명이라는 가치보다 삼성의 곤란함을 더 걱정하는 산자부, 삼성의 이해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한 전문가들 앞에서 산재입증을 위해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정보공개를 신청했던 유족들과 피해자들은 길을 잃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직업병 사건은 피해자의 권리가 짓밟힌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 중심엔 온갖 로비로 작업환경측정보고서 공개를 막는 삼성과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조까지 거스르며 삼성의 손을 들어준 산업통상자원부가 있다.

    지난달 17일 산자부 산업기술보호위원회는 삼성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 측정 결과 보고서에 국가핵심기술이 포함되었다’고 결정했다. 삼성이 작업환경 측정 결과 보고서를 공개해야 한다는 법원과 고용노동부의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앞서 대전고등법원은 올해 2월 “삼성전자 작업환경 측정 결과 보고서는 영업 기밀이 아니고, 산재노동자와 인근 지역 주민의 생명, 신체의 건강 등을 위해 필요한 정보이므로 공개해야 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지난해 8월 대법원도 삼성이 해당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을 경우 산재 입증과 관련해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결정했었다.

    작업환경 측정결과 보고서란 사업주가 작업장 내 유해물질에 대해 노동자의 노출 정도를 자체 측정한 결과다. 피해자들은 오랜 기간 해당 보고서 공개를 위해 싸워왔다. 노동자들이 얼마나 유해한 환경에 노출되는지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근거이기 때문이다.

    반올림 상임활동가인 이종란 노무사는 발제를 통해 “최근 작업환경측정보고서 공개거부 사태를 겪으면서 산재 입증을 위해 해당 자료를 정보공개 신청한 백혈병, 림프종 등 피해자와 유족들을 참담한 심정”이라며 “기업의 이윤이나 국가경제의 발전에 중요한 핵심기술이라 해도 그것이 노동자와 지역주민의 안전과 건강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고 산자부와 삼성을 강하게 비판했다.

    보고서 공개가 중요한 이유는 현행 산재보험법에 따라 산재의 입증책임을 노동자에게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종란 노무사는 “기업은 영업비밀이라며 감추는 반면 노동자나 재해자의 정보접근권에 대한 권리는 미약하다”며 “유해하다는 정보를 사업주 누구한테도 들은 적이 없었는데 노동자에게 ‘당신이 아픈 이유를, 그게 산재라는 이유를 스스로 밝혀야 하 산재보험을 적용해주겠다’는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이 노무사는 “산재보상을 위해서 뿐 아니라 그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그리고 비슷한 피해를 예방하고 만일의 사고 시 제대로 대응할 수 있으려면 노동자와 주민 및 관련 기관에 공장에서 아용되는 화학물질 정보 접근권이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삼성은 공익을 해치는 소모적 논란을 부추기지 말고 보고서를 공개해야 한다”면서 “정부와 국회는 영업비밀 주장을 남용하는 기업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권과 알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제도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