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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 코너] 천국 앞에서의 질문
        2018년 05월 03일 10: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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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인여대 주혜주 교수(정신간호학)의 “행복 코너”라는 고정 칼럼을 신설한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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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미국에서 제작된 롭 라이너 감독, 잭 니콜슨·모건 프리먼 주연의 영화 <버킷 리스트>는 우리로 하여금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과 보고 싶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던 영화 이다. ‘버킷 리스트’란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을 가리키는 말이다.

    영화는 죽음을 앞에 둔 노년의 두 남자 주인공이 한 병실을 쓰게 되면서 자신들에게 남은 시간 동안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리스트를 만들고, 병실을 벗어나 하나씩 실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살면서 한 일들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들’이라는 영화 속 메시지처럼 버킷 리스트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다 가려는 목적으로 작성하는 리스트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한 지인의 글을 통해 이 영화에서 버킷 리스트 외에 보물과 같은 장면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주인공들이 해질 무렵에 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였던 이집트 피라미드 앞에서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영혼이 천국의 입구에 도착하면 두 가지 질문을 받는다고 믿었다네. 첫째, 인생의 기쁨을 찾았는가? 둘째, 너의 인생이 다른 이들에게 기쁨을 주었는가? 라네.”

    놀랍게도 천국으로 들어가는 기준이 봉사나 기부 같은 선행이 아니라 ‘삶에서 발견하는 기쁨’이라는 교훈을 전하고 있었다. 모태 기독교인인 나로선 착한 일, 옳은 것에 꽂혀 살아왔던지라 이 장면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삶의 핵심이 다름 아니라 내가 기쁘게 살고, 남도 기쁘게 해 주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흐뭇한 상태가 행복이라고 한다면 영화에서의 질문은 ‘당신은 행복하게 살았는가’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줬는가’로 바꿀 수 있다.

    ‘버킷 리스트’의 한 장면. 피라미드 앞의 두 남자

    2007년부터 매년 12월에 다음 해의 10대 트렌드 키워드를 발표해 온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는 2018년 우리나라 소비트렌드 중에 하나로 ‘소확행(小確幸)’을 선정했다. 이 말은 일본의 저명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 느끼는 행복과 같이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즐거움을 뜻하는 단어로 처음 사용하였다. 즉 소확행이란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이란 뜻이다.

    이와 비슷한 뜻을 지닌 스웨덴의 ‘라곰(lagom)’, 프랑스의 ‘오캄(au calme)’, 덴마크의 ‘휘게(hygge)’ 등의 단어들이 유행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세계적인 추세는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으면, 즉 의식주 같은 생활의 기본조건이 어느 정도 해결되면 사람들은 삶에서 만족 즉 행복을 추구하게 된다고 한 조사연구 결과와 상응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목적을 묻는 질문에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대답하는 것을 볼 때 행복은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이자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해서 역사적으로 유명하다는 철학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행복에 대해 한마디씩 정의했다. 행복에 대해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해왔고, 아마 앞으로도 인간이 존재하는 한 행복에 대한 관심과 담론은 계속될 것이다.

    행복이 인간사에게 중요한 컨셉인 만큼 행복을 다룬 영화는 무수히 많다. 단연 영화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영화는 실제 프랑스 파리의 정신과 의사였던 프랑수아 를로르가 환자들을 진료하며 얻은 경험과 생각들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행복론을 기술하여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주인공 꾸뻬 씨(영화나 책에서 의 이름은 핵터임)는 마음의 병을 안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어떤 치료로도 진정한 행복에 이르게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자신 역시 행복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리고는 진료실 문을 닫고 무엇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불행하게 만드는지 ‘행복의 비밀’을 찾아 나선다.

    영화 마지막에는 세계 곳곳을 돌아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도착한 꾸뻬 씨가 여행 중에 만나 깨달음에 도움을 준 고승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이 나온다. 영상통화에서 고승은 꾸뻬 씨에게 행복에 대해 뭘 배웠냐고 묻는다. “사람들에게는 행복할 능력이 있다”라고 자신있게 답하는 꾸뻬 씨에게 고승은 좀 더 높여 보라 한다. 그러자 꾸뻬 씨는 “사람들에게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라고 답하고, 고승은 좀 더 높여보라 한다. 잠시 난색을 표하며 망설이던 꾸뻬 씨는 “사람들에게는 행복할 의무가 있다”라고 답한다. 그제서야 고승은 두 손 모아 합장을 한다.

    영화 중에 “첫 번째 실수는 행복을 삶의 목표라고 믿는 데 있다”고 한 노승의 말처럼 행복은 저 멀리 어딘가에 있어 찾아야 할, 또는 추구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소냐 류보머스키(Sonja Lyubomirsky)가 그의 저서 『행복도 연습이 필요하다(The How of Happiness)』에서 기술한 대로 행복 추구가 아니라 행복의 창조 또는 행복의 건설이 더 맞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행복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니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歸天)」의 마지막 글귀가 떠오른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필자소개
    20년 가까이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병동 간호사 및 수간호사로 재직했고 현재는 경인여자대학교 간호학과 교수(정신간호학)로 재직. 저서 및 논문으로 심리 에세이 ‘마음 극장’ “여성은 어떻게 이혼을 결정하는가”“ 체험과 성찰을 통한 의사소통 워크북”(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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